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성의 정복 (삿1:1-30)
본문
이스라엘은 전지파가 공히 과거 그토록 강성했던 가나안 족속들을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앙과 순종으로 정복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전민족을 하나로 결속시켜 주는 구심점이 되었던 여호와 신앙을 떠남으로 해서 민족 자체의 결속력이 와해된 것은 물론 이방인과 어울려 우상 숭배의 범죄에까지 빠지게 되고, 이러한 비극이 사사기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특히 사사기 1장의 상황은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서 패권을 차지하기는 하였지만 하나님의 명령과는 달리 선조들의 신앙을 이어받지 못하고 그 땅의 족속들을 완전 정복하는 데 실패한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가나안 족속의 완전 정복을 거부한 이유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1. 약속에 대한 불신앙 때문이다. 본문 2절에서는 “내가 이 땅을 그 손에 붙였노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그 약속을 믿고 나가서 힘써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땅을 얻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실로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너의 손에 붙였다는 말씀은 이미 승리가 주어진 것이나 다름없는 완전한 정복을 눈 앞에 두고도 그것을 쟁취할 수 없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결여와 그들의 불신앙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에 대한 불신이 그들의 유익을 상실케 했고 수천 가지의 불행을 초래케 한 것이다. 아무리 엄청난 복이 약속되고 보장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거나 거부하는 불신앙의 모습을 가지게 된다면 진정 아무 것도 얻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히 11:6).
2. 가나안과 타협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거민을 완전히 쫓아내지 아니한 것은 초기에는 그들의 힘이 충분히 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19절).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적의 회형적인 위세에 눌려 그만 두려움을 느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우상 숭배자들과 타협했기 때문이다. 본문 28절에서는 이스라엘이 힘이 충분히 강해진 다음에도 가나안 거민을 쫓아내지 아니하고 그들에게 사역을 시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기보다는 가나안 땅에 정착해서 서로 갈등 상황을 표출하지 아니하고 평안히 살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도리어 이러한 태도는 이스라엘의 통일과 분열 왕국 때까지 이스라엘 전 역사에 가시로 남게 된다(2,3). 가나안 정복 초기에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가나안 거민을 진멸하였더라면 계속적인 고통과 아픔이 없었을 것이다.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을 사랑하며 살아갈 때, 일시적인 기쁨은 있을지라도 이는 영원한 후회요 아픔이 될 것이다. 고통의 시간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아가는 것이 복된 길이요, 평안의 길인 것이다.
3. 탐욕 때문이다. 본문 30절에는 “가나안 사람이 그들 주에 거하여 사역을 하였더라.”고 기술하고 있따. 이는 가나안 사람들의 돈과 노동력을 이용하는 것이 그들의 피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눈 앞에 보이는 이익에 연연하다 보니 반드시 섬멸해야 할 우상 숭배자들을 죽이지 않고 편의를 위해 그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손발이 되게 한 것이다.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것을 추구하려다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단적인 예이다.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것을 추구하려다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단적인 예이다. 이것은 실로 인간적인 탐욕에서 기원한 것이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진멸하라고 하신 가축을 다 진멸하지 않고 눈 앞의 이익을 못 버림으로써 끝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비극적인 삶을 산 것을 성경은 말해 준다(삼상 15:9-23). 경제와 합리를 주창하는 후기 산업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으로서 현실적인 이익과 돈벌이만을 추구하다가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져버리는 일이 생긴다면 가차없이 그러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 적용
1.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신앙인의 불신앙”의 모습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는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일이다.
2. 우리가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에는 이미 세상을 너무 사랑하고 있지는 아니한가
3. 우리는 과연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것만을 선택하는가 고통의 순간이 닥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좇아가는가
1. 약속에 대한 불신앙 때문이다. 본문 2절에서는 “내가 이 땅을 그 손에 붙였노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그 약속을 믿고 나가서 힘써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땅을 얻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실로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너의 손에 붙였다는 말씀은 이미 승리가 주어진 것이나 다름없는 완전한 정복을 눈 앞에 두고도 그것을 쟁취할 수 없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결여와 그들의 불신앙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에 대한 불신이 그들의 유익을 상실케 했고 수천 가지의 불행을 초래케 한 것이다. 아무리 엄청난 복이 약속되고 보장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거나 거부하는 불신앙의 모습을 가지게 된다면 진정 아무 것도 얻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히 11:6).
2. 가나안과 타협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거민을 완전히 쫓아내지 아니한 것은 초기에는 그들의 힘이 충분히 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19절).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적의 회형적인 위세에 눌려 그만 두려움을 느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우상 숭배자들과 타협했기 때문이다. 본문 28절에서는 이스라엘이 힘이 충분히 강해진 다음에도 가나안 거민을 쫓아내지 아니하고 그들에게 사역을 시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기보다는 가나안 땅에 정착해서 서로 갈등 상황을 표출하지 아니하고 평안히 살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도리어 이러한 태도는 이스라엘의 통일과 분열 왕국 때까지 이스라엘 전 역사에 가시로 남게 된다(2,3). 가나안 정복 초기에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가나안 거민을 진멸하였더라면 계속적인 고통과 아픔이 없었을 것이다.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을 사랑하며 살아갈 때, 일시적인 기쁨은 있을지라도 이는 영원한 후회요 아픔이 될 것이다. 고통의 시간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아가는 것이 복된 길이요, 평안의 길인 것이다.
3. 탐욕 때문이다. 본문 30절에는 “가나안 사람이 그들 주에 거하여 사역을 하였더라.”고 기술하고 있따. 이는 가나안 사람들의 돈과 노동력을 이용하는 것이 그들의 피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눈 앞에 보이는 이익에 연연하다 보니 반드시 섬멸해야 할 우상 숭배자들을 죽이지 않고 편의를 위해 그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손발이 되게 한 것이다.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것을 추구하려다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단적인 예이다.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것을 추구하려다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단적인 예이다. 이것은 실로 인간적인 탐욕에서 기원한 것이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진멸하라고 하신 가축을 다 진멸하지 않고 눈 앞의 이익을 못 버림으로써 끝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비극적인 삶을 산 것을 성경은 말해 준다(삼상 15:9-23). 경제와 합리를 주창하는 후기 산업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으로서 현실적인 이익과 돈벌이만을 추구하다가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져버리는 일이 생긴다면 가차없이 그러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 적용
1.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신앙인의 불신앙”의 모습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는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일이다.
2. 우리가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에는 이미 세상을 너무 사랑하고 있지는 아니한가
3. 우리는 과연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것만을 선택하는가 고통의 순간이 닥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좇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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