믿음으로 모세는 (히11:24-32)
본문
히브리서 11장을 우리는 흔히 믿음의 장이라고 부릅니다. 믿음이 무엇임을 정의하면서 믿음으로 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벨의 믿음으로부터 시작해서 에녹이 어떻게 믿음으로 살고, 노아가 어떻게 믿음으로 살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그리고 모세의 믿음에 대해서 말합니다. 오늘 모세의 믿음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 시기를 바랍니다. 모세는 영응적으로 산 사람입니다. 그의 삶은 기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가 태어나서 생명을 보존한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그 가 사막의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것은 참 으로 감동적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고 애굽의 통치자 바로와 싸우면서 출애굽하는 장면은 얼마나 위대한 드라마입니까 신명기 34장 7절에 보면 '모세의 죽을 때 나이 120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고 말씀했습니다. 비스가산에서의 그의 죽음은 얼마나 신비스럽습니까 그의 시체는 하니닙에 의해 감추어져서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성경은 모세를 가리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붙여질 수 있는 모든 별명가운데 얼마나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칭호입니까 신명기 34장 l0절을 보면 '그 후 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라고 역사상 모세와 같은 선지자는 다시 없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심판대 앞에 섰을 때 가장 궁금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알아 주실까'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살 동안 자기들이 주님을 잘 안다고 하였는데 주님께서는 도무지 그들을 모른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비극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잘 안다고 하는데 주님이 우리를 모른다고 하시면 어떻 게 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닙은 모세를 대면해서 안다고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3장에 보면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정한 친구와 친교하듯이 모세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면 모세의 이 위대한 삶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어떻게 했습니까
첫째로 '거절했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거절했습니까 24절에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애굽 왕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면 얼마나 명예로운 자리 입니까 이 명예를 거절한 것입니다.
그런데 명예 그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요셉과 다니엘은 한 나라 의 훌륭한 지도자이면서도 하니닙을 경외하면서 아름다운 삶을 살 았습니다. 좋은 의미에서 유명해지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명예심이 하나닙과 우리 사이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런 명예심은 거절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바로 살아가는데 거침이 되는 것이라면 그런 명예심은 거절해야 합니다. 모세가 명예를 거절한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명예심을 거절하는 것보다 자신을 길러준 어머니의 사랑을 거절해야 하는데 더 큰 아픔이 있 었을 것입니다. 바로의 공주는 모세를 길러준 어머니입니다. 아마 그를 낳아준 어머니보다도 더 큰 애정이 모세와 공주사이에 있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이 정든 어머니의 곁을 떠났습니다. 성경은 부모를 미워하라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부모를 공경하 고 처자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인간을 사랑한 그 사랑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금이 가게 한다면 그것은 우상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우상이 되어 하나님과의 사이에 거침이 된다면 그 사랑은 부패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마땅히 거절할 것을 거절해야 합니다. 성경은 언제나 먼저 '회개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고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회개하라는 말 을 사람들은 기분 나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회개라는 말을 별로 쓰지 않으려 합니다. 오늘 교회의 문제가 바로 억기에 있습니다. 회개 없는 복음을 강조하는 것은 교회의 가장 무서운 취약 점입니다. 회개 없는 기독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진실로 자신의 죄를 깨닫고 돌아서는 회개가 없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기분이나 좋게 하기 위해 철학이나 강의하고 지옥에 가게 만드는 종교 단체보다는 차라리 떨어질 사람이 다 떨어져도 회개를 강조하여 죄 앞에 직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받게 해야 합니다. 잠언 기자는 자기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사야도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 로 돌아 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히 여기시리라' 했습니다. 참 믿음은 마땅히 거절할 것을 거절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모세처럼 믿음으로 거절할 것을 거절했습니까
둘째로 '더 좋아했다' 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25절에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였다'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무엇을 택했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삶을 선택하였습니다. 26절에 보세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했습니다. 2절에서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받았다고 했는데, 26절에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을. 받았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에 그리스도가 계셨습니까 모세는 역사적으로 그리스도 를 알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살 았더니 성경은 바로 그 삶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산 것이라고 말씀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을 선택했더니 성경은 그리스도를 선 택했다고 말씀합니다. 거절한다는 것은 소극적인 차원이고, 선택한다는 것은 적극적인 차원입니다 거절은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다 나 은 선택을 하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선택하기 위해서 우리는 거절 해야 합니다. 더 좋은 것을 선택하려면 좋지 않은 것은 거절해야 합니다. 탕자의 비유를 아시지요 탕자가 돼지 우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한 아버지를 선택하지 못합니다. 쥐엄 열매를 먹고 사는 생활에 낭만이 있다고 생각하는 동안은 아버지 집에 돌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살던 죄인의 마음속에 깨달음을 주는 것입니다. 돼지 우리가 얼마나 추합니까 예수 그리스도 없이 삶을 즐기는 것은 쥐엄 열매를 먹고 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전에는 그떻게 낭 만이 있어 보이던 삶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를 알려줍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 보고 뭐라고 하는지 이십 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삽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들이 서있는 자리가 돼지 우리임을 깨닫게 될 것 입니다. 허무와 비극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 없이 서 있는 그 자리가 멸망의 자리인 것을 깨닫는 순간 그들은 아버지 집 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 때부터 인생의 진정한 선택 이 시작됩니다. 구원받기 전까지는 죄악의 날이 횔씬 더 좋아 보입니다. 죄악에 낙이 있다는 것은 성경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낙은 잠시입니다. 그 잠시가 지나면 죄의 허무와 고통의 열매를 씹어야만 합니다. 모세는 이 죄의 본질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죄악의 낙올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그 삶이 고난의 길이라 하여도 그 길을 가기로 한 것입니다.
셋째로 '여겼다'고 했슴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분명한 가치관에 의해서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믿은 후 잃은 것이 많습니다. 바로 왕의 공주의 아들로 장차 일국의 왕이 될 수도 있는 특껀을 잃었습니다. 수많은 재물을 마음대로 누릴 수 있었으나 이것도 잃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여겼다'는 말은 그렇게 '간주했다 "평가 했다는 말입니다. 이 분명한 가치관에 의한 삶이 모세를 뜨겁게 만 들었습니다. 모세에게는 분명한 삶의 전환이 있었습니다. 그는 분명한 가치있는 삶을 선택하고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는 다니지만 가치관의 변화가 없습니다. 우리가 달라지지 않고 세상을 향하여 어떤 메시지를 선포하였습니까 주님이 정말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가 변화됩니다. 이전에 좋던 것이 이제는 값없이 됩니다. 모세가 이 고귀한 가치를 생각하니 바로 왕의 공주의 아들이란 명예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재물도 쾌락도 아무 것도 아니었 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새 삶을 시작할 수가 있었습니다. 모세의 이 위대한 결단을 가능하게 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사도행전 7장에 보면 '나이 40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 볼 생각이 나더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닙이 자기를 통하척 그의 민족을 해방하시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 믿음때문에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 이라 칭함을 거절할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것과 저것 중 에서 하나를 택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니럿은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더구나 믿음으로 모세는 '상 주심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가 명예 와 보화, 그리고 쾌락을 버린 것은 상 주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 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민족을 위하여 능욕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모세의 이 믿음이 위대한 결단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 보상이 당장 우리 눈 앞에 찾아오지 않는다 해도 언젠가는 반 드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수많은 고난 속에 서도 '현재의 고난을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없도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믿음 때문에 바울은 고난을 감수한 것 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믿음으로 이 놀라운 상급을 기대합시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뭐랬어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 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 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래서 믿음으로 모세는 애굽을 떠났습니다. 성경에 보면 모세는 애굽을 두 번 떠났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자기 동족을 옹호하기 위해서 애굽사람을 죽인 것이 탄로나자 바로 왕이 무서워서 미디안 으로 도망쳤습니다. 두번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을 향해 떠났습니다. '내 백성으로 가게 하라- 하며 바로 왕 앞에서 당 당히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애굽을 떠나게 된 과정이 그렇 게 간단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애굽 왕 바로는 몇번씩이나 가게 한 다고 했다가 못가게 한다고 하며 모세와 팽팽한 대결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애굽 땅에 재앙을 내리게 되고 바로의 완악하고 강팍한 마음이 꺾여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나가도록 허락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더 이상 붙들 수가 없겠구나" 그러나 바로에게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난다는 것은 막대한 노동력의 손실이었습니다. 갑자기 이 노동력을 보충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로는 전략을 쓰 기 시작했습니다. 출애굽기 8장에 보면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바로가 모쎄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 무슨 말입니까 너희가 가기는 가되 애굽 땅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모세의 단호한 선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불가하나이다 우리가 사흘 길 광야로 들어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되 우리에게 명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 그러자 바로가 양보해서 가기는 가되 너무 멀리 가 지는 말라고 했습니다. 이런 밀고 당기고 하는 일이 출애굽기 10장 까지 계속됩니다. '내가 너희와 너희 어건 것들을 보내면 여호와를 너희와 함께 하 게 함과 일반이라 삼갈지어다 너희 경영이 악하니라'고 하면서 남 자 어른만 가라고 제시했습니다. 그러자 이 마지막 바로의 제시 앞 에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희 생과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우리의 생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바로 왕의 전략에서 무엇을 느낍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신앙으로 새출발하려 할 때 우리를 세상에 그대로 붙 들어 두려는 마귀의 계략과 어쩌면 그렇게 같을 수가 없습니다. 예 나 지금이나 마귀가 하는 일은 꼭 같습니다. '이왕 예수 믿는 것은 좋다. 그러나 너무 깊이 들어갈 필요가 없 어. 주일에 예배 한 번 드리면 되는 것이지 다른 날까지 나와 예배 드릴 것까지는 없어. 아니 요사이 얼마나 바쁜 세상인데. 시대에 맞 게 예수 믿어야 돼.' '네 몸으로 헌신하는 것은 좋아. 그러나 시간 바치고 물질까지 바칠 필요는 없어. 그저 적당히 믿어.' '더구나 예수 믿으려면 너 흔자만 믿어. 왜 다른 식구들까지 못 살게 구는 거야.' 여러분, 이 사단의 수법은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참 믿음으로 사는 길은 애굽을 온전히 떠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앞에 있는 대를 향하여 전진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믿음의 성숙과 전진을 방해하는 사단의 억사가 내 속에 엄 습하여 올 때 어떻게 해야함니까 모든 삶을 주님께 맡기고 단호히 맞서야 합니다. 배는 밧줄을 끌어주지 않으면 망망대해를 향해서 나갈 수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를 붙들어 매고 있는 밧줄이 무엇입 니까 그 밧줄을 잘라 버리지 않으면 우리의 믿음의 배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깊은 바다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배가 선창에 매어 있는 동안 배는 배지만 배로서의 기능을 다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참된 믿음이란 애굽을 온전히 떠 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참 믿음으로 살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모세는 본래 용기와 배짱을 타고난 사람 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했다'는 것은 굉장한 일입니다. 모세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출애굽기 2장 에 보면 '모세가 두려워하여. . . 바로의 낮을 피하여 미디안 땅 에 떠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가 처음에 애굽 땅을 떠날 때는 바로 왕이 두려워서 떠났습니다. 두려움은 언제나 도피를 가져옵니다.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 부 딪히면 마음이 괴롭고 무거워집니다. 그때 우리는 그 상황을 피하 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세가 4o년 후 두번째 애굽을 떠나게 될 때는 도피가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 바로 왕과 당당히 맞서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은 도피를 낳지만 믿음은 어떤 상황이라 도 대결할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으 로 싸워 이기게 합니다. 믿음으로 모세가 바로 왕의 진노를 두려워하지 아니한 것은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아직도 두려 움에 떨고 있습니다. 흥해가 가로질러 있을 때 흔란 속에 빠져 있던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보십니까 '여기서 죽으면 어떻게 하나 "모세야,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 광야에 파묻으려 하느냐' 그들의 얼굴은 공포에 이그러 졌고, 두려워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그때 두려워 떨고 있는 군중의 한복판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모세는 믿음 으로 그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시편기자는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 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오'라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은 '만 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했고 이사야 선지는 '보라 히니넛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지하고 두 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이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했습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렇게 어려운 여 컨 속에서도 그 백성을 인도할 수 있었던 비결은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다'고 했습니다. 모세가 바로를 보았 으면 절망했을 것입니다. 무지한 이스라엘 백성만을 보았다면 그 마음이 흔들리고 실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바로의 군대만을 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넘실대는 홍해만 본 것 아닙니다.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 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의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실망하고 좌절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다, 믿음으로 모세는 승리한 것처럼 우리도 축원합니다.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그런데 하나닙은 모세를 대면해서 안다고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3장에 보면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정한 친구와 친교하듯이 모세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면 모세의 이 위대한 삶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어떻게 했습니까
첫째로 '거절했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거절했습니까 24절에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애굽 왕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면 얼마나 명예로운 자리 입니까 이 명예를 거절한 것입니다.
그런데 명예 그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요셉과 다니엘은 한 나라 의 훌륭한 지도자이면서도 하니닙을 경외하면서 아름다운 삶을 살 았습니다. 좋은 의미에서 유명해지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명예심이 하나닙과 우리 사이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런 명예심은 거절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바로 살아가는데 거침이 되는 것이라면 그런 명예심은 거절해야 합니다. 모세가 명예를 거절한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명예심을 거절하는 것보다 자신을 길러준 어머니의 사랑을 거절해야 하는데 더 큰 아픔이 있 었을 것입니다. 바로의 공주는 모세를 길러준 어머니입니다. 아마 그를 낳아준 어머니보다도 더 큰 애정이 모세와 공주사이에 있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이 정든 어머니의 곁을 떠났습니다. 성경은 부모를 미워하라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부모를 공경하 고 처자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인간을 사랑한 그 사랑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금이 가게 한다면 그것은 우상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우상이 되어 하나님과의 사이에 거침이 된다면 그 사랑은 부패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마땅히 거절할 것을 거절해야 합니다. 성경은 언제나 먼저 '회개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고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회개하라는 말 을 사람들은 기분 나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회개라는 말을 별로 쓰지 않으려 합니다. 오늘 교회의 문제가 바로 억기에 있습니다. 회개 없는 복음을 강조하는 것은 교회의 가장 무서운 취약 점입니다. 회개 없는 기독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진실로 자신의 죄를 깨닫고 돌아서는 회개가 없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기분이나 좋게 하기 위해 철학이나 강의하고 지옥에 가게 만드는 종교 단체보다는 차라리 떨어질 사람이 다 떨어져도 회개를 강조하여 죄 앞에 직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받게 해야 합니다. 잠언 기자는 자기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사야도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 로 돌아 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히 여기시리라' 했습니다. 참 믿음은 마땅히 거절할 것을 거절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모세처럼 믿음으로 거절할 것을 거절했습니까
둘째로 '더 좋아했다' 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25절에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였다'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무엇을 택했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삶을 선택하였습니다. 26절에 보세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했습니다. 2절에서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받았다고 했는데, 26절에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을. 받았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에 그리스도가 계셨습니까 모세는 역사적으로 그리스도 를 알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살 았더니 성경은 바로 그 삶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산 것이라고 말씀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을 선택했더니 성경은 그리스도를 선 택했다고 말씀합니다. 거절한다는 것은 소극적인 차원이고, 선택한다는 것은 적극적인 차원입니다 거절은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다 나 은 선택을 하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선택하기 위해서 우리는 거절 해야 합니다. 더 좋은 것을 선택하려면 좋지 않은 것은 거절해야 합니다. 탕자의 비유를 아시지요 탕자가 돼지 우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한 아버지를 선택하지 못합니다. 쥐엄 열매를 먹고 사는 생활에 낭만이 있다고 생각하는 동안은 아버지 집에 돌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살던 죄인의 마음속에 깨달음을 주는 것입니다. 돼지 우리가 얼마나 추합니까 예수 그리스도 없이 삶을 즐기는 것은 쥐엄 열매를 먹고 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전에는 그떻게 낭 만이 있어 보이던 삶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를 알려줍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 보고 뭐라고 하는지 이십 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삽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들이 서있는 자리가 돼지 우리임을 깨닫게 될 것 입니다. 허무와 비극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 없이 서 있는 그 자리가 멸망의 자리인 것을 깨닫는 순간 그들은 아버지 집 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 때부터 인생의 진정한 선택 이 시작됩니다. 구원받기 전까지는 죄악의 날이 횔씬 더 좋아 보입니다. 죄악에 낙이 있다는 것은 성경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낙은 잠시입니다. 그 잠시가 지나면 죄의 허무와 고통의 열매를 씹어야만 합니다. 모세는 이 죄의 본질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죄악의 낙올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그 삶이 고난의 길이라 하여도 그 길을 가기로 한 것입니다.
셋째로 '여겼다'고 했슴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분명한 가치관에 의해서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믿은 후 잃은 것이 많습니다. 바로 왕의 공주의 아들로 장차 일국의 왕이 될 수도 있는 특껀을 잃었습니다. 수많은 재물을 마음대로 누릴 수 있었으나 이것도 잃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여겼다'는 말은 그렇게 '간주했다 "평가 했다는 말입니다. 이 분명한 가치관에 의한 삶이 모세를 뜨겁게 만 들었습니다. 모세에게는 분명한 삶의 전환이 있었습니다. 그는 분명한 가치있는 삶을 선택하고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는 다니지만 가치관의 변화가 없습니다. 우리가 달라지지 않고 세상을 향하여 어떤 메시지를 선포하였습니까 주님이 정말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가 변화됩니다. 이전에 좋던 것이 이제는 값없이 됩니다. 모세가 이 고귀한 가치를 생각하니 바로 왕의 공주의 아들이란 명예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재물도 쾌락도 아무 것도 아니었 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새 삶을 시작할 수가 있었습니다. 모세의 이 위대한 결단을 가능하게 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사도행전 7장에 보면 '나이 40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 볼 생각이 나더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닙이 자기를 통하척 그의 민족을 해방하시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 믿음때문에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 이라 칭함을 거절할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것과 저것 중 에서 하나를 택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니럿은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더구나 믿음으로 모세는 '상 주심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가 명예 와 보화, 그리고 쾌락을 버린 것은 상 주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 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민족을 위하여 능욕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모세의 이 믿음이 위대한 결단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 보상이 당장 우리 눈 앞에 찾아오지 않는다 해도 언젠가는 반 드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수많은 고난 속에 서도 '현재의 고난을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없도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믿음 때문에 바울은 고난을 감수한 것 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믿음으로 이 놀라운 상급을 기대합시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뭐랬어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 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 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래서 믿음으로 모세는 애굽을 떠났습니다. 성경에 보면 모세는 애굽을 두 번 떠났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자기 동족을 옹호하기 위해서 애굽사람을 죽인 것이 탄로나자 바로 왕이 무서워서 미디안 으로 도망쳤습니다. 두번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을 향해 떠났습니다. '내 백성으로 가게 하라- 하며 바로 왕 앞에서 당 당히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애굽을 떠나게 된 과정이 그렇 게 간단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애굽 왕 바로는 몇번씩이나 가게 한 다고 했다가 못가게 한다고 하며 모세와 팽팽한 대결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애굽 땅에 재앙을 내리게 되고 바로의 완악하고 강팍한 마음이 꺾여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나가도록 허락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더 이상 붙들 수가 없겠구나" 그러나 바로에게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난다는 것은 막대한 노동력의 손실이었습니다. 갑자기 이 노동력을 보충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로는 전략을 쓰 기 시작했습니다. 출애굽기 8장에 보면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바로가 모쎄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 무슨 말입니까 너희가 가기는 가되 애굽 땅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모세의 단호한 선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불가하나이다 우리가 사흘 길 광야로 들어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되 우리에게 명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 그러자 바로가 양보해서 가기는 가되 너무 멀리 가 지는 말라고 했습니다. 이런 밀고 당기고 하는 일이 출애굽기 10장 까지 계속됩니다. '내가 너희와 너희 어건 것들을 보내면 여호와를 너희와 함께 하 게 함과 일반이라 삼갈지어다 너희 경영이 악하니라'고 하면서 남 자 어른만 가라고 제시했습니다. 그러자 이 마지막 바로의 제시 앞 에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희 생과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우리의 생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바로 왕의 전략에서 무엇을 느낍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신앙으로 새출발하려 할 때 우리를 세상에 그대로 붙 들어 두려는 마귀의 계략과 어쩌면 그렇게 같을 수가 없습니다. 예 나 지금이나 마귀가 하는 일은 꼭 같습니다. '이왕 예수 믿는 것은 좋다. 그러나 너무 깊이 들어갈 필요가 없 어. 주일에 예배 한 번 드리면 되는 것이지 다른 날까지 나와 예배 드릴 것까지는 없어. 아니 요사이 얼마나 바쁜 세상인데. 시대에 맞 게 예수 믿어야 돼.' '네 몸으로 헌신하는 것은 좋아. 그러나 시간 바치고 물질까지 바칠 필요는 없어. 그저 적당히 믿어.' '더구나 예수 믿으려면 너 흔자만 믿어. 왜 다른 식구들까지 못 살게 구는 거야.' 여러분, 이 사단의 수법은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참 믿음으로 사는 길은 애굽을 온전히 떠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앞에 있는 대를 향하여 전진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믿음의 성숙과 전진을 방해하는 사단의 억사가 내 속에 엄 습하여 올 때 어떻게 해야함니까 모든 삶을 주님께 맡기고 단호히 맞서야 합니다. 배는 밧줄을 끌어주지 않으면 망망대해를 향해서 나갈 수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를 붙들어 매고 있는 밧줄이 무엇입 니까 그 밧줄을 잘라 버리지 않으면 우리의 믿음의 배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깊은 바다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배가 선창에 매어 있는 동안 배는 배지만 배로서의 기능을 다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참된 믿음이란 애굽을 온전히 떠 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참 믿음으로 살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모세는 본래 용기와 배짱을 타고난 사람 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했다'는 것은 굉장한 일입니다. 모세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출애굽기 2장 에 보면 '모세가 두려워하여. . . 바로의 낮을 피하여 미디안 땅 에 떠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가 처음에 애굽 땅을 떠날 때는 바로 왕이 두려워서 떠났습니다. 두려움은 언제나 도피를 가져옵니다.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 부 딪히면 마음이 괴롭고 무거워집니다. 그때 우리는 그 상황을 피하 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세가 4o년 후 두번째 애굽을 떠나게 될 때는 도피가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 바로 왕과 당당히 맞서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은 도피를 낳지만 믿음은 어떤 상황이라 도 대결할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으 로 싸워 이기게 합니다. 믿음으로 모세가 바로 왕의 진노를 두려워하지 아니한 것은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아직도 두려 움에 떨고 있습니다. 흥해가 가로질러 있을 때 흔란 속에 빠져 있던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보십니까 '여기서 죽으면 어떻게 하나 "모세야,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 광야에 파묻으려 하느냐' 그들의 얼굴은 공포에 이그러 졌고, 두려워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그때 두려워 떨고 있는 군중의 한복판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모세는 믿음 으로 그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시편기자는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 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오'라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은 '만 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했고 이사야 선지는 '보라 히니넛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지하고 두 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이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했습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렇게 어려운 여 컨 속에서도 그 백성을 인도할 수 있었던 비결은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다'고 했습니다. 모세가 바로를 보았 으면 절망했을 것입니다. 무지한 이스라엘 백성만을 보았다면 그 마음이 흔들리고 실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바로의 군대만을 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넘실대는 홍해만 본 것 아닙니다.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 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의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실망하고 좌절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다, 믿음으로 모세는 승리한 것처럼 우리도 축원합니다.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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