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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부유한 자들 (약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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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살이하는 야고보의 위문안 인사를 받던 사람에게는 잘 살면 얼마나 잘살고 못살면 얼마나 못 살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차이를 그 들은 구분하고 어떤 그럼에도 들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디엘 가도 어느 분야에서 빈부의 차이가 있게 마련입니다. 살림살이에는 경제적 빈 부가 사람 사이를 갈라놓고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성적을 따라서 우월반 과 열등반이 갈라지게 됩니다. 세상에서는 어쩔 수 없는 빈부의 격차를 감수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 옛말에 맵새가 황새 따라 가려면 다리가 찢어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성경에도 믿음의 부자들은 부한 곳에도 처 할 줄 알고 빈한 곳에서 처할 줄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우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빌립보 서신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빌립보 4:11-12절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어떤 형편에 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가난하게 사는 법도 알고 부유하게 사는 법도 압니다.배가 부르건 고프건 부유하게 살건 가난하게 살건 그 어떤 경우에도 스스로 만족하는 생각하는 비결을 나는 배웠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인가 오늘 본문말씀을 통하여 저는 믿음에 부유한자들이 라는 제목으로 같이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믿음의 부유한자들의 특성이 ' 라고 해도 좋겠지요
1.믿음에 부유한자들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사는 동안은 승용차를 따라 인격이 매겨 집니다.외모로 사람을 보 기 때문입니다. 또 옷을 구입하려고 백화점에 들릴 때도 있는 옷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을 입고 나가야 대우받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세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절대로 외모를 보고 사람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1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면 평가하기가 쉽습니다. 그 사람의 속을 보고 평가 하라는 것입니다. 모두가 똑 같이 죄인이지요 안 그런 척해도 사람은 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은혜로 믿음을 받았다면 제발 전에처럼 사람 을 외모 평가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10여년전에 서울대에 계시는 손봉호 교수가 아르헨티나 가신 적이 입니다.이 나라가 자원도 풍부한데 왜 못살 게 되었는가를 설명하는 것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 중에 한 원인이 무엇 이냐 하면 페론이라는 대통령이 돈 있는 사람들의 생필품을 빼앗아서 못 사는 사는 사람들에게 공짜로 나누워 주었다고 합니다. 거리마다 요소 요 소마다 무료 급식소가 즐비하게 늘여 있었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공짜 때문에 국민을 거지 근성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요셉의 집에 최 소피아 수녀님이 무료 급식소를 열면서 무료로 밥을 주지 않고 300원 씩 받았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밥을 얻어먹는 사람도 당당히 돈 내고 먹는다는 자부심을 심어주고 다음에는 공짜가 아니라 300원이라도 노력해서 먹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믿음은 은혜입니다. 쉬 운 말로 하면 공짜입니다. 공짜 믿음을 얻었기 때문에 믿음의 귀중성을 모릅니다. 공짜로 얻은 믿음이 싸구려가 아님을 아는 사람은 결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평가 기준에 맡깁니다. 하나님 의 평가 기준은 무엇입니까롬2:11절에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여러분 사람을 외모로 취하고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고 계십니까
1'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구체적인 실례가 어떻것입니까 야고보서는 아주 구체적이고 실제적입니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것을 실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2-3을 읽어보겠습니다.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들을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가상적인 실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실수입니다. 3년전인가 소록도에 집회한 적이 있습니다. 손바닥을 치는 소 리조차 정확하게 들리지 않는 불구의 몸으로 예배당가득 메운 가운데 집 회를 했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그 곳 장로님이 목사님 빠뜨리지 않고 목사님을 위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기도해 주시는 것만으 로도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장로님이 불편한 손으로 안주머니 에서 힘겹게 봉투 하나를 꺼내시면서 "목사님 적은 성의입니다. 받아 주 시면 고맙겠습니다." 당황했습니다. 내가 적은 선물을 드려도 마땅치 않은 데 사례라니 혼자 잠시 생각하였습니다. 받을 것인가 사양할 것인가 사양 하면 다른 성도들과 소록도에 있는 성도들을 차별하는 것이다." 네가 설 교할 때에 다른 곳에서 마찬가지로 열과 성을 다해 섬겼다면 그 사례를 정중히 감사함으로 받아라"는 하나님의 생각이 순간 내 머리를 스쳐 갔 습니다. "장로님 감사합니다." 받고 두손을 잡고 뜨겁게 기도하던 생각이 납니다. 우리는 요즘 입은 옷으로 구별이 됩니까 오히려 못사는 사람일 수록 잘 입디다. 자기의 궁핍을 의상으로 감추려 고하는 심리가 발동하기 때문입니다.우리 주변에는 이런 실례가 없습니까 예배당은 예배드리기에 어려움이 없으면 됩니다. 예배당이 고급 호텔처럼 호사스러워서 보통 서민이 들어가기가 부담스러우면 곤란합니다.
2'이런 행동이 어떤 생각에서 나왔습니까 사람의 행동은 생각에서 나 오기 마련입니다. 4-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냐 내 사랑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 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 로 받게 아니 하셨느냐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괄시하였도다 부자는 너희를 압제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아니 하느냐 저희는 너희에게 대하여 일컨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훼방하지 아니하느냐" 이 네절중에 4가지 긍정적인 답변을 유도하는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1)질문은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냐 당연히 "네그렇습니다" 고답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2)질문은 우리를 택하여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이지만 믿음에 대 하여는 부유한 자로 삼아 장차 영원한 천국을 유업으로 약속하여주지 않 았습니까 역시 당연한 사실을 말씀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감사해서 "녜 그렇습니다"라고 답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3)질문은 세상에 대하여 부자이고 믿음에 대하여 가난한 사람들은 너희를 푸대접하고 세상 법정에서 너희를 괴롭히지 않더냐는 질문에 대하 여 우리의 대답은 과연"네 그렇습니다"라고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 습니다.
4)저희는 지금 아름다운 이름 곧 예수의 이름 때문에 너희들이 고향 땅에 쫒겨나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이 대답 또한 "예 그렇습니다." 입니다. 질문을 던지는 것은 몰라서 묻는다 보다는 강조하기한 질 문이 당연하다는 것을 밝히기 위하여 던지는 질문 올시다. 세상의 부자인 사람은 믿음의 부자인 사람을 까닭없이 푸대접합니다. 그렇게 푸대접받던 우리들이 이 시점에서 끼리 끼리 수군거리고 구별한 안한 생각을 하겠느 냐고 강하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3'외모로 사람을 정죄하면 율법의 정죄를 면할 길이 없습니다. 우선 8-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하라 최고 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 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시고 우리를 사랑했습니까 착한데가 있어서 택함을 받았겠지 꿈 깨십시오 사랑으로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그 사랑 이 율법을 능력을 이기고 죄악 가운데서 승리케 하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5:4절 말씀에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 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판판이 세상에 지고 율법의 조롱아래서 정죄를 받 을 것입니다.
2. 10절에서 13절까지는 심판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판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는 재판관이 용서를 전제하고 심판하는 경우가 있고 용서가 없이 심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상사람들은 어린 아이든 어른이든 죄인이기 때문에 죄의 값인 사형이 언도된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이 나는 본래 착한 사람인데 어쩌다 한번 실수로 잘못하였더라 면 예수님을 돌아 가게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어쩌다가 한번 지은 죄는 사람도 용서합니다. 세상 법정에서도 초범이고 어쩌다가 범죄할 계획없이 범죄를 했으면 정상이 참작되고 죽음 까지 이르지 아니합니다. 어쩌다가 지은 죄를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면 그런 하나님은 인정 사정도 없는 하나님이지요 공자는 40대를 말하기를 유혹을 받지 않는 나이라고 해서 불 혹의 나이라고 했습니다. 과연 살아 보니까 그렇습디까 지난 주간에 사람들에 제법유명하게 알려진 점잖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마음속에는 온갖 더러운 죄가 항상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도 덕과 규법때문에 체면을 유지 해나가는 것이지요라고 현재의 심정을 그대 로 토로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공자는 유혹을 받지 않은 불혹의 나이가 40 대 였는지 모르지만 성경은 많은 사람이 40대가 지나서도 유혹을 물리치 지 못해서 고통하고 있는 신음 소리를 군데 군데서 엿들을 수가 있습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것도 청년의
2,30대가 아니라 40대에 왕이 되고 7년동안 갖은 어렵움을 다껵고 안정을 찾은 40대에 찾아온 유혹입니다. 히스기야왕도 마찬가지 입니다. 죽을 고 비를 넘기고 생명을 연장 받는 이제 경우 안정을 찾았는 데 난데없이 바 벨론의 신하들이 닥쳐올 때에 과시욕을 참지 못하여 모든 것을 보여준 약 점을 들어 낸 것도 장년기입니다. 저는 말합니다. 청년이라고 부르는 사람 은 적습니다 원치아니 해도 공자 선생이 40대의 말기에 서있습니다. 청년기 보다 유혹이 더 많았으면 많았지 줄어 들이 않습니다.경건하게 살 아야 돼겠는데 말은 맞는 말인데 마음대로 행동이 따라 주지 않는 것을 솔직히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공자라는 군자는 유혹 받지 않다고 말하는 데 말입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1'율법은 하나를 치중하여 완성했다 해도 그 중에 하나를 범하면 모두 를 범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10절과11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 지 아니 하였으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자위하고 있는 율법이 있습니까 율법으로는 위로를 못 받습니다. 눈에 보이는 하지 않다고 율법을 다지켰다고 자만하지 맙시다. 술 밤배만을 마 시고 피우지 않는고 율법을 다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 마음에 찾 아온 수많은 유혹들을 어떻게 하시렵니까 다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 에서 남이 보기에는 지극히 경미한 것이 라고 할지라도 지켜나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남에게는 비웃음의 대상이 되더라도 예수공로 의지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 입니다. 예수의 하여 율법을 이기지 사람은 율법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심판을 모면할 수가 있습니까
2'하나님의 긍휼을 입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용서하시려고 죄의 그 몸서리치는 죄의 책임을 예수에게 물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이제 예수 앞에서 심판은 불쌍히 여기는 심판 긍휼이 있는 심판 올시다. 때문에 우리가 율법을 통해서는 완전 무결하게 하나님의 심판을 무사 통과할 사람은 없습니다. 남에게 긍휼을 여기며 나 도 또한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12,13절을 무엇이라고우리에게 해결책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남을 평가할 때도 긍휼로 남을 바라보고 하나님나를 바라보실 때도 긍휼 보시 옵소서 이것이 우리의 기도여야 합니다,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긍 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자유의 율법이 무엇입니까 방종하지 아니하는 복음을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긍휼없는 심판과 긍휼의 심판이 있습니다. 긍 이 땅에서 벌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림 심이 우리를 보호하는 보호막이라는 것을 믿을 때 하나님은 벌서 의롭다 판단하신 것입니다. 긍휼없는 심판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이 세상끝날에 진노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외모로 판단하지 맙시다 긍휼로 보십시다. 마태복음 5:7절 말씀에 "긍휼히 여기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 요" 우리는 긍휼의 심판을 받은 백성이기 때문에 사람을 평가 할 때도 외모로 사람을 보지 않고 긍휼로 사람을 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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