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적 피조물1 (눅16:1-13,)
본문
우리 본문에 나타난 블의한 청지기의 비유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직접 들려주신 것입니다. 어떤 부자집에 청지기가 있었습니다. 그는 주인의 많은 재산을 관리하는 청지기였습니다. 그러나 그 청지기는 성실하지 못했습니다. 주인의 소유를 사기쳤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된 주인은 청지기를 불러서 파면조치를 내렸습니다. 빨리 잔무를 정리하고 떠나라고 하였습니다. 주인에게 파직 선고를 받은 청지기는 앞이 캄캄했습니다. '내가 주인께로부더 청지기직을 빼았겼으니 내가 이제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란 생각을 하였습니다. 마침내 그는 기발한 착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그 주인의 집에서 쫓겨나온 다음에도 살 수 있는 미래적 계 책이었습니다 그는 갑자기 자기 주인에게 빚을 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낱낱이 불렀습니다 그리고 특별 한 감면 조치를 취했습니나. 예컨데 기름 100말을 빚진 자에게는 60으로. 밀 백석을 빚진 자들 에게는 80으로 증서를 쓰라 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주인의 것을 가지고 자기가 선심을 썼습니다. 그는 그늘에게 '빨리 앉아 쓰라고 화급히 강요 하였습니다. 그는 모든 빚진 자에게 이런 식으로 관대를 베풀고 인심을 얻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팔레스틴에서는 혼히 지주에게 지불되는 임대료는 현금이 아니면 현물이었습니다. 현물은 주로 임대맡은 주인의 땅에서 나는 소산물 증의 일부였습니다 이 사실도 나증에 주인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주인은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주인 자신의 재물을 가지고, 앞으로 닥쳐을 청지기 자신의 장래를 위하여 지혜있게 처신하는 것을 보고, 칭찬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 사실을 두고. 이 세대의 아들들 곧 불신자들이, 빛의 아들들 곧. 신자들보다 지혜롭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르기를 [블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 주님의 이러한 비유 속에서 약간의 의심과 불안을 느낄 경우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불성실과 부정직을 칭찬한 것처럼 여겨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다시 유의하여 보십시오 결코 불의한 청지기에 내한 옳지 않은 사기적 행위에 대하여 칭찬한 것은 바로 그 청지기의 주인입니다.
주님께서 이 비유를 하신 목적중에 큰 중심은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장래. 곧 미래를 생각 하고. 준비하는 피조물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려 줌에 있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미래적 준비는 이 세대의 아들들. 보다 불신자늘이 더 지헤롭다고 히였습니다 다만 그 미래가 어떤 성격의 미래냐 함에 큰 차이가 있을 뿐입니니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비유중에서 이 비유가 나타내고 있는 미래적 피조물에 대하여 몇가지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미래적 피조물은 주제 파악에 현명합니다 그는 청지기로서의 부정직이 탄로 났음을 직감했습니다. 청지기 사무가 끝난 줄을 알았습니다. 3절이 말하기를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았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주인과 대면했을 때 올 것이 왔음을 직감했습니나. 다시는 자기 힘으로 주인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자기의 직분은 주인만의 특유한 권리 행사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내 지분을 빼앗았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육체 노동에는 힘이 한계가 있음을 직감했습니다. 그떻다고 빌어 먹자니 체면이 관계되었습니다. 부끄럽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무력함을 완전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모든 피조물 중에 유독히 인생된 피조물들에게 주어 진 문제입니다. 지음을 받은 모든 인생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지음받은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고등한 피조물입니다. 모든 인생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을 다스릴 청지기적 임무를 부여 받았습니다(창1:28) 그러나 아담은 그리고 그의 자손들은 주인이신 하나님 앎에 성실하지 못했습니다. 죄로 타락한 이후로 청지기 사역에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인생은 하나님 앞에 쫓겨나게 되고. 자연 앞에 무력하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러고 자신 앞에 무력하고 무기력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말하자면 일생은 하나님 앞에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미래적 피조물은 하나님 앞에 내가 죄인이라는 이 엄연한 주제 파악이 현명해야 합니다.
Ⅱ. 자기 미래에 대한 관심입니다 여기 청지기는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어떻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도 저회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눅16:4) 하였습니디 그래서 이 청지기는 또 불의한 방법으로 자기 미래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인의 재산을 가지고 선심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부채 감면 조치였습니다. 주인에 대하여 불의했던 칭지기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불의한 방법을 강구했습니다. 그래서 옳지 않은 방법을 써서라도. 자기의 앞날에 대한 계획을 하였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닥쳐올 불행을 타개하는 방도에 대해서 결정적인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것은 인생이 어쩔수 없이 미래적 피조물임을 입증하는 것이 됩니다. 여러분이 이미 잘알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 여러 나라를 막론하고 여러류의 보험제도를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습니다 생활 수준이 높은 나라 일수록 많은 보험 종류의 수가 더하여 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중에도 생명보험 같은 것은 그 종류가 무수합니다. 노후대책보험 실직보험. 퇴직보험, 건강보험 치아보험 자동차보험, 세대주 보험, 저당보험, 기 타 여러류의 보험들이 잘 번창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무엇윽 우리에게 보여 줍니까 인생은 미래적 피조물임을 알려 줍니다. 사람들은 자기와 가족의 미래에 대한 관심은 한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Ⅲ. 자기 미래에 대한 즉각적인 준비입니다 누가복음 16장 5-7절에 나타난 장면을 보십시오. 그는 자기의 앞날을 위하여 거침없는 행동을 개시하였습니다. 주인에게 빚진 자들은 낱낱이 블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감면 조치의 증서를 [빨리 앉아. 쓰라]고 재촉했습니다 이 본문이 우리에게 싣고 오는 의미는 그가 지체하지 않고 빨리 행동했다는 사실입니다. 너무나도 용이주도하게. 치밀히 진행하였습니다. 아주 합법적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증서를 바꾸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는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서슴치 않고. 블의를 합법화 시키기까지 하 면서 행동하였습니다. 그것은 자기에게 닥쳐 을 블행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람 들은 자기들의 앞날을 대비항에 있어서 이떻게 적극적이고 민첩합니다.
Ⅳ. 예수님의 교훈 본문 16장 8절 중에 주님께서 하고 싶은 말씀이 나옵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지혜로우니라]고 하였습니 하나닝을 모르는 불신자들이 이 세상적인 미래관은 신자들보다 앞선다는 말입니다. 영악한 세상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불신자들은 이 세상에서만 기회를 갖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목표하고 준비하는 내세가 없습니다. 내세를 모릅니다. 아니 내세를 부인합니다. 그러므로 저들의 모든 사고와 활 동은 철두철미하게 금세적이고. 현실주의적 입니다 본질적으로 말하면 이 세대의 아들들은 미래가 있는것 같지만은 실지로 없는 것입니다. 잠깐 동안의 것입니다. 밤의 한 경점 같은 것입니다 안개와 같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 준비에 급급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금세만의 미래 자기만의 미래. 육체적 한계 상황안에 미래에 대한 생각과 판단과 준비와 행동은 오히려 이 세대의 아들들이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 속에는 빛의 아들들이 미래를 위하여 준비하고 살아가야 된다는 내용이 숨어 있습니다. 결코 미래적 삶을 준비함에 있어서 이 세대의 아들들보다 뒤져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빛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청지기들입니다. 우리는 바르고 참된 미래관을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빛의 아들들은. 주제 파악에 있어서 이 세대의 아들들보다 더 본질적입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은 단순히 자기 주인께로부터 청지기직이 파면당할 줄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빛의 아들들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본질적으로 죄인인 줄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하나님께 범죄한 연고로 사랑이 본래 받은 그 고유한 청지기 직분(선지자적, 왕적. 제사장적)을 박탈당한 죄인인 줄 압니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없는 죄인인 줄을 알게 됩니다 특별계시의 안에서 알게 된 은혜입니다.
미래에 대한 관심 파악에 있어서도 내 힘이 아닌 주님의 은혜로 복직 되었음을 압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 곧 블의한 청지기는 주인께 내 직분을 빼앗겨 버렸을 때, 자기 힘으로 살지 못할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에 그의 미래적 관심은 역시 자기의 꾀와 수단과 교만에 기초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힘과 동정을 의지해서 살려고 마음 먹었습니다. 주인의 재산을 악용하고, 또 다른 사람들의 동정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두번째 사기를 쳤습니다 주인의 재산을 가지고. 자기 명분을 앞세우고, 빚진 자 들에게 선심을 쓰고, 호감을 사서, 쫓겨난 후에도 내가 잘 살아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이 세대의 아들들의 미래적 사고입니다 철두철미하게 인본주의적입니다. 그리고 이기주의적입니다. 또한 금세제일주의였습니다. 그리고 사기성을 띠고 있습니다 그러나 빛의 아들들은 철두철미하게 그 미래적 사고가 신본주의적입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 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 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갈2:20). 내가 아닌 주님입니다. 사람이 아닌 주님입니다. 사기가 아닌 신앙입니다 내 영광 내 목적. 내 증심이 아닌 주의 영광. 주님 증심입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억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J (롬14:8)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금세주의가 아닌 내세주의입니다. 일시적 미래가 아닌 영원한 미래주의입니다. 그러므로 같은 미래적 사고 같이 생각되나 그 출발과 진행과 목적이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들은 자주 자주 자기를 보존함에 있어서 어떤 다른 동물보다 어리석을 때가 있습니다 미래를 준비함에 있어서도 그떻습니다. 오리나 다른 철새들은 겨울이 오면, 벌써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갑니다. 다람쥐나 개미는 겨울을 위해서 여름에 식량을 준비합니다. 어떤 동물들은 새로운 생존을 위해 겨울에 긴 잠을 잡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법칙 과 질서에 속하는 창조적 본능에 속합니다. 그러나 인생만은 미래적 피조물로서 다른 피조물보다 우수합니다. 바로 영생하도록 지음 받은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불행스럽게 죄로 타락한 이후에 미래에 대한 생명의 지식을 삐았겨 버렸습니다. 그래서 죽도 록 미래를 위하여 산다고 하는 것이 겨우 죽음에 이르는 것에서 끝나버럽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 세대의 아들들의 잘못된 미래행각입니다 빛의 아들들에게는 확실하고 분명한 미래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앙아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의 은총입니다. 우리는 다시 본래 받은 생명의 영생성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영생을 누릴 영생의 왕국을 받았습니다. 곧 영존하는 천국입니다. 그 미래는 금세가 아닌 내세입니다 일시가 아닌 영월입니다 불의가 아닌 의와 거룩의 층만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불의한 청지기적 미래관은 없습니다 우리는 빛의 아들들이기 때문입니다. 확실하고 분명한 미래적 피조물입니다.
주님께서 이 비유를 하신 목적중에 큰 중심은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장래. 곧 미래를 생각 하고. 준비하는 피조물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려 줌에 있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미래적 준비는 이 세대의 아들들. 보다 불신자늘이 더 지헤롭다고 히였습니다 다만 그 미래가 어떤 성격의 미래냐 함에 큰 차이가 있을 뿐입니니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비유중에서 이 비유가 나타내고 있는 미래적 피조물에 대하여 몇가지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미래적 피조물은 주제 파악에 현명합니다 그는 청지기로서의 부정직이 탄로 났음을 직감했습니다. 청지기 사무가 끝난 줄을 알았습니다. 3절이 말하기를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았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주인과 대면했을 때 올 것이 왔음을 직감했습니나. 다시는 자기 힘으로 주인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자기의 직분은 주인만의 특유한 권리 행사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내 지분을 빼앗았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육체 노동에는 힘이 한계가 있음을 직감했습니다. 그떻다고 빌어 먹자니 체면이 관계되었습니다. 부끄럽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무력함을 완전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모든 피조물 중에 유독히 인생된 피조물들에게 주어 진 문제입니다. 지음을 받은 모든 인생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지음받은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고등한 피조물입니다. 모든 인생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을 다스릴 청지기적 임무를 부여 받았습니다(창1:28) 그러나 아담은 그리고 그의 자손들은 주인이신 하나님 앎에 성실하지 못했습니다. 죄로 타락한 이후로 청지기 사역에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인생은 하나님 앞에 쫓겨나게 되고. 자연 앞에 무력하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러고 자신 앞에 무력하고 무기력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말하자면 일생은 하나님 앞에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미래적 피조물은 하나님 앞에 내가 죄인이라는 이 엄연한 주제 파악이 현명해야 합니다.
Ⅱ. 자기 미래에 대한 관심입니다 여기 청지기는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어떻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도 저회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눅16:4) 하였습니디 그래서 이 청지기는 또 불의한 방법으로 자기 미래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인의 재산을 가지고 선심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부채 감면 조치였습니다. 주인에 대하여 불의했던 칭지기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불의한 방법을 강구했습니다. 그래서 옳지 않은 방법을 써서라도. 자기의 앞날에 대한 계획을 하였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닥쳐올 불행을 타개하는 방도에 대해서 결정적인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것은 인생이 어쩔수 없이 미래적 피조물임을 입증하는 것이 됩니다. 여러분이 이미 잘알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 여러 나라를 막론하고 여러류의 보험제도를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습니다 생활 수준이 높은 나라 일수록 많은 보험 종류의 수가 더하여 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중에도 생명보험 같은 것은 그 종류가 무수합니다. 노후대책보험 실직보험. 퇴직보험, 건강보험 치아보험 자동차보험, 세대주 보험, 저당보험, 기 타 여러류의 보험들이 잘 번창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무엇윽 우리에게 보여 줍니까 인생은 미래적 피조물임을 알려 줍니다. 사람들은 자기와 가족의 미래에 대한 관심은 한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Ⅲ. 자기 미래에 대한 즉각적인 준비입니다 누가복음 16장 5-7절에 나타난 장면을 보십시오. 그는 자기의 앞날을 위하여 거침없는 행동을 개시하였습니다. 주인에게 빚진 자들은 낱낱이 블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감면 조치의 증서를 [빨리 앉아. 쓰라]고 재촉했습니다 이 본문이 우리에게 싣고 오는 의미는 그가 지체하지 않고 빨리 행동했다는 사실입니다. 너무나도 용이주도하게. 치밀히 진행하였습니다. 아주 합법적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증서를 바꾸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는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서슴치 않고. 블의를 합법화 시키기까지 하 면서 행동하였습니다. 그것은 자기에게 닥쳐 을 블행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람 들은 자기들의 앞날을 대비항에 있어서 이떻게 적극적이고 민첩합니다.
Ⅳ. 예수님의 교훈 본문 16장 8절 중에 주님께서 하고 싶은 말씀이 나옵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지혜로우니라]고 하였습니 하나닝을 모르는 불신자들이 이 세상적인 미래관은 신자들보다 앞선다는 말입니다. 영악한 세상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불신자들은 이 세상에서만 기회를 갖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목표하고 준비하는 내세가 없습니다. 내세를 모릅니다. 아니 내세를 부인합니다. 그러므로 저들의 모든 사고와 활 동은 철두철미하게 금세적이고. 현실주의적 입니다 본질적으로 말하면 이 세대의 아들들은 미래가 있는것 같지만은 실지로 없는 것입니다. 잠깐 동안의 것입니다. 밤의 한 경점 같은 것입니다 안개와 같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 준비에 급급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금세만의 미래 자기만의 미래. 육체적 한계 상황안에 미래에 대한 생각과 판단과 준비와 행동은 오히려 이 세대의 아들들이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 속에는 빛의 아들들이 미래를 위하여 준비하고 살아가야 된다는 내용이 숨어 있습니다. 결코 미래적 삶을 준비함에 있어서 이 세대의 아들들보다 뒤져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빛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청지기들입니다. 우리는 바르고 참된 미래관을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빛의 아들들은. 주제 파악에 있어서 이 세대의 아들들보다 더 본질적입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은 단순히 자기 주인께로부터 청지기직이 파면당할 줄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빛의 아들들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본질적으로 죄인인 줄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하나님께 범죄한 연고로 사랑이 본래 받은 그 고유한 청지기 직분(선지자적, 왕적. 제사장적)을 박탈당한 죄인인 줄 압니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없는 죄인인 줄을 알게 됩니다 특별계시의 안에서 알게 된 은혜입니다.
미래에 대한 관심 파악에 있어서도 내 힘이 아닌 주님의 은혜로 복직 되었음을 압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 곧 블의한 청지기는 주인께 내 직분을 빼앗겨 버렸을 때, 자기 힘으로 살지 못할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에 그의 미래적 관심은 역시 자기의 꾀와 수단과 교만에 기초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힘과 동정을 의지해서 살려고 마음 먹었습니다. 주인의 재산을 악용하고, 또 다른 사람들의 동정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두번째 사기를 쳤습니다 주인의 재산을 가지고. 자기 명분을 앞세우고, 빚진 자 들에게 선심을 쓰고, 호감을 사서, 쫓겨난 후에도 내가 잘 살아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이 세대의 아들들의 미래적 사고입니다 철두철미하게 인본주의적입니다. 그리고 이기주의적입니다. 또한 금세제일주의였습니다. 그리고 사기성을 띠고 있습니다 그러나 빛의 아들들은 철두철미하게 그 미래적 사고가 신본주의적입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 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 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갈2:20). 내가 아닌 주님입니다. 사람이 아닌 주님입니다. 사기가 아닌 신앙입니다 내 영광 내 목적. 내 증심이 아닌 주의 영광. 주님 증심입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억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J (롬14:8)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금세주의가 아닌 내세주의입니다. 일시적 미래가 아닌 영원한 미래주의입니다. 그러므로 같은 미래적 사고 같이 생각되나 그 출발과 진행과 목적이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들은 자주 자주 자기를 보존함에 있어서 어떤 다른 동물보다 어리석을 때가 있습니다 미래를 준비함에 있어서도 그떻습니다. 오리나 다른 철새들은 겨울이 오면, 벌써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갑니다. 다람쥐나 개미는 겨울을 위해서 여름에 식량을 준비합니다. 어떤 동물들은 새로운 생존을 위해 겨울에 긴 잠을 잡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법칙 과 질서에 속하는 창조적 본능에 속합니다. 그러나 인생만은 미래적 피조물로서 다른 피조물보다 우수합니다. 바로 영생하도록 지음 받은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불행스럽게 죄로 타락한 이후에 미래에 대한 생명의 지식을 삐았겨 버렸습니다. 그래서 죽도 록 미래를 위하여 산다고 하는 것이 겨우 죽음에 이르는 것에서 끝나버럽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 세대의 아들들의 잘못된 미래행각입니다 빛의 아들들에게는 확실하고 분명한 미래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앙아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의 은총입니다. 우리는 다시 본래 받은 생명의 영생성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영생을 누릴 영생의 왕국을 받았습니다. 곧 영존하는 천국입니다. 그 미래는 금세가 아닌 내세입니다 일시가 아닌 영월입니다 불의가 아닌 의와 거룩의 층만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불의한 청지기적 미래관은 없습니다 우리는 빛의 아들들이기 때문입니다. 확실하고 분명한 미래적 피조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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