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사랑?소망 (골로새1:3-5)
본문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 첫 날을 예배로서 시작하는 아름다운 전통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신정 하례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바울이 골로새 성도들에게 보내는 문안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로서 자신을 밝힙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공식 대변인으로서 권위를 가지고 골로새 성도를 만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의 골로새서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그리스도 자신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 편지는 누구에게 보낸 것입니까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라고 수신인의 주소가 밝혀져 있습니다. 세상을 사는 성도의 이중 주소가 여기 있습니다. 골로새에 살면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백성들입니다. 한시적이고 가변적인 주소 뿐 아니라 불변하고 자랑스런 우리의 신분을 보여줍니다. 여러분의 주소를 기억하십시오. 언제나 두 주소를 견지하십시오. 성도는 어디에 살아도 하늘 시민임을 기억해야 끝까지 신실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에 있는 주의 백성들에게 문안합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우리가 받는 모든 축복의 원천인 은혜와 그 축복의 결과인 평강이 여러분의 삶에도 넘치기를 바랍니다. 이제 3절부터 8절까지 골로새 성도로 인한 감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사에 이어 감사로 채워진 이 부분은 골로새서 서론과 같습니다. 바울은 괜한 생각으로 골로새서를 쓴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할 말이 있어서 골로새 교회에 편지를 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론을 시작하기 전에 서론으로 골로새 성도로 인한 감사의 말이 먼저 나오고 있음을 유의하십시오. 골로새 성도를 위한 교훈과 경계를 목적으로 편지를 썼지만 우선 감사로 첫 부분을 시작합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라" 비록 골로새 교회는 모든 형편이 다 좋은 상태는 아니었지만 바울은 이를 먼저 다루지 않습니다. 우선 골로새 교회의 장점을 들어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대개 바울의 편지는 이와같은 감사로써 시작합니다. (예외는 갈라디아서와 고린도후서 경우입니다) 이렇게 편지를 시작하는 유익은 어디에 있을까요 사람은 누구나 책망으로 다가서는 이에게는 마음을 닫기 쉽습니다. 단점보다 장점을 우선 언급하고 서로의 마음이 사랑을 확인한 후라야 어떤 충고라도 수용될 수 있습니다. 새해를 덕담으로 시작하는 것도 조상들의 지혜입니다. 새해 벽두부터 불평하고 비난하는 것은 하나님 백성다운 일이 아닙니다. 좋은 말, 상대방의 장점이라는 기본 인식을 전제로 서로의 교제가 열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말이 백 번이라도 옳고 진리이더라도 사랑 안에서 말하지 아니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혹 여러분은 상대방에게 충고할 때 곧 바로 잘못을 지적하지는 않습니까 우선 그의 좋은 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의 장점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십시오. 바울은 지금 사실 골로새 성도들의 삶 속에 시작된 하나님의 사역을 인해서 지속적인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타고난 장점이나 획득된 그 어떤 것 때문이 아니라 은혜로 베푸신 하나님의 역사로 인한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당신을 아버지로 나타내신 그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서로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봅니까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봅니까 형제자매의 삶 속에 역사하신 하나님으로 인해서 감사와 찬양의 마음이 솟아나기를 바랍니다. 상대방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 하나를 인해서도 우리는 지속적인 감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드릴 수 있습니다. 새해에는 복된 시각으로 서로 서로를 대하기를 바랍니다. 사람에게 아첨하고 사람을 칭송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도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못 본 척하지 마십시오. 형제자매의 삶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 기도가 먼저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기도가 은혜롭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 된 다음 다른 성도들을 생각하며 기도해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하면 우리 기도는 상대방을 고발하는 기도처럼 잘못될 수 있습니다.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이 상대방을 대항해서 고발하는 기도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후원하고 있는 김형규 선교사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신학교 다니면서 전도사 시절에 김해의 어떤 교회에서 그날따라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서 일찍 나와서 앉아 있는데 시간이 되어서 한사람 두사람씩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모인 자리에서 장로님 한 분이 나오셔서 "요사이 젊은 교역자들이 새벽에 일찍 나와서 기도할 줄을 모른다"고 하나님께 온갖 고발을 다했습니다. 이제 5시가 되어서 그 자리에서 일어서서 예배를 시작했습니다. 그날 기도 당번인 집사님께서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장로님께서 기도했던 것 다 잘못되었습니다. 취소해 주십시오"라고 정정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기도의 자리에 형제자매로 인해 감사로 나아가십시오. 감사는 기도의 불길을 더욱 뜨겁게 타오르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4장 2절에는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충고합니다. 빌립보 교회에도 동일한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바울의 감사는 그가 기도의 자리에 나아갈 때마다 계속되었습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 . . 감사하노라" 바울은 여기서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감사하노라"고 밝힙니다.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기도를 위해 정규적으로 모인 듯 싶습니다. 언제 모였을까요 시간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마치 기도했다면 새벽기도를 떠올립니다. 그것은 새벽기도를 정례화한 우리 전통상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그렇게 꼭 읽어 들어갈 이유는 없습니다. 읽어 들어간 다음 새로운 전통으로 삼는 것은 위험합니다. 새벽 뿐 아니라 밤중에도 시간을 내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부들은 아침시간을 이용해서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직장인 같으면 정오기도 모임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 학생들 같으면 밤 10시 학생 기도운동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성경을 잘 살펴보면 신구약 공히 어떤 시간에 기도하라는 명령이 없습니다. 성도들 가운데는 '새벽을 깨우리로다'라고 개인적인 고백을 하기도 하고 밤에 침상에서 주를 찾는 경우들은 있습니다만 어느 시간을 지정해서 기도하라는 명령은 없습니다. 아마 여러 가지 우리들의 상황을 고려할 때 새벽기도가 갖는 장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적으로는 새벽에 두 차례 모임을 갖습니다만 신약 성경의 가르침은 '쉬지말고 기도하라' 혹은 '무시로 성령님 안에서 깨어 기도하라' 인 것을 기억하십시오. 바울과 그 동료들은 하여간 기도 시간에 모여서 골로새 성도들을 기억할 때마다 감사했습니다. 비록 그들에게 여러 부족한 점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먼저 좋은 점을 떠올리고 '기도할 때 마다' 감사드렸습니다. 그러면 다른 성도들을 위해 어떻게 무엇을 기도했습니까 사실 바울은 아직 대다수의 골로새 성도들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해서 그는 사실 기도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해서 골로새 성도들을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했고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친분이나 거리 여부가 기도의 교제의 장벽이 될 수 없었습니다. 대강 언급만 하고 지나가는 식이 아니라 9절 이후를 보면 아주 구체적으로 간절히 기도드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한가한 사람의 소일꺼리로 기도를 여기지 아니했습니다. 그는 우리 가운데 누구보다도 바쁘게 산 사람입니다. 열정적으로 주의 일을 감당한 사람입니다. 무척 바쁜 생활 속에서 기도하는 일을 쉬지 않았습니다. 기도는 사실 전도나 봉사처럼 겉으로 쉽게 드러나는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쉽게 과소평가 내지 평가절하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기도의 사역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탁월성에 대해서 곧 바로 설교하는 대신 먼저 기도로, 감사와 간구로 시작하고 있음을 주의해 보십시오. 사도적 전통은 언제나 그러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우리 모든 사역자들의 사역 순위
첫째가 기도의 사역이 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너희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는 은사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고후 1:11). 성도는 서로 기도함으로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가 보여준 기도의 본은 성도의 교제를 위한 중요한 통로가 됩니다. 누가복음은 한나가 금식하며 기도로 섬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눈에 띄는 요란한 일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섬기고 성도를 돕는 일입니다. 바울은 지금 골로새 교인들과 직접 얼굴을 대하고 있지 않지만 기도로 돕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성도들을 기도로 돕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역에 온 교회가 신실하기를 바랍니다. 새해부터 적합한 시간을 마련해 보십시오. 새벽 기도 시간이 여러분에게 적합합니까 새벽에 함께 기도하십시오. 오전에 아이들 보내 놓고 모든 것을 그대로 둔 채 한 잔 커피를 마시고 조용한 시간을 갖고 싶습니까 그런 분들을 위해서 사무실에서 "복있는 사람"이라는 Q.T.교재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성경 묵상을 할 수 있습니다. 묵상을 하다보면 찬송도 기도도 나오게 마련입니다. 저녁시간에 자녀들과 함께 기도시간을 갖고 싶습니까 그렇게 시간을 마련해 보십시오. 자녀들이 어릴때는 그때가 가장 좋은 시간일 수 있습니다. 출근하는 버스 속에서도, 운전하는 자가용 속에서도 기도로 성도를 돕고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자기에게 적합한 시간과 장소를 확인해 보시고 정하십시오. 시간마다 감사로 기도의 활기를 더해 보십시오. 기도의 교제는 서로를 가깝게 느끼게 하며 거리를 초월한 교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바울이 왜 기도에 감사했는지 그 구체적인 이유를 살펴봅시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그것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게 품은 여러분의 사랑을 우리가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믿음과 사랑은 여러분을 위해 하늘에 쌓아두신 소망에 근거합니다". 여기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 그 근거를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은 에바브라를 통해서 골로새 성도들의 상황을 들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모든 성도에게 대한 사랑을 갖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기에 감사를 드립니다. 차례로 하나씩 살펴봅시다. 바울은 골로새인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 때문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때문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생동감있는 믿음으로 인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라기보다는 그리스도께로부터 나오는 생명으로서 믿음을 여기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결과로서 공급되는 생명의 능력입니다. 믿음은 그 자체가 생명의 약동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는 그 삶이 역동적입니다. 가득 짜내는듯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연결만 되어 있으면 그리스도로부터 공급되는 생명이 넘쳐나는 것이 정상적입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믿음은 형제자매를 향한 참된 사랑을 그 속에 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은 결코 고립적이거나 배타적이 아닙니다. 혼자서, 다른 사람없이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순간 우리는 신앙의 형제자매들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이기심을 몰아내고 다른 이들과 관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합니다. 아버지께 대한 믿음은 하나님의 아들됨을 경험한 모든 자들에 대한 마음이 열리게 합니다. 그래서 자연 믿음은 동료 성도를 귀히 여기고 그들의 필요를 보게 되고 채우게 됩니다. 믿음 생활을 시작하면 주위의 성도들이 귀하게 여겨지고 관심을 갖게 됩니다. 자기에게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는 것은 자기에게 성도들이 귀한지 여부를 보면 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성도들에 대하여 사랑과 관심을 나타내기 마련입니다. 같은 봉사기관에서 섬길 때 그 한사람 한사람에 대한 관심이 간다는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믿음과 사랑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면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은 따라옵니다. 구약 시편 기자의 고백과 같습니다.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시인이 그렇게만 고백했더라면 우리 하나님이 참으로 외골수가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잇따라서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시 16:2-3).
땅에 있는 성도가 여러분에게 소중한 존재입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주 한 분으로 복을 삼는 자입니다. 물론 순서는 바울이 감사하는대로 믿음 먼저, 사랑은 다음입니다. 시작은 믿음에서, 완성은 사랑에서입니다. 기독교인의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의 반영입니다.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는 믿음을 가질 때 우리 또한 성도들을 구체적으로 사랑하게 되는 자리로 나아갑니다. 또한 이 사랑의 특징은 '모든 성도에게' 나타나는 사랑입니다. 믿음에 근거한 사랑의 특징은 모든 성도를 향한 표현이라는 점입니다. 기질이 같고 성격이 같은 끼리끼리 통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학력이 같고 재력이 같은 끼리끼리 통하는 사랑은 아닙니다. 이 사랑은 모든 성도들에게 예외없이 표현되는 사랑입니다.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자기 희생을 수용하는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이 사랑은 감성적이고 말로만의 사랑은 아닙니다. 믿음에 근거한 사랑은 형제자매의 구체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사랑입니다. 바울은 골로새인의 믿음과 사랑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했는데 그 "믿음과 사랑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에 근거합니다"라고 밝힘으로 제 3의 요소를 소망으로 소개합니다. 믿음과 사랑의 동기를 유발시키는 능력으로 소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밖에 모르는 사람은 믿음, 소망, 사랑의 순서가 받는 순서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좀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골로새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을 더욱 새롭게 하는 소망은 무엇입니까 그들이 바라는 소망은 무엇입니까 믿음과 사랑의 삶을 지속적으로 갖게 하는 산 소망은 무엇입니까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에바브라가 그들 가운데 선포한 복음의 핵심인 그리스도야말로 골로새 성도가 바라볼 영광의 소망입니다. 골로새 3장 4절의 표현을 빌리면 "영광 중에 나타날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비밀이요 영광의 소망입니다. 또한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새로운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몸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히 사는 것을 또한 믿습니다. 약속하신 하나님은 불변하십니다. 약속대로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하나님은 때가 차면 아들을 세상의 심판자로 보내실 것입니다. 우리의 상황도 변하고 때때로 우리의 기분도 바뀌지만 하나님은 불변하시고 그 약속도 불변하십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주 대망 1999년 새해가 밝아왔습니다. 소망을 새롭게 하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음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이 새로운 활력을 나타낼 것입니다. 영광의 소망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사모하십시오. 소망은 여러분의 믿음과 사랑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날" 소망을 붙드십시오. 우리에게 영광의 주 오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이 없다면 우리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것을 전한 저는 거짓말쟁이요 그것을 믿은 여러분은 어리석은 자가 될 것입니다. 믿음은 웃음꺼리요 도덕적 노력은 시간 낭비일 것입니다. 소망이 없다면 그 귀결은 무엇입니까 "내일 죽으리니 오늘 먹고 마시자". 그것 밖에는 다른 논리적 결론은 없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영광중 나타날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나타나실 때 여러분과 저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욕망에 따라 살지 않습니다. 순간의 쾌락을 따라 생을 맡기지 않습니다. 영원한 소망을 바라보고 믿음과 사랑을 새롭게 합니다. 산 소망이 그 마음 속에 있는 성도는 활력을 갖고 믿음과 사랑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지금 겪는 고난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의 내일을 바라기에 성도들은 인내하며 고난을 이겨냅니다. 바울은 이 소망을 우리를 위해서 "하늘에 쌓아놓은" 것으로 설명합니다. 소망에 관한 첫 번째 설명은 이 소망이 보물처럼 하늘에 쌓아놓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땅에 쌓아 놓은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쌓아 놓은 소망은 안전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이 소망을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약속하신 소망은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수천년 기다린 인류에게 메시야 보내셨듯이 지금껏 2000년 가까이 기다렸지만 반드시 심판자요 구원자인 예수께서 영광 중에 나타나실 것입니다. 이 소망을 붙드십시오. 한 날 우리는 이 소망에 참여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바울은 이 소망에 대한 설명을 . .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이 소망은 여러분이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받아들일 때에 이미 들은 것입니다". 라이커스 계곡에 가장 미미한 소유 골로새에 소망없이 살던 이들에게 복음 진리의 전파는 새로운 전기를 그 지역 역사에 가져다 주었습니다. 복음진리가 증거된 순간부터 그들에게 소망이 전해졌습니다. 에바브라를 통해서 최초로 전파된 복음의 소식은 소망의 소식이었던 것입니다. 주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소망을 가지고 새해를 맞이하십니까 구주 대망 1999년 하루하루가 소망중에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절망의 삶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소망의 삶으로 변화됩니다. 복음 진리의 말씀은 소망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찾아 오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복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분의 소식이 복된 소식입니다. 하나님은 구속의 창시자시요 기독교 소망의 원천이십니다. 여러분도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 없습니까 오늘 새가족부를 수료하신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 비밀의 영광의 소망 그리스도를 여러분 삶에 영접하신 적이 있습니까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붙드십시오. 중요한 것은 주인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종교적인 경험들이 우리 신앙의 기초가 될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이 이 말을 하면 거기에 따라가고 저 말하면 저기에 기웃거리다가 한 해 역시 또 허송세월합니다.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영양을 공급받습니다. 또한 마디와 힘줄이 서로 연결되어갑니다.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심으로 공동체는 자랄것입니다. 무럭무럭 자라는 새해가 되도록 주 안에서 그리스도께 연합된 성도 여러분 이 거룩한 식탁으로 나아오십시오. 예수를 믿고 공중 앞에서 "주"로 고백한 사람들은 이 거룩한 성찬에 동참할 수가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우리의 삶을 다짐하면서 우리의 주되신 그리스도를 위해 살겠다고 결단하는 귀한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 분 안에서 여러분은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 분 안에서 여러분은 새 소망을 누립니다. 그 분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신성의 충만함을 여러분도 받았습니다. 가르침을 받은대로 감사함을 넘치게 하십시오. 믿음 주심을 감사하고 사랑을 나타냄을 감사하고 소망이 터전이 됨을 더욱 감사하십시오. 진리의 말씀이 여러분을 더욱 굳게 세울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이 소망으로 더욱 불타오르는 새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의 골로새서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그리스도 자신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 편지는 누구에게 보낸 것입니까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라고 수신인의 주소가 밝혀져 있습니다. 세상을 사는 성도의 이중 주소가 여기 있습니다. 골로새에 살면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백성들입니다. 한시적이고 가변적인 주소 뿐 아니라 불변하고 자랑스런 우리의 신분을 보여줍니다. 여러분의 주소를 기억하십시오. 언제나 두 주소를 견지하십시오. 성도는 어디에 살아도 하늘 시민임을 기억해야 끝까지 신실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에 있는 주의 백성들에게 문안합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우리가 받는 모든 축복의 원천인 은혜와 그 축복의 결과인 평강이 여러분의 삶에도 넘치기를 바랍니다. 이제 3절부터 8절까지 골로새 성도로 인한 감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사에 이어 감사로 채워진 이 부분은 골로새서 서론과 같습니다. 바울은 괜한 생각으로 골로새서를 쓴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할 말이 있어서 골로새 교회에 편지를 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론을 시작하기 전에 서론으로 골로새 성도로 인한 감사의 말이 먼저 나오고 있음을 유의하십시오. 골로새 성도를 위한 교훈과 경계를 목적으로 편지를 썼지만 우선 감사로 첫 부분을 시작합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라" 비록 골로새 교회는 모든 형편이 다 좋은 상태는 아니었지만 바울은 이를 먼저 다루지 않습니다. 우선 골로새 교회의 장점을 들어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대개 바울의 편지는 이와같은 감사로써 시작합니다. (예외는 갈라디아서와 고린도후서 경우입니다) 이렇게 편지를 시작하는 유익은 어디에 있을까요 사람은 누구나 책망으로 다가서는 이에게는 마음을 닫기 쉽습니다. 단점보다 장점을 우선 언급하고 서로의 마음이 사랑을 확인한 후라야 어떤 충고라도 수용될 수 있습니다. 새해를 덕담으로 시작하는 것도 조상들의 지혜입니다. 새해 벽두부터 불평하고 비난하는 것은 하나님 백성다운 일이 아닙니다. 좋은 말, 상대방의 장점이라는 기본 인식을 전제로 서로의 교제가 열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말이 백 번이라도 옳고 진리이더라도 사랑 안에서 말하지 아니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혹 여러분은 상대방에게 충고할 때 곧 바로 잘못을 지적하지는 않습니까 우선 그의 좋은 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의 장점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십시오. 바울은 지금 사실 골로새 성도들의 삶 속에 시작된 하나님의 사역을 인해서 지속적인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타고난 장점이나 획득된 그 어떤 것 때문이 아니라 은혜로 베푸신 하나님의 역사로 인한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당신을 아버지로 나타내신 그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서로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봅니까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봅니까 형제자매의 삶 속에 역사하신 하나님으로 인해서 감사와 찬양의 마음이 솟아나기를 바랍니다. 상대방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 하나를 인해서도 우리는 지속적인 감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드릴 수 있습니다. 새해에는 복된 시각으로 서로 서로를 대하기를 바랍니다. 사람에게 아첨하고 사람을 칭송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도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못 본 척하지 마십시오. 형제자매의 삶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 기도가 먼저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기도가 은혜롭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 된 다음 다른 성도들을 생각하며 기도해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하면 우리 기도는 상대방을 고발하는 기도처럼 잘못될 수 있습니다.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이 상대방을 대항해서 고발하는 기도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후원하고 있는 김형규 선교사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신학교 다니면서 전도사 시절에 김해의 어떤 교회에서 그날따라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서 일찍 나와서 앉아 있는데 시간이 되어서 한사람 두사람씩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모인 자리에서 장로님 한 분이 나오셔서 "요사이 젊은 교역자들이 새벽에 일찍 나와서 기도할 줄을 모른다"고 하나님께 온갖 고발을 다했습니다. 이제 5시가 되어서 그 자리에서 일어서서 예배를 시작했습니다. 그날 기도 당번인 집사님께서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장로님께서 기도했던 것 다 잘못되었습니다. 취소해 주십시오"라고 정정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기도의 자리에 형제자매로 인해 감사로 나아가십시오. 감사는 기도의 불길을 더욱 뜨겁게 타오르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4장 2절에는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충고합니다. 빌립보 교회에도 동일한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바울의 감사는 그가 기도의 자리에 나아갈 때마다 계속되었습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 . . 감사하노라" 바울은 여기서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감사하노라"고 밝힙니다.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기도를 위해 정규적으로 모인 듯 싶습니다. 언제 모였을까요 시간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마치 기도했다면 새벽기도를 떠올립니다. 그것은 새벽기도를 정례화한 우리 전통상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그렇게 꼭 읽어 들어갈 이유는 없습니다. 읽어 들어간 다음 새로운 전통으로 삼는 것은 위험합니다. 새벽 뿐 아니라 밤중에도 시간을 내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부들은 아침시간을 이용해서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직장인 같으면 정오기도 모임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 학생들 같으면 밤 10시 학생 기도운동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성경을 잘 살펴보면 신구약 공히 어떤 시간에 기도하라는 명령이 없습니다. 성도들 가운데는 '새벽을 깨우리로다'라고 개인적인 고백을 하기도 하고 밤에 침상에서 주를 찾는 경우들은 있습니다만 어느 시간을 지정해서 기도하라는 명령은 없습니다. 아마 여러 가지 우리들의 상황을 고려할 때 새벽기도가 갖는 장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적으로는 새벽에 두 차례 모임을 갖습니다만 신약 성경의 가르침은 '쉬지말고 기도하라' 혹은 '무시로 성령님 안에서 깨어 기도하라' 인 것을 기억하십시오. 바울과 그 동료들은 하여간 기도 시간에 모여서 골로새 성도들을 기억할 때마다 감사했습니다. 비록 그들에게 여러 부족한 점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먼저 좋은 점을 떠올리고 '기도할 때 마다' 감사드렸습니다. 그러면 다른 성도들을 위해 어떻게 무엇을 기도했습니까 사실 바울은 아직 대다수의 골로새 성도들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해서 그는 사실 기도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해서 골로새 성도들을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했고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친분이나 거리 여부가 기도의 교제의 장벽이 될 수 없었습니다. 대강 언급만 하고 지나가는 식이 아니라 9절 이후를 보면 아주 구체적으로 간절히 기도드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한가한 사람의 소일꺼리로 기도를 여기지 아니했습니다. 그는 우리 가운데 누구보다도 바쁘게 산 사람입니다. 열정적으로 주의 일을 감당한 사람입니다. 무척 바쁜 생활 속에서 기도하는 일을 쉬지 않았습니다. 기도는 사실 전도나 봉사처럼 겉으로 쉽게 드러나는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쉽게 과소평가 내지 평가절하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기도의 사역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탁월성에 대해서 곧 바로 설교하는 대신 먼저 기도로, 감사와 간구로 시작하고 있음을 주의해 보십시오. 사도적 전통은 언제나 그러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우리 모든 사역자들의 사역 순위
첫째가 기도의 사역이 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너희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는 은사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고후 1:11). 성도는 서로 기도함으로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가 보여준 기도의 본은 성도의 교제를 위한 중요한 통로가 됩니다. 누가복음은 한나가 금식하며 기도로 섬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눈에 띄는 요란한 일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섬기고 성도를 돕는 일입니다. 바울은 지금 골로새 교인들과 직접 얼굴을 대하고 있지 않지만 기도로 돕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성도들을 기도로 돕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역에 온 교회가 신실하기를 바랍니다. 새해부터 적합한 시간을 마련해 보십시오. 새벽 기도 시간이 여러분에게 적합합니까 새벽에 함께 기도하십시오. 오전에 아이들 보내 놓고 모든 것을 그대로 둔 채 한 잔 커피를 마시고 조용한 시간을 갖고 싶습니까 그런 분들을 위해서 사무실에서 "복있는 사람"이라는 Q.T.교재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성경 묵상을 할 수 있습니다. 묵상을 하다보면 찬송도 기도도 나오게 마련입니다. 저녁시간에 자녀들과 함께 기도시간을 갖고 싶습니까 그렇게 시간을 마련해 보십시오. 자녀들이 어릴때는 그때가 가장 좋은 시간일 수 있습니다. 출근하는 버스 속에서도, 운전하는 자가용 속에서도 기도로 성도를 돕고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자기에게 적합한 시간과 장소를 확인해 보시고 정하십시오. 시간마다 감사로 기도의 활기를 더해 보십시오. 기도의 교제는 서로를 가깝게 느끼게 하며 거리를 초월한 교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바울이 왜 기도에 감사했는지 그 구체적인 이유를 살펴봅시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그것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게 품은 여러분의 사랑을 우리가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믿음과 사랑은 여러분을 위해 하늘에 쌓아두신 소망에 근거합니다". 여기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 그 근거를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은 에바브라를 통해서 골로새 성도들의 상황을 들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모든 성도에게 대한 사랑을 갖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기에 감사를 드립니다. 차례로 하나씩 살펴봅시다. 바울은 골로새인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 때문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때문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생동감있는 믿음으로 인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라기보다는 그리스도께로부터 나오는 생명으로서 믿음을 여기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결과로서 공급되는 생명의 능력입니다. 믿음은 그 자체가 생명의 약동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는 그 삶이 역동적입니다. 가득 짜내는듯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연결만 되어 있으면 그리스도로부터 공급되는 생명이 넘쳐나는 것이 정상적입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믿음은 형제자매를 향한 참된 사랑을 그 속에 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은 결코 고립적이거나 배타적이 아닙니다. 혼자서, 다른 사람없이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순간 우리는 신앙의 형제자매들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이기심을 몰아내고 다른 이들과 관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합니다. 아버지께 대한 믿음은 하나님의 아들됨을 경험한 모든 자들에 대한 마음이 열리게 합니다. 그래서 자연 믿음은 동료 성도를 귀히 여기고 그들의 필요를 보게 되고 채우게 됩니다. 믿음 생활을 시작하면 주위의 성도들이 귀하게 여겨지고 관심을 갖게 됩니다. 자기에게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는 것은 자기에게 성도들이 귀한지 여부를 보면 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성도들에 대하여 사랑과 관심을 나타내기 마련입니다. 같은 봉사기관에서 섬길 때 그 한사람 한사람에 대한 관심이 간다는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믿음과 사랑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면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은 따라옵니다. 구약 시편 기자의 고백과 같습니다.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시인이 그렇게만 고백했더라면 우리 하나님이 참으로 외골수가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잇따라서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시 16:2-3).
땅에 있는 성도가 여러분에게 소중한 존재입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주 한 분으로 복을 삼는 자입니다. 물론 순서는 바울이 감사하는대로 믿음 먼저, 사랑은 다음입니다. 시작은 믿음에서, 완성은 사랑에서입니다. 기독교인의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의 반영입니다.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는 믿음을 가질 때 우리 또한 성도들을 구체적으로 사랑하게 되는 자리로 나아갑니다. 또한 이 사랑의 특징은 '모든 성도에게' 나타나는 사랑입니다. 믿음에 근거한 사랑의 특징은 모든 성도를 향한 표현이라는 점입니다. 기질이 같고 성격이 같은 끼리끼리 통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학력이 같고 재력이 같은 끼리끼리 통하는 사랑은 아닙니다. 이 사랑은 모든 성도들에게 예외없이 표현되는 사랑입니다.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자기 희생을 수용하는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이 사랑은 감성적이고 말로만의 사랑은 아닙니다. 믿음에 근거한 사랑은 형제자매의 구체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사랑입니다. 바울은 골로새인의 믿음과 사랑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했는데 그 "믿음과 사랑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에 근거합니다"라고 밝힘으로 제 3의 요소를 소망으로 소개합니다. 믿음과 사랑의 동기를 유발시키는 능력으로 소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밖에 모르는 사람은 믿음, 소망, 사랑의 순서가 받는 순서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좀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골로새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을 더욱 새롭게 하는 소망은 무엇입니까 그들이 바라는 소망은 무엇입니까 믿음과 사랑의 삶을 지속적으로 갖게 하는 산 소망은 무엇입니까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에바브라가 그들 가운데 선포한 복음의 핵심인 그리스도야말로 골로새 성도가 바라볼 영광의 소망입니다. 골로새 3장 4절의 표현을 빌리면 "영광 중에 나타날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비밀이요 영광의 소망입니다. 또한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새로운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몸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히 사는 것을 또한 믿습니다. 약속하신 하나님은 불변하십니다. 약속대로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하나님은 때가 차면 아들을 세상의 심판자로 보내실 것입니다. 우리의 상황도 변하고 때때로 우리의 기분도 바뀌지만 하나님은 불변하시고 그 약속도 불변하십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주 대망 1999년 새해가 밝아왔습니다. 소망을 새롭게 하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음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이 새로운 활력을 나타낼 것입니다. 영광의 소망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사모하십시오. 소망은 여러분의 믿음과 사랑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날" 소망을 붙드십시오. 우리에게 영광의 주 오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이 없다면 우리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것을 전한 저는 거짓말쟁이요 그것을 믿은 여러분은 어리석은 자가 될 것입니다. 믿음은 웃음꺼리요 도덕적 노력은 시간 낭비일 것입니다. 소망이 없다면 그 귀결은 무엇입니까 "내일 죽으리니 오늘 먹고 마시자". 그것 밖에는 다른 논리적 결론은 없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영광중 나타날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나타나실 때 여러분과 저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욕망에 따라 살지 않습니다. 순간의 쾌락을 따라 생을 맡기지 않습니다. 영원한 소망을 바라보고 믿음과 사랑을 새롭게 합니다. 산 소망이 그 마음 속에 있는 성도는 활력을 갖고 믿음과 사랑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지금 겪는 고난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의 내일을 바라기에 성도들은 인내하며 고난을 이겨냅니다. 바울은 이 소망을 우리를 위해서 "하늘에 쌓아놓은" 것으로 설명합니다. 소망에 관한 첫 번째 설명은 이 소망이 보물처럼 하늘에 쌓아놓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땅에 쌓아 놓은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쌓아 놓은 소망은 안전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이 소망을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약속하신 소망은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수천년 기다린 인류에게 메시야 보내셨듯이 지금껏 2000년 가까이 기다렸지만 반드시 심판자요 구원자인 예수께서 영광 중에 나타나실 것입니다. 이 소망을 붙드십시오. 한 날 우리는 이 소망에 참여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바울은 이 소망에 대한 설명을 . .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이 소망은 여러분이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받아들일 때에 이미 들은 것입니다". 라이커스 계곡에 가장 미미한 소유 골로새에 소망없이 살던 이들에게 복음 진리의 전파는 새로운 전기를 그 지역 역사에 가져다 주었습니다. 복음진리가 증거된 순간부터 그들에게 소망이 전해졌습니다. 에바브라를 통해서 최초로 전파된 복음의 소식은 소망의 소식이었던 것입니다. 주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소망을 가지고 새해를 맞이하십니까 구주 대망 1999년 하루하루가 소망중에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절망의 삶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소망의 삶으로 변화됩니다. 복음 진리의 말씀은 소망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찾아 오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복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분의 소식이 복된 소식입니다. 하나님은 구속의 창시자시요 기독교 소망의 원천이십니다. 여러분도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 없습니까 오늘 새가족부를 수료하신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 비밀의 영광의 소망 그리스도를 여러분 삶에 영접하신 적이 있습니까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붙드십시오. 중요한 것은 주인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종교적인 경험들이 우리 신앙의 기초가 될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이 이 말을 하면 거기에 따라가고 저 말하면 저기에 기웃거리다가 한 해 역시 또 허송세월합니다.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영양을 공급받습니다. 또한 마디와 힘줄이 서로 연결되어갑니다.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심으로 공동체는 자랄것입니다. 무럭무럭 자라는 새해가 되도록 주 안에서 그리스도께 연합된 성도 여러분 이 거룩한 식탁으로 나아오십시오. 예수를 믿고 공중 앞에서 "주"로 고백한 사람들은 이 거룩한 성찬에 동참할 수가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우리의 삶을 다짐하면서 우리의 주되신 그리스도를 위해 살겠다고 결단하는 귀한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 분 안에서 여러분은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 분 안에서 여러분은 새 소망을 누립니다. 그 분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신성의 충만함을 여러분도 받았습니다. 가르침을 받은대로 감사함을 넘치게 하십시오. 믿음 주심을 감사하고 사랑을 나타냄을 감사하고 소망이 터전이 됨을 더욱 감사하십시오. 진리의 말씀이 여러분을 더욱 굳게 세울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이 소망으로 더욱 불타오르는 새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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