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결 인생 (행24:10-23)
본문
광청이나 회사엘 가보면 그 사무실의 책임자의 책상 위에는 두 개의 서루함이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는 아직까지 처리된지 못한 미결의 수류를 두는 함이 잇고 다른 하나는 이미 결재가된 기결 서류를 두는 함이 있다. 책임자는 출근을 하자마자 미결의 서류를 심사하여 하나 하나 완결해 나가는 것이다. 같은 여건에 같은 시간에 많은 분량의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떤 사람은 조금밖에는 처리를 못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전부를 미결로 둔채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을 미결인생이라 할 수 있다. 오늘 본문에 벨리스라는 가이샤라에 주재하는 로마의 총독이 있는 바로 이 사람이 미결인생인 것이다.
1,임무를 미결로 남겼다. "'" 베릭스는 로마 제국이 가이샤라지방의 총독으로 임명한 사람이다. 총독으로 임명을 받았으면 총독의 임무에 충실했어야한다. 총독이 하는 일 중에 중요한 것은 재판일 것이다. 백성들이 제기하는 송사를 공정하고 신속하게 처리하여 정직한 자가 억울하게 피해를 당하지 아니하도록 해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베릭스 총독은 이런 막중한 대임의 직무를 미결로 둔 사람이다. 당시 유대인의 송사를 받아들여서 사도 바울을 감옥에 가두어 두고는 자신의 임기가 끝날때까지 즉 2년이 지나는 동안 재판을 미결로 보류해 두었다가 후임자에게 무책임하게 인게한 사람이다. 이는 책임을 맡은총독으로서의 큰 과오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임무를 맡긴 국가에 대한 배신의 행위라 할 수 있겠다. 베릭스가 이렇게 책임을 다 하지 못한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벨릭스의 무능이었다. - 총독이라는 명예와 감투는 탐했지만 그 직임을 감당하기에는 능력이 태부족이었다. 분수에 넘치는 직임을 맏았으면 최선을 다하는 열심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벨릭스에겐 성의마져도 없었다.
둘째는 우유부단해서였다. 벨릭스는 총독의 직임을 자기의 소신을 따라 일하지 아니하고 남의 눈치만 살펴가며 남의 기분에 영합하려는 우유부단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유대인들의 눈치를 살피느라고 재판을 미결로 둔채 허송세월만 보내었던 무능한 총독이었다. 세째는 이기적이었다. 맡은 일을 최선을 다하여 정당하게 처리하여 국가나 사회에 공익을 도모하려하지 않고 자기의 게인적인 이익만을 추구했던 사람이었다. 즉 바울을 재판하면 응단 무죄로 판명될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바울을 무죄로 판명하면 석방을 해야하는데 그렇게 되는 날에는 유대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완결할 수 있는 일을 미결로 미루어 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네째는 돈을 탐하는 탐관오리였다. 26절에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벨릭스는 총독으로써 나라의 녹을 먹는 몸인데 자기의 막강한 직임을 악용하여 죄수들로부터 금품을 갈취했던 사람이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벨릭스 총독은총독으로써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미결의 인생으로 실들고 있는 것이다.
2,회개를 미결로 남겼다. " 벨릭스 총독은 옥에 같여 있는 바울을 자주 불러서 면담했다. 물론 그렇게 한 배경은 그의 부인인 벨릭스의 마음을 즐겁게 하여줄려는 것과 또 바울로부터 금품이나 얻을까해서 였다.
그런데 이런 벨릭스의 흑심을 빤히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은 25절에서 의와 절제에 관한 것과 장차 올 심판에관해서 강론했던 것이다. 25절에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 벨릭스는 바울의 말을 들을 때 두려워했다고 했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 벨릭스의 생활이 정상이 아니었다. 지금의 부인인 드루실라는 세번째의 부인이되는 것이다. 그것도 처녀를 부인으로 맞은 것이 아니고 에멘사의 왕 아지스의 아내인 드루실라의 미모에 반하여 구부로 출신 마술사인 시몬을 매수하여 드루실라를 유혹했던 것이다. 드루실라도 마찬가지로 음탕한 여인이었다. 드루실라는 야고보를 살해한 헤롯 아그립바 1세의 딸로 두번째 남편인 아지스와 결혼하여 살다가 벨릭스와 눈이 맞아 아지스를 버리고 벨릭스를 세번째의 남편으로 둔 것이다. 똑 같이 무절제한 것들끼리 만났으니 바울의 장차 올 심판의 강론은 두려울 수 박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벨릭스가 바울의 강론을 듣고 마음에 찌렸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마음의 두려움이란 바로 벨릭스를 회개의 자리로 인도하고 있음이 분명하질 않은가
그런데 25절 하반절에 무어라고 하고 있는가 ".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벨릭스는 회개의 기회를 미결로 미루고 있다. 시방 해야할 일은 회개이것만 그 좋은 마음의 소리를 외면하고 미결로 처리하고 있는 벨릭스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마음의 가책을 받으면서도 회개를 제때에 하지 못하는 이유들이 있다.
첫째는 나만이 그런 죄인인가하는 배짱때문이다.
둘째는 회개하기에는 죄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세째는 회개함으로 받게될 손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네째는 회개말고 달리 방법이 있을 것같은 막연한 기대때문이다. 영국의 문호 세익스피어는 이런 말을 했다. "연기하는 것은 위험한 종말을 초래한다:고. 양심의 소리를 미결로 두지 말라.
3,기회를 미결로 남겼다. " 일생에 기회가 자주 찾아 오는게 아니다. 빌라도에게도 예수를 놓아줄 구실도 있었고 그럴 수 있는 권한도 있었다.
그런데 빌라도는 그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말앗다. 당시의 관레로 명절이면 죄수중 모범수를 한명 골라서 방면하는 일이 있었다. 오를의 본문만 보더라도 2년이 흘러 갔다.
그렇다면 명절이 두번이나 지나간 것이된다. 다시 말해서 벨릭스는 바울을 놓아 줄 좋은 기회가 두번이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벨릭스는 임기가 끝나서 이임식을 하는 날까지 바울을 감옥에다 그냥 가두어 놓았던 것이다. 역사가들의 전하는 바에 의하여 지금 정식으로 벨릭스의 임기가 끝나서 교체가 됨이 아니라 벨릭스의 무능과 잔임함을 로마의 백성들이 로마 황제에게 고발을 했기 때문에 로마로 소환되고 있는 것이라 한다. 그때 그의 형 팔라의 도움으로 간신히 죽음만은 면했지만 후일 벨릭스는 초라하게 살다가 미결로 인생을 끝내었다는 것이다. 미결인생 이는 실패의 인생이다. 인간은 미결로 끝내어서는 않된다. 마25장에 달란트의 비유가 있다. 두달란트와 다섯 달란트를 남긴 완결의 인생이 있는가하면 반면에 한 달란트를 받은 미결의 인생이 있음을 우리들은 안다. 벌써 1990년도도 다 저물어 가고 있다. 이제 한 주일만 있으면 인 새해가 되는 것이다. 한해를 살아 온 육신의 장부는 결산도 하고 예산도 세우면서도 육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사람의 장부는 왜 결산을 하려하지 않은가 S.Smilth 의 말처럼 "사람들은 오늘 먹을 음식을 내일로 미루지는 않으면서도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일은 곧 잘한다" 라고 했던 것처럼 우리 모두에게는 내일로 미루지 못할 일들이 있다. 더우기 이 1990년을 그냥 넘겨서는 않되는 일들이 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의 문제들이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바 직임의 완결을 위하여 나는 최선을 다했는가 나는 하나님 아버지께 눈물로 아뢰어야 할 회개의 제목들은 정리를 했는가 나의 육신적인 생활은 하나님 보시기에 정당한 것인가 이런 저런 문제에 우리들은 대답을 하고 이 해를 보내어야할 것이다.
1,임무를 미결로 남겼다. "'" 베릭스는 로마 제국이 가이샤라지방의 총독으로 임명한 사람이다. 총독으로 임명을 받았으면 총독의 임무에 충실했어야한다. 총독이 하는 일 중에 중요한 것은 재판일 것이다. 백성들이 제기하는 송사를 공정하고 신속하게 처리하여 정직한 자가 억울하게 피해를 당하지 아니하도록 해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베릭스 총독은 이런 막중한 대임의 직무를 미결로 둔 사람이다. 당시 유대인의 송사를 받아들여서 사도 바울을 감옥에 가두어 두고는 자신의 임기가 끝날때까지 즉 2년이 지나는 동안 재판을 미결로 보류해 두었다가 후임자에게 무책임하게 인게한 사람이다. 이는 책임을 맡은총독으로서의 큰 과오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임무를 맡긴 국가에 대한 배신의 행위라 할 수 있겠다. 베릭스가 이렇게 책임을 다 하지 못한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벨릭스의 무능이었다. - 총독이라는 명예와 감투는 탐했지만 그 직임을 감당하기에는 능력이 태부족이었다. 분수에 넘치는 직임을 맏았으면 최선을 다하는 열심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벨릭스에겐 성의마져도 없었다.
둘째는 우유부단해서였다. 벨릭스는 총독의 직임을 자기의 소신을 따라 일하지 아니하고 남의 눈치만 살펴가며 남의 기분에 영합하려는 우유부단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유대인들의 눈치를 살피느라고 재판을 미결로 둔채 허송세월만 보내었던 무능한 총독이었다. 세째는 이기적이었다. 맡은 일을 최선을 다하여 정당하게 처리하여 국가나 사회에 공익을 도모하려하지 않고 자기의 게인적인 이익만을 추구했던 사람이었다. 즉 바울을 재판하면 응단 무죄로 판명될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바울을 무죄로 판명하면 석방을 해야하는데 그렇게 되는 날에는 유대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완결할 수 있는 일을 미결로 미루어 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네째는 돈을 탐하는 탐관오리였다. 26절에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벨릭스는 총독으로써 나라의 녹을 먹는 몸인데 자기의 막강한 직임을 악용하여 죄수들로부터 금품을 갈취했던 사람이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벨릭스 총독은총독으로써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미결의 인생으로 실들고 있는 것이다.
2,회개를 미결로 남겼다. " 벨릭스 총독은 옥에 같여 있는 바울을 자주 불러서 면담했다. 물론 그렇게 한 배경은 그의 부인인 벨릭스의 마음을 즐겁게 하여줄려는 것과 또 바울로부터 금품이나 얻을까해서 였다.
그런데 이런 벨릭스의 흑심을 빤히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은 25절에서 의와 절제에 관한 것과 장차 올 심판에관해서 강론했던 것이다. 25절에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 벨릭스는 바울의 말을 들을 때 두려워했다고 했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 벨릭스의 생활이 정상이 아니었다. 지금의 부인인 드루실라는 세번째의 부인이되는 것이다. 그것도 처녀를 부인으로 맞은 것이 아니고 에멘사의 왕 아지스의 아내인 드루실라의 미모에 반하여 구부로 출신 마술사인 시몬을 매수하여 드루실라를 유혹했던 것이다. 드루실라도 마찬가지로 음탕한 여인이었다. 드루실라는 야고보를 살해한 헤롯 아그립바 1세의 딸로 두번째 남편인 아지스와 결혼하여 살다가 벨릭스와 눈이 맞아 아지스를 버리고 벨릭스를 세번째의 남편으로 둔 것이다. 똑 같이 무절제한 것들끼리 만났으니 바울의 장차 올 심판의 강론은 두려울 수 박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벨릭스가 바울의 강론을 듣고 마음에 찌렸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마음의 두려움이란 바로 벨릭스를 회개의 자리로 인도하고 있음이 분명하질 않은가
그런데 25절 하반절에 무어라고 하고 있는가 ".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벨릭스는 회개의 기회를 미결로 미루고 있다. 시방 해야할 일은 회개이것만 그 좋은 마음의 소리를 외면하고 미결로 처리하고 있는 벨릭스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마음의 가책을 받으면서도 회개를 제때에 하지 못하는 이유들이 있다.
첫째는 나만이 그런 죄인인가하는 배짱때문이다.
둘째는 회개하기에는 죄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세째는 회개함으로 받게될 손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네째는 회개말고 달리 방법이 있을 것같은 막연한 기대때문이다. 영국의 문호 세익스피어는 이런 말을 했다. "연기하는 것은 위험한 종말을 초래한다:고. 양심의 소리를 미결로 두지 말라.
3,기회를 미결로 남겼다. " 일생에 기회가 자주 찾아 오는게 아니다. 빌라도에게도 예수를 놓아줄 구실도 있었고 그럴 수 있는 권한도 있었다.
그런데 빌라도는 그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말앗다. 당시의 관레로 명절이면 죄수중 모범수를 한명 골라서 방면하는 일이 있었다. 오를의 본문만 보더라도 2년이 흘러 갔다.
그렇다면 명절이 두번이나 지나간 것이된다. 다시 말해서 벨릭스는 바울을 놓아 줄 좋은 기회가 두번이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벨릭스는 임기가 끝나서 이임식을 하는 날까지 바울을 감옥에다 그냥 가두어 놓았던 것이다. 역사가들의 전하는 바에 의하여 지금 정식으로 벨릭스의 임기가 끝나서 교체가 됨이 아니라 벨릭스의 무능과 잔임함을 로마의 백성들이 로마 황제에게 고발을 했기 때문에 로마로 소환되고 있는 것이라 한다. 그때 그의 형 팔라의 도움으로 간신히 죽음만은 면했지만 후일 벨릭스는 초라하게 살다가 미결로 인생을 끝내었다는 것이다. 미결인생 이는 실패의 인생이다. 인간은 미결로 끝내어서는 않된다. 마25장에 달란트의 비유가 있다. 두달란트와 다섯 달란트를 남긴 완결의 인생이 있는가하면 반면에 한 달란트를 받은 미결의 인생이 있음을 우리들은 안다. 벌써 1990년도도 다 저물어 가고 있다. 이제 한 주일만 있으면 인 새해가 되는 것이다. 한해를 살아 온 육신의 장부는 결산도 하고 예산도 세우면서도 육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사람의 장부는 왜 결산을 하려하지 않은가 S.Smilth 의 말처럼 "사람들은 오늘 먹을 음식을 내일로 미루지는 않으면서도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일은 곧 잘한다" 라고 했던 것처럼 우리 모두에게는 내일로 미루지 못할 일들이 있다. 더우기 이 1990년을 그냥 넘겨서는 않되는 일들이 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의 문제들이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바 직임의 완결을 위하여 나는 최선을 다했는가 나는 하나님 아버지께 눈물로 아뢰어야 할 회개의 제목들은 정리를 했는가 나의 육신적인 생활은 하나님 보시기에 정당한 것인가 이런 저런 문제에 우리들은 대답을 하고 이 해를 보내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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