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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개요 (민9:15-23)

본문

오늘은 네번째 책인 민수기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다. 민수기는 아스라엘 백성 의 40년 광야생활을 소상하게 기록한 책이다. 그리고 아스라엘 백성이 40년동 안 크게 두번 인구를 조사했는데 민족을 계수한 사건이 기록 되었다. 그래서 이 사건을 크게 확대해서 제목을 민수기라고 붙인 것이다. 출애급한 아스라엘 백성이 약 3개월이 지나서 시내광야에 이르게 되고 시내산에서 율법과 성막을 짓는 법을 배우고 거기서 성막을 짓느라고 약 1년 이상을 시내산에서 머물게 된다. 그리고 출애급한지 만1년 2개월이 된 때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을 떠 나 움직이게 되는데 그 후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까지 약 40년동안의 아스라엘 백성의 광야생활이 기되어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민수기는 이스라엘 민족 을 위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과 훈련하신 내용이 민수기의 주제라고 할 수 있다. 복습해보면 창세기의 주제는 하나님이 되시면서 특별히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출애급기는 선택받은 아스 라엘 백성이 애급에 있었을 때에 구속해 내시는 역사가 중심으로 기록되어있 고 레위기는 구속받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게하기 위해 그들을 성 결케하시는 작업이 중심적인 내용이라면 민수기는 하나님의 백성된 아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광야의 여정에서 어떻게 그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가나안땅에 살기 적합한 백성답게 훈련 시키시는가가 민수기의 주제가 된다고 볼 수 있다. 민수기는 크게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1.1-10장 중반까지로 여기에는 시내광야에서 떠나는 준비를 기록해 놓았다.
첫째로 1장에는 광야에 나와서 첫번째 계수하는 계수가 나오는데 각지파 별로 20세 남자를 계수하였더니 46절에 보면 603,550명이었다. 이숫자는 12지 파중 레위지파는 포함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계수한 인원은 싸움터에 나가야 하는 자들인데 레위지파는 전쟁터로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성막에 서 필요한 일들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특수한 임무를 맡기셨다. 예를 들면 성 막을 관리하는일, 이동할 때 성막을 옮기는 일, 성막을 짓거나 철수시키는 일, 그 밖에 여호와를 섬기는데 필요한 모든 제단 일들을 담당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전쟁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위 인구중에는 레위지파 가 포함되지 았았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전쟁에 나가 사울자를 계수하라는 말씀은 오늘 신약시대에도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 다시 말하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 있는 아스라엘 백성중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인원을 계수하신 것처럼 죄아래 있던 인생들이 구속함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다 그리스도의 군사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에베소서에 보면 우리는 다 십자가의 군사라고 했다. 그래서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싸움은 사람과 사람이 싸우는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요 사단과 영적 싸움을 하는 하나님의 군사라는 점을 말한다. 하나님이 출애급한 백성중 싸울 수 있는 사람을 계수하라는 말씀은 구원함을 받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은 모두 영적 으로 사단과 싸워야 할 군사라는 점을 교훈하고 있다.
둘째로 2장에 보면 아스라엘 백성이 진을 치고 있을 때 질서있게 진영을 배치할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그래서 성막을 가운데 짓고 성막 4면에 각자 이스라엘의 진을 치되 한방향에 3지파씩 진을 치고 진영을 만들것을 명하셨다. 그래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며 각 지파가 있게 하셨다. 이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생활은 항상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시기 위함이다. 출애급기를 공부할 때 요1:14를 소개해 드렸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운데 장막을 치시매라는 뜻인데 이말은 구약성경에 성막을 아스라엘 백성 진영의 가운데 치라는 말씀 과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했다는 말과 똑같은 말이다. 따라서 성막을 중심하여 장막을 치라는 말씀은 장차오실 그리스도가 육신이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실 것을 예표하심과 동시에 우리 삶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 어야 함을 가르치고 계신 것이다. 그래서 이 말씀을 조금 확대시켜 보면 신약 성도들의 생활 중심은 무엇이 되어야 하나 1하나님 중심이어야 한다. 성막 이 회중의 중심이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2말씀 중심이어야 한다. 성 막에는 십계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막이 가운데 있었다는 말은 말씀 중심에 있었다는 말이다. 말씀이 우리 삶의 중심이 되어 그 말씀에 위로받고 교훈받 아 말씀이 지시하는대로 따라가야 할 것이다. 또한 성막은 신약시대의 교회에 대한 그림자이다. 신약시대 성도의 중심은 가정도 아니요 사회도 아니요 3교회가 우리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성도들간의 신앙의 교제와 함께 기도하고 말씀을 연구하고 전하는 교회의 삶이 중심이 되어야 한 다는 것이다. 그저 일주일에 한번 왔다갔다 하는 것이 아니고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셋째로 성막을 다 지은다음 하나님께서 성막에 임재하신다는 사실을 두가 지로 나타나셨다. 9장에 보면 낮에는 구름과 같은 것으로, 밤에는 불과 같은 것으로 성막을 덮으셨다. 그래서 이것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이 기둥들이 움직여야 아스라엘 백성도 움직였다. 하루고 한달이고 1 년이고 기둥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그들도 움직이지 않았다. 임재를 나타내는 많은 방법중 왜 구름기둥이라는 방법으로 나타나셨을까 생각해 보라. 아스라 엘 백성은 지금 나무그늘도 없는 사막에 나와 있는데 거기서 내려쬐는 태양빛 을 피할 길이 없다. 하나님이 구름으로 함께 하셔서 낮에는 해로부터 상함을 받지 않게 하셨다. 그러면 왜 밤에는 불기둥인가 알다시피 사막의 밤은 살인 적이 아닌가 그래서 불기둥으로 보호하신 것이다. 광야의 이러한 특수한 기 후와 특성으로부터 보호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구름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것이다. 그래서 다윗이 쓴 시가 있다. 낮의 해가 우리를 상치아니하며 밤의 달 이 우리를 상치아니하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셨다고 하지 않았는가 하나님께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철저히 보호하신다는 증표가 되는 것이다. 이제 10:11말씀을 보게되면 아스라엘 백성이 출애급한지 제 2년 2월 20일 에 시내광야를 출발하게 되는데 이 때 중요한 사건하나가 있게 된다. 10:33을 주목해 보라. 아스라엘 백성이 진을 치고 있을 때는 법괘가 있는 성막이 가운 데 있어서 하나님중심된 삶을 예표하셨는데 진행할 때는 대열이 달라졌다. 성 막의 기구들을 부분적으로 나누어서 아스라엘 백성12지파 사이에 두는데 맨 앞에 법괘가 서게 되있다. 어느 지파가 앞에 가는 것도 아니요 모세가 앞에 가는 것도 아니다. 제사장들이 법괘를 지고 맨 앞에 서면 다른 지파들이 그 뒤를 따랐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나 시119에 보면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 요 내 빛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앞서가고 그 말씀이 지시하는대로 따 라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이다. 말씀이 인생의 나침판이요 지팡 이요 막대기와 같다는 것이다. 항상 우리의 삶의 인도자는 말씀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삶의 중심은 하나님, 말씀,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택함을 받은 자의 삶의 모습이요 특징임을 이곳에서 강조하고 있다. 40년동안 아스라엘 백성은 이대로 살았다. 40년 광야생활이라함은 우리가 예수믿고 하 늘나라가는 인생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면 가나안, 즉 천국에 이를 때까지 이런 삶을 살아야 한다.
2.10장 하반부부터 21장까지에는 시내산을 떠나서 요단 동편 모압까지 오기 까지 아스라엘 백성의 광야생활중 가장 많은 부분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크게 두가지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첫째는 아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하는 사건이 많이 기록되어 있고 둘째는 이방민족이 아스라엘 백성을 괴롭힐 때 하나님께서 그들과의 싸움에서 승리케 하시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먼저 아스라엘 백성의 원망을 생각해 보자. 11:1을 보라.악한 말로 원망했다고 했다. 그래서 결과가 어떻게 됫나 하나님께서 진영의 끝에 불이 나게 하셨다. 이 때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었더 니 하나님께서 그 불을 꺼주셨다. 그 다음 4절을 보라. 탐욕을 품으며 또 원망 했다고 했다. 만나를 주셨을 때 감사하다고 말하던 아스라엘 백성들이 밤낮 만나만 먹다보니 고기는 왜 안주냐 과일은 왜 없냐고 불평하기 시작했다. 원망이다. 이때 하나님께서 메추라기를 보내서 먹게 하셨는데 메추리를 얼마 나 많이 보내셨는가 하면 11:31을 보라. 반지름이 하룻길 되는 넓은 지역에 두 규빗(한 규빗은 손끝에서 팔꿈치 까지-약 50Cm) 즉 약 1m 정도의 높이까지 샅아 주셨다고 했다. 얼마나 많은 양인가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일 토 록 먹고 그 이틔날도 먹어서 고기가 이빨 사이에 끼어 냄새가 나도록 먹었다 고 33절에 말한다. 원망하는 아스라엘 백성을 마다하지 아니하시고 이렇게 실 컷 먹게 하셨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그리고 12장에 보면 모세가 구스여자를 취해 아내를 삼았다. 아마 모세의 아내가 죽었기 때문에 구스여자를 취하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이 때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난했다. 당신만 하나님과 말씀하는 자요 우리도 지금까지 당신을 도와 일했는데 결혼문제를 우리와 의논하면 어떻소하고 비난했다. 그 랬더니 하나님께서 뭐라하셨나 4절을 보라. 엄격한 책망을 하셨다. 너희가 어찌하여 내종 모세를 비방하기를 두려워 하지 아니하느냐 모세는 내가 세 운 특별한 종이다. 내가 그와 늘 대면하는데 너희들이 무엇이간대 내종 모세 를 비방하기를 두려워 하지 아니하느냐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무슨뜻인고 하니 모세를 비방하는 것은 곧 모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비방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것 역시 모세에 대한 불평이 아니라 아스라엘 백성의 시기 질투, 특별히 미리암과 아론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건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것 때문에 미리암이 문둥병이 걸렸고 모세 기도 덕분에 10일 만에 다시 낳았던 것이다. 그다음 13장 사건을 보면 그 유명한 가나안 정탐 사건이 나온다. 10사람 은 들어 갈 수 없다고 보고하고 2명은 들어갈 수 있다고 보고했다. 이 때 이 보고를 들은 아스라엘 백성을 통곡하며 울었다고 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약속의 불신이다. 이 결과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해서 40일을 40년으로 유리하 게 되었고 애굽에서 나왔던 제 1세대, 민 1장에서 계수되었던 603,550명은 여 호수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하나님 을 원망하고 불신하는 죄가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사건이다. 60만명이 40년동안 죽었으니 하루에 몇사람이 죽었느가 40여명이 죽었다. 그 러니까 아스라엘 백성은 광야 40년동안 장사지내다 끝냈따는 말이다. 60만명 이 40년동안 죽었으니 애곡이 끝나는 날이 없었을 것이다. 죄 값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값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스라엘 백성을 택하시고 가나안땅에 입성시키시는 일을 결코 취소하시지 않으셨다. 여기 아스라엘 백성의 원망하는 것을 조금더 살펴보자. 16장에 보면 제사 장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제사장 몇 사람이 16:2에 보면 족장 250명을 규합해 서 모세를 거스렸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들중에 계시거늘. 즉 어떻게 해서 너희들만 지도자가 되느냐 이말이다. 우리도 지도 자좀 되보자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께 대한 정면 반역 이다. 하나님은 지금 모세와 아론을 세우셔서 모세는 아스라엘 백성의 지도자 로, 아론은 아스라엘 백성의 제사장으로 세우셔서 하나님의 통치를 대신해 가는데 제사장들이 반란을 일으켜 하나님의 통치를 반역한 것이다. 얼만 무서운 결과가 있었는지 아는가 지진이 일어나 땅이 갈라져 다 그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그 다음 20장에 가면 또다른 원망이 나오는데 므리바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물이 없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는데 하나님의 명령으 로 지팡이로 반석을 쳐서 물을 쏟아 온 백성과 짐승이 물을 마시게 한 사건이 있었다. 이상 여러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사건들은 무엇을 말하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기적적인 은혜를 입지만 몇일 지나면 원망하고 또 몇일 지나면 원망하고 그래서 재앙을 받고. 그렇게 혼이 났는데도 몇일지나면 다 잊어버 려 또 원망하고.원망하고 매맞고 원망하고 매맞고.이것이 그들의 일이었다. 그들이 광야에서 한일이 무엇인가 장사를 했겠나 농사를 지었겠나 다른일 한 것 없다. 그저 죽은 사람 장사지내고 하나님 원망하다가 매맞은 것, 그 것 외에는 한일이 없었다. 이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나 저와 여러분들은 이 스라엘 백성들보다 더 낳은 것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을 가만히 돌이켜 보 자.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받았을 때는 감사하다고 호드갑떨고 하나님은 가장 좋으신 분이라고 떠드면서 조금 가다가 조그마한 돌맹이 하나가 있으면 언제 그랬다는 듯이 원망하고 불평한다. 하나님, 이것이 나를 사랑하는 징표입니까 하고 불평한다.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그러면 하나님이 가장 좋으신 분이라고 했다가 또 얼마 모가서 조그 마한 가시라도 찔리면 아프다고 아우성치고 원망하고 불신한다.
우리가 사는 것을 가만히 돌이켜 보면 그저 불평하고 매맞고 감사하고 또 불평하고 매맺고 감사하고 또 불평하고 매맞고 감사하고.이것이 우리의 삶이 아닌가 여기서 받아야 할 교훈을 첫째,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지 말자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 혜를 잊어버리면 자꾸 우리에게 채찍이 온다. 둘째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자꾸 원망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시지 아니하신다는 것이다. 이렇게 원망했던 이스라엘 백성이었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그들을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하셨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자비가 얼마나 귀한가 3. 22장 부터 마지막 36장까지인데 여기에는 여러가지 사건이 있지만 여기 몇가지 주목할 만한 사건이 나온다. 먼저 22장부터 24장까지 보면 모압의 왕 발락이 발람선지자를 이용해 이 스라엘 백성을 저주케 하는 사건이 나온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셔서 모압왕 발락의 계략을 막으시고 오히려 발람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는 사건이 나온다. 그 다음 31장에 가면 미디안 사람들을 멸절시키는 기록이 나온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하는 동안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자들은 철저하게 멸 절시키신다는 것을 교훈하시는 사건이다. 반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철저히 보 호하신다는 말이다. 인생의 여정을 가는 저와 여러분들은 악한 사단의 시험과 도전을 받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하나님은 악한자들의 도전에서부터 철저히 보호하시며 뿐만아니라 악한 세력들을 멸절시키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기 때문에 사단은 우리를 넘볼 수 없는 것이다. 26장에 가면 하나님이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백성을 계수 하라고 하신다.이 때 계수는 애급에서 나온 1세대는 다죽고 가나안땅에 들어 갈 20세 이상 사람들과 광야에서 태어난 제 2세대들을 계수하게 된다. 총 계 수인원이 얼마인가 하면 26:51에 보면 602,730명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처음 과 비교하면 1800여명이 차이가 난다. 그러니까 애급에서 나온 숫자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숫자가 거의 비슷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27장에 보면 모세에게 가나안땅에 들어갈 수 없음을 말씀하시고 후계자로 여호수아를 세울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면 이상 전체의 민수기의 내용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적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이스라엘 백성은 반복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으나 하나님은 구속하신 구속하신 이스라엘 백성과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셨다. 긍휼과 자 비로 사랑하시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이 말은 오늘도 그대로 적용 되는 말씀이다. 구속함을을 받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요구하시기를 너는 구속 함을 받은 자답게 거룩하게 살아가라고 말씀하심과 동시에 우리의 삶을 철저 하게 보호하심과 함께 한걸음 한걸음 인도하시면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답게 모습을 갖출수 있도록 훈련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다.
둘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방인의 손에서 철저히 보호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을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싸우시는 분임심을 나타내셨다. 모세 도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했다. 여호와가 누구신줄 아느냐 여호와는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는 분이시다. 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여호수아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생애 마지막에 이스라엘 백성과 지도자들에게 말하길 여호와는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분이시라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 광야 40년동안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는가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분이라고 했다. 지금도 마 찬가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분이신가 다윗이 고백한 것처럼 나의 힘 이되신 여호와시다. 그분은 지금도 나를 위해 싸우고 계시다. 우리를 보호하시 기 위해 사단과, 세상과 철저히 싸우고 계신다.
셋째는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할 때에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하시면서도 한편으 로는 사랑을 보여주시며 이스라엘 백성을 철저히 훈련시키셨다. 그들이 원망 할 때마다 채찍을 맞았던 것은 미워서가 아니라 그들을 훈련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매였던 것이다. 신약시대에도 성도들이 고난당하고 어려움당하는 것은 성도가 미워서가 아니요 우리를 더 단련시켜서 정금같이 나오게 하시기 위한 훈련의 책찍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니될 것이다. 40년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인도하셨던 하나님, 우리의 여정도 인도하심을 믿고 하나님 의 뒤를 따라가며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중심으로 사는 성도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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