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바에서 구원역사를 이루신 하나님 (삼상7:5-12)
본문
본문 말씀은 사무엘 선지자를 비롯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서 무슨 일을 하게 되었는 지에 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어떤 분으로 우리들에게 소개되고 있는 지를 살피고,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1. 본문의 앞뒤 전후 문맥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써 법궤를 주셨습니다. 법궤라고도 하지만 언약궤라고도 하고 증거궤라고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법궤와 함께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고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을 옮길 때 언제나 법궤가 앞장 섰습니다. 법궤가 그들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든 일의 우선 순위를 하나님 중심으로 삼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러나 그런 법궤와 함께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하는데 백성들은 그렇게 하지 못 했습니다. 엘리 제사장과 그 가정도 범죄로 인하여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이제 더 이상 엘리 제사장에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고 합니다.(3:1). 영적으로 타락한 엘리 제사장 시대에 하나님의 심판으로 블레셋이 침입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전쟁에서 패하고 맙니다.(4:2). 패할 뿐만 아니라 법궤마저 빼앗기고 맙니다.(4:11). 또한 그 전쟁에서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게 됩니다.(11절). 결국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게서 떠났습니다.(4:21). 이스라엘에게 있어야 하는 언약궤가 블레셋에게 갔습니다.
그런데 그 언약궤로 인하여 블레셋에 저주와 재앙이 내립니다.(5:6-12). 그들은 그 재앙 때문에 언약궤를 다시 이스라엘에게 돌려보내기로 합니다.(6:1-9). 언약궤를 수레에 실려 벧세메스로 돌아옵니다.(6:10-18).
그런데 그곳에서도 법궤로 인하여 재앙이 임하자 다시 그 궤를 벧세메스에서 기럇여아림으로 옮겨옵니다.(7:1-2). 이제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 가운데 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 엘리 제사장이 죽고 사무엘이 등장합니다. 그 사무엘이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의 첫 외침을 봅시다. 삼상 7:3-4에 보면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사무엘이 모든 우상 숭배를 제거하고 하나님만 섬기라고 할 때 백성들이 그 말씀에 순종하고 있습니다. 대 회개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가 사무엘을 통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이게 합니다. 그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대 각성 운동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미스바에서 블레셋의 침입을 받게 될 때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셨다는 것이 오늘 우리들이 택한 본문의 앞뒤 전후 상황입니다.
2. 새로운 선지자 사무엘의 등장을 통해 보여준 하나님의 구원 역사 엘리 제사장 가문의 타락과 엘리 제사장의 영적 침체는 그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상을 그대로 반영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 시대를 심판하시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가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사무엘을 탄생케 하셨습니다. 이제 그 사무엘을 전면에 등장시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끌어 갑니다. 엘리 제사장의 영적 권한 상실로 말미암아 오게 되는 이스라엘 민족의 타락에 대해서 안타까워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이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회개시켜 각성케 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통하여 이루시려 하신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 시대마다 타락으로 인하여 영적 권한을 상실한 종들을 심판 하셨습니다. 심판하실 뿐만 아니라 신실한 종들을 다시 세우셔서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 역사를 이어 가셨습니다 본문 5-6절을 보면 “사무엘이 가로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고 합니다. 먼저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이게 합니다. 모이게 해 놓고 하는 말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백성들이 물을 길러 여호와 앞에 붓습니다. 그리고 금식을 하면서 자신들의 죄를 고백 합니다. 물을 붓는 행위와 금식의 행위는 자신들이 죄인임을 고백하면서 하나님께만 의지하겠다는 표현 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을 나올 때 홍해를 경험 했습니다. 그 홍해 물을 통해서 죽고 사는 문제가 하나님으로부터 결정됨을 알았습니다. 이 사실을 물을 붓는 의식을 통해서 깨닫습니다 그리고 금식은 “이제 목숨 걸고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의미를 보입니다. 생존을 포기하는 행위 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기 때문에 마땅히 죽어야함을 법궤의 운반을 통해서 처절하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금식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자신들의 죄를 통회 자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에 제시된 금식의 의미였습니다. 사무엘 선지자의 등장은 바로 이 일을 위해서 보내심을 받은 선지자였습니다 그의 등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로를 바꾸어 놓습니다. 하나님께 범죄하여 심판으로 인하여 적들에게 멸망당했고, 법궤를 들여다보았다는 이유 때문에 무려 5만 7십명이 죽었다. 죄인들에 대한 거룩하신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 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무엘 선지자의 등장은 이제 더 이상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사랑과 의도가 숨어 있기도 합니다. 우리들이 신앙 생활을 할 때 낙심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이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의 종을 보내어 말씀으로 권면하고 위로해 줍니다. 이것은 새로운 시대를 바라보며 우리들을 축복하시며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위해서 우리들을 부르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하나님의 기회, 즉 우리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기회를 우리들의 고집과 교만으로 놓치면 안됩니다.
3.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다. 우리 성도들에게도 어려움은 있기 마련이다. 그 어려움은 하나님을 잘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배후에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을 잘 믿지도 않고 순종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그 어려움이 징계가 될 뿐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을 잘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오는 어려움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승리를 주시기 위한 기회와 수단일 뿐 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 선지자와 더불어 하나님 앞에서 회개 운동과 각성 운동, 기도 운동이 미스바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블레셋이 침략해 들어왔다. 본문 7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이 듣고 그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고 했습니다. 이 때 백성들의 마음은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이 때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8절). 이런 부탁을 하자 사무엘은 9절에서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 하셨더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여 기도하고 있을 때 블레셋이 침략해 들어왔습니다. 백성들은 두려워하여 사무엘 선지자로 하여금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은 어린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드리고 나서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습니다. 이같은 원리는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신앙의 원리여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기도를 응답해 주십니다. 여기에 반드시 전제가 있다.
사무엘이 어린양으로 온전한 번제를 드린 후에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 나아갈 때 응답이 온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침략해 들어오는 블레셋은 사탄의 상징으로 등장 합니다. 왜 사탄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망시키려고 하기 때문 입니다. 그것이 왜 사탄인가 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위해서 택함을 받은 민족 입니다. 그 민족을 제거하겠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구원 섭리를 제거하겠다는 발상 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사탄 입니다. 그 사탄의 상징으로 등장한 블레셋은 하나님의 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블레셋이 하나님의 적이라고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들을 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과 블레셋과의 전쟁은 여호와의 전쟁 입니다. 여호와 이름을 두고 싸우는 싸움에서 승리 했습니다. 이 싸움은 이스라엘 백성의 노력에 의한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가늠하는 싸움 이었습니다. 만약에 이같은 싸움에서 패배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 백성들에게 향한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라는 사실 입니다. 결국 블레셋과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10절에 보면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고 합니다. 그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해 주셨습니다.
4. 에벤에셀의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범할 때 그들이 하나님께 어린양의 희생을 통해 번제를 드리고 죄 용서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앞에는 그 어떤 군사력도 무용지물 이였습니다.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랑만 믿고 자기의 모든 힘을 다 뺀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적들은 형편없이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승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겨 주신 승리의 땅에서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념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땅의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합니다. 이 말의 뜻은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가로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12절).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한치의 땅도 이스라엘에게 주어지지 않았을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땅들 이었습니다. 그 땅이 하나님의 선물이었다면 그 땅에서 생활해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심사 숙고해야 합니다. 나는 의례히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할 것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이 틀렸다면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그 확신은 거짓이 될 것 입니다. 이것을 오해한 것이 바로 유대인들 이었습니다. 혹 우리들이 그 유대인들과 같은 오해를 하고 있지나 않는가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확신을 했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자신의 구원을 어떻게 보여주고 있습니까 우리 자신의 의로움도 아니요, 나의 종교적인 열심도 아닙니다. 오직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내 죄를 통회자복할 때 가능합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써 사랑과 자비와 승리가 임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보여준 하나님의 구원 역사 입니다.
1. 본문의 앞뒤 전후 문맥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써 법궤를 주셨습니다. 법궤라고도 하지만 언약궤라고도 하고 증거궤라고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법궤와 함께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고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을 옮길 때 언제나 법궤가 앞장 섰습니다. 법궤가 그들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든 일의 우선 순위를 하나님 중심으로 삼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러나 그런 법궤와 함께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하는데 백성들은 그렇게 하지 못 했습니다. 엘리 제사장과 그 가정도 범죄로 인하여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이제 더 이상 엘리 제사장에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고 합니다.(3:1). 영적으로 타락한 엘리 제사장 시대에 하나님의 심판으로 블레셋이 침입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전쟁에서 패하고 맙니다.(4:2). 패할 뿐만 아니라 법궤마저 빼앗기고 맙니다.(4:11). 또한 그 전쟁에서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게 됩니다.(11절). 결국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게서 떠났습니다.(4:21). 이스라엘에게 있어야 하는 언약궤가 블레셋에게 갔습니다.
그런데 그 언약궤로 인하여 블레셋에 저주와 재앙이 내립니다.(5:6-12). 그들은 그 재앙 때문에 언약궤를 다시 이스라엘에게 돌려보내기로 합니다.(6:1-9). 언약궤를 수레에 실려 벧세메스로 돌아옵니다.(6:10-18).
그런데 그곳에서도 법궤로 인하여 재앙이 임하자 다시 그 궤를 벧세메스에서 기럇여아림으로 옮겨옵니다.(7:1-2). 이제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 가운데 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 엘리 제사장이 죽고 사무엘이 등장합니다. 그 사무엘이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의 첫 외침을 봅시다. 삼상 7:3-4에 보면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사무엘이 모든 우상 숭배를 제거하고 하나님만 섬기라고 할 때 백성들이 그 말씀에 순종하고 있습니다. 대 회개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가 사무엘을 통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이게 합니다. 그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대 각성 운동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미스바에서 블레셋의 침입을 받게 될 때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셨다는 것이 오늘 우리들이 택한 본문의 앞뒤 전후 상황입니다.
2. 새로운 선지자 사무엘의 등장을 통해 보여준 하나님의 구원 역사 엘리 제사장 가문의 타락과 엘리 제사장의 영적 침체는 그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상을 그대로 반영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 시대를 심판하시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가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사무엘을 탄생케 하셨습니다. 이제 그 사무엘을 전면에 등장시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끌어 갑니다. 엘리 제사장의 영적 권한 상실로 말미암아 오게 되는 이스라엘 민족의 타락에 대해서 안타까워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이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회개시켜 각성케 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통하여 이루시려 하신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 시대마다 타락으로 인하여 영적 권한을 상실한 종들을 심판 하셨습니다. 심판하실 뿐만 아니라 신실한 종들을 다시 세우셔서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 역사를 이어 가셨습니다 본문 5-6절을 보면 “사무엘이 가로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고 합니다. 먼저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이게 합니다. 모이게 해 놓고 하는 말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백성들이 물을 길러 여호와 앞에 붓습니다. 그리고 금식을 하면서 자신들의 죄를 고백 합니다. 물을 붓는 행위와 금식의 행위는 자신들이 죄인임을 고백하면서 하나님께만 의지하겠다는 표현 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을 나올 때 홍해를 경험 했습니다. 그 홍해 물을 통해서 죽고 사는 문제가 하나님으로부터 결정됨을 알았습니다. 이 사실을 물을 붓는 의식을 통해서 깨닫습니다 그리고 금식은 “이제 목숨 걸고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의미를 보입니다. 생존을 포기하는 행위 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기 때문에 마땅히 죽어야함을 법궤의 운반을 통해서 처절하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금식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자신들의 죄를 통회 자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에 제시된 금식의 의미였습니다. 사무엘 선지자의 등장은 바로 이 일을 위해서 보내심을 받은 선지자였습니다 그의 등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로를 바꾸어 놓습니다. 하나님께 범죄하여 심판으로 인하여 적들에게 멸망당했고, 법궤를 들여다보았다는 이유 때문에 무려 5만 7십명이 죽었다. 죄인들에 대한 거룩하신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 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무엘 선지자의 등장은 이제 더 이상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사랑과 의도가 숨어 있기도 합니다. 우리들이 신앙 생활을 할 때 낙심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이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의 종을 보내어 말씀으로 권면하고 위로해 줍니다. 이것은 새로운 시대를 바라보며 우리들을 축복하시며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위해서 우리들을 부르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하나님의 기회, 즉 우리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기회를 우리들의 고집과 교만으로 놓치면 안됩니다.
3.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다. 우리 성도들에게도 어려움은 있기 마련이다. 그 어려움은 하나님을 잘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배후에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을 잘 믿지도 않고 순종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그 어려움이 징계가 될 뿐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을 잘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오는 어려움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승리를 주시기 위한 기회와 수단일 뿐 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 선지자와 더불어 하나님 앞에서 회개 운동과 각성 운동, 기도 운동이 미스바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블레셋이 침략해 들어왔다. 본문 7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이 듣고 그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고 했습니다. 이 때 백성들의 마음은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이 때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8절). 이런 부탁을 하자 사무엘은 9절에서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 하셨더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여 기도하고 있을 때 블레셋이 침략해 들어왔습니다. 백성들은 두려워하여 사무엘 선지자로 하여금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은 어린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드리고 나서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습니다. 이같은 원리는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신앙의 원리여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기도를 응답해 주십니다. 여기에 반드시 전제가 있다.
사무엘이 어린양으로 온전한 번제를 드린 후에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 나아갈 때 응답이 온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침략해 들어오는 블레셋은 사탄의 상징으로 등장 합니다. 왜 사탄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망시키려고 하기 때문 입니다. 그것이 왜 사탄인가 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위해서 택함을 받은 민족 입니다. 그 민족을 제거하겠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구원 섭리를 제거하겠다는 발상 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사탄 입니다. 그 사탄의 상징으로 등장한 블레셋은 하나님의 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블레셋이 하나님의 적이라고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들을 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과 블레셋과의 전쟁은 여호와의 전쟁 입니다. 여호와 이름을 두고 싸우는 싸움에서 승리 했습니다. 이 싸움은 이스라엘 백성의 노력에 의한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가늠하는 싸움 이었습니다. 만약에 이같은 싸움에서 패배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 백성들에게 향한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라는 사실 입니다. 결국 블레셋과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10절에 보면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고 합니다. 그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해 주셨습니다.
4. 에벤에셀의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범할 때 그들이 하나님께 어린양의 희생을 통해 번제를 드리고 죄 용서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앞에는 그 어떤 군사력도 무용지물 이였습니다.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랑만 믿고 자기의 모든 힘을 다 뺀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적들은 형편없이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승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겨 주신 승리의 땅에서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념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땅의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합니다. 이 말의 뜻은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가로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12절).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한치의 땅도 이스라엘에게 주어지지 않았을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땅들 이었습니다. 그 땅이 하나님의 선물이었다면 그 땅에서 생활해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심사 숙고해야 합니다. 나는 의례히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할 것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이 틀렸다면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그 확신은 거짓이 될 것 입니다. 이것을 오해한 것이 바로 유대인들 이었습니다. 혹 우리들이 그 유대인들과 같은 오해를 하고 있지나 않는가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확신을 했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자신의 구원을 어떻게 보여주고 있습니까 우리 자신의 의로움도 아니요, 나의 종교적인 열심도 아닙니다. 오직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내 죄를 통회자복할 때 가능합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써 사랑과 자비와 승리가 임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보여준 하나님의 구원 역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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