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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창15:5-7)

본문

오늘 본문 말씀에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그를 의로 여기시 고 하는 말씀이 나온다. 믿음이라는 것은 어떤 문제에 있어 정답 이상이요, 아는 것 이상이요, 알아도 아는 것에다 그것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매달리고 전적으로 거기에 나를 맡기고 싶은 지경에까지 들어간 것을 말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 하나도 없을 때 하나님은 그를 부르셨다. 그런 의미로 그의 출발을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이라고 기록한 성경을 보면서 우리는 이 믿음에 대하여 세심한 주의를 갖고 살펴보아야 한다. 오늘 이 시점에 이르러 왜 하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근거로해서 의(義) 라는 것을 그에게 주었을까 아브라함의 생애 속에서 하나님을 믿었다는 말은 여 기에서 처음 나온다. 그래서 이 믿음 자체가 아브라함 쪽에서 나온 것이냐 아니 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냐 하는 것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해석이 내려진다. 우리는 지난 두 시간에 걸쳐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갈대아 우르 를 떠나는 신앙의 출발을 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을 아는 차원에서 신앙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오히려 그는 떠밀려 가면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을 깨달아 간다는 설명을 드렸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애굽에 내려간 사건이다. 그것을 근거로 해서 그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생기고 조카 롯과 헤어지고, 14장에서는 연합군 전쟁에 나가 싸워 조 카를 구원하는 일까지 벌인다고 말씀을 드렸다.
15장에서는 자신의 상속자가 다메 섹 엘리에셀이 될 것이라는 말을 함으로써 하나님과의 대화가 시작된다. 이렇게 볼 때 아브라함의 신앙은 무지에서 점점 자라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엘리에 셀이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땅의 모래와 같을 것 이라 고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셨다. 이 말을 아브라함이 믿은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그 믿음이 아브라함에게서 나온 것이냐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냐를 물어보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본토 친척 아비집에서 불러내셨고 이방신을 섬기던 곳에 서 이상 중에 부르셨다. 사건 속에서 역사하시고 그의 생애를 주장하시고 인도하 시며 설득하신 결과로 오늘의 아브라함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15장에서 얻어야할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 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4) 삯은 은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댓가이기 때문이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었다 라는 믿음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것은 삯이 아니라는 설명 부터 한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구원에 대한 또 다른 말씀을 보자.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방법으로냐 행위로냐 아 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럼으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 3:27-28)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가 생각할 것이 두 가지 가 있는데 하나는 삯인가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랑인가 하는 것이다. 성경이 믿음을 말할 때 그것이 자랑으로 가지 않고 삯으로 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언 제나 강조한다. 믿음이란 하나님이 구원을 주시려고 하는 대상에게서 조건을 찾지 않고 결과를 주셨기에 은혜요, 선물이라는 말의 사용이 가능하다. 그러면 자연인으로서의 인간은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이 그 에게 있을 수 있는가 없다.
창세기 11장에서 15장까지가 그것을 증명한다. 구원 은 하나님이 우리를 중생시키시고 설득해서 하나님을 믿게하는 행위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인간은 모든 결과를 원인으로부터 추적해서 확인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무슨 결과를 확인할 때는 현실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원인을 확인함으로 결과를 확 인한다. 믿었다는 것으로 자기의 결과를 자기에게 납득시키고 싶어한다. 죄인이란 하나님이 누군지도 모르고 구원의 필요성을 모른 장님, 잠자는 자, 사 망한 시체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다. 회개는 구원을 받아서 그의 영혼이 중생하여 하나님이 누군지를 아는 자 외에는 누구에게도 일어나지 않는다. 구원은 우리의 믿음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폭적인 독자적 은혜의 행위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것이다. 성경이 죄와 구원을 얻은 자를 갈라놓는 기준은 단 하나이다. 이쪽은 사망의 잠을 자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하여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하 고 오히려 증오심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다른 쪽은 하나님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인식도 있고 그분과 모든 것을 연결하여 생각한다. 오늘 아브라함이 15장에 이르러서 그가 하나님 앞에 의로 인정함을 받았다 하는 문제를 그 자리에서 그가 구원을 받았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구원을 얻었다 기보다는 거기서 이제 드디어 그만큼 인식되어 그가 하나님이 누군가를 알만큼 알게 된 것이다. 그의 구원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인식하기 훨씬 이전 하나님의 은혜로 그에게 이미 주어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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