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사는 사람 (히11:23-31)
본문
이 세상에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과 믿음없이 사는 사람 즉 자기의 지식이나 경험으로 사는 두 종류의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신자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믿음을 단순한 장식품으로 알고 가슴에 달고 다니며 형식적인 신앙생뢀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모두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되어서 위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다른사람들에게는 사랑의 열매를 나누어주고 우리 모두가 귀한 축복을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히브리서 11장 말씀은 믿음의 장이라고 흔히들 말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귀절이 바로 38절 말씀입니다 믿음을 가지면 세상이 감당치 못한다고 했습니다. 다시말하면 믿음이 없으면 세상에 굴종하고 실패하지만 믿음이 있으면 온전하게 감당할수 있는 능력의 사람이 될수있다는 뜻의 말씀입니다 , 그러면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
믿지 않는 사람들과 비교해서 무엇인가 달라야 하고 더 낫고 더 좋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믿는 것이구체적으로 좋게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크게 다섯가지의 중요한 특징이 있다고 본문말씀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은 본문말씀을 중심으로 믿음으로 사는 사람 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 하려고 합니다,
1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모험을 합니다.
본문 말씀에 보면 “ 믿음으로 모세가 낳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달 동안을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 했다 ” 고 했습니다.
당시 바로는 이스라엘의 모든 사내아이들을 다 죽이도록 했기 때문에 모세를 집에 숨겨 둔다는 것은 굉장한 모험이였습니다. 식구들이 다 죽임을 당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 할뿐 사람은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모든 역사는 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권력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두려워 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비젼을 바라보고 주변에 무엇이 있든지 개의치 않고 남이 뭐라고 하든지 어떻게 생각하든지 무시하고 목표만을 바라보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일의 결과를 다 하나님께 맡기고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주변의 일만을 따지고 인간적인 생각에서 되고 않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보다 사람의 힘을 더 믿는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떤 모험도 감행항때 성공의 열매가 맷어집니다.
2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살기를 선택합니다. 11장 25절.
세상에는 끼리끼리란 말이 있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저들끼리 모이고 , 바둑을 두는 사람은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입니다. 악한 사람들은 악인들끼리 모이고 신자들은 믿는 사람들끼리 모입니다. 그래서 사귀는 친구를 보고 그 사람을 알수 있습니다 ,
자신을 보는 방법은 친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와 함께 모여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중요한것은 예수님을 믿을 때 개인적으로 부름을 받은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교회라는 믿음의 공동체의 일원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나 한사람만 복받으면 된다는 생각이나 우리 교회만 잘 되면 된다는 생각은 반 기독교적인 사고 입니다. 따라서 성도간의 교제는 상단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우리교인들끼리만 교제하는 것이 아니고 타교회 교인들 까지 심지어는 세계 여기 저기에 흩어진 성도들과도 친교를 나누어야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세상에서 잠시누리는낙보다 더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애굽의 공주의 아들이라고만 돼있었지만 사실은 당시 이 여자는공주 애굽을 실제로 왕의 지위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집트의 룩소에 가보면 그 여인이 묻힌 무덤의 크기가 대단히 웅장하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 모세가 가만이만 있어도 보화와 재물이 넘치는 환경이였습니다,
나라가 몽땅 왕, 일개인의 소유였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그런 영광보다는 주님을 위해 고난당하는 것을 더 기뻐하고 자기 백성들과 함께 고난을 나눔으로 위대한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로마 시대에 가해졌던 무서운 핍박아래서 순교를 하면서도 성도들은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교제를 나누려고 지하 무덤,즉 카다콤에 숨어 들어갔습니다,
습기가 차고 어둡고 죽은 시체들이 있는 곳이지만 저들은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기를 원했기때문입니다. 기독교엔 공동체를 떠난 개인이 있을 수가 없고 우리란 공동체만 있을뿐입니다. 나는 그중에 하나일뿐 이기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의 친교는 영원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불신사회 즉 세속사회에 살고 있기때문에 불신자들과의 만남을 피할수는 없습니다. 피하면 어떻게 전도를 합니까 그러나 믿는 사람들과의 만남 보다는 안믿는 이들과의 만남에서 더 기쁨을 누리고 있다면 그성도의 신앙엔 무엇인가 잘 못된 부분이 있을것입니다,
세상의 낙은 죄악된 것이고 감정적이기 때문입니다.
3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11장 27--28절
하나님의 말씀은 세가지 형태로 우리에게 임합니다 .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
요 1장 1절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했을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가장 좁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두째로; 형태의 말씀은 성경입니다.
이 성경이 가라고 말할때 가고 서라면서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세째로; 하나님의 형태는 바로 설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설교가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다른점이 꼭 하나 있습니다. 설교란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주의 종을 통해서 선포된다는 점입니다. 설교라고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심판 하에 있고 또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설교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제가 목사라고 하니 설교하기가 뭐 그리 힘드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설교 원고를 작성 하는데만 꼭 일주일이 걸립니다, 하나님말씀과 재보고 거리가 멀면 떼어내버리고 또 수정하고 하기에 비록 사람을 통해서 선포되는 말씀 이지만 그것이 성경에 배치되지 아니하는한 , 아니 성경과 일치되는한 때로는 설교하는 사람이 미워도 그 말씀을 절대 적으로 받아 드려야 합니다 .
그렇지 아니하고 개인적인 감정으로 꽁하고 있으면 은혜를 못 받습니다.
은혜를 못 받으면 영혼이 마르고 영혼이 마르면 마음에 평안이 없고 마음에 평안이 없어지면 가정에 불안이생기고 직장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주의 종을 통해서 선포되는 말씀을 듣고 , 순종하고 따르는 자세가 믿음으로 사는 성도의 자세입니다.
4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11장 28절
신문의 보도나 텔레비죤의 뉴스나 정부의 발표나 물건을 살 때도 우리는 믿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이 불신 사회에서도 하나님의 약속만은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른것은 못 믿어도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없는 약속임을 믿을 때 여러분에게 축복이 돌아갑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여러가지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아브라함과의 언약처럼 그냥 주시겠다는 것이 있고 , 다음은 시내산 언약처럼 우리가 순종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언약도 있습니다.
왜 아브라함이 축복의 조상이 되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인지라 흔들리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구약이 약속의 책이라면 신약은 성취의 책입니다. 그러나 약속과 성취 사이에는 믿음이란 다리가 있어야 건너갑니다. 믿음 없이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의심이 나거든 “ 나는 믿습니다, 나는 믿습니다.” 하고 아침마다 소리를 지르시면서 믿어질 때까지 계속해 보세요 . 이상한 은혜가 임하면서 믿을 수 있게 됩니다.
5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고난을 극복할 힘이 생깁니다. 11장 29절
본문에 보면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갔다고 했습니다. 그런 홍해가 지금도 우리 앞에 있습니다.
이런 현대판 홍해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사람들에겐 언제나 다가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출 14장 13절에 보면 “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고 했습니다. 사실 고난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올 때도 있지만 신약시대엔 경건하게 의롭게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옵니다.
막 11장 23절에 보면 산을 옮기는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불가능한 것을 비유해서 산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므로 산같이 불가능한 일이 우리에게 나타날 때 무서워 말고 자신이 가진 믿음의 능력을 나타내시기를 바랍니다.
겨자씨처럼 작은 믿음이라도 살아있으면 하나님의 역사는 나타납니다.
모세에게 준 지팡이는 바로 이믿음의 지팡이었습니다. 지팡이 자체가 무슨 마술을 일으키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수아의 검도 믿음의 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들이 있습니까 지금당장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믿음의 지팡이를 번쩍 드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역사하는 곳에 이적이 일어납니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무었인지 아십니까
원수를 사랑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어려운 일이 믿음을 가지면 놀랍게도 원수도 사랑할 수 있고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만 할 수 있다면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결론:이제 오늘의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다 믿음으로 산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말씀드린 다섯가지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펑크가 난 것입니다. 고장이 난 상태 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말씀의 방망이와 성령의 불로 때려서 하나님의 귀한 다섯가지의 역사가 믿음으로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날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믿음을 단순한 장식품으로 알고 가슴에 달고 다니며 형식적인 신앙생뢀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모두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되어서 위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다른사람들에게는 사랑의 열매를 나누어주고 우리 모두가 귀한 축복을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히브리서 11장 말씀은 믿음의 장이라고 흔히들 말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귀절이 바로 38절 말씀입니다 믿음을 가지면 세상이 감당치 못한다고 했습니다. 다시말하면 믿음이 없으면 세상에 굴종하고 실패하지만 믿음이 있으면 온전하게 감당할수 있는 능력의 사람이 될수있다는 뜻의 말씀입니다 , 그러면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
믿지 않는 사람들과 비교해서 무엇인가 달라야 하고 더 낫고 더 좋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믿는 것이구체적으로 좋게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크게 다섯가지의 중요한 특징이 있다고 본문말씀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은 본문말씀을 중심으로 믿음으로 사는 사람 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 하려고 합니다,
1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모험을 합니다.
본문 말씀에 보면 “ 믿음으로 모세가 낳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달 동안을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 했다 ” 고 했습니다.
당시 바로는 이스라엘의 모든 사내아이들을 다 죽이도록 했기 때문에 모세를 집에 숨겨 둔다는 것은 굉장한 모험이였습니다. 식구들이 다 죽임을 당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 할뿐 사람은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모든 역사는 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권력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두려워 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비젼을 바라보고 주변에 무엇이 있든지 개의치 않고 남이 뭐라고 하든지 어떻게 생각하든지 무시하고 목표만을 바라보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일의 결과를 다 하나님께 맡기고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주변의 일만을 따지고 인간적인 생각에서 되고 않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보다 사람의 힘을 더 믿는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떤 모험도 감행항때 성공의 열매가 맷어집니다.
2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살기를 선택합니다. 11장 25절.
세상에는 끼리끼리란 말이 있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저들끼리 모이고 , 바둑을 두는 사람은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입니다. 악한 사람들은 악인들끼리 모이고 신자들은 믿는 사람들끼리 모입니다. 그래서 사귀는 친구를 보고 그 사람을 알수 있습니다 ,
자신을 보는 방법은 친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와 함께 모여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중요한것은 예수님을 믿을 때 개인적으로 부름을 받은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교회라는 믿음의 공동체의 일원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나 한사람만 복받으면 된다는 생각이나 우리 교회만 잘 되면 된다는 생각은 반 기독교적인 사고 입니다. 따라서 성도간의 교제는 상단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우리교인들끼리만 교제하는 것이 아니고 타교회 교인들 까지 심지어는 세계 여기 저기에 흩어진 성도들과도 친교를 나누어야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세상에서 잠시누리는낙보다 더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애굽의 공주의 아들이라고만 돼있었지만 사실은 당시 이 여자는공주 애굽을 실제로 왕의 지위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집트의 룩소에 가보면 그 여인이 묻힌 무덤의 크기가 대단히 웅장하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 모세가 가만이만 있어도 보화와 재물이 넘치는 환경이였습니다,
나라가 몽땅 왕, 일개인의 소유였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그런 영광보다는 주님을 위해 고난당하는 것을 더 기뻐하고 자기 백성들과 함께 고난을 나눔으로 위대한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로마 시대에 가해졌던 무서운 핍박아래서 순교를 하면서도 성도들은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교제를 나누려고 지하 무덤,즉 카다콤에 숨어 들어갔습니다,
습기가 차고 어둡고 죽은 시체들이 있는 곳이지만 저들은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기를 원했기때문입니다. 기독교엔 공동체를 떠난 개인이 있을 수가 없고 우리란 공동체만 있을뿐입니다. 나는 그중에 하나일뿐 이기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의 친교는 영원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불신사회 즉 세속사회에 살고 있기때문에 불신자들과의 만남을 피할수는 없습니다. 피하면 어떻게 전도를 합니까 그러나 믿는 사람들과의 만남 보다는 안믿는 이들과의 만남에서 더 기쁨을 누리고 있다면 그성도의 신앙엔 무엇인가 잘 못된 부분이 있을것입니다,
세상의 낙은 죄악된 것이고 감정적이기 때문입니다.
3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11장 27--28절
하나님의 말씀은 세가지 형태로 우리에게 임합니다 .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
요 1장 1절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했을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가장 좁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두째로; 형태의 말씀은 성경입니다.
이 성경이 가라고 말할때 가고 서라면서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세째로; 하나님의 형태는 바로 설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설교가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다른점이 꼭 하나 있습니다. 설교란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주의 종을 통해서 선포된다는 점입니다. 설교라고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심판 하에 있고 또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설교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제가 목사라고 하니 설교하기가 뭐 그리 힘드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설교 원고를 작성 하는데만 꼭 일주일이 걸립니다, 하나님말씀과 재보고 거리가 멀면 떼어내버리고 또 수정하고 하기에 비록 사람을 통해서 선포되는 말씀 이지만 그것이 성경에 배치되지 아니하는한 , 아니 성경과 일치되는한 때로는 설교하는 사람이 미워도 그 말씀을 절대 적으로 받아 드려야 합니다 .
그렇지 아니하고 개인적인 감정으로 꽁하고 있으면 은혜를 못 받습니다.
은혜를 못 받으면 영혼이 마르고 영혼이 마르면 마음에 평안이 없고 마음에 평안이 없어지면 가정에 불안이생기고 직장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주의 종을 통해서 선포되는 말씀을 듣고 , 순종하고 따르는 자세가 믿음으로 사는 성도의 자세입니다.
4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11장 28절
신문의 보도나 텔레비죤의 뉴스나 정부의 발표나 물건을 살 때도 우리는 믿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이 불신 사회에서도 하나님의 약속만은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른것은 못 믿어도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없는 약속임을 믿을 때 여러분에게 축복이 돌아갑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여러가지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아브라함과의 언약처럼 그냥 주시겠다는 것이 있고 , 다음은 시내산 언약처럼 우리가 순종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언약도 있습니다.
왜 아브라함이 축복의 조상이 되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인지라 흔들리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구약이 약속의 책이라면 신약은 성취의 책입니다. 그러나 약속과 성취 사이에는 믿음이란 다리가 있어야 건너갑니다. 믿음 없이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의심이 나거든 “ 나는 믿습니다, 나는 믿습니다.” 하고 아침마다 소리를 지르시면서 믿어질 때까지 계속해 보세요 . 이상한 은혜가 임하면서 믿을 수 있게 됩니다.
5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고난을 극복할 힘이 생깁니다. 11장 29절
본문에 보면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갔다고 했습니다. 그런 홍해가 지금도 우리 앞에 있습니다.
이런 현대판 홍해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사람들에겐 언제나 다가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출 14장 13절에 보면 “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고 했습니다. 사실 고난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올 때도 있지만 신약시대엔 경건하게 의롭게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옵니다.
막 11장 23절에 보면 산을 옮기는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불가능한 것을 비유해서 산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므로 산같이 불가능한 일이 우리에게 나타날 때 무서워 말고 자신이 가진 믿음의 능력을 나타내시기를 바랍니다.
겨자씨처럼 작은 믿음이라도 살아있으면 하나님의 역사는 나타납니다.
모세에게 준 지팡이는 바로 이믿음의 지팡이었습니다. 지팡이 자체가 무슨 마술을 일으키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수아의 검도 믿음의 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들이 있습니까 지금당장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믿음의 지팡이를 번쩍 드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역사하는 곳에 이적이 일어납니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무었인지 아십니까
원수를 사랑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어려운 일이 믿음을 가지면 놀랍게도 원수도 사랑할 수 있고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만 할 수 있다면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결론:이제 오늘의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다 믿음으로 산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말씀드린 다섯가지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펑크가 난 것입니다. 고장이 난 상태 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말씀의 방망이와 성령의 불로 때려서 하나님의 귀한 다섯가지의 역사가 믿음으로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날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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