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의 종교 (삿17:1)
본문
오늘 우리 한국 교회가 하나님께 감사해야할 제목들은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먼저 하나님께 회개해야할 죄들도 많이 있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오늘 우리의 잘못된 신앙생활 때문에 하나님께 욕을 돌리고 있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미가가 살았던 사사시대는 오늘 한국 교회의 신앙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저들이 제 하고 싶은대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삿17: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하는 것이 사사 시대의 영적 상태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신앙생활은 마치 무정부 상태와 같습니다. 제 마음대로 신앙생활합니다. 선악을 아는 것의 기준이 제 중심이 되어서 제게 맞으면 그것은 옳은 것이고, 제 뜻에 틀리면 진리고 하나님이고 없습니다. 제 소견에 옳은대로 하는 것이 자유입니까 그것은 자유가 아니고 방종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옳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인간의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된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에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주관과 자율이 신앙생활의 원수입니다. 사사 시대의 영적인 상태가 어떠합니까 그 때의 혼란은 중요한 세 가지 공동체가 다 무너진 모습임을 보여줍니다.
첫째로, 가정의 혼란입니다. 미가의 가정의 가정의 혼란 부터 살펴봅시다. 사사기 17장에는 다음과 같은 사건이 나옵니다.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는 사람이 어머니와 둘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돈 은 일천 일백 일백을 잃어 버렸습니다. 화가 난 어머니는 온갖 말로 훔쳐간 도둑이 제자식인줄도 모르고 도적을 향하여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보다는 어머니의 저주에 겁이 잔뜩 난 미가는 “사실은 제가 가져 갔습니다”하고 자수하였습니다. 이 때에 아들의 자수를 기쁘게 받고 그 어머니는 하나님께 바친 셈치고 그 돈을 다시 아들에게 돌려 주었습니다. 아들의 잘못을 마땅히 나무라고 야단을 쳐야 할 어머니는 잃었던 은을 찾는 데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돈을 찾은 사실로 인하여 기뻐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영영 못 찾을 줄 알았는데 아들이 간직하고 있었다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면서 오히려 아들에게 축복을 내립니다. 어미가 가로되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받기를 원하노라(2절) 이 어머니의 믿음은 여호와를 믿는다고 말을 하지만, 순전한 유물주의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복을 빌지만, 그 기도는 하나님의 영광이나,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이기적인 세상의 보이는 물질의 복을 추구하는 기복주의의 기도입니다. 그가 자식을 초달하지 못하는 사랑 또한 맹목적이고, 결국 자식을 죽이는 사랑입니다. 그 아들인 미가는 또 어떻습니까 이 일을 기념하여 그 어머니가 준 은 이백으로 자기 신당과 우상과 드라빔(가정 수호신의 통칭)을 만들고 또 제단도 꾸몄습니다. 에봇(제사장이 제사할 때 입는 옷)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해놓고 자기 집에 신당을 꾸며 놓고 이름 붙이기를 ‘하나님’이라 했습니다. 이들의 신앙은 크게 죄를 범한 것 같지도 않으면서 가만히 집에 있으면서 십계명의 대부분의 계명을 다 범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들이 뚜렷하게 무엇을 잘못한 것 같지도 않은데 실은 엄청난 죄를 하나님께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가는 탐심을 가지고 어머니를 속이고 어머니의 돈을 훔쳤습니다. 이는 십계명의 5, 8, 9, 10 계명을 어긴 죄가 됩니다. 그 어머니가 아들의 죄에 대하여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복을 빌었습니다. 얼마나 영적으로 타락된 모습입니까 우리들의 자녀 교육은 이렇지 않습니까 미가가 어머니가 주는 돈으로 신당을 꾸미고 신상을 만들며 그 이름을 하나님이라고 부른 것은 1, 2, 3계명을 다 어긴 것입니다. 이같이 모든 범죄는 다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 어머니도 돈을 잃어 버렸다가 찾았고, 그러니다 된 것 같습니다. 미가를 축복했으니 얼마나 신앙적인 것 같습니까 하나님께 얼마를 드린다고 했고, 또 미가는 그것으로 하나님이라는 신상을 만들고 신당에 모셔 놓고 하나님을 섬겼으니 잘못한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여기다가 하나님께 복 받기 위해서 제사장을 고용했습니다. 많은 사례를 주면서… 잘못한 것이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우리의 행위를 살펴보면서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하면서 회개할 죄목을 찾지 못합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복 주실 것이라고 믿었던 미가의 어머니같이 하나님께도 신앙으로 바로 서 있는 줄 압니다. 우리가 성경을 펼치지 않고 제 마음대로 제 주관을 따라서 신앙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잘못인가를 알아야합니다. 그 때에 왕이 없으므로 제 소견에 옳은대로 행했던 것 같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으므로 전부가 제 중심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을 생각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망할 길을 걸으면서도 흥할 것으로 복 주실 것으로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물주의, 기복주의, 이기주의를 극복하지 않으면 신앙이 아닙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가정의 혼란 아닙니까 부모의 맹목적 사랑으로 자녀를 다 망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축복이 아니요, 저주입니다. 우리 집의 하나님은 돈이 아닙니까 그 부모가 돈을 중심하여 살면 그 자녀도 물질 주의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둘째로, 교회의 혼란입니다. 그렇게 만든 신과 제단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신앙생활을 하던 어느날 그들에게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유다 가족에 속한 유다 베들레헴에 한 소년이 있으니 그는 레위인으로서 거기 우거하였더라 이 사람이··· 거할 곳을 찾고자 하여 그 성읍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서 행하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매(삿 17:7)” 유다 베들레헴은 이스라엘의 중간 쯤에 위치하고 있고 에브라임은 그 윗 산지에 있습니다. 미가 모자는 이 사람이 레위인이라고 하니까 “잘 되었소. 당신 우리 산당에서 제사장 노릇하시오. 당신은 레위인 아니오” 하였습니다. 미가는 레위 소년에게 일년에 연봉으로 은 열과 의복 한벌과 따로 음식을 주기로 했습니다. 당시에 은 열이면 오늘날 800만원 쯤 됩니다. 은 천 백 중에서 이백만 쓰고 구백이 남았는데 일년에 연봉을 열씩 주기로 했으니까 90년간 줄 사례비가 마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삿17:10) 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거하여 나를 위하여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식물을 주리라 하므로 레위인이 들어갔더니 하나님의 성전을 섬기고 살아아할 제사장들이나 레위인들이 그들이 하나님께 부여 받은 사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거처할 성을 떠나서 방황합니다. 백성들이 마땅히 드려야할 것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으므로 제사장들이나, 레위인들이 그냥 성안에서 죽기까지 기다릴 수 없는 노릇이지만,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성전은 황폐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요나단이라는 레위인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지 않고 자기 살 것을 생각하고 안식처를 찾다가 미가에게 발견되어 그 집에 고용이 됩니다. 하나님의 종들을 고용인으로 생각하는 데서 성전의 타락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종들도 먹고 살기 위해서 자기 살 것을 찾아 다니고 직업으로서 목회하고 선교하고 한다면 교회는 타락된 것입니다. 미가는 자기 집을 위한 제사장으로 요나단 레위인을 채용했고, 그에게 월급을 주었던 것입니다. 목회자의 월 사례를 월급이라고 하지 않는데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교인들에게 고용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밥 벌어 먹기 위해서한다면 다른 직업을 취하는 것이 낫습니다. 오늘 실직당한 많은 젊은 이들이 할 일 없으면 농사나 지을까 하는 것 같이 목회나 해볼까 하지만 농사 짓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입니까 목회가 직업으로 분류되는 것은 타락입니다. 요나단 그는 전적으로 영적인 사역자가 아닙니다. 돈을 목적으로 미가의 집에 고용된 제사장입니다. 요나단은 하나님의 대변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자가 아닙니다. 그는 미가의 집에 사람들이 듣기 좋아 하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더 많은 더 좋은 자리가 나타났을 때에 요나단은 미가의 집을 떠납니다. 이것을 보면 그의 중심을 압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하나님께서 가라는 곳에 가고 있으라는 곳에 머뭅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사역지를 주실 때까지는 그 어떤 것으로 인하여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소비자가 왕’이라는 인식으로 교역자는 교인이 원하는 것이면 어떤 것을 못하겠느냐 하는 서비스 정신!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요,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자이지 교인들을 위하여 세운 사람이 아닙니다. 요나단이 미가의 집을 축복하기 위해 고용된 것 같이 오늘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복을 빌어주는 무당과 같이 전락된 것이 한국교회의 타락입니다.
셋째로, 사회의 혼란입니다. 당시에 단 지파는 자신들이 살 땅을 얻지 못해고 여기저기 정탐꾼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한 무리가 미가의 가정에 이르러 레위 소년을 만났습니다. 정탐꾼은 레위 소년이 그곳에 살고 있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소년은 자초지종을 자세히 말해 주었습니다. 정탐꾼들도 ‘우리가 지금 땅을 정탐하러 왔는데 앞길을 알려 주시오’ 부탁하였습니다. 소년은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할 것입니다’ 축복하여 보냈습니다. 기왕이면 이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갔습니다. 승리할 것으로 예언한 제사장의 말을 믿으니 든든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다섯 사람이 떠나라이스에 이르러 거기 있는 백성을 본즉 염려없이 거하더라(삿 18:7)” 정탐꾼들은 라이스 족속이 만만해 보이자 돌아가 단 지파를 끌고와 그 땅을 차지하기 전에 미가의 집에 들려 레위 제사장과 신상을 빼앗아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라이스 족속을 쳐서 그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들은 기왕이면 제사장을 데리고 다니면 더 복을 받고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완전히 제 중심입니다. 그들이 미가가 만들었던 신상을 뺏고 신을 뺏고 제사장을 뺏습니다. 이들이 여호와 신앙을 완전히 우상종교로 만들었습니다. 나중에 자신의 신상과 제사장을 빼앗아간 것을 알게 된 미가가 쫓아와 “왜 내 제사장과 신상을 빼앗아 갑니까” 항의 하였습니다. 단 지파는 자신들의 수(數)와 무기로 미가를 위협했습니다. 미가는 겁에 질려 되돌아갔습니다. 17,18장에 걸친 미가의 사건은 도대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 시대에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삼지 않고 제멋대로 행하였던 것입니다. 미가가 한 일이 얼마나 엉뚱하고 말도 안되는 일입니까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이 때에 거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이때까지 기업의 땅 분배함을 얻지 못하였음이라(삿 18:1)”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단 지파가 아직 아직 자신들이 살 땅을 얻지 못하였구나’생각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을 정복해서 얻은 땅이 아니라 제비 뽑아서 얻은 땅이기 때문입니다. 정복하기 전에 지도를 펴놓고 제비 뽑아서 나누어 가진 땅입니다. 물론 전쟁이라는 수단이 사용되기는 했으나 사실은 싸우러 들어가기만 하면 얻는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아직도 ‘살 땅이 없어서 찾고 있는 중’이라고 하였습니다. 단 지파는 레위 소년 제사장을 만나서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요 ‘그렇다, 왜 우리는 이 생각을 못했을까 우리가 행하는 일들에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있어 그가 우리를 위하여 축복하면 잘 될텐데. 이런 개인의 가정에서도 하는데 우리는 이 생각을 못했구나’ 그래서 제사장과 신상을 빼앗아갑니다. 미가는 쫓아가면서 ‘내 신과 내 제사장을 내놓아라’ 요구합니다. 미가의 요구는 옳습니다. 자기가 만든 신이고, 자기가 세운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러나 소년 제사장은 미가의 집을 떠나 단 지파를 따라가면서 좋아합니다. ‘한 가정의 제사장이 되느니 한 지파의 제사장이 되는게 아무래도 낫지’ 오늘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작은 교회보다는 큰 교회가 낫지’입니다. 사회는 교회의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기독교를 하나의 종교로만 알게한 것이 교회의 책임입니다. 이스라엘 초대교회 때는 교회가 능력이 있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계셨고, 구원의 방주입니다. 그러나 오늘에는 교회는 자선단체요, 사교집단 같이 전락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그렇게 봅니다. 이 책임을 교회가 져야합니다. 사사시대 당시에는 몽땅 이런 사람들만 모여 살았습니다. 마가도 미가의 어머니도 레위인도, 단지파 사람들도 다 그렇습니다. 그들이 왜 그랬을까요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다는 이 말씀을 잘 음미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왕이 되지 못했습니다. 영적주인이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이 있지만, 관심도 없고 이방인들과 섞여 살면서 그들이 자기 신을 섬기는 방법 대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했던 것입니다. 오늘 주관적인 믿음은 이단이 됩니다. 하나님을 우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모릅니다. 기독교가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을 가지 못할 때 우상 종교로 전락합니다. 이러면 가정도 교회도 사회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우상 종교는 삶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고난이 찾아올 때 그 역경을 견뎌 내지 못합니다. 복받기만을 바라던 사람에게 축복이 아닌 고통이 찾아올 때,그 빈껍데기뿐인 신앙이 드러납니다.신앙의 내용 없이 자기의 유익만을 추구하고 복받기만을 바래서 종교 형식을 지키는 사람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미가의 신앙모습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 생활을 점검하고 참된 믿음을 소유하기 바랍니다.우리 가정의 오랜 관습으로 인해 숨기워진 우상을 깨뜨려야합니다. 우리 교회가 이렇습니다. 모든 우상종교와 같은 기복적이고, 형식적인 신앙, 유물주의의 신앙을 벗어나지 못하면 기독교는 이 세상을 변화 시킬 수가 없습니다.
첫째로, 가정의 혼란입니다. 미가의 가정의 가정의 혼란 부터 살펴봅시다. 사사기 17장에는 다음과 같은 사건이 나옵니다.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는 사람이 어머니와 둘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돈 은 일천 일백 일백을 잃어 버렸습니다. 화가 난 어머니는 온갖 말로 훔쳐간 도둑이 제자식인줄도 모르고 도적을 향하여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보다는 어머니의 저주에 겁이 잔뜩 난 미가는 “사실은 제가 가져 갔습니다”하고 자수하였습니다. 이 때에 아들의 자수를 기쁘게 받고 그 어머니는 하나님께 바친 셈치고 그 돈을 다시 아들에게 돌려 주었습니다. 아들의 잘못을 마땅히 나무라고 야단을 쳐야 할 어머니는 잃었던 은을 찾는 데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돈을 찾은 사실로 인하여 기뻐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영영 못 찾을 줄 알았는데 아들이 간직하고 있었다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면서 오히려 아들에게 축복을 내립니다. 어미가 가로되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받기를 원하노라(2절) 이 어머니의 믿음은 여호와를 믿는다고 말을 하지만, 순전한 유물주의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복을 빌지만, 그 기도는 하나님의 영광이나,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이기적인 세상의 보이는 물질의 복을 추구하는 기복주의의 기도입니다. 그가 자식을 초달하지 못하는 사랑 또한 맹목적이고, 결국 자식을 죽이는 사랑입니다. 그 아들인 미가는 또 어떻습니까 이 일을 기념하여 그 어머니가 준 은 이백으로 자기 신당과 우상과 드라빔(가정 수호신의 통칭)을 만들고 또 제단도 꾸몄습니다. 에봇(제사장이 제사할 때 입는 옷)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해놓고 자기 집에 신당을 꾸며 놓고 이름 붙이기를 ‘하나님’이라 했습니다. 이들의 신앙은 크게 죄를 범한 것 같지도 않으면서 가만히 집에 있으면서 십계명의 대부분의 계명을 다 범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들이 뚜렷하게 무엇을 잘못한 것 같지도 않은데 실은 엄청난 죄를 하나님께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가는 탐심을 가지고 어머니를 속이고 어머니의 돈을 훔쳤습니다. 이는 십계명의 5, 8, 9, 10 계명을 어긴 죄가 됩니다. 그 어머니가 아들의 죄에 대하여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복을 빌었습니다. 얼마나 영적으로 타락된 모습입니까 우리들의 자녀 교육은 이렇지 않습니까 미가가 어머니가 주는 돈으로 신당을 꾸미고 신상을 만들며 그 이름을 하나님이라고 부른 것은 1, 2, 3계명을 다 어긴 것입니다. 이같이 모든 범죄는 다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 어머니도 돈을 잃어 버렸다가 찾았고, 그러니다 된 것 같습니다. 미가를 축복했으니 얼마나 신앙적인 것 같습니까 하나님께 얼마를 드린다고 했고, 또 미가는 그것으로 하나님이라는 신상을 만들고 신당에 모셔 놓고 하나님을 섬겼으니 잘못한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여기다가 하나님께 복 받기 위해서 제사장을 고용했습니다. 많은 사례를 주면서… 잘못한 것이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우리의 행위를 살펴보면서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하면서 회개할 죄목을 찾지 못합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복 주실 것이라고 믿었던 미가의 어머니같이 하나님께도 신앙으로 바로 서 있는 줄 압니다. 우리가 성경을 펼치지 않고 제 마음대로 제 주관을 따라서 신앙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잘못인가를 알아야합니다. 그 때에 왕이 없으므로 제 소견에 옳은대로 행했던 것 같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으므로 전부가 제 중심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을 생각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망할 길을 걸으면서도 흥할 것으로 복 주실 것으로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물주의, 기복주의, 이기주의를 극복하지 않으면 신앙이 아닙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가정의 혼란 아닙니까 부모의 맹목적 사랑으로 자녀를 다 망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축복이 아니요, 저주입니다. 우리 집의 하나님은 돈이 아닙니까 그 부모가 돈을 중심하여 살면 그 자녀도 물질 주의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둘째로, 교회의 혼란입니다. 그렇게 만든 신과 제단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신앙생활을 하던 어느날 그들에게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유다 가족에 속한 유다 베들레헴에 한 소년이 있으니 그는 레위인으로서 거기 우거하였더라 이 사람이··· 거할 곳을 찾고자 하여 그 성읍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서 행하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매(삿 17:7)” 유다 베들레헴은 이스라엘의 중간 쯤에 위치하고 있고 에브라임은 그 윗 산지에 있습니다. 미가 모자는 이 사람이 레위인이라고 하니까 “잘 되었소. 당신 우리 산당에서 제사장 노릇하시오. 당신은 레위인 아니오” 하였습니다. 미가는 레위 소년에게 일년에 연봉으로 은 열과 의복 한벌과 따로 음식을 주기로 했습니다. 당시에 은 열이면 오늘날 800만원 쯤 됩니다. 은 천 백 중에서 이백만 쓰고 구백이 남았는데 일년에 연봉을 열씩 주기로 했으니까 90년간 줄 사례비가 마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삿17:10) 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거하여 나를 위하여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식물을 주리라 하므로 레위인이 들어갔더니 하나님의 성전을 섬기고 살아아할 제사장들이나 레위인들이 그들이 하나님께 부여 받은 사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거처할 성을 떠나서 방황합니다. 백성들이 마땅히 드려야할 것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으므로 제사장들이나, 레위인들이 그냥 성안에서 죽기까지 기다릴 수 없는 노릇이지만,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성전은 황폐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요나단이라는 레위인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지 않고 자기 살 것을 생각하고 안식처를 찾다가 미가에게 발견되어 그 집에 고용이 됩니다. 하나님의 종들을 고용인으로 생각하는 데서 성전의 타락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종들도 먹고 살기 위해서 자기 살 것을 찾아 다니고 직업으로서 목회하고 선교하고 한다면 교회는 타락된 것입니다. 미가는 자기 집을 위한 제사장으로 요나단 레위인을 채용했고, 그에게 월급을 주었던 것입니다. 목회자의 월 사례를 월급이라고 하지 않는데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교인들에게 고용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밥 벌어 먹기 위해서한다면 다른 직업을 취하는 것이 낫습니다. 오늘 실직당한 많은 젊은 이들이 할 일 없으면 농사나 지을까 하는 것 같이 목회나 해볼까 하지만 농사 짓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입니까 목회가 직업으로 분류되는 것은 타락입니다. 요나단 그는 전적으로 영적인 사역자가 아닙니다. 돈을 목적으로 미가의 집에 고용된 제사장입니다. 요나단은 하나님의 대변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자가 아닙니다. 그는 미가의 집에 사람들이 듣기 좋아 하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더 많은 더 좋은 자리가 나타났을 때에 요나단은 미가의 집을 떠납니다. 이것을 보면 그의 중심을 압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하나님께서 가라는 곳에 가고 있으라는 곳에 머뭅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사역지를 주실 때까지는 그 어떤 것으로 인하여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소비자가 왕’이라는 인식으로 교역자는 교인이 원하는 것이면 어떤 것을 못하겠느냐 하는 서비스 정신!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요,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자이지 교인들을 위하여 세운 사람이 아닙니다. 요나단이 미가의 집을 축복하기 위해 고용된 것 같이 오늘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복을 빌어주는 무당과 같이 전락된 것이 한국교회의 타락입니다.
셋째로, 사회의 혼란입니다. 당시에 단 지파는 자신들이 살 땅을 얻지 못해고 여기저기 정탐꾼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한 무리가 미가의 가정에 이르러 레위 소년을 만났습니다. 정탐꾼은 레위 소년이 그곳에 살고 있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소년은 자초지종을 자세히 말해 주었습니다. 정탐꾼들도 ‘우리가 지금 땅을 정탐하러 왔는데 앞길을 알려 주시오’ 부탁하였습니다. 소년은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할 것입니다’ 축복하여 보냈습니다. 기왕이면 이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갔습니다. 승리할 것으로 예언한 제사장의 말을 믿으니 든든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다섯 사람이 떠나라이스에 이르러 거기 있는 백성을 본즉 염려없이 거하더라(삿 18:7)” 정탐꾼들은 라이스 족속이 만만해 보이자 돌아가 단 지파를 끌고와 그 땅을 차지하기 전에 미가의 집에 들려 레위 제사장과 신상을 빼앗아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라이스 족속을 쳐서 그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들은 기왕이면 제사장을 데리고 다니면 더 복을 받고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완전히 제 중심입니다. 그들이 미가가 만들었던 신상을 뺏고 신을 뺏고 제사장을 뺏습니다. 이들이 여호와 신앙을 완전히 우상종교로 만들었습니다. 나중에 자신의 신상과 제사장을 빼앗아간 것을 알게 된 미가가 쫓아와 “왜 내 제사장과 신상을 빼앗아 갑니까” 항의 하였습니다. 단 지파는 자신들의 수(數)와 무기로 미가를 위협했습니다. 미가는 겁에 질려 되돌아갔습니다. 17,18장에 걸친 미가의 사건은 도대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 시대에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삼지 않고 제멋대로 행하였던 것입니다. 미가가 한 일이 얼마나 엉뚱하고 말도 안되는 일입니까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이 때에 거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이때까지 기업의 땅 분배함을 얻지 못하였음이라(삿 18:1)”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단 지파가 아직 아직 자신들이 살 땅을 얻지 못하였구나’생각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을 정복해서 얻은 땅이 아니라 제비 뽑아서 얻은 땅이기 때문입니다. 정복하기 전에 지도를 펴놓고 제비 뽑아서 나누어 가진 땅입니다. 물론 전쟁이라는 수단이 사용되기는 했으나 사실은 싸우러 들어가기만 하면 얻는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아직도 ‘살 땅이 없어서 찾고 있는 중’이라고 하였습니다. 단 지파는 레위 소년 제사장을 만나서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요 ‘그렇다, 왜 우리는 이 생각을 못했을까 우리가 행하는 일들에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있어 그가 우리를 위하여 축복하면 잘 될텐데. 이런 개인의 가정에서도 하는데 우리는 이 생각을 못했구나’ 그래서 제사장과 신상을 빼앗아갑니다. 미가는 쫓아가면서 ‘내 신과 내 제사장을 내놓아라’ 요구합니다. 미가의 요구는 옳습니다. 자기가 만든 신이고, 자기가 세운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러나 소년 제사장은 미가의 집을 떠나 단 지파를 따라가면서 좋아합니다. ‘한 가정의 제사장이 되느니 한 지파의 제사장이 되는게 아무래도 낫지’ 오늘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작은 교회보다는 큰 교회가 낫지’입니다. 사회는 교회의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기독교를 하나의 종교로만 알게한 것이 교회의 책임입니다. 이스라엘 초대교회 때는 교회가 능력이 있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계셨고, 구원의 방주입니다. 그러나 오늘에는 교회는 자선단체요, 사교집단 같이 전락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그렇게 봅니다. 이 책임을 교회가 져야합니다. 사사시대 당시에는 몽땅 이런 사람들만 모여 살았습니다. 마가도 미가의 어머니도 레위인도, 단지파 사람들도 다 그렇습니다. 그들이 왜 그랬을까요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다는 이 말씀을 잘 음미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왕이 되지 못했습니다. 영적주인이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이 있지만, 관심도 없고 이방인들과 섞여 살면서 그들이 자기 신을 섬기는 방법 대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했던 것입니다. 오늘 주관적인 믿음은 이단이 됩니다. 하나님을 우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모릅니다. 기독교가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을 가지 못할 때 우상 종교로 전락합니다. 이러면 가정도 교회도 사회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우상 종교는 삶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고난이 찾아올 때 그 역경을 견뎌 내지 못합니다. 복받기만을 바라던 사람에게 축복이 아닌 고통이 찾아올 때,그 빈껍데기뿐인 신앙이 드러납니다.신앙의 내용 없이 자기의 유익만을 추구하고 복받기만을 바래서 종교 형식을 지키는 사람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미가의 신앙모습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 생활을 점검하고 참된 믿음을 소유하기 바랍니다.우리 가정의 오랜 관습으로 인해 숨기워진 우상을 깨뜨려야합니다. 우리 교회가 이렇습니다. 모든 우상종교와 같은 기복적이고, 형식적인 신앙, 유물주의의 신앙을 벗어나지 못하면 기독교는 이 세상을 변화 시킬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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