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믿는자가 볼 하나님의 영광 (요11:38-44)

본문

고1학년때라고 생각되는데 목사님과의 대화시간에 질문한 질문은 성경의 많은 기적과 이사가 왜 지금은 나타나지 읺습니까 그때 목사님의 대답은 나에게 새로운 용기와 믿음의 시간을 허락하였습니다. “기적은 지금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 기적은 하나님의 필요와 뜻에 따라서 나타나는 것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더이상 일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하나님의 죽음입니다.” 그래서 현대신학자들은 하나님없는 삶을 주장하며 그의 역사보다는 의미를 찾아서 신앙생활을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계속 주장하기를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합니다. 기적은 이천년전에나 있었지 지금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러한 신앙이 우리의 기독교라면 우리의 기독교는 다른종교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힘과 능력이 있다면 그리고 다른 종교와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시고 계시며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서 우리의 삶을 능력과 사랑으로 채워서 아름답고 행복한 삶으로 만들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예수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니라”(히13:8)고 하셨으며,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자의 하나님이시니라”(마22:32)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역사하시고 이삭에게 역사하시고 야곱에게 역사하신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에 가장 중요한 단어는 “지금, 여기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의 삶이 과거에 있었고, 성경책속에만 있는 것으로 그쳐진다면 우리의 신앙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지금”입니다. 항상 지금이라는 시간을 중요시 여깁니다. 지금 나의 삶속에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지혜자는 항상 지금이라는 시간을 중요시 여깁니다.
예)톨스토이는 그의 책 인생론에서 “우리에게는 현재 지금이라는 시간만을 신에게 선물로 받았으므로 지금 현재의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과거는 이미 지나간 시간으로 우리의 영역을 벗어났으며, 미래는 아직 하나님의 영역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은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항상 “지금”을 중요시 여기는 신앙생활을 하세요.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을 중히여기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중히여기고, 지금 예배시간을 중히여기며, 지금 나의 시간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경험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여기에”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나 자신이 사는 삶의 현장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과 기도는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맛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아름다웠던 한 가정에 너무나 슬프고 아픈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것은 그 집의 사랑하는 자의 죽음입니다. 나사로라는 사람이 죽었습니다. 아마 세남매가 함께 살았는데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또한 예수님을 잘 섬겼던 가정 같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보자마자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21절)
그런데 마리아도 똑같은 말을 합니다. (32절)
지금 여기에 계시는 예수님의 능력과 사랑의 역사를 외면하고 그녀는 지나간 시간 속에서 주님을 향하여 원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지금 여기에서”역사하시고 계신 하나님임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때로는 고난과 역경을 만날때에 마르다나 마리아같은 모습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서 지금 여기에서 성경의 말씀대로 동일하게 역사 하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도전하여야 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그리고 한가지를 덧붙인다면 그것은 “나에게”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바로 나에게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과 역사하심이 임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항상 고백하기를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자는 바로 나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가 필요한 자는 바로 나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를 입어야 할 자임은 바로 나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여기에서 바로 나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항상 임하여야 한다는 확신속에서 믿음의 삶을 살아갈 때에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경험하며 축복의 삶을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지금 여기에서 나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1.믿음의 문제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려면 나 자신에게 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계속 믿지 못하고 불신의 말을 내뱉는 마르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40)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이 말씀은 오늘 날을 사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과도전이 되는 말씀인줄을 모르겠습니다.
믿는자가 볼 하나님의 영광은 무궁무진합니다. 믿는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우리 속에서 믿음을 보시고 그것을 요구하십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앞에서 계속 불신의 말을 합니다.
23절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마르다는 마지막날에 다시 살것을 믿는다고 미래의 일로 돌리며 불신합니다. 또 예수님은 25절에서 당신의 능력을 말씀하시며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하자 전혀 엉뚱한 말로 대답하고는 돌아가 버립니다.
그의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그를 믿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37절에서도 유대인들은 불신의 소리로 숙덕거립니다. 무덤앞에서도 죽은지가 사흘이라고 불신의 소리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태도가 어떻습니까
33절, 38절에보면 예수님이 불신의 소리를 하는 그들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사람을 기뻐하시며 불신의 사람을 퉁분히 여기십니다. 지금 우리의 신앙생활이 예수님의 마음을 통분히 여기는 적이 참으로 많으며 “지금 여기에서 나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실할 땨가 많습니다.
예)심방시. 무슨 환란을 당하거나 어려움을 당한집에 심방할 시-그 집의 식구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보며 믿음의 말을 하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고 기도에 힘이생긴다.
그런데 불신앙의 모습으로 원망하고 불평하고 걱정만하면 기도하고 싶지도 않고 기도해야 능력도 없다. 심방대원은 그러한 때를 위하여 같이 가는 것이다. 가서 신아의 말로 위로하고 용기를 주고 함께 믿음의 기도를 드리러 가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때는 심방대원까지 합세해서 불신앙의 소리를 하고 엉뚱한 소리나 하고 하면 참으로 언짢을 때가 많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우리는 무슨 어려운 일을 만나든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나에게 여기에서” 역사하시며 도와 주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지고 소망속에서 기도하며 인내를 가지고 도전할 때에 그는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를 경험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은 기도시에도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나사로의 무덤에서 하시는 기도를 보십시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예수님은 이미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서 응답해 주신것처럼 믿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미 응답된것처럼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무슨일이든지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원망과 불평과 의심으로 차있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수가 없습니다.
‘어찌하여,왜,하면서 하나님께 따지듯이 기도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선하심의 역사와 사랑을 믿고 확신하면서 감사하면서 기도하세요.
더구나 불신의 기도는 응답받지 못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닷물결같으니 이런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지 말라”(약1:6,7)
막11:24“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가 지금도 분명히 “믿는자에게 나타나고 있음을 확신하여야 합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이 말씀을 우리는 굳게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어떤이들은 기독교가 어쩌고 하나님이 어쩌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성경책 한번 읽 지도 않고 그럽니다. 하나님께 기도한번 하지 않고 그럽니다. 믿음이라는 삶으 ㄹ살아보지도 않고 그런 소리를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지성인이요, 현대를 사는 가장 고상한 합리적 존재임을 과시합니다.
그러나 그들이야 말로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하도다”(시14:1)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통하여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고 우리에게 축복주시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깊은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그러한 믿음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복음의 역사가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그러하지 못하기에 가정속에도 복음의 역사가 잘 나타나지 않고 이웃에게도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먼저 우리가 분명한 믿음의 역사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볼수 있는 신앙생활로 도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위해서 우리는 행하여야 할 두가지 사실이 본문에 나타납니다.
첫째는 돌을 옮기는 일이며,
둘째는 수의를 풀어 놓는 일입니다.
유대인의 무덤을 동굴속에 장사합니다. 그리고는 그 입구를 큰 돌로 막아놓습니다.
그 돌을 옮기라고 하십니다.
이 큰 돌은 우리의 축복의 삶을 가로막고 있는 그 무엇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 큰돌이 무덤문을 막음같이 우리의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놓고 신앙생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단순히 마음의 문을 확 열고 도전하면 큰 은혜를 받는데 그 문을 못 열어요. 무엇인가 문을 여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어요. 이 마음의 문을 닫고 교회를 다니면 교회생활도 기쁨이 없어요. 교제가 막혀요. 결국 생활 자체가 답답하고 불안해지고 하나님의 영광의 역사를 막아 신앙생활이 재미가 없고 형식이 도지요. 이러다고 교회를 안나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돌을 옮겨놓아야 합니다. 용기를 내시고 힘을 내어 담대하게 도전하셔야 합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찬송을 함께 힘차게 불러보세요. 박수도 치라면 쳐보세요. 기도도 소리내어서 하라면 해 보세요. 마음이 시원하고 은혜가 있으며 기쁨과 평안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겸손히 바라보시면서 이렇게 기도해 보세요. “하나님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지금 여기에 있는 나에게 큰 은혜를 입혀 주십시오.” 그럴 때에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수의를 벗어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이전 죽었던 내 몸을 싸고 있던 수의를 벗어 버려야 합니다.
다시말하면 옛날 믿지 않던 때의 내 삶의 일들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바울사도도 엡4:22-24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쫓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했습니다.
우리가 계속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얻지 못함은 바로 우리가 옛날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옛날 이전 죽었을 때 입던 수의를 거저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지금까지 내가 입고 있는 수의는 무엇인지를 생각합시다.
어떤이는 게으름, 세상욕심, 세상의 쾌락, 옛불신친구, 불신앙, 교만, 열등감,
육신의 욕망, 술, 담배, 노름, 이기심등의 수의를 그냥입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수의를 입고는 계속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볼수가 없습니다.
수의를 벗고 새옷을 입고 예수님과 함께 교제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세상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간증하며 전도하고 복음의 역사를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예)태국선교사님의 간증-태국산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괸장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은 대단히 순수하여서 복음을 잘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한 부락의 여인이 죽을지경이 되어서 왔습니다. 보니 풍토병같은데 배가불러오고 얼굴은 이그러지고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데 병원은 없고 병원까지 가려면 8시간이상을 걸어가야 하는데 가다가 죽는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선교사님은 어떤 기적도 믿지 않았고, 한번도 그런 기도를 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급합니다. 하나님밖에는 없습니다. 그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만 굳게 믿고 간절히 기도했으며 이제껏의 자신의 신앙의 틀을 깨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녀가 깨끗이 치료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하여 그 마을이 다 예수믿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것입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여기에서 우리 자신에게 분명히 역사하십니다.
우리의 신앙의 삶이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입으며 그 역사를 경험하는 축복의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아멘.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573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