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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소망 사랑의 의미 (골로새1:3-6)

본문

구원의 능력들을 상실해 가고 있는 세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구원 받 고 나서의 삶이나 구원 받기 전의 삶이나 삶의 변화가 없는 것, 이것이 현대 크리스챤들의 큰 특징 입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전인격이 변하는 큰 사건이며,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자기만을 사랑하게 되어 있는 이기적인 인간이 자기가 아닌 예수라는 남을 사랑하게 되는 엄청난 일입니다. 피조 물의 연약한 육체안에서 조물주의 한없이 광대하심과 높으신 위엄, 지상위에 침투한 그의 나라를 영의 눈으로 발견하고 바라보게 되는 놀라운 일입니다. 그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이 자기 속에 들어 오셨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한 일입니다.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방법인 십자가를 체험한 적이 없든지, 아니면 어디가 고장났든지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진흙탕속에서도 만족하며 살고 있 으니 그것이 문제입니다. 양지 캠퍼스에서 공부했을 적에 학교 근처에는 마땅히 주전부리할 곳이 없어 서 가끔씩은 차를 타고 양지읍까지 나오곤 했습니다. 거기 자주가는 호떡 집 이 있었습니다. 주인 아주머니가 불교신자인데 아주 말씀을 잘하십니다. 한 번은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호떡 먹으면서 하나님께 감사 기도 하는 모습을 보시고 아주머니께서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쳐다 보십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죠. '아주머니는 누구한테 감사하세요' '감사 안한다' '왜요' '감사할 사람이 없다' 그럴 수 밖에 없지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지 못하는 데 감사할 곳이 있을 리 없지요.
그런데 그 다음에 아주머니 하시는 말씀이 우습습니다. '그런데 가짜도 있더라 호떡 먹을 때 기도안하더라'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야아! 이거 조심해야겠군, 안보는 척 하면서 다 보시는 군 쩝!! 신학교 앞이라 많은 신학생들이 찾아 오는데 가끔은 기도 안하고 드시는 분들도 있었나 봅니다. 이 아주머니가 보는 진짜와 가짜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호떡 먹을 때 기도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 입니다. 우리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구원 받은 이후이나 구원 받기 전이나 우리의 삶은 하나도 변한 게 없는데 무엇이 참성도이고 무엇이 거짓 성도입니까 도대체 무엇으로 구별하십니까 이 차이가 아주 작은 것 같아도 너무나도 큰 차이요, 생명과 사망을 갈라놓는 실로 엄청 난 차이입니다. 진짜는 기도하면 역사가 일어나지만 가짜는 '그리고 아무일 도 없었더라' 입니다. 진짜는 삶을 살아가면서 그의 환경과 상관 없이 진짜 즐거움을 누리고 살아가고 가짜는 즐거운 척 아무리 해도 가짜 즐거움을 누리 고 살아 갑니다. 사람이 아무리 번듯하게 진짜인척해도 하나님은 다 아시기에 속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잘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대충 판단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이 십일조나 헌금 그리고 직분, 봉사, 구제, 온 유, 감사, 복음전도, 방언과 능력행함, 예언 등과 같은 삶의 은사와 열매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이전에는 없었던 우리 삶의 변화들이고 예수를 사랑하지 않고는 또 그분이 내 속에 계시지 않고는 도무지 할 수 없는 것들이라 우리는 이 모든 열매들로 사람을 구별하기를 좋아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복음-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십자가 지심은 내 죄를 인함이 요, 죽어야 할 나를 대신해서 죽은 죽음이요 피흘리심이며, 그의 부활이 나의 영생의 보증이 되신다-을 들은 적이 있고, 참으로 하나님의 그 은혜를 깨 달았다면 반드시 그 날부터 열매를 맺어 자라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 은 날부터 너희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6절. 참으로 변화가 없는 삶은 공허합니다. 우리는 가끔 '복음을 알기는 많이 아는데 열매가 없어' 하는 얘기들을 듣게 됩니다만 저는 이 얘기에 동의(同意) 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것은 복음을 아는데 열매가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온전히 복음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깨달은 사람은 반드시 그 깨달 은 날부터 열매를 맺기 시작합니다. '이 복음이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입니다 . 변화가 없다는 건 지식은 있는데 그 지식이 가슴까지 안 내려온 것이 아니 라 그 지식이 행함까지 수반하게 되는 '완전한 지식' 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금세기의 훌륭한 설교자 영국의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이 지식을 '참지 식' 이라고 표현합니다. 믿음은 반드시 행함을 포함합니다.-오! 오해하지 마십시오. 제가 말하는 행함은 윤리적인 실천(행함)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에 따른 행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온전케 하는 행함 말입니다 . 아브라함의 살인미수, 기생 라합의 조국배반 등으로도 나타날 수 있는 행함 말입니다. 그러니 믿음을 가진 자는 그 행함이 변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복음을 깨달은 자는 그의 이전의 삶과 똑 같은 삶을 결코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언약에 매인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이 모습을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 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참으로 새로와 지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속에서 성령의 뜨거운 능력이 그를 하나님 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 믿고 구원 얻게 된 성도들의 새로운 변화들을 세가지 나열 하고 있습니다. 그 세가지 변화가 믿음이요, 소망이요, 사랑입니다.
아까 말씀 드리기를 구원 얻은 성도가 변화하게 되는 원인은 크s게 두가지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삶에 나타나는 '은사'요 나머지 하나가 삶에서 맺어지는 '열매 ' 임을 말씀 드렸습니다. 이 열매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은사'에 대해서 말씀드리지 않는 이유는 은사 역시 이전에 없던 일들을 경 험하게 되는 것이요, 이전에 체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되는 우리 삶의 변화이나 그러나 이 '은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요, 인간이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심판은 은사로 말미암지 않고 행위로 드 러나는 열매로 말미암는 다는 점에서 열매에 강조를 두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사가 없다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열매 없음을 부끄러워 하여야 할 것입니다. 나는 왜 방언을 못할까하여 머리를 뜯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으 니 자연히 방언학교라는 것이 생겨났습니다. 몇년전에는 그들이 혀를 굴리며 방언을 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TV에 보도 된 적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기만하는 방법도 가지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시는 걸 어떻게 인간 의 맘대로 받겠다는 것입니까 혀를 굴리고 흉내낸다고 될 일입니까 크리스마스 트리에는 갖가지 예쁜 장식품이 달려 있습니다. 예쁜 은종도 달 려 있고 산타클로스 인형도, 지팡이도 형형색색의 예쁜 리본도, 선물상자도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사과 나무에는 그러한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무 도 그러한 것들이 없다는 이유로 사과나무를 도끼로 찍어 버리지 않습니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예쁜 장식품들은 말 그대로 장식품이고 우리가 매달아 준 것입니다. 사과에는 매달아 주지 않았으니 '이 놈의 사과나무가 도대체 왜 선물상자를 못 맺는 거야 도끼 갖고와 도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달아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방언은 말 그대로 은사입니다. 선물이라는 말입니다. 주시지도 않고 우리에게 책망하시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책망 받는 것은 사과나무가 사과를 못맺을 때입니다. 우리의 삶에 은사가 아닌 ' 열매'가 없을 때라는 말입니다.
I 첫번째 열매, 믿음 어떤 의미에서 믿음은 은사입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한 믿음은 열매입니다. 감옥의 간수가 바울과 실라에게 '내가 어떻 게 해야 구원을 얻겠습니까' 물었을 때에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행 1 6:31) 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참으로 이 믿음으로 시작합니다. 전에는 우리게게 이 믿음이 없었습니다. 교회 나가도 안 믿어 지던 것이 이제는 믿 어지고 눈물도 나옵니다. 십자가가 나를 위한 사건 이었다는 사실이 전에는 냉랭했던 가슴에 아무런 작용도 못했지만 이제는 이천년전의 일이요, 구만리 먼 중동 땅의 일이지만 나를 위한 하나님의 구속의 사건으로 믿어 지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참성도와 거짓 성도를 구별하는 좋은 시금석이 됩니다. 십자가를 얘기해도 감동이 없는 세대, 그리스도안에서 이 귀한 믿음을 잃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설교도 그들에게는 무용지물(無用之物)입니다. 오직 빨리 끝나는 데만 관심이 있습니다. 이 믿지 못하는 사람이 찬양하는 데 아버지가 기뻐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믿지 못하고 하는 예배, 기도, 헌금 그건 누구에게 하는 것입니까 그건 하는 사람도 괴롭습니다. 못믿고 하는데 도대체 어디에다 하는 것입니까 호떡집 아주머니처럼 그냥 기도안하고 가만 있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믿음이 없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을 뿐더러(히 11:6) 삶의 풍파가 일어날 때 쉽게 넘어지고 맙니다. 풍랑이는 바다를 항해하다가 죽게 되었을 때에 제자들이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죠.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 하 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막 4:40) 믿음이 없는 자는 세상이 험할 수 밖에 없고 그 위력 앞에 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은 풍 랑속에서 죽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 하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새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모 든 시험과 시련을 능히 이기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믿음 없다고 책망한 것도 그들의 두려워하는 행동이었다기 보다 예수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여 행동으로 믿음 없음을 보여준데 있다 하겠습니다. 그것은 그후 에 그들의 고백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 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막 4:41)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의 첫 열매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성전건축을 이루어 주실 줄을 믿습니다 하는 믿음도 아니요, 남북통일을 이루어 주실 줄을 믿습니다 하는 믿음도 아니요 사업을 번창하게 해 주실 줄을 믿습니다 하는 믿음도 아 니요 예수가 우리 죄와 허물을 대신 지신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 이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않는 모든 것이 다 죄입니다.(롬 14:23) 믿음이 어 려운 것 같아도 구원 얻고 나면, 은혜 받고 나면 믿어지는 걸 어떡합니까 믿 어 지고 찬양이 나오고 감사가 나오는 걸 난 들 어떡합니까 이것이 구원 얻는 성도의 첫 열매입니다.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 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 
Ⅱ. 두번째 열매, 사랑 골로새 교인들에게 나타났던 두번째 열매는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 이었습니다.
4절 성도 여러분! 사랑하십니까 믿는 사람들 집에 가봐도 사랑하는 집 많지 않습디다. 친척들끼리 가족들끼리 서로 불평하고 욕하고 도대체 옆 에서 듣기가 힘이 듭니다. 이해해 주고 아껴 주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화해하지 못하고 자기만을 사랑하는 죄악의 습성을 아직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무엇하는 곳입니까 주의 복음 전하는 곳 아닙니까 주의 사랑 전하는 곳 아닙니까 그렇다면 왜 걸인들이 찾아오면 돈만 주고 보냅니까 따뜻한 밥이라도 한 술 같이 뜨게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그렇기는 커녕 그 알량한 돈 천원짜리 한 장 주면서 ' 아저씨! 앞으로 이런데 오시려거든 술먹지 말고 오세요' 쏘는 소리나 한 소 리 합니다. 그 분은 돈이 필요한 사람이 아닙니다. 사랑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런 분들은 마음 마저 약 해져 있어서 복음을 전하면 아이들처럼 아주 쉽게 복음을 받아 들입니다. 어 느 날 한 번은 주일 예배후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걸인 한 분이 찾아 오셨 습니다. 식당 앞에서 그 분을 돈 천원 주고 돌려 보냈습니다. 자기네들은 따 뜻한 국에 밥을 먹으면서 말입니다. 어찌 그곳이 교회일 수 있습니까 교회는 사랑하는 곳이 아니고 자기네들끼리 자리다툼이나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돈 들여서 제주도 선교다, 낙도오지 선교다 다니면서도 왜 제 발로 찾아 오는 사람은 그냥 보냅니까 나가서도 복음을 전하고 나가서도 사랑을 전하면서 왜 제발로 찾아오는 사람에게는 그렇게도 냉정합니까 그 선행 은 나가서 하는 것보다 표가 안나기 때문입니까 그들을 교회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헤아리는 이가 어찌 그리 없단 말입니까 사랑이 식은 교회, 그것만큼 우리의 가슴을 싸늘하게 하는 것이 있을까요 모이면 설교 때 은혜 받은 이야기하고 기도응답 받은 것 이야기하고 복음으로 가정이 변화된 것 이야기하고 할 교회가 모이면 목사님 험담이나 하고 장로 님, 전도사님, 집사님 들먹거리며 불평이나 해대니 그들이 어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의 모임이라 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가슴에 사랑의 불꽃을 회복 할 자 누구입니까 형제요, 자매라 입에 발린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친 형제요, 친 자매가 되었다는 뜨거운 사랑의 고백을 우리의 가슴에 회복할 자 누구입니까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일 3:16) 방언하는 자들이여 오히려 사랑하게 되길 사모하십시오. 설교하는 자들이여! 더욱 사랑하게 되길 사모하십시오. 믿음있는 모든 이들이여 서로 사랑하게 되길 사모하십시오. 우리가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 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괭과리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또 예언하는 능력이 있 어 성경의 모든 복음의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옳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드려 구제를 하고 우리의 몸까지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고전 13:1-3 ) 참으로 진리의 말씀입니다. 구원 얻은 자는 주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이웃을 돌아보며 사랑하게 되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삶의 형태요, 열매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 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요일 4:20 )
Ⅲ 세번째 열매, 소망 골로새 성도들에게 나타난 세번째 열매는 '소망' 이라는 것입니다. 그 소망 은 '하늘에 쌓아 둔 소망' (5절 ) 입니다. 땅위에 쌓아 둔 소망이 있습니다 . 美(아름다움), 소유, 권력, 출세, 명예 TV, 여자. 돈, 쾌락에 소망은 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구원을 얻고난 후에도 하늘에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땅의 것입니다. 어떡하면 그랜저를 탈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골로새 교인들이 관심을 가졌던 이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 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 이니라' 절. 소망이 있는 자는 결코 가난하지 않습니다. 늘 마음이 부요합니다. 정함이 없는 재물이나 (딤전 6:17) 안개처럼 없어질 세상 것에 소망을 둔 것이 아니 기 때문에 변함없는 이 소망이 우리를 부요케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그 마음의 소망이 보여야 합니다. 무언가가 있는 사람들처럼 당당해야 합니다 . 마음 가운데 보물을 둔 사람들처럼 늘 기쁨이 넘쳐야 합니다. 하늘에 소망 을 둔 자는 잠시의 이 고생도 즐거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지 못하고 쉽게 화내는 일은 불신자들이 하는 일입니다. 정녕 불신자들이 우리를 보면 우리속 에 소망이 무엇인가를 물을 정도로 소망에 기쁨에 겨워 있습니까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 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벧전 3:15) 어려움 가운데서도 그 마음 가운데 소망으로 빛을 잃지 않는 자들이 성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소망의 사건 이었습니다. 그속에서 해결함을 받는 것입니다. 또 하나 우리가 소망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재림을 잊어버리면 방탕하게 됩니다. 그 소망을 잃어 버리면 세상 사람과 똑 같게 됩니다. 끼니 걱정 사람 걱정, 돈 걱정! 우리에게 인생의 목표가 없는 사람처럼 되어 버리고 맙니다. 하늘에 소망을 둔자, 예수 그리스도께 소망을 둔 자 늘 승리하고 이기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 그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은사가 없으면 하나님께 할 말이 있어도 이러한 열매가 없으면 핑계 댈 것이 없습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신앙에 있어 가장 기초 가 되는 아름다운 열매들입니다. 내가 참 성도인지 거짓 성도인지는 우리의 삶의 열매로 알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 주께 복받는 삶 되시고 주 다시 오시는 날 그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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