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적 어려움으로 인한 백성들의 불평 (느5:1-19)
본문
본문은 가난한 백성들의 탄원을 듣고, 느헤미야가 그들을 위해 유다 총독의 자격 으로 비양심적인 권력가들과 부자들을 훈계하는 장면(1-11절)과 이에 호응하여 그 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는 장면이다(12-13절). 느헤미야의 훈계가 이처럼 힘 이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먼저 모범의 삶을 살았기때문이다(14-19절). 이로써 느 헤미야는 외부적인 문제의 극복에 이어, 내부의 문제도 슬기롭게 해결하였다.
'본론'
1. 신앙인은 절제와 희생의 삶을 살아야 한다. 당시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 백성들의 당면 문제는, 과중한 세금과 어려 운 식량난이었다. 그들은 바사 왕실에 막중한 세금을 바쳐야 했는데 비해, 경작 조 건이나 환경이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기존 관료나 부호들은 가난한 자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그들의 배를 불리고 주머니를 챙겼다. 과 증한 담보 요구와 높은 이율이 그것이었다. 그러자 자연히 사회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일어났다. 가난한 자들은 밭과 포도원을 다 빼앗기고 심지어 자녀들까지 노 예로 팔리게 되었다. 그러니 원성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1-5절). 따라서 이것은 언약 공동체 이스라엘을 파괴하는 무서운 분열과 갈등 조짐으로 나타났다. 결국 유다 백성의 문제는 사랑의 결핍과 이기주의에 기인했다고 하겠다. 이처럼 사랑이 고갈된 현장, 자기 배만을 위하는 이기주의야말로 교회를 어지럽히며 갈라 놓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느헤미야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성전과 성벽 건축의 목적도 결국 하나님 앞에서 언약 공동체 이스라엘의 바른 회복을 위함이 아니던가 내부의 갈등으로 이 스라엘 공동체가 븐열되면, 부자나 가난한 자 모두 대적들의 노략 대상이 되어 공 멸하지 않겠는가-그래서 느헤미야는 두 팔을 걷어부치고 사태의 해결을 위해 나 섰다. 대회를 열어 귀인과 민장들의 잘못됨을 훈계하였다(6-11절). 훈계하면서, "이식 받기를 그치자'고 호소했고(10절), 취한 바 가옥이나 전토나 돈이나 곡식을 돌려주라고 권고했다(11절). 비록 그것이 구태여 법적으로 따지면 크게 잘못될 것 이 없다고 할지라도, 느헤미야는 공동체의 화복과 안녕을 위해 절제하고 희생할 것 을 권면했다. 그렇다. 바로 여기에 신앙인의 신앙 도리가 있고, 높은 윤리 의식이 있다. 다 가질 수 있다고 하여 다 갖지 아니하고, 가난한 자와 없는 자를 위해 일부를 남 겨두고 양보하는 절제와 희생의 정신, 그것이 모세 율법의 정신이요(레 24:17-22) , 기독교의 정신이다(빌 2:3-4).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 보좌의 영광을 버리고, 죄 인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지 않았는가
2. 지도자는 모범의 삶을 살아야 한다. 당시 느헤미야는 바사 왕실의 술관원장이라는 높은 직책에 있었다(1:11). 하지 만 느헤미야는 그같은 안정되고 편안한 자리를 뒤로 하고, 왕의 허락을 얻어 유다 총독의 자격으로 고국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동족들을 인솔하여 성벽 중건의 사역 을 지휘하고 있었다. 느헤미야는 몸소 사역의 일선에 참가했을 뿐만 아니라, 이전 총독돌과는 달리 과중한 세금은 물론 총독의 녹조차 받지 않았다(14,18절). 오히려 자신의 사재를 털어 자기에게 딸린 많은 식솔들을 먹여 살렸다(18절). 지도자로서 느헤미야는 토색, 뇌물, 압제 등의 말과는 거리가 멀었고, 희생했고 봉사했으며 앞 장섰다. 이처럼 느헤미야가 지도자로서 백성들 앞에 모범의 삶을 살았기에, 그의 권면과 사역에는 힘이 있었고 능력이 있었다. 민장들에게 당당하게 "너희의 소위가 좋지 못하도다"(9절)라고 꾸짖었고, 귀인들에게 떳떳하게 "우리가 그 이식 받기를 그치자"(10절)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훈계를 듣고, 귀인과 민장들이 자신들의 행 위를 부끄럽게 여기고 뉘우쳐 돌이켰다(12-13절). 그렇다, 다른 사람을 인도하고 이끌어 가는 지도자는 먼저 본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말과 사역에 힘이 있고 능력이 있는 법이다. 자신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훈계한다면 지도력이 약할 수 밖에 없다. 사도 바울은 "나 를 본받으라!"(빌3:17)고 말했다.
3. 자기 희생과 절제로써 교회를 하나되게 해야 합니다(14-19절). 백성들 사이에 일어났던 모두 문제들을 일단 해결한 후 느헤니야는 자기 고백적 인 말로써 백성들을 가르치게 됩니다. 그는 먼저 유다 총독으로 임명된 이후 12년 동안 총독의 녹을 먹지 않았고(14절), 또 자기 직책을 남용하여 백성들을 탈취하 거나 압제하지 않았음을 말했습니다(15-18절). 결국 느헤미야는 자기 영광과 자기 만족, 자기 욕심의 노예가 되지 않고 오직 자 신을 철저히 억제하고 절제하는 대신 공공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힘을 썼 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교회는 나의 만족을 구치 않고 오직 전체의 유 익과 하나님 영광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교회는 결코 인간의 의지와 욕심의 실현 장이 아닙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독재자나 폭군이 용납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구원받은 자들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마음과 뜻을 모으는 곳이요, 서로 자기 자신을 죽이고 자아를 죽여 공동의 선을 이뤄가는 곳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목소리, 인간의 사악한 욕심이 사라진 곳에 하나됨의 역사는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결론' 우리 주변에는 많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각 교회들마다 계속해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또 해결되기도 합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교회는 늘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현실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교회 안에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먼저 남을 탓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돌 아보고 자기 스스로에게 사랑이 결핍되지 않았는가를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문제이든 신중하고 세심히 다루어야 하며, 만약 허물과 죄가 드러나면 대충 넘어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철저히 회개하고 새로와 져야 합니다. 진 정 교회의 주인은 그 어떤 인간 직분자도 아니요, 다만 하나님 만이 교회의 진정한 주인임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만이 높이 드러날 수 있도 록 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진정으로 하나될 수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 한 건강한 모습을 계속 유지해 갈 수 있습니다(엡1:21-,23,빌2:1-11,골1:24-29).
'본론'
1. 신앙인은 절제와 희생의 삶을 살아야 한다. 당시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 백성들의 당면 문제는, 과중한 세금과 어려 운 식량난이었다. 그들은 바사 왕실에 막중한 세금을 바쳐야 했는데 비해, 경작 조 건이나 환경이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기존 관료나 부호들은 가난한 자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그들의 배를 불리고 주머니를 챙겼다. 과 증한 담보 요구와 높은 이율이 그것이었다. 그러자 자연히 사회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일어났다. 가난한 자들은 밭과 포도원을 다 빼앗기고 심지어 자녀들까지 노 예로 팔리게 되었다. 그러니 원성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1-5절). 따라서 이것은 언약 공동체 이스라엘을 파괴하는 무서운 분열과 갈등 조짐으로 나타났다. 결국 유다 백성의 문제는 사랑의 결핍과 이기주의에 기인했다고 하겠다. 이처럼 사랑이 고갈된 현장, 자기 배만을 위하는 이기주의야말로 교회를 어지럽히며 갈라 놓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느헤미야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성전과 성벽 건축의 목적도 결국 하나님 앞에서 언약 공동체 이스라엘의 바른 회복을 위함이 아니던가 내부의 갈등으로 이 스라엘 공동체가 븐열되면, 부자나 가난한 자 모두 대적들의 노략 대상이 되어 공 멸하지 않겠는가-그래서 느헤미야는 두 팔을 걷어부치고 사태의 해결을 위해 나 섰다. 대회를 열어 귀인과 민장들의 잘못됨을 훈계하였다(6-11절). 훈계하면서, "이식 받기를 그치자'고 호소했고(10절), 취한 바 가옥이나 전토나 돈이나 곡식을 돌려주라고 권고했다(11절). 비록 그것이 구태여 법적으로 따지면 크게 잘못될 것 이 없다고 할지라도, 느헤미야는 공동체의 화복과 안녕을 위해 절제하고 희생할 것 을 권면했다. 그렇다. 바로 여기에 신앙인의 신앙 도리가 있고, 높은 윤리 의식이 있다. 다 가질 수 있다고 하여 다 갖지 아니하고, 가난한 자와 없는 자를 위해 일부를 남 겨두고 양보하는 절제와 희생의 정신, 그것이 모세 율법의 정신이요(레 24:17-22) , 기독교의 정신이다(빌 2:3-4).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 보좌의 영광을 버리고, 죄 인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지 않았는가
2. 지도자는 모범의 삶을 살아야 한다. 당시 느헤미야는 바사 왕실의 술관원장이라는 높은 직책에 있었다(1:11). 하지 만 느헤미야는 그같은 안정되고 편안한 자리를 뒤로 하고, 왕의 허락을 얻어 유다 총독의 자격으로 고국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동족들을 인솔하여 성벽 중건의 사역 을 지휘하고 있었다. 느헤미야는 몸소 사역의 일선에 참가했을 뿐만 아니라, 이전 총독돌과는 달리 과중한 세금은 물론 총독의 녹조차 받지 않았다(14,18절). 오히려 자신의 사재를 털어 자기에게 딸린 많은 식솔들을 먹여 살렸다(18절). 지도자로서 느헤미야는 토색, 뇌물, 압제 등의 말과는 거리가 멀었고, 희생했고 봉사했으며 앞 장섰다. 이처럼 느헤미야가 지도자로서 백성들 앞에 모범의 삶을 살았기에, 그의 권면과 사역에는 힘이 있었고 능력이 있었다. 민장들에게 당당하게 "너희의 소위가 좋지 못하도다"(9절)라고 꾸짖었고, 귀인들에게 떳떳하게 "우리가 그 이식 받기를 그치자"(10절)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훈계를 듣고, 귀인과 민장들이 자신들의 행 위를 부끄럽게 여기고 뉘우쳐 돌이켰다(12-13절). 그렇다, 다른 사람을 인도하고 이끌어 가는 지도자는 먼저 본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말과 사역에 힘이 있고 능력이 있는 법이다. 자신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훈계한다면 지도력이 약할 수 밖에 없다. 사도 바울은 "나 를 본받으라!"(빌3:17)고 말했다.
3. 자기 희생과 절제로써 교회를 하나되게 해야 합니다(14-19절). 백성들 사이에 일어났던 모두 문제들을 일단 해결한 후 느헤니야는 자기 고백적 인 말로써 백성들을 가르치게 됩니다. 그는 먼저 유다 총독으로 임명된 이후 12년 동안 총독의 녹을 먹지 않았고(14절), 또 자기 직책을 남용하여 백성들을 탈취하 거나 압제하지 않았음을 말했습니다(15-18절). 결국 느헤미야는 자기 영광과 자기 만족, 자기 욕심의 노예가 되지 않고 오직 자 신을 철저히 억제하고 절제하는 대신 공공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힘을 썼 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교회는 나의 만족을 구치 않고 오직 전체의 유 익과 하나님 영광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교회는 결코 인간의 의지와 욕심의 실현 장이 아닙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독재자나 폭군이 용납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구원받은 자들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마음과 뜻을 모으는 곳이요, 서로 자기 자신을 죽이고 자아를 죽여 공동의 선을 이뤄가는 곳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목소리, 인간의 사악한 욕심이 사라진 곳에 하나됨의 역사는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결론' 우리 주변에는 많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각 교회들마다 계속해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또 해결되기도 합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교회는 늘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현실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교회 안에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먼저 남을 탓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돌 아보고 자기 스스로에게 사랑이 결핍되지 않았는가를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문제이든 신중하고 세심히 다루어야 하며, 만약 허물과 죄가 드러나면 대충 넘어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철저히 회개하고 새로와 져야 합니다. 진 정 교회의 주인은 그 어떤 인간 직분자도 아니요, 다만 하나님 만이 교회의 진정한 주인임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만이 높이 드러날 수 있도 록 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진정으로 하나될 수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 한 건강한 모습을 계속 유지해 갈 수 있습니다(엡1:21-,23,빌2:1-11,골1: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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