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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안에서 사는 삶 (갈2:19-20)

본문

갈라디아서는 기독교 자유의 대헌장(Magna Carta)이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선언서로 불리는 책입니다. 갈라디아서는 특히 16세기 종교 개혁당시 루터로 하여금 이신득의(以信得義)의 진리에 눈을 뜨게해준 서신서인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회들은 바울이 직접선교하여 세웠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떠난 후 유대주의 교사들이 들어와 바울의 사도권을 부인정하고 유대주의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한번 은혜를 받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되고 끊임없이 예배와 성경공부와 기도를 통해서 신앙을 바로 세워야 하겠습니다. 갈라디아교회의 잘못된 유대주의 자들은 구원의 조건으로 할례와 율법을 주장하여 교회를 혼란에 빠뜨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자신이 사도된 것은 바로 예수님께로부터 온것이며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율법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나위해 죽으시고 나위해 사흘만에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이것을 믿는 사람들에게 아무 대가없이 주어 지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천국 시민이되고 구원받는 것은 바울 사도가 말한 것처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이신득의 교리에 아무 것도 더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 함께하신 모든 성도님들은 나위하여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지시고 죽어주신 그 놀라운 은혜를 추호도 의심없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시면서 날마다 승리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오늘은 본문 말씀속에서 舅슭효(사는 삶 繭遮 제목을 가지고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믿음안에서 사는 삶을 살기위해서는 철저히 십자가의 은혜를 깨달아야 만 합니다.(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 이사야53장 4절이하에서는 말씀하시기를-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께서는 실로 우리가 죄를 지어 지옥형벌을 받아야 함으로 가장 큰 슬픔을 당하여야 할 우리의 슬픔을 대신 당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은 범죄를 했기 때문에 마땅히 벌을 받는다고 생각하며 나와는 별로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제 길로 갔던 불행한 삶을 이제는 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의 죄 때문에 로마병정에게 끌려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고 마치 도수장에 죽기위해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우리의 죄의 댓가를 대신 지불하시기 위해 묵묵히 아무 변명도 아니하시고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던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하며(사53:7) 이 땅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예수님 처럼은 억울하지 않을 것입니다. 핍박을 받아도 예수님처럼 아무 죄없이 핍박을 받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화가나도 예수님처럼 화가나는 일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희생을 하더라도 예수님처럼 모든 인생을 다 희생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승리를 하셨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떠한 일을 당하여도 십자가만 바라보면 반드시 승리할 줄을 믿습니다. 죽을 자리에 있어도 십자가를 붙잡고 열심을 다하여 나아가면 반드시 승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승리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둘째로 믿음안에서 사는 삶을 살기위해서는 철저히 예수님을 믿고 신뢰하는 삶을 살아야 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심) 십자가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의 은혜가 감사하여 예전에는 마지 못해 교회에 나왔고 목사님의 권유에 일을 했지만 십자가의 은혜가 내몸에 실재로 느껴진 다음부터는 자원하여 교회의 일들을 하게됩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오는 것이 기쁘고 즐겁고 신앙생활을 기쁨으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학생 가운데는 술집을 하다가 이제 술집을 그만두고 회개하고 교회를 개척하여 아주 아름답게 신앙생활을 하는 분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세상중심이요 나 중심이요 사람중심이요 하나님은 그 다음이었지만 지금은 하나님중심이요 예수님 우선이요 성령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게되는 것입니다. 고사성어에 보면 부귀 불능음(富貴不能淫)-부귀로도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를 만나기 전 과거에는 물질로 명예로 환경으로 사람이 수시로 변하게 되나 성령님 예수님을 만나게되면 환경 중심이 아니라 주님 중심으로 모든 것이 바뀌어 하나님을 향한 중심이 흐뜨려지지 않을 줄 믿습니다. 초보의 신앙일때는 항상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꾸만 이웃의 도움을 받고 신앙생활을 하지만 점점더 신앙이 자라나게 되면 이제 홀로서기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홀로설 뿐만아니라 남을 도와 주는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 중심의 신앙생활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성장된 장성한 신앙인이 되시길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사도 바울은 어떠한 환경의 변화에도 신앙이 변화하거나 변질되거나 타협하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복음전파를 위해서는 자신의 개인적인 것은 다 희생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에는 철저히 생명을 걸고 신앙을 지키는 신앙의 절개를 지켰던 것입니다. 바울의 고통은 참으로 심했습니다.
고후11장24절이하에는 4-유대인들에게 사십에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26-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죽을 고비와 지독한 고통속에서도 늘 걱정한 것은 자신의 어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의 일을 걱정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의 이러한 남다른 열심과 헌신이 있었기에 전 소아시아를 복음화 시키는 엄청난 일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과거나 현재나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바로 바울 사도처럼 철저히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신뢰하는 삶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제 시대는 바야흐로 21세기를 향하여 거침없이 가고 있습니다. 몇 달이 가고 나면 20세기에서 21세기로 변화합니다. 세상사람들은 밀레니엄millennium을 세상에서는 천년단위의 천년기를 이야기 하고 기독교에서는 천년왕국을 또한 밀레니엄이라고 도 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새로운 천년을 준비한다고 각종밀레니엄 상품을 내놓습니다. 밀레니엄 음식 밀레니엄 서적 밀레니엄 기업이니 모든 것이 물질 중심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밀레니엄의 의미는 바로 성경이고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그러니 밀레니엄 천년왕국은 주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로 가득채워지는 사탄을 밟아 뭉게고 무저갱에 가두고 지옥불에 던져넣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승리의 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여기계신 우리 온수성화 교회성도님들은 영적으로도 승리하고 육적으로도 예수님의이름으로 승리하는 귀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셋째로 믿음안에서 사는 삶을 살기위해서는 내 안에서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야만 합니다. 호세아서 6장3절에는 말씀하시기를 ㈗拷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箚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내안에 모시고 사는 방법은 자꾸만 예수님을 사모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그분을 기뻐하고 사모하기만 하면 주님은 기뻐하시고 제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는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부부의 관계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신랑으로 성도는 신부로 그리고 교회는 마치 가정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신부가 늘 신랑은 좋아하지 않고 다른 남자를 생각하고 가정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면 신랑이 과연 좋아 할까요 결혼을 하였는데 신부된 성도가 신랑된 예수님께 이혼을 하자고하면서 걸핏하면 가정된 교회에 안들어오고 외도하고 불평한다면 신랑되신 예수님께서 좋아하실 까요 이러한 현상은 바로 마귀의 계획인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마귀의 꼬임에 넘어가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신랑되신 예수님을 사모하며 주님의 몸되신 교회를 위해 기뻐하며 살 수 있는 영의 눈이 열려 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넷째로 믿음안에서 사는 삶을 살기위해서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기를 작정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한국의 엘리야로 불리우는 박관준 장로는 젊어서는 한 때 방탕한 생활을 했으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새 사람이 되었고 의사가 된 박관준 장로는 의료봉사를 통해 많은 사람의 병을 거저 고쳐 줄 뿐 아니라 영혼의 병을 고쳐주는 장로로 서도 눈부신 허신을 했고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일제와 8년간을 싸우면서 감옥살이속에서도 70 일을 금식하며 기도했고 실로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하게 한평생을 살았습니다. 1875년 4월13일 에 평북 영변의 세도가의 집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여섯 살에 천자문을 띠고 13세의 나이에 시경, 중용 주역과 같은 동양의 고전을 배우고 병서 각종경전을 폭넓게 공부했고 15세에 결혼했으나 17세때에 부친상을 당하면서 20세때에는 청일전쟁이 일어나면서 피난후 박관준은 타락의 일로를 걷다가 술과 방탕으로 살아가다가 그만 나이 30이 다되어서는 병을 얻어 죽기직전에 아내의 허벅지를 듣어내어 피를 내어 남편에게 마시게하는 등 지극한 정성으로 간호한 덕에 건강을 회복하면서 주변에서는 토마스,언더우드, 아펜셀러등의 선교사들이 조선에 열심을 다하여 선교를 하며 박관준에게도 복음을 전하여 주었으나 소귀에 경읽기였고, 박관준은 다시금 학문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하는중 1905년 하루는 돝ㅏ(절벽이 위험하면 혈벽에 서라 遮 음성을 듣고는 지난날 술독에 빠져 살던 것이 절벽에선 것처럼 위험한 것이고 혈벽이란 선교사들이 말하는 십자가의 피라는 것을 깨닫고는 회개하며 친구의 도움으로 교회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고 그 때부터 여러사람을 전도하며 성경을 보기시작했습니다. 그래서 37세에는 의료선교사 알렌과 제중원에서 의료선교를 하였고 병원을 짓고 일본 국회에서 전단지를 뿌리며 신사참배를 반대하였고 교회그리고 학교를 지으며 하나님을 위해 민족을 위해 헌신하며 평생을 살다가 신사참배 반대로 교도소에 8년간 복역중 70이넘은 나이에도 70일간을 민족을 위해 금식기도를 마치고 1945년 3 월13일 오전10시에 광복을 맞기 얼전에 하나님 나라로 가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위한 한 평생의 삶을 후회함이 없이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은 진실로 하나님을 위해 생명을 바친 삶을 살았습니다. 과거 고려요 조선은 세계사에서 전혀 그 공로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오천년 역사의 한반도는 인류사를 위해 뛰어나게 공헌한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우상숭배로 많은 영혼을 지옥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하는 일에 앞장서면서 크고작은 전쟁이 3-4년마다 즐비하게 있었던 한많은 민족이었지만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 개신교인 기독교가 이 한반도 땅에 1884년에 들어온 이후로 그 한과 어려움과 민족의 고통을 극복하며 일제시대와 6.25를 거치면서 하나님께서는 잿더미에서 기적을 베풀어 주시었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던 민족대표 33 인중에 약60%이상이 기독교에 관계된 사람이었습니다. 8.15독립도 6.25전쟁시 우리를 도왔던 대부분의 국가들은 기독교 국가였고 인천상륙작전을 했던 맥아더 장군도 그당시 대통령이었던 아이젠하워도 기독교인이요 교회의 장로였던 사실이고 유명한 비사는 맥아더장군은 인천상륙 작전을 하면서 아이젠 하워대통령에게 전문을 보내기를 저 한국에는 하나님을 믿는 100만명의 성도가 있습니다. 라고 하며 한국을 포기할 것을 결정하였던 미국의 방침을 뒤엎고 세계 전쟁사에 길이 남을 그리고 한국의 운명을 바꾸어 놓는 인천 상륙작전을 주님의 이름으로 했던 것입니다. 맥아더 장군은 주님을 위해 살았기에 이 전쟁에서도 승리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계신 모든 성도님들이 주님을 위해 살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승리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만일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찾아와서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께서 너는 무엇을 하며 살았냐고 물으시면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나와 내 가정은 잘먹고 잘살기위해 세상의 돈을 벌고 내 집을 사고 내 자동차를 사고 내 자녀에게 유산을 물려주고 내몸을 위해 살다가 남은돈을 은행에다 열심히 예금만을 하다가 온 근면한 사람이었다고 말하시겠습니까 과연 우리는 고린도후서11장에 나오는 바울의 고백처럼 예 주님 저의 육신의 고통이 문제가 아니라 저의 근심과 걱정은 오직 주님의 교회가 튼튼히 서 나가는 것이 저의 소망이었습니다. 하는 바울의 고백과 어떻게 다릅니까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바울이나 사도들이 그리고 초대교회 성도들은 교회에 일주일에 한번 정도나갔다고 생각하십니까 부모님은 교회에나가고 공부 때문에 다른일 때문에 자녀들이 교회에 안나가도 그냥 내버려 두었습니까 2000년전이나 1000년전이나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주님은 여전히 변화지 않으시는 것 같이 우리의 신앙의 근본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13장 8절이하에는 말씀하시기를 뭡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箚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다만 과거에서 걸어서 나오고 말을타고 나오고 했지만 이제는 자동차를 타고 전철을 타고 비행기를 타고 나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비파와 수금등의 악기로 주님을 찬양했지만 이제는 많은 교회에서 피아노와 전자올겐과 오케스트라나 많은 좋은 악기로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사도들의 육성으로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들었는데 이제는 마이크로 라디오로 텔레비젼으로 카세트로 비디오로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현재 과학이 발달 했다고 해서 교회를 안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안믿고 다른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시간이 줄어든 것이 아닙니다. 예배를 안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일주일에 한번 얼굴을 비치는 것이 신앙의 전부가 아닌 것입니다. 과거에나 현재에나 미래에나 신앙의 근본은 똑 같은 것이요. 축복의 비결은 똑 같은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네들도 여전히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살때에 참단운 안식과 평안과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 때 주님께서 나를 위하여 사시는 비결을 잊지 말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결론적으로 이제 우리가 육신의 몸을 가지고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셨기에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이 땅을 지으신이가 하나님이시오 이 우주를 지으신이가 하나님이시오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주만물의 역사를 주관하시며 나의 인생을 주관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제는 겸손해 지십시다.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 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을 거부하지 마십시다. 이제는 하나님의 주시는 축복을 받아 누리는 삶을 사십시다. 신명기 8장1절에서는말씀 하시길 뺐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 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箚 말씀하고 있습니다. 벧전5장6절에는 말씀하시기를 瀏 퓐 하나님으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箚 언약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시간 우리 성도님들을 진정으로 사랑하십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는 믿음안에서 넉넉히 이 세상을 이기며 아담과 하와에게 주었던 이스라엘에게 주었던 오늘 나에게 주는 축복을 마음껏 회복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악한 마귀 권세는 물러가고 날마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승리하시기를 다시 한번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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