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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는 요셉 (창37:1-11)

본문

한 청년이 자신의 인생 문제를 상담하고자 저를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이 청년은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힘들 고 불행한가를 증명하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경험한 수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머 니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며, 가족간의 불화, 그리고 늘 가족들로부터 무시당한 자신 의 신세를 한탄하듯 토해냈 습니다. 마치 자신이 불행하고 가련한 인생임을 증명이라도 해야 하는 사명이 있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저는 그 청년과는 반대로 그 청년이 결코 불행하거나 가련한 인생이 아님을 증명해 야 하겠다는 사명감에 사로 잡혀 수많은 예들을 들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많은 이야기를 해도 이 청년의 결론은 한결같 았습니다. 나는 불쌍하고 가련하다 하도 답답해서 제가 경험한 일들을 이야기 해 주 었습니다. 제가 어려서부터 어떤 일들을 경험했는지 어떤 환경에서 자라났는지를 대략 이야기 해 주면서 네가 당했 던 일은 새 발의 피라고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 청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죄송한 이야기이지만 호강에 겨운 이야기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일들을 이 청년이 경험한 일들과 비교를 해 보면 비교할 수도 없는 그런 일 들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저의 인생을 원망하거나 불평하며 살 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오히려 어려웠던 저의 환경이 인생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 개똥철학이었지만 당시에는 제법 진지하게 인생을 논했습니다. 나의 환경이 더 이상 어려워 질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니 이제는 좋아지고 개선되는 일만 남았어 어려움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할 수 없어 하는 생각을 하면서 세월들을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생각을 하며 어려운 시절 을 지낼 수 있었던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느낍니다. 아무튼 제가 경험했던 일들 이 생각이 나서 그 청년에 게 말해 주었지만 그 청년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스스로 내린 결론은 변할 줄 몰랐습니다. 마치 스스로 자신을 불행의 상자 속에 집어 넣으려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누가 뭐라 하든 자신은 불행한 것이었습니다. 마치 자신 이 불행하다는 사실을 즐기기라도 하듯이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하시고 계십니까 좀 전에 말씀드린 그 청년처럼 불행하다고 느끼 시고 계십니까 아니면 행복하다고 느끼시고 계십니까 사람이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행복하다 거니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경 때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어떤 사람은 불행 하다고 느끼는 반면 환경 이 아무리 나빠도 어떤 사람은 행복해 합니다. 이렇게 볼 때 행복이냐 불행이냐는 삶의 자세인 것 같습니다. 어떤 삶의 자세로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행복해 질 수도 있고 불행해 질 수도 있습니다. 사랑 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 들은 환경과 관계없이 행복을 느끼시며 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불행한 요셉 이제 오늘부터 우리들이 살피려는 요셉, 그도 환경 적인 면에서 보면 불행하다고 말 할 수밖에 없는 처지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요셉이 얼마나 불우한 환경에서 인생을 보내야만 했는가를 잘 아시고 계실 것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불행이 다가 왔지만 요셉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불행들이 요셉이 잘못했기 때문에 찾아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잘못했으니까 이렇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었겠지만 요셉이 당 하는 어려움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때로는 바르게 살려고 함에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바라보면서 그는 얼마든지 불평과 원망을 할 수 있었을 것 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 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인생 어느 곳을 찾아봐도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런 환경에 대 해서 불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 애씁니다. 우리는 이런 요셉의 모습 속에서 세상에서 믿음대로 살려 하 다가 고난받는 그리스도인들을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아브라함의 생애, 야곱의 생애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요 셉의 생애를 살펴보려 합니다. 이 세 사람은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세 가지 모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는 순 종하는 그리스도인을 야곱은 훈련받는 그리스도인을 요셉은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려는 그리스도인의 모습 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세 종류의 사람들 속에는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생애에 에서는 순종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야곱의 생애에서는 거칠고 다듬어 지지 않은 야곱을 훈련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할 수 있었죠. 반면에 이제 오늘 부터 우리들이 살피려 하는 요셉의 생애에서는 세상의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지켜 나가려는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요셉의 일생을 살피면서 세상 속에 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고난받는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지키시고 계시는 가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나도 요셉과 같은 인물이 되어서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인내하고 견디는 신앙 생활을 할 것을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요셉의 등장 오늘 본문은 야곱이 서서히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지고 요셉이 역사의 무대 중심에 등장을 하고 있음을 이야 기하고 있습니다.
함께 1,2절을 읽습니다.  몇 절이 이 두 사람의 분기점처럼 보입니까 그렇습니다. 2절입니다. 2절을 중심으로 해서 야곱이 무대 뒤로 사라지고 요셉이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어떤 인물일까요 오늘 본문은 요셉에 대해서 17세 이후부터 기록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이전에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 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짐작을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지금까지 어떤 세월을 보냈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짐작을 할 수는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합니까 그렇습니다. 그의 아버지 야곱의 삶 을 살핀다면 요셉이 어떻게 성장했는가를 어느 정도 짐작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셉의 인생이 야곱 과 더불어 산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요셉의 어린 시절 요셉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알기 위해 먼저 요셉이 출생했을 때를 살펴보도록 하 겠습니다. 창 30:22-24절 말씀입니다.  그리고 25절 말씀을 보십시다.  자 이 구절들에서 짐작을 할 수 있는 것 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요셉을 낳자 야곱은 집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게되었고 곧 그것을 삼촌 라반에게 이 야기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6년 뒤에 그것을 실행에 옮기죠.
그렇다면 이 때 요셉의 나이가 몇이겠습니까 그렇 습니다. 대략 6세 정도 되었을 것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요셉이 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부랴부랴 도망치는 아버지와 가족 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것 이 무엇인지 잘 알지는 못했겠지만 나름대로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그는 알 았을 것입니다. 제가 어렸 을 때 살았던 동네 옆에는 그리 크지 않는 강물이 있었습니다. 어느 여름날 밤 장마로 인해 이 강이 불자 동네 사람들이 필요한 가제 도구들을 들고 산기슭으로 피난 가던 것이 지금도 제 기억에는 생생합니다. 잠을 자고 있는 저를 깨우시던 어머니의 그 긴장된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아마 그 때 제 나 이가 야곱의 나이쯤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도 그 때의 그 긴박함이 지금도 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처럼 야곱이 비록 어려서 경험한 일들이지만 그에 에게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그런 일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족들이 긴박하 게 움직이고 부랴부랴 도망치던 때의 일이 야곱에게는 크게 자리잡았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삼촌의 추격에 초 조해 하던 아버지 야곱의 모습, 그리고 극적인 순간에 이를 막아서시던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들으면서 그는 자라났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얍복강에서 하나님과 밤새도록 씨름을 하고 절면 서 오시던 아버지의 모습 도 보았을 것이며 왜 아버지가 그렇게 절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을 것입니다. 또 그는 디나의 강간사건을 보았을 것이며 형들이 나가서 세겜 사람들을 죽이던 일들도 목격을 했을 것입니다. 또 그는 아버지 야곱이 벧엘 에 돌아와서 돌 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던 일들도 목격을 했을 것입니다. 이렇 게 요셉의 어린 시절도 야 곱의 파란만장했던 역사와 더불어 함께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의 어린 시 절이 좋은 환경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광야 생활의 연속이었고 쫓기는 삶이었습니다.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보호되어야 할 시 기에 그는 격변의 소용돌이에서 가족들과 더불어 함께 거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게다가 그는 여러 어머니들의 시기와 배다른 형제들로부터 끊임없이 자행되는 암투를 보면서 자라났을 것입니다. 요셉이 이런 세월을 보내면서 느낀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거 의 대부분의 감정들을 이 시절에 이미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두려움, 슬픔, 염려, 시기, 질투, 고난, 외로움 등 을 느끼면서 어린 시절을 지 내야만 했을 것입니다. 형들의 어린 시절 물론 요셉만 이런 세월을 보낸 것은 아닙니다. 야곱의 다른 여러 아들들도 역시 이 런 거친 세월을 보내야만 했을 것입니다. 이런 세월은 야곱의 아들들의 인격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어떠했다는 설명은 성경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일으킨 몇 가지 사건들을 살펴보면 야곱의 아 들들이 어떠했는가가 대강 짐작이 갑니다. 얼마 전에 살펴보았던 디나의 강간 사건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일을 보 십시다. 야곱의 아들들은 어 떻게 반응을 하죠 그렇습니다. 거짓말과 살인을 약탈 등으로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이 들은 이런 일들을 서슴없이 자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야곱의 장자였던 르우 벤은 어떤 일을 일으키는 줄 아십니까 35:22절 말씀을 볼까요  어떤 일이 있었음을 소개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아버 지의 첩이었던 빌하와 정을 통한 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가치관으로 살피더라 도 이것은 패륜 중에 패륜 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일들 야곱의 아들이었던 르우벤은 자행한 것입니다. 이들의 악 한 모습은 여기서 끝나지 않 습니다. 앞으로 살피게 되겠지만 이들이 어떤 일을 도모합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오늘 의 주인공인 요셉을 어떻게 하려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죽이려 했죠. 물론 나중에 그 계획을 바꾸어서 팔아버렸지 만 그렇다 하더라도 어떻게 이런 일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이게 바로 야곱의 아들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틈바구니에서 요셉은 자라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요셉이 어떠할 것이라는 것 을 대강 짐작할 수 있을 것 입니다. 한 사람을 보면 그 사람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다는 것은 쉽게 알지 않습니까 언젠가 어떤 분이 성도들 이 목사를 닮았다고 말하더군요. 칭찬인지 욕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닮았다는 것입니다. 왜죠 그렇습니다. 함께 생각을 나누고 삶을 나누기 때문에 점점 닮아가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곱의 아들들도 함께 한 솥 밥을 먹으며 자라온 사람들로서 대부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셉 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다른 형제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그 래야 정상입니다. 자신을 지킨 요셉 그러나 보십시오. 요셉의 인생 전체를 살펴보면 어느 곳에서도 형님들을 닮은 모습 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살펴보게 되겠지만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기 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이런 순간에 자신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일 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어 려서부터 그 나름대로 바르고 곧게 자랐음을 보는 단적인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요셉은 불우한 환 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곧고 바르게 자라났던 사람입니다. 이 것이 바로 요셉의 모습이 었습니다. 어떤 환경이든지 거기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의 믿음을 지켜 나갈 수 있는 사람 바로 그가 요셉이었 던 것입니다. 이런 요셉의 삶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들을 시사해 줍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보십시오. 카멜레온처럼 환경에 따라 색깔을 달리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은 지 요. 교회 나와서는 거룩한 성도처럼 보이지만 세상에 나가면 전혀 그리스도인 같지 않은 사람이 참 많습니다.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과 더불 어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참 많습니다. 환경이 조금만 변해도 신앙이 변하는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참 많습니다. 이 런 현대인들에게 요셉의 이런 모습은 얼마나 귀감이 되는지요. 환경과 전혀 관계없이 시종여일할 수 있는 사람 바로 그가 요셉이었습니다. 이런 요셉을 살피면서 나도 요셉처럼 한 번 살아봤으면 하 고 꿈꾸어 보셨으면 합니다. 야곱의 생애를 살필 때는 제가 이런 사람은 본받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다릅니다. 본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발벗고 쫓아가야 할 사람이죠. 함께 요셉처럼 살기를 소원하 며 따라가기를 힘쓰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미움들 자 이제 요셉에 대한 이런 배경을 가지고 오늘 본문 말씀을 함께 살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2,3절을 읽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요셉에 대해서 몇 가 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요셉의 나이 가 17세 이고, 그 형제들과 함께 양을 쳤으며, 형제들이 잘 못했을 때 그 것을 아버지 에게 고했고, 야곱이 노년에 얻은 아들이기 때문에 특히 사랑을 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실이 문제가 되었 죠. 어떤 문제가 되었는지 4 절을 봅니다.  예, 형제들로부터 미움을 샀다고 말합니다. 여러분들은 요셉이 형제들로부터 미움을 산 이 사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십니 까 아버지가 편애를 했 으니까 그래도 싸다 혹은 그렇게 고자질을 했으니까 그래도 싸다 말하시겠습니까 단순히 그렇게만 볼 수 없는 문제입니다. 고자질 먼저 요셉의 고자질에 대해서 생각을 해봅시다. 요셉의 고자질에 대해서 해석을 하는 사람에 따라서 두 가지 로 나뉘어 집니다. 하나는 요셉의 고자질은 나쁜 것이다. 하는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지 않다는 견해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두 견해 중에 어떤 것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두 번째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 지만 어느 정도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좀 전에 말씀을 드린 것처 럼 요셉의 형들이 그렇게 선하지 못하다는 것 때문입니다. 즉 요셉은 선하지 못한 형님들과 함께 생활을 해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과 함께 생활을 해야 하는 요셉의 고충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형들은 자신들이 행하는 행동들을 요셉에게 자랑도 했을 것이며 또 때로는 요셉에게도 강요를 했을 것입니다. 그냥 강요했겠습니까 때로는 형으로서의 권위도 내 세웠을 것이며 때로는 물리적인 힘도 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이 형님들의 잘못을 이야기 한 것을 보면 적어도 요셉은 형들이 저지르는 잘못을 행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자연히 요 셉을 미워하게 하는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요셉이 아버지께 형들의 잘못을 이 야기한 그것만이 요셉을 미 워하게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 이 전부터 이미 요셉은 형들의 요구를 거절하였고 이것이 미움의 싹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선하지 못한 삶을 사는 형들을 아버지께 말씀을 드렸다는 것은 요셉에 게 있어서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최선책이 되었을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형들이 잘못을 요구했을 때 그리고 물리적인 힘으로 윽박지를 때 요셉이 호소할 때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가 힘으로 해 보겠습니까 아니 죠 자연 형에게 호소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고자질을 단순히 고자질 차원에서 보기보다 자 신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 책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이처럼 요셉은 형들과 동화되지 않기 위해서 수많은 형들과 싸워야 했 던 것입니다. 편애 또 야곱의 편애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야곱의 편애 역시 야곱의 아들들의 행동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야곱의 입장이 되어 보십시오. 수많은 문제아들을 거느리고 살아야만 하는 아버 지의 마음을 이해해 보시 기 바랍니다. 어떠하겠습니까 아마 여러분 같으면 야 이 놈들아 내가 네놈들 때문에 얼마나 가슴이 썩고 있는 줄 아느냐 자 이 내 가슴을 봐라. 시커멓지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한 두 명의 아이들 을 키우는데도 이렇게 가슴 이 썩는데 그렇게 많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야곱은 얼마나 가슴이 썩었겠습니까
그런데 보십시오. 그 중에 좀 달 라 보이는 녀석이 있었습니다.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요셉이었습니다. 요셉은 다른 아들들과는 뭔가 달라도 달 라 보였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요셉을 다른 형제들보다 더 사랑하게 되었던 것이죠. 물 론 자신이 사랑했던 라헬의 첫 아들이라는 것도 하나의 요인이 되었지만은 요. 이 아버지의 사랑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죠 예, 채색 옷을 입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야곱이 요셉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것을 단 지 색동으로 이해를 하기 때문에 본문의 의미가 분명히 살아나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채색 옷이 색동옷으로 보기보다는 긴소매가 달 린 옷으로 보는 것이 원문에 더 가깝습니다. 당시 이 옷은 일하는 일꾼들이 입은 옷이 아니라 지도자층에서 입었 던 옷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요셉을 어떻게 인정을 한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야곱 가문에 장자권을 지 닌 사람으로 인정을 했다는 것입니다. 성경 한 곳을 보도록 하죠 (대상 5:1-2) 이스라 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 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 아비의 침상을 더럽게 하였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갔으나 족보에는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할 것이 아니니라 유다는 형제보 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 다로 말미암아 났을지라도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 이 구절을 통하여 짐작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 까 그렇습니다. 야곱은 이미 오래 전에 요셉을 장자로 꼽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요셉이 꿈에 대한 이야기 를 했을 때도 나타납니다. 11절 말씀을 볼까요 
그렇다면 야곱이 요셉을 사랑하는 것은 단순히 편애의 차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장자권에 대한 인정 의 차원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이에 대해서 믿음으로 야곱은 요셉의 각 아들들 에 대해서 축복하고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야곱이 믿음의 눈으로 볼 때 요셉이 장자임에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야곱에 게도 있었던 일 아닙니까 순서적으로 볼 때는 누가 장자였습니까 그렇습니다. 에서였 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장 자는 야곱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순서적인 장자는 르우벤이었지만 영적인 장자는 요셉 이었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바로 이 사실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요셉에게 긴소매가 달린 옷을 해 입혔던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요셉이 미움을 받게 되었던 이유입니다. 어떻습니까 요셉이 단순 히 고자질 때문에 아버지 의 편애 때문에 미움을 당했습니까 아닙니다. 요셉이 미움을 당한 것은 자신을 형들과 동화시키지 않으려 애썼 기 때문이며 자신에게 있는 아버지가 자신을 장자로 인정을 해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았습니다. 어느 정도 미움을 받았습니까 4절 하반 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셉에 대 한 미움이 어떻게 표현이 되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요셉에 대해서 언사가 불평하였 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번역 역시 좋은 번역은 아닙니다. 사실은 요셉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는 번역이 더 좋습니다.
그렇다면 여 기서 우리들은 형들의 미움이 얼마나 대단했던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한 집에 사는 동생 을 보고 인사조차 하지 않을 정도라는 것입니다. 아는 체도 하지 않을 정도라는 것이죠. 혹 어떤 오해로 상대방 이나를 보고 아는 척도 하지 않을 때 어떤 생각이 드시던가요. 한 가족이 다른 사람이 그러는 것도 과히 기분 좋은 일이 아닌데 이런 일을 당 해야 하는 요셉의 기분 정말 말로 다할 수 없는 그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요 셉은 자신의 형제들로부터 돌림을 당했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런 요셉의 삶은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흡사한 면이 있습니다. 성경을 한 곳 보겠습니다. (요 15:18,19) 세상 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 라 이 성경구절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어떠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떻다고 말합 니까 그렇습니다.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경우를 들어서 이야기하면 무엇 때 문이라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저들과 동화되지 않는 삶 때문입니다. 세상은 우리들을 향해 자신을 흉내 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어떠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저들을 닮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이 집요하게 우리들에게 닮으라고 말합니다. 때로는 세상의 화려함으로 유혹을 합니다. 자 신을 닮기만 하면 이 모든 화려한 것을 다 주겠노라고 말합니다. 때로는 세상의 두려움으로 협박을 하기도 합니다. 닮지 않으면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겠다 말합니다. 물질적인 피해를 입을 것이라 말합니다. 가족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 말합니다. 이렇 게 세상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들을 향해 자신을 닮으라 말합니다. 그러나 이 때 여러분들이 진정한 하나님 의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닮지 말아야 합니다. 동화되지 말 아야 합니다. 어떤 유혹이 있든 어떤 협박이 있던 자신의 믿음을 지켜야 하는 것이죠. 바로 이것 때문에 세상은 우리들을 미워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런 일로 인해 우리가 세상의 미움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 시기 바랍니다. 아니 이런 일로 인해 세상에서 핍박을 당하면 그것이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인 된 증거인 줄 알고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요셉의 삶입니다. 꿈 때문에 요셉은 이런 일로만 형제들로부터 미움을 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5절 말씀을 보십시다.  무엇 때문에 요셉이 미움을 받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꿈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요셉이 꾼 꿈은 어떤 꿈이었습니까 6,7절을 읽습니다.  이 일에 대한 형들의 반응을 보십시다. 8절입니다.  그러나 꿈 이 야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9절 말씀을 읽습니다.  이 꿈이 좀 전의 꿈과 어떻게 다릅니까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요셉의 부모도 포함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꿈에 대한 반응이 무엇입니까 11절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아버지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욀까요 그렇습니다. 요셉을 예사롭지 않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형들은 어떻습니까 그렇습니다. 더욱더 시기했다고 기록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의 이 꿈은 어떤 꿈일까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것처럼 개꿈입니까 아 니죠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꿈입니다. 이 꿈으로 인해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미움을 받았던 것이죠. 우리들도 이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의 일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 께서 보여주신 꿈이 있습니다. 혹 제가 꿈 이야기를 하면 목사님 저는 그런 꿈을 꾼 적이 없는데요 하고 말씀을 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 습니다. 저는 그런 꿈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거듭났을 때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이렇게 말합니다. (고후 4:16-18)
그러므로 우리가 낙 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 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이렇게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세상 사람들은 알지도 못 하는 꿈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꿈 때문에 우리들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 두다 세상의 영광을 꿈꾸며 살아가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그러니 자연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고 미움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꿈 때문에 세상에서 미움을 당하지 않는다면 여러분들은 잘못된 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에서의 영광을 꿈꾸기 때문에 세상은 여러분들은 미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 영광을 꿈꾼다면 틀 림없이 미움을 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요셉은 이처럼 자신을 지키려 애쓰다가 미움을 당하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꿈 때문에 미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환영을 받는 사람 입니까 오늘 이렇게 시작된 미움은 요셉이 가는 곳곳마다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고난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그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잊지 않으시고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떤 환 경 가운데서도 어떤 미움 가운데서도 든든히 설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으로부터의 미움을 두 려워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힘을 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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