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을 넘어서서 (창50:15-21,고전13:4-7)
본문
지난 16일 현대 그룹의 명예회장인 정주영씨가 평화로움과 풍요를 상징 하는 소 500마리를 이끌고 분단과 대립의 상징인 판문점을 통해서 북한을 방문하였습니다. 미국의 'CNN'은 2차 대전으로 남북한이 분단된 후 민간 이 정부관리의 동행 없이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들어간 것은…대단히 의미 있고 상징적인 일이라고 보도하였습니다. 정회장의 `소떼 방북'은 단순한 일회성 행사라기보다는 남북 사이에 드리워져 있던 갈등과 반목, 긴장을 누 그러뜨리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정 경분리(政經分離)를 선언하고 대북 투자 규제를 완화하는 등 햇볕정책을 추 구해온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햇볕정책이 길게 볼 때 북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고 한반도에 평화의 분위기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야곱이 형 에서와 화해하기 위해 소와 염소와 양과 나귀를 떼지어 선물로 보낸 것을 연상하게 합니다. 야곱은 그 때에 형 에서와 화해 를 하고 평화롭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정주영씨가 이끌고 간 소떼들 을 통하여 남북간에 화해의 새로운 물꼬가 터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번 사건을 보면서 속으로 못마땅하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잘못한 것 없으면서 무엇 때문에 저들에게 선물을 주어가면 서 화해의 물꼬를 트려고 애를 쓰는가' 사실상 논리적으로 말하면 북에서 오히려 소떼를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와 화해의 진사품으로 바치면서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잃게 한 사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그런 것을 기대하기가 어렵고, 그렇다고 마냥 그대로 내버려두 면서 서로 미워할 수만은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미움과 갈등은 결국 우리의 삶을 멍들게 하며 물질로 보상할 수 없는 많은 손실을 우리에게 안겨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속히 이를 털어 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속 담에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떡 하나 더 주어서라 도 서로 가진 미움을 털어 버릴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바람직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소떼를 비롯하여 많은 양식을 보내면서라도 남북 사이에 쌓였던 증오와 갈등이 극복된다면 이보다 더 다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나타난 사랑을 다시 한번 살펴보면 사랑은 먼저 우리 안에 있는 부정적인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으며, 원 한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적극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기 이전에 먼저 우리 속에 있는 시기 와 교만과 무례함과 이기심을 버리는 것부터 시작해야함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특히 성내지 아니하고 원한을 품지 않는 것이 바로 사랑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우리 속에는 사랑이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사랑으로 하셨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 든 생명은 사랑을 통해서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바탕으로 그가 지으신 모든 세계를 운영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특히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인간의 바탕에는 사랑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랑이야말로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통로요 접촉점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생명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의 삶의 본질이 사랑이란 것은 분명합니다. 어린 아기가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랄 때는 건강하게 그리고 사랑스럽게 되지만, 그렇지 못하고 고아가 되어 자랄 때는 그 인격 형성에 많은 장애가 생기게 된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생명의 본질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라 면 우리 생명도 그만큼 풍요롭게 되지만, 그 사랑이 부족할 때는 그 생명이 그만큼 병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생명의 기초가 사랑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분명합니다. 우리가 죄로 인하여 타락하지만 않았다면 서로 사랑하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말라고 해도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지음을 받은 것이 바로 우리 인간들입니다. 그러나 불 행하게도 우리가 타락하여 우리 속에 있던 하나님의 형상이 깨어졌기 때문에 사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미움과 시기와 이기심과 분노가 우리의 사랑 의 마음을 덮어버렸습니다. 사탄이 우리의 마음 바탕에 이런 오물들을 잔뜩 뿌려 놓은 것입니다. 이런 악의 요소는 독초(毒草)와 같아서 계속 자라고 점점 더 무성해지기 마련입니다. 한번 우리 속에 미움이 자리 잡으면 좀처 럼 그 미움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한번 우리 속에 원한이 맺히면 쉽게 없어 지지 않습니다. 미움은 그래서 미움을 낳게 됩니다. 원한은 풀기 위해 복수 를 하게 될 것이고, 그 복수는 또 다른 원한을 품게 만들 것입니다. 악은 계속 악을 생산할 뿐입니다. 이런 악의 독소가 우리 속에 계속 남아 있는 한 아무리 사랑하라고 하나님이 계명을 통해 명령하셔도 우리는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 바 로 이런 악에 짓눌려 질식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 계속 악 의 독소를 전파하는 마귀를 내쫓기 위하여 그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어 친히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마귀의 권세를 꺾고 승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 악의 세력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어 사랑을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바로 우리 속에 자리 잡은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원한과 분노를 걷어내고 그것들에 의해 짓눌렸던 사랑을 회 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쌓여 있던 이런 독소들은 그렇게 쉽게 걷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제 쌓인 먼지를 털어 내는 것은 쉽게 할 수 있지만, 묵은 때를 닦아 내기 위해서는 많은 힘을 들이고 특별한 도구나 세제를 동원해야 되는 것처럼, 우리 속에 둥지를 튼 이기심과 증오와 시기 와 질투 같은 독소들을 닦아 내기 위하여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도우 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성령님의 은사를 이야기하다가 13장에서 사랑에 대하여 쓰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여러 가지 은사가 있지만 무엇 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 속에 들어있는 교만과 미움, 질투와 시기, 이기심과 욕망을 말끔히 청소하기 위하여 필요한 은사입니다. 우리가 성령님 충만을 간구하는 까닭도 바로 그의 도우심을 통하여 우리 속을 깨끗하게 하 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주일마다 교회 에 나와 설교를 듣는 것은 그 말씀을 통하여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하기 위 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 속에는 48년 전 일어났던 전쟁 때문에 미움이 깊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우리에게 큰 비극이었습니다. 그 전쟁을 통해서 대략 300만명이 살상되었고, 그 중에 전투원의 전사가 21만명, 외국군 전사자가 22만명, 인민재판 등으로 인하여 학살당한 양민은 13만명, 납치 8만5천명, 행방불명 30만명, 남편 잃은 미망인이 29만명, 고아 4만명, 교역자 학살이 535명, 교회 파괴수가
2,122개소라고 합니다. 이 때문에 우리 속에 쌓인 원 한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씻어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돌이켜 보면 이런 원한을 품고 살아온 것은 어리석음이며 하나님의 역사에 대하여 무지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전쟁은 동서냉전의 결과요, 북한 공산집단의 무모한 도발에 의한 것 이라는 단순한 논리로만은 설명할 수 없는 보다 깊은 뜻이 포함된 하나님의 섭리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회개할 줄 모르는 이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심 판이었으며, 동시에 이 민족을 새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였던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역사에 대하여 원한을 품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또한 이런 하나님의 역사를 외면한 채 전쟁 을 일으킨 북한에 대한 미움을 계속 간직한다는 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요셉의 이야기를 돌이켜 보아야 하겠습니다. 야곱의 아들인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죽을뻔 했다가 이집트에 노예 로 팔려갔습니다. 요셉은 시위대장인 보디발 장군의 집에 청지기로 있다가 억울하게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고생이 바로 형들 때문이었지 만, 요셉은 일찍이 형들에 대한 미움을 버렸습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였고 그의 뜻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후에 바로 왕의 꿈을 해몽함으로 일약 총리대신이 되었고, 7년 대풍년이 들었을 때에 미리 곡식을 저장하였 다가 7년 흉년에 그 곡식을 나누어주므로 위기 관리를 잘 했던 것입니다. 결국 요셉은 자기의 아버지 야곱과 형제들을 다 이집트로 불러 들여 정착하 게 해 주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세상을 뜨자 요셉의 형들이 요셉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잘 못을 용서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 때에 요셉이 대답하였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기라도 하겠습니까 형님 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바꾸셔서 오늘과 같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니 형님들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형님들을 모시고, 형님들의 자식들을 돌보 겠습니다." 요셉의 긴 이야기는 사실상 이 한 절의 말씀을 위해서 썼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기라도 하겠습니까"라는 말속에는 사람의 잘잘못 을 판단하여 심판하는 일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셉이 보통 사람이었다면 그의 지위와 권세를 이 용하여 형들에게 복수를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모든 일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형제들 을 심판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로마서 12장 19절에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 고, 그 일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십시오. 성경에도 기록하기를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겠다' 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악 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악에 대한 심판을 모두 그에게 맡겨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정하신 때 에 적절하게 그 악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다음으로 요셉은 형들에게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바꾸셔서 오늘과 같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 셨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요셉의 놀라운 신앙과 역사 이해를 보여 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어 놓으신다는 역사 이해는 참으로 귀 중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런 믿음만 가진다면 두려울 것 이 아무 것도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악이 성하여도 마침내 하나님은 그 모 든 악을 선으로 바꾸어 놓으신다면 결국 이 세계 역사는 선한 역사, 선의 세계가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미워하여 그를 이집트 에 노예로 팔아먹었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 요셉을 통하여 그 가족을 구원하실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기근에서 구원하는 큰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역사의 가장 뚜렷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 타났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으므로 모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었다고 좋아했지만, 바로 그 십자가가 자기의 정수리를 정통으로 내려찍는 최후의 일격이요, 동시에 온 인류를 죄 에서 구원하는 길이 될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역사를 확신한다면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낙심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당하고 있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이 믿음만 있다면 결코 낙심치 않고 하나님의 새롭게 하실 역사를 기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이 아무리 하나님을 대적하는 온갖 악을 행한다 하더라 도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선으로 바꾸어 가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는다면 우리 속에 간직한 미움을 털어 버리고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의 역사를 기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셉은 자기가 당한 모든 고난의 역사를 형들 때문이라고 생각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로 이해하였기 때문에 형들이 저지른 죄에 대하여 너그러울 수 있었습니다. 미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간직하였던 요셉의 형들은 늘 불안 하게 살수밖에 없었지만, 모든 것을 하나님의 역사로 받아드리면서 미움을 버린 요셉은 늘 평안한 삶을 누렸고, 또 형들을 너그럽게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의 속에는 미움이 없었기 때문에 사랑이 자연스럽게 솟아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한 채 인간의 이해 관계에만 얽매여 있 을 때는 서로 사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우리 자신을 보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모든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나를 아 프게 한 형제의 허물을 너그럽게 용서해 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교만과 이기심, 미움과 시기, 분노와 원한을 우리 속에 간직하고 있으면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하게 할 것이며, 따라서 우리로 어 리석게 행동하게 만들고, 그 어리석음은 또 다른 악을 불러 올 것입니다. 이제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하여 이 모든 독소들을 우리 속에서 뽑아 버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짓눌렸던 사랑이 샘솟게 해야 할 것 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면 예수님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 게 알고 그 뜻을 따라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악마에게 매인 그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그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다시 6.25 한국 전쟁 48주년을 맞이하면서 그 전쟁이 가져온 쓰라렸던 고통과 아픔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지 만 그 때문에 간직한 미움과 원한은 잊어버려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미움과 원한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했다는 뜻이며, 그러면 결코 이 고난의 역사는 끝나지 않고 우리를 계속 괴롭힐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악을 용납하지 아니하되 그러나 그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또한 신뢰하면서 그 역사를 기다릴 줄 아는 신앙의 자세를 늘 지녀야 하겠 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북한의 형제자매들의 굶주림을 보면서 어떻게 하든지 도 와주려고 애를 써왔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이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 므로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국민의 정부가 내세 운 햇볕 정책으로 남북간의 새로운 관계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더욱 적극적으로 저들을 사랑으로 도와 마침내 사랑을 바탕으로 한 평화 통일의 날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미움을 버리고 우리 바탕에 깔린 사랑을 샘솟게 하므로 평화의 역 사, 사랑의 새세계를 만들어 가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속히 이를 털어 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속 담에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떡 하나 더 주어서라 도 서로 가진 미움을 털어 버릴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바람직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소떼를 비롯하여 많은 양식을 보내면서라도 남북 사이에 쌓였던 증오와 갈등이 극복된다면 이보다 더 다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나타난 사랑을 다시 한번 살펴보면 사랑은 먼저 우리 안에 있는 부정적인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으며, 원 한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적극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기 이전에 먼저 우리 속에 있는 시기 와 교만과 무례함과 이기심을 버리는 것부터 시작해야함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특히 성내지 아니하고 원한을 품지 않는 것이 바로 사랑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우리 속에는 사랑이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사랑으로 하셨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 든 생명은 사랑을 통해서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바탕으로 그가 지으신 모든 세계를 운영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특히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인간의 바탕에는 사랑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랑이야말로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통로요 접촉점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생명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의 삶의 본질이 사랑이란 것은 분명합니다. 어린 아기가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랄 때는 건강하게 그리고 사랑스럽게 되지만, 그렇지 못하고 고아가 되어 자랄 때는 그 인격 형성에 많은 장애가 생기게 된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생명의 본질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라 면 우리 생명도 그만큼 풍요롭게 되지만, 그 사랑이 부족할 때는 그 생명이 그만큼 병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생명의 기초가 사랑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분명합니다. 우리가 죄로 인하여 타락하지만 않았다면 서로 사랑하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말라고 해도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지음을 받은 것이 바로 우리 인간들입니다. 그러나 불 행하게도 우리가 타락하여 우리 속에 있던 하나님의 형상이 깨어졌기 때문에 사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미움과 시기와 이기심과 분노가 우리의 사랑 의 마음을 덮어버렸습니다. 사탄이 우리의 마음 바탕에 이런 오물들을 잔뜩 뿌려 놓은 것입니다. 이런 악의 요소는 독초(毒草)와 같아서 계속 자라고 점점 더 무성해지기 마련입니다. 한번 우리 속에 미움이 자리 잡으면 좀처 럼 그 미움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한번 우리 속에 원한이 맺히면 쉽게 없어 지지 않습니다. 미움은 그래서 미움을 낳게 됩니다. 원한은 풀기 위해 복수 를 하게 될 것이고, 그 복수는 또 다른 원한을 품게 만들 것입니다. 악은 계속 악을 생산할 뿐입니다. 이런 악의 독소가 우리 속에 계속 남아 있는 한 아무리 사랑하라고 하나님이 계명을 통해 명령하셔도 우리는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 바 로 이런 악에 짓눌려 질식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 계속 악 의 독소를 전파하는 마귀를 내쫓기 위하여 그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어 친히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마귀의 권세를 꺾고 승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 악의 세력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어 사랑을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바로 우리 속에 자리 잡은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원한과 분노를 걷어내고 그것들에 의해 짓눌렸던 사랑을 회 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쌓여 있던 이런 독소들은 그렇게 쉽게 걷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제 쌓인 먼지를 털어 내는 것은 쉽게 할 수 있지만, 묵은 때를 닦아 내기 위해서는 많은 힘을 들이고 특별한 도구나 세제를 동원해야 되는 것처럼, 우리 속에 둥지를 튼 이기심과 증오와 시기 와 질투 같은 독소들을 닦아 내기 위하여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도우 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성령님의 은사를 이야기하다가 13장에서 사랑에 대하여 쓰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여러 가지 은사가 있지만 무엇 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 속에 들어있는 교만과 미움, 질투와 시기, 이기심과 욕망을 말끔히 청소하기 위하여 필요한 은사입니다. 우리가 성령님 충만을 간구하는 까닭도 바로 그의 도우심을 통하여 우리 속을 깨끗하게 하 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주일마다 교회 에 나와 설교를 듣는 것은 그 말씀을 통하여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하기 위 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 속에는 48년 전 일어났던 전쟁 때문에 미움이 깊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우리에게 큰 비극이었습니다. 그 전쟁을 통해서 대략 300만명이 살상되었고, 그 중에 전투원의 전사가 21만명, 외국군 전사자가 22만명, 인민재판 등으로 인하여 학살당한 양민은 13만명, 납치 8만5천명, 행방불명 30만명, 남편 잃은 미망인이 29만명, 고아 4만명, 교역자 학살이 535명, 교회 파괴수가
2,122개소라고 합니다. 이 때문에 우리 속에 쌓인 원 한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씻어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돌이켜 보면 이런 원한을 품고 살아온 것은 어리석음이며 하나님의 역사에 대하여 무지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전쟁은 동서냉전의 결과요, 북한 공산집단의 무모한 도발에 의한 것 이라는 단순한 논리로만은 설명할 수 없는 보다 깊은 뜻이 포함된 하나님의 섭리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회개할 줄 모르는 이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심 판이었으며, 동시에 이 민족을 새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였던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역사에 대하여 원한을 품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또한 이런 하나님의 역사를 외면한 채 전쟁 을 일으킨 북한에 대한 미움을 계속 간직한다는 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요셉의 이야기를 돌이켜 보아야 하겠습니다. 야곱의 아들인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죽을뻔 했다가 이집트에 노예 로 팔려갔습니다. 요셉은 시위대장인 보디발 장군의 집에 청지기로 있다가 억울하게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고생이 바로 형들 때문이었지 만, 요셉은 일찍이 형들에 대한 미움을 버렸습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였고 그의 뜻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후에 바로 왕의 꿈을 해몽함으로 일약 총리대신이 되었고, 7년 대풍년이 들었을 때에 미리 곡식을 저장하였 다가 7년 흉년에 그 곡식을 나누어주므로 위기 관리를 잘 했던 것입니다. 결국 요셉은 자기의 아버지 야곱과 형제들을 다 이집트로 불러 들여 정착하 게 해 주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세상을 뜨자 요셉의 형들이 요셉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잘 못을 용서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 때에 요셉이 대답하였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기라도 하겠습니까 형님 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바꾸셔서 오늘과 같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니 형님들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형님들을 모시고, 형님들의 자식들을 돌보 겠습니다." 요셉의 긴 이야기는 사실상 이 한 절의 말씀을 위해서 썼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기라도 하겠습니까"라는 말속에는 사람의 잘잘못 을 판단하여 심판하는 일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셉이 보통 사람이었다면 그의 지위와 권세를 이 용하여 형들에게 복수를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모든 일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형제들 을 심판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로마서 12장 19절에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 고, 그 일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십시오. 성경에도 기록하기를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겠다' 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악 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악에 대한 심판을 모두 그에게 맡겨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정하신 때 에 적절하게 그 악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다음으로 요셉은 형들에게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바꾸셔서 오늘과 같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 셨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요셉의 놀라운 신앙과 역사 이해를 보여 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어 놓으신다는 역사 이해는 참으로 귀 중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런 믿음만 가진다면 두려울 것 이 아무 것도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악이 성하여도 마침내 하나님은 그 모 든 악을 선으로 바꾸어 놓으신다면 결국 이 세계 역사는 선한 역사, 선의 세계가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미워하여 그를 이집트 에 노예로 팔아먹었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 요셉을 통하여 그 가족을 구원하실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기근에서 구원하는 큰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역사의 가장 뚜렷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 타났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으므로 모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었다고 좋아했지만, 바로 그 십자가가 자기의 정수리를 정통으로 내려찍는 최후의 일격이요, 동시에 온 인류를 죄 에서 구원하는 길이 될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역사를 확신한다면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낙심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당하고 있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이 믿음만 있다면 결코 낙심치 않고 하나님의 새롭게 하실 역사를 기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이 아무리 하나님을 대적하는 온갖 악을 행한다 하더라 도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선으로 바꾸어 가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는다면 우리 속에 간직한 미움을 털어 버리고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의 역사를 기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셉은 자기가 당한 모든 고난의 역사를 형들 때문이라고 생각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로 이해하였기 때문에 형들이 저지른 죄에 대하여 너그러울 수 있었습니다. 미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간직하였던 요셉의 형들은 늘 불안 하게 살수밖에 없었지만, 모든 것을 하나님의 역사로 받아드리면서 미움을 버린 요셉은 늘 평안한 삶을 누렸고, 또 형들을 너그럽게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의 속에는 미움이 없었기 때문에 사랑이 자연스럽게 솟아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한 채 인간의 이해 관계에만 얽매여 있 을 때는 서로 사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우리 자신을 보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모든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나를 아 프게 한 형제의 허물을 너그럽게 용서해 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교만과 이기심, 미움과 시기, 분노와 원한을 우리 속에 간직하고 있으면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하게 할 것이며, 따라서 우리로 어 리석게 행동하게 만들고, 그 어리석음은 또 다른 악을 불러 올 것입니다. 이제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하여 이 모든 독소들을 우리 속에서 뽑아 버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짓눌렸던 사랑이 샘솟게 해야 할 것 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면 예수님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 게 알고 그 뜻을 따라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악마에게 매인 그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그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다시 6.25 한국 전쟁 48주년을 맞이하면서 그 전쟁이 가져온 쓰라렸던 고통과 아픔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지 만 그 때문에 간직한 미움과 원한은 잊어버려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미움과 원한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했다는 뜻이며, 그러면 결코 이 고난의 역사는 끝나지 않고 우리를 계속 괴롭힐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악을 용납하지 아니하되 그러나 그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또한 신뢰하면서 그 역사를 기다릴 줄 아는 신앙의 자세를 늘 지녀야 하겠 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북한의 형제자매들의 굶주림을 보면서 어떻게 하든지 도 와주려고 애를 써왔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이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 므로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국민의 정부가 내세 운 햇볕 정책으로 남북간의 새로운 관계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더욱 적극적으로 저들을 사랑으로 도와 마침내 사랑을 바탕으로 한 평화 통일의 날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미움을 버리고 우리 바탕에 깔린 사랑을 샘솟게 하므로 평화의 역 사, 사랑의 새세계를 만들어 가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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