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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보이는 것 (히11:1-3)

본문

그 동안 약 10주에 걸쳐서 우리는 믿음에 초점을 맞추어 말씀을 생각해 왔었습니다. 오늘은 먼저 그 동안 믿음에 대하여 생각해 왔던 말씀들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믿음을 방해하는 우리의 인식의 문제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믿음이란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했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하나님 자신의 소원을 두시고 우리로 하여금 살도록 하시는 것이 믿음의 삶이라는 점을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소원이 있다는 것은 우리 속에서 하나님이 살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 자신이 우리 마음에 자신의 소원을 두시고 우리로 하여금 사는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예수님의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앞에서 충성을 다해서 사셨기 때문에 구속이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성령님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은 우리에게 구속을 가져왔고 새 세상 천국을 가져왔습니다.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정했다면 그것에 굴복하게 되고 또 그것을 따라서 살려고 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신앙의 절대적인 대상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구속을 이루셨고 천국을 우리에게 가지고 왔다면 우리에게는 다른 하나님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셨고 천국도 예수님을 통해서 왔기 때문에 예수님 외에는 다른 하나님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이 예수님을 주로 믿고 예수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않고 주님을 위해서 사는 것이 예수 믿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음 중심이 밖을 향해서 즉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서 열려 있는 마음이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믿음은 평안으로 나타나고 또 사랑으로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평안과 사랑은 한계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 믿음이며 또 이러한 사랑이 열매를 맺게 한다고 했습니다. 사랑이란 동일한 복음을 동일하게 말하며 이것을 위해서 고난을 함께 받는 것이기 때문에 이로 인하여 교회가 생겨나고 또 존재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한 복음을 말하고 같이 고난에 참여할 때에 열매는 주님이 맺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상이 최근 약 10 주 동안에 제가 말씀을 드렸던 내용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에서 볼 수 있었던 특징은 이러한 믿음은 인간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고 외부에서 오는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인간은 이런 믿음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인간이 노력을 하고 공부를 하고 성경을 읽는다고 해도 믿음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선물이요 이것을 받아들여서 따라가는 것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죄인에게서는 이런 일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하게 하시는 자에게만 이루어지는 선물이 믿음이요 믿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자는 하나님이 있는 자요 성령님 안에 있는 자입니다. 이런 믿음은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는 이 세상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것을 믿었습니다. 구약의 사람들은 장차 올 약속이 성취될 때를 믿고 기다렸습니다. 장차 올 것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들의 삶에 있어서는 아무 것도 볼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고 기다렸습니다. 신약의 신자들도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것을 믿었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후에 하늘 나라를 시작하셨지만 그 나라는 보이는 나라가 아닙니다. 성령님으로 다스리는 나라는 사람의 마음에 새 마음을 주고 새 생각을 주어서 살게 하는 나라입니다. 부활하신 주님도 하나님도 보이지 않고 다만 말씀을 남기셔서 말씀을 믿고 살도록 하신 나라입니다. 사죄도 보이는 것이 아니고 구원도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믿고 살다가 믿고 죽는 것입니다. 사람에게서 나올 수 없는 믿음이 있다는 것이 곧 보이지 않는 천국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요 증거해 주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본질적으로 우리의 지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믿음은 단순히 우리가 바라고 구하는 것 이상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바라고 구하는 것은 있지도 않고 되지도 않는 헛된 것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바램을 공상 또는 환상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바라고 구하는 것은 바라고 구하는 것으로 그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늘에서 주어진 믿음은 이런 것들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믿는 바와 같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실상 즉 실체요 증거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믿음이 실상 즉 실체가 될 수 있습니까 실상 또는 실체란 말은 그림자가 아니라 실체라는 말로써 대비시켜 생각해 봅시다. 또는 드라마에서 보는 배우와 실제로 직접 보는 것과 비교해서 실물을 생각합시다. 흔히 유명한 배우 를 실물로 보았다고 합니다. 실제 인물을 직접 보았다고 할 때에 그 '실물'이라는 말과 실상이란 말이 같다고 하겠습니다. 모창가수 '너훈아'가 아니라 실물 '나훈아'요 CD로 듣는 '머라이케리'가 아니라 직접 보고 듣는 '머라이케리'를 실상이라고 합니다. 믿음이 이런 것이라는 말입니다. 어떻게 믿음이 이런 실상이 될 수 있습니까 믿음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믿은 대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실상이며 실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한 것을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이것입니다. 믿는다고 하는 믿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믿는 바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면 반드시 되어지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 아니면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믿는 것은 참 믿음이요 약속하지 않은 것을 믿는 것은 거짓 믿음입니다. 이것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믿음을 자기가 바라는 것을 이루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업이 부도가 나게 생겼는데 부도난 수표와 계산서를 가지고 기도하고 그 계산서를 보내면서 귀하가 하는 일이 형통하기를 빕니다고 하면서 친절하게 인사를 하고 정중하게 청구하였더니 사람들이 밀린 돈을 보내어 주어서 사업이 다시 일어서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하면 적극적이고 활달한 사고를 전달하는 일이기 때문에 사업에 효과는 있을 지 몰라도 믿음은 아닙니다. 이런 식이니 무엇이든지 자기가 구하는 것은 이루어진 줄로 믿고 기도하라고 합니다. 병도 나은 것으로 믿고 기도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기도한 그 사람이 몇 날 못 가서 죽고 맙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런 것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 아니므로 이루어진다는 아무런 보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약속한 것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약속한 것을 믿는 믿음은 이미 얻은 것이나 같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믿음은 실상이라고 하고 또 증거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무엇을 믿는 믿음입니까 구약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올 것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리고 신약의 우리들에게는 주님이 다시 오셔서 모든 것을 신원해 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당장 우리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요 손으로 잡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믿고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가장 확실한 사실입니다. 때문에 이것을 믿는 것은 실제이지 공상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믿는다는 것을 굉장히 어려워합니다.
왜냐하면 믿는다는 것이 우리의 감각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면 쉽게 믿을 수 있겠는데 도무지 그렇지 않는 것을 믿으라고 하니 이 때문에 어려워합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사는 데 있어서 확인하고 사는 경우가 많은 지 아니면 믿고 사는 경우가 많은 지 생각해 봅시다. 저는 차를 탈 때마다 내가 운전사를 믿고 타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만약 내가 운전사를 믿지 않는다면 그 차를 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운전사가 별 탈 없이 나를 목적지까지 태워다 주리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그 차를 타고 자리에 앉아서 졸기도 하면서 목적지를 향해서 가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식당에 가서 밥을 사서 먹을 때도 그 속에 독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면 음식을 먹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속에 독이 들어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의심 없이 음식을 맛있게 먹습니다. 우리들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중요한 부분이 대개 이러한 일종의 믿음 속에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이 이러한 믿음을 일반적인 원칙으로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과 인간과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햇빛과 공기와 물이 우리에게 유익을 주고 생명을 유지시켜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것들을 귀중히 여깁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우리를 죽인다고 생각한다면 물도 제대로 먹지 못할 것이고 숨도 쉴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이 우리를 유익하게 한다는 일반적인 원칙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이 모든 생활을 우리가 일일이 확인한 후에 살아간다면 일순간도 우리는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의 감각이란 한없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이 이 세계를 지으실 때 그것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을 믿고 그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이 세계가 어떻게 생겨났으며 이 물질 세계의 근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살고 있습니다. 인간은 모르는 중에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르는 중에 살고 있다는 것은 일종의 믿음 속에서 살고 있다는 말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인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감감은 이 세계를 제대로 확인하고 파악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이 순간에도 무서운 속도로 지구의 축과 함께 돌고 있으며 또한 시간에 수천 킬로미터씩 날아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하기 때문이요 또 이 태양계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움직임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어지럽지도 않고 어디론지 공중으로 날아 가버리지도 않습니다. 뛰어 보아도 제자리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이 지구와 함께 무서운 속도로 날고 있다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또 우리가 호흡하고 있는 공기 중에는 수많은 전자파와 음파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또 우주에서 날아오는 음파들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구가 엄청난 속도로 돌며 날아가는 소리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우리는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의 감각기관이 지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이 한계를 넘어서는 것은 아무리 크고 웅장한 소리라도 들을 수 없고 만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귀나 눈으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미세한 생명체들이 소리를 내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것들에 대하여 전혀 느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딱딱한 물체들이나 또는 움직이지 않는 듯한 액체들이 사실은 다 움직이고 있는 것들입니다. 나무나 쇠나 세멘트 벽 등도 그것을 이루고 있는 작은 알갱이들이 무서운 속도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정된 것이 없는 세계 속에서 고정된 것 같이 안정감을 느끼면서 살고 있는 셈입니다. 이 모든 사실들은 우리의 감각이 얼마나 제한되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감각을 의지하고 산다는 것은 부분적으로는 맞을 지 몰라도 그것을 넘어서는 세계에 대하여는 전혀 모르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 됩니다. 이 세상에 대하여서도 이러할진대 하나님의 세계에 대하여서는 우리 인간이 더욱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감각으로 느껴지지 않고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믿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이해되기도 하는데 감각적으로 확인할 수 없어서 믿지를 못하겠다고 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인간의 감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진리는 인간의 감각을 넘어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을 수밖에 없는 진리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감각을 넘어서서 있는 진리를 보고 듣고 만지고 느껴서 알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세상의 일도 믿음 속에서 유지되거늘 하물며 성경의 진리야 더욱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은 제한된 감각을 통해서 확인해 보고 믿으려고 하지 말고 그냥 믿으십시오. 우리의 감각 기관을 넘어서는 세계가 하나님의 세계입니다. 어느 땐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세계를 밝히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확인하고 믿으려는 근성이 죄성인 줄 알고 안심하고 그냥 믿으십시오. 한없이 넓고 깊은 하나님의 세계를 믿음으로 누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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