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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수난이 준 교훈 (출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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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으로 우리는3.1 79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3.1절은 우리 나라가 일제의 강점으로 인해서 암울했던 그 시대에 몸부림쳤던 민족적인 절규였고 봉기였습니다. 약소 민족이 겪어야 했던 압박을 견디다 못해서 우리 민족도 살아있다고 절규했던 몸부림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일어났던3.1절 운동은 우리 민족사에 있어서 굉장히 큰 뜻과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역사가들은3.1운동에 몇 가지의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1. 전세계에 한민족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뜻을 알리는 기회였다.
2. 독립 운동의 원동력을 형성키신 계기가 되었다.
3. 그로 인하여 임시 정부가 구성되었다.
4. 일본의 한민족 말살 정책은 붕괴되었다.
5. 농민 운동, 노동 운동, 사회 운동이 시작되었다.
6. 순전히 실력으로 독립을 보장받은 계기가 되었다.
아마도3.1운동 같은 저항 운동이 없었더라면 이 땅의 해방은 더 늦어졌거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보아도 이 같은 수난의 역사들은 많습니다. 세계 제 2차 대전 때는 힘있는 나라가 힘없는 나라를 점령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던 시대였습니다. 그 때는 약육 강식의 시대였습니다. 그 때 약소 국가들에게 강점당하지 않은 나라들이 없습니다. 힘 없는 나라들은 모두다 강점당했던 시대입니다. 그래서 그 시대를 일컬어서 냉전의 시대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같은 역사를 하나님은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역사의 흐름을 보면 하나님은 이 같은 강점의 역사가 오래 지속되도록 놓아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수난받는 민족의 편에 서서 역사를 움직여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실 때 사람이 사람을 억압하고 노예화하도록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모든 사람은 자유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즉 인간의 권리와 가치를 존중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을 억압하거나 인권 유린하면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심판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독재 정권은 반드시 직접 심판을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비인간적인 정권이나 권세는 오래 놔두지를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이를 심판하셨습니다. 이것이 역사 속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우리 나라는 건국 이래 900번 정도의 외침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는 작은 외침도 있었지만 일본의 강점이나 6.25같은 한 나라의 운명이 존폐의 위기까지 몰렸던 외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때마다 묘하게도 돌파구가 생겨서 이 나라가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섭리였다고 우리는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는 평상시는 모릅니다. 그 섭리는 수난의 역사 속에서나 나타나고 볼 수 있으며 그 때에 겪고 체험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가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곳이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사건입니다. 거기에는 신기할 만큼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B.C 1921년 아브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습니다. “고향을 떠나서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자손을 하늘의 별같이, 땅의 모래같이 번성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세계 만민이 너로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하였습니다. 아브람이 고향을 떠납니다. 이때 아브람의 나이가 75세입니다. 그 곳에서 25년 만에 이삭을 낳습니다. 이삭이 야곱을 낳고 야곱이 열 두 아들을 낳습니다. 야곱의 열 두 아들 중 요셉이 먼저 타인에 의해서 애굽으로 이민을 갑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요셉을 애굽으로 앞서 보내시는 섭리입니다. 그리고 가나안에 흉년이 듭니다. 야곱 일행이 애굽에 있는 요셉의 초청을 받고 애굽으로 집단 이민을 떠납니다. 이 때가
B.C 1706년,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난 지 215년 만입니다. 이때 식구가 70명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215년 동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손을 모두 합쳐 70명밖에 안 주십니다. 그것은 시종들까지를 포함해서입니다. 아브라함은 나이는 먹고 하나님의 약속은 있고 자손이 늘지는 않고 마음은 바쁘고 그래서 별 짓을 다 해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숫자를 늘려주지 않으십니다. 왜 주지 않으셨겠습니까 이 때는 자손을 많이 주셔도 감당할 능력이 없을 때입니다. 먹을 것도 없을 때이고 정착할 땅도 없을 때입니다. 그리고 아직 불완전한 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215년 동안 식구를 70명(출 1:5)밖에 안 주셨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역사의 전반부입니다.
그런데 그 역사의 후반부인 애굽에 들어갈 때부터 출애굽할 때까지가 430년인데 이 때는 자손이 기하급수로 늘어납니다. 이제는 애굽에서 정착했기 때문에 먹을 것도 있고 땅도 있고 일터도 있어서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번식을 허락하십니다. 애굽에 들어갈 때 70명의 인구였던 것이 그로부터 430년(출 12:40) 후 출애굽할 때는 자그마치 60만 명으로 늘어납니다. 이 숫자는 청년과 장년의 수이지 어린이, 노인, 여인을 합치면 250만이 넘었다는 것입니다. 애굽의 노예 신세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원대하신 언약의 말씀들은 점점 그 가망성이 희박해 보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본문은 선민 이스라엘이 고난과 역경의 형편에 처할수록 더욱더 번성하고 창대해 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아브람에게 주신 번성의 축복을 상기하게 됩니다. 이는 영적 이스라엘인 오늘날의 성도에게도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이렇게 갑자기 많은 인구를 주셨습니까 우리는 그 깊은 하나님의 섭리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되니까 애굽 정부가 당황을 합니다. 과거 요셉의 공로도 컸었지만 이제는 요셉도 바로도 죽었습니다. 그후에는 새 왕이 나타나서 통치를 하게 되는데 이스라엘 인구의 공로가 인정될 리가 없습니다. 거기다가 이스라엘인들의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납니다. 그들의 세력도, 파워도 날로 커져 갑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신체적인 조건이 좋아서 다산하였고 체력도 준수합니다. 여기에서 애굽이 마침내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1:9-10을 보면 바로 왕이 이렇게 우려를 합니다. (출1:9) 그가 그 신민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출1:10)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이렇게 해서 비로소 피압박 민족에게 하나의 정책이 세워집니다. 그 정책이 일제 36년 동안 우리 민족에게 가해졌던 그 정책과 흡사합니다. 또한 오늘 경제위기시대에 우리에게 가해졌던 그 정책과 흡사합니다.
첫째는 중노동 정책입니다. (출1:11)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이를테면 강제 노동입니다. 성을 쌓는 데 총동원령이 내려집니다. 쓰러져 죽을 정도로 가혹하게 사역을 시킵니다. 왜 이렇게 가혹하게 총동원 정책을 세웠느냐 하면 여기에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정신 파괴 목적입니다. 정신적으로 여유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가혹한 노동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여 앉아 모의를 하거나 연합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고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아 동물화시키자는 것입니다. 둘째는 건강 파괴 목적입니다. 중노동으로 수명을 단축시키고 죽게 함으로써 수를 줄여 나가는 것입니다. 셋째는 가정 파괴 목적입니다. 쉴 틈을 주지 않음으로써 가정도, 부부 관계도, 여유도 없습니다. 육체적으로 고달프게 함으로써 성욕을 감퇴시키고 가정 형성에 장애를 주기 위함입니다.
넷째는 민족 동질성의 파괴입니다. 혹사시킴으로써 애굽 귀환자가 생기도록 하고, 귀환자로 하여금 감독을 시켜 생활 보장과 함께 자유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귀화했고 그들로 하여금 동족을 감시케 하는 감독자를 세워 동족을 이간시키고 애굽의 신을 믿게 하여 신앙적 파괴와 동질성의 유리를 조장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이들은 마침내 모세에 의해서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너 온 뒤에도 불평 그룹을 형성했고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선동하는 그룹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같은 정책은 식민지 역사를 지낸 어느 나라에도 다 적용이 되었던 정책입니다. 우리 나라도 그랬습니다. 조금 유력한 사람이라 생각되면 집중적으로 유혹하여 생활 편의를 주고 친일파를 만들어 동족을 감시하는 대열에 내세워 동족의 동질성을 파괴시켜 나갔습니다. 그래서 친일파가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가 바로 그 곳에 나타난 것을 우리는 봅니다. 애굽이 그렇게 하면 인구가 줄고 민족 동질성이 파괴되고 약화 될 줄 알았지만 바로 그 곳에 하나님의 섭리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몰랐습니다. 12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을 인하여 근심하였더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누가 막습니까 오늘 이 난국을 해쳐나가기 위해 국민들이 금모으기 운동을 펴서 수출품목중 2위가 될 정도로 앞장서고 있습니다. 해외동포들도 작개는 100불에서 많게는 수천불에 이르기까지금을 모으고 달러를 송금하며 국산품을 수입하여 판매하는 해외 사업가가 늘고 있는 시점입니다. 이를 위해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던 해외동포들이 결의문을 채택하고 모두가 나라 사랑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모두가 민족의 동질성을 찾으려는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요즘 미국은 백인들은 자식을 낳으려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백인의 수는 자꾸 줄어만 갑니다.
그런데 흑인은 늘어만 갑니다. 마음놓고 낳습니다. 낳아도 하나 둘이 아니고 여럿입니다. 낳아도 부담이 없습니다. 18세까지 나라가 교육시키고 먹여 살립니다. 실직하면 실직 수당까지 줍니다. 이것이 오늘 미국의 고민입니다. 애굽이 이래서 걱정이었습니다. 강제 노동을 시켜도 신체 조건이 워낙 좋아서 자꾸만 늘어갑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태의 문은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하나님이 태의 문을 활짝 열어 놓은 것을 애굽인들이 알 까닭이 없습니다. 그래서 압박하는 사람이 별 방법을 다 해서 강구를 해보아도 하나님은 압박당하는 자의 편에 서 계시기 때문에 결국 압박자는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 땅에서 독재가 무너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아프간 사태를 보면 실감이 납니다. 소련이 별 짓을 다 하다가 손을 들고 나갔습니다. 소련이 발트 3국이 결국 독립을 하지 않았습니까 소련군들에게 무기가 없습니까 잔인하질 않습니까 죽이는 방법을 몰라서입니까 그래도 결국은 손 들고 나갔습니다. 일본이 한반도를 강점하면 쉽게 동화될 줄 알았습니다. 온순한 민족이기에 아주 손쉽게 합방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자의 편에 서 계신 것을 그들은 몰랐습니다. 강대국들이 점점 커져가는 우리나라의 위상을 바라보면서 겁이 났을 것입니다. 이 나라를 어떻게 하면 자기 나라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이용할까 머리를 쓰고 있습니다. 이 경제위기로 이나라를 억압하고 있습니다. 작은 나라를 주무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작은 나라가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나라인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속에 약자 사상이 중심을 이루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 가운데 가장 주의 깊게 관심을 가졌던 대상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과부였고 고아였고 빚진 자였고 눌린 자였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는 약자였지만 하늘에서는 강자들이었습니다. 일본이 이것을 몰랐습니다. 애굽이 이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애굽이 중노동 정책에 실패하고 또 다른 정책을 세웠습니다.
둘째는 유아 학살 정책입니다. (출1:16) 가로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조산할 때에 살펴서 남자여든 죽이고 여자여든 그는 살게 두라 이번에는 간접 방법이 아니라 직접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이제는 태어나는 어린 아이를 죽이는 방법을 썼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죄입니까 독재는 무슨 짓이든 다 해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재가 무섭다는 것은 독재자에게는 인륜도, 도덕도 없고, 하나님도 무서워하지 않기 때문에 무섭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대 권력과 독재는 없어야 합니다. 권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늘 아래 그 어떤 방법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헤롯을 보십시오. 왕이 태어났다고 했을 때 그 성 안의 어린 아이는 다 죽였습니다. 자신의 왕위를 위해서는 다른 사람은 다 죽여야 했습니다. 이것이 독재자의 생각입니다. 히틀러 역시 유대인 인구 1.000만 명 중에서 600만 명을 무작위로 죽였습니다. 이것이 정상인의 생각입니까 우리 나라 조선 역사를 보십시오. 정적을 제거할 때에는 정적만을 제거한 것이 아닙니다. 그 어린 아이들까지 씨를 말렸습니다. 그러니 그 역사가 오래 갈 수 있습니까 애굽이 그 지경까지 왔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사내 아이면 죽이라고 했습니다. 이 정도면 어느 정권이고 말기입니다. 말기 증상은 인명이 피흘리는 단계입니다.
그런데 17절을 유심히 보시기 바랍니다. “(출1: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왕의 명을 어기고 남자를 살린지라 ”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했고 남자 아이들을 살렸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정상적인 생각을 가졌다면 이것은 당연한 생각입니다. 무신론자들도 죄를 지으면 하늘이 두려운 법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창조되었고 하나님이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이땅에 무신론자는 없습니다. “나는 무신론자다.” 이것은 궤변입니다. 그들도 심각한 실존의 자리에 떨어지게 되면 인간의 가면을 벗게 되는 것입니다. 사탄도 병들면 천사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애굽의 여인들이었습니다. 자기 나라 왕의 명을 어겼습니다. 그리고 거짓말까지 했습니다. 19절을 보면 “(출1:19)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거짓말을 하고서도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고 복을 받은 여인이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정탐꾼을 숨겨준 라합이고 또 하나는 애굽의 산파들입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한 이 여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고 그들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출1:20)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라 백성은 생육이 번성하고 심히 강대하며 (출1:21) 산파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신지라”
여러분! 어느 시대나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선을 행하는 사람은 그가 어느 민족이든지 그가 어떤 처지와 환경에 있든지 복을 받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백성은 왕명에 순종하고 복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왕명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잘못된 것일 때는 목숨을 걸고 항거하는 것이 우리 신앙인의 태도입니다. 그래서 애굽의 유아 학살 정책도 실패했습니다. 마침내 히브리인이 승리를 한 것입니다. 그 일에 하나님이 개입하고 계시는데 정책 가지고 될 일입니까 그래서 수난의 역사 속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약한 것 같으나 수난의 백성은 끝내 승리한다는 역사의 교훈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바로의 철권 정치가 무너지고 맨손인 히브리 민족이 보기 좋게 승리한 것입니다. 매년3.1절만 되면 이 같은 하나님의 역사를 생각해 봅니다. 1919년 3월 1일 일본 제국주의가 얼마나 당황했던 날입니까 평소 양같이 순진해 보이던 한민족이 노도와 같은 분노를 폭발하던 날 그들은 얼마나 당황했습니까 이 역사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없다고 누가 장담한단 말입니까 이것이 사람의 힘으로, 생각으로 가능한 일입니까 이제 우리 민족은 좀더 겸손하고 겸허한 민족으로 발전되어 나가야 합니다. 역사와 교훈을 되새기며 좀더 현명한 미래를 내다보고 살아가는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79번째 맞는3.1절 기념 주일 아침에 우리들이 마음속에 간직해야 할 정신이고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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