뭇 백성이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느8:1-12)
본문
오늘 본문 말씀은 제사장이요 학사인 에스라가(본문9절, 스7:11)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갔던 자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로 돌아와 각기 본성에 이른 자 (느7:6) 곧 이스라엘 백성들을 수문 앞 광장에 모아놓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들려주는 말씀이다. 이 율법책의 낭독은 모세가 여호와께 말씀을 받아와서 처음 백성들 앞에 낭독되어졌고(출24:7), 그후 모세의 명에 따라 매 7년 끝 해 곧 정기 면제년의 초막절에 낭독되어졌다(출31:10-11) 오늘 본문의 경우도 초막절 기간 중이었으며, 8:17절의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 무리가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함이 없었으므로”하는 말씀은 초막절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솔로몬 시대에도 초막절은 지켜졌다(대하8:13) 여호수아 시대 이후로 이렇게 성대하게 온 백성이 감격적으로 초막절을 맞은 일이 없었다는 뜻이다(왕하23:22, 대하35:18. 유월절 표현) 초막절이 아닌 때에도 백성들 앞에 율법책이 낭독되어진 일이 있다. 요시야 왕 때의 일로 성전 수리 중에 율법책을 발견하고 왕이 백성 앞에 낭독하고 그 유명한 요시야의 종교개혁을 이룩하게 된다(왕하23:2) 오늘 본문 말씀에 나타난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어떻게 되었을까 살펴 보고져 한다.
1.남자, 여자, 알아들을 만한 자들이 다 모였다. 본문 3절에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오정까지 남자,여자 무릇 알아 들을만한 자의 앞에서 읽으매 뭇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라고 했다.
1.차별이 없음. 여자와 아이들은 일반적인 회의에는 참석치 못한다. 그러나 절기에 참석하여 여호와를 찬양하고 경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여호와 경외하는 법을 배우는 일에는 차별이 없었다.
2.이방인도 함께 “알아들을 만한 자”란 어린 아이를 뜻하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근본적으로 잘 모르는 이방인으로도 볼 수 있다. 신31:11-12절에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로 듣게 할지니 곧 백성의 남녀와 유치와 네 성안에 우거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로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라 했다
3.모든 사람이 다 함께 곧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다 함께 모였다. 70년 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이었다. 모국어를 제대로 배우고 익힌 세대들은 다 죽고, 그 넓은 바벨론 제국에 흩어져 살며 모국어인 히브리어를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 자랐던 지방에 따라 문화적 차이도 많았으리라 본다. 그러한 사람들이 모였기에 학사 에스라의 말을 몇몇 사람들이 백성들에게 전하고 일깨워 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8절)
2.새벽부터 정오까지 계속되었다. 본문 3절에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오정까지 남자,여자 무릇 알아 들을만한 자의 앞에서 읽으매 뭇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라 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새벽부터 정오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고 했다. 예배 시간이 길다고 불평하는 오늘의 성도들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1.수문 앞 광장 노천 광장이다. 햇볕이 쨍쨍 내려 쬐이고 바람 불어 먼지 날리는 곳이지만 불평이 없었다. 옷 버린다며 의자 없는 교회는 가지 않는 오늘의 현실과는 너무나 차이가 있다.
2.일어서서. 본문 5절에 “학사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저희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심과 학사 에스라에 대한 존경심으로 볼 수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일어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한다는 것은 여간 정성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3.6시간 동안 “새벽부터 정오까지”라 했다. 이스라엘의 시간은 낮을 12시간으로 나눈다. 즉 해 뜰 때를 0, 해 질 때를 12, 정오를 6시로 구분한다. 새벽부터 정오까지는 016시까지를 말한다. 장장 6시간 동안이다. 오늘의 우리 교회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1시간 예배도 길다고 불평하는 이도 있다. 우리 한국 교회도 초창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시작하는 시간은 있었어도 마치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1시간 예배. 다른 예배 순서를 감안하면 말씀 증거하는 시간은 30분도 잘 안된다. 그래서 요즈음은 25분 설교, 심지어 20분 설교를 작성하는 분도 있다고 한다. 모두가 사람 중심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오늘의 본문 말씀을 통해 보면 짧게 요구하는 것도 사람 중심이요, 거기에 맞추어 짧게 준비하고 증거하는 것도 사람 중심이다. 참으로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겸손하고 진지해야 하겠다. 가뭄에 단비를 기다리듯 간절한 심령으로 사모해야 하겠다. 다윗처럼 꿀송이 보다 더 단 맛이어야 한다.
3.율법의 말씀을 듣고 울었다. 본문 9절에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말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결과요, 깨달음이요, 반응이다.
1.회개 하나님의 말씀은 심령의 거울이다. 말씀을 통해 우리의 마음 속에 더럽고 악한 죄를 볼 수 있다. 부끄럽고 추한 죄악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다. 귀를 기울여 율법의 말씀을 듣고 보니 70년 바벨론의 포로 생활이 하나님을 버린 죄 때문임을 깨닫고 회개하는 것이다. 성전 수리 중에 발견한 율법책의 말씀을 들은 요시야 왕이 그러했고(왕하22:11) 선지자 나단을 통해 책망을 받은 다윗이 그러했고(삼하12:1)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유대인들이 그러했다(행2:37)
2.강퍅케 됨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죄악을 들추어냄으로 회개치 않는 자들은 더욱 강퍅해진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룩이 받아 적은 두루마리 책이 있다. 여호야김 왕은 유다의 죄악상을 책망하는 말씀을 듣고,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낭독한 두루마리 책을 한편씩 화로에 불태웠다(렘36:23) 또한 에굽 왕 바로는 강퍅함의 대명사요, 스데반의 말을 듣고 이를 갈며 스데반을 돌로 쳐 죽여 돌무덤을 쌓았던 유대인들도 있다.
3.결단 죄를 뉘우치고 회개한 사람은 새로운 삶으로의 결단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잘못 된 삶을 청산하고 새 삶을 살아갈 때 진정한 회개의 열매를 거두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스라엘 자손들도 9:1절 이하의 말씀을 살펴보면 금식을 선포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이방인과의 교제를 끊고 자신과 열조의 죄악을 자복하고 회개했다. 낮 ¼은 율법책을 낭독하며 경청하고, 낮 ¼은 죄를 자복하고 회개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삶의 모습이다. 새로운 삶의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다. 왕하22-23장의 말씀을 살펴보면 요시야 왕의 결단을 볼 수 있다. 성전 수리 중에 발견한 율법책을 백성들 앞에 낭독하고 지금까지의 잘못 된 죄악을 청산하는 결단을 내린다. 여호와 앞에 왕과 백성들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키기로 언약을 세웠다. 우상숭배를 금하고 아세라 목상과 바알 산당을 불태웠다. 솔로몬 왕과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에 의해 남겨진 산당들도 모두 불태워 버리는 그 유명한 종교 개혁을 이룩하였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참으로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났다. 변화의 역사가 누구에게나 다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마음이 더욱 강퍅해지는 사람들도 있음을 보았다. 진한 감동과 뜨거운 감격이 넘치는, 오늘 내 가슴에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맛보기 위해서는 본문 말씀의 이스라엘의 뭇 백성들처럼 간절한 심령으로 말씀을 기다려야 하겠다. 가뭄에 단비를 기다리듯 말씀을 사모해야 하겠다. 수문 앞 광장, 새벽부터 정오까지…. 그들과 비교할 수 없는 좋은 여건과 환경 속에서도 나는 불평하고 있지나 않는지 참으로 그들처럼 말씀을 대하고 있는지 우리 이 시간 자신을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1.남자, 여자, 알아들을 만한 자들이 다 모였다. 본문 3절에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오정까지 남자,여자 무릇 알아 들을만한 자의 앞에서 읽으매 뭇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라고 했다.
1.차별이 없음. 여자와 아이들은 일반적인 회의에는 참석치 못한다. 그러나 절기에 참석하여 여호와를 찬양하고 경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여호와 경외하는 법을 배우는 일에는 차별이 없었다.
2.이방인도 함께 “알아들을 만한 자”란 어린 아이를 뜻하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근본적으로 잘 모르는 이방인으로도 볼 수 있다. 신31:11-12절에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로 듣게 할지니 곧 백성의 남녀와 유치와 네 성안에 우거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로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라 했다
3.모든 사람이 다 함께 곧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다 함께 모였다. 70년 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이었다. 모국어를 제대로 배우고 익힌 세대들은 다 죽고, 그 넓은 바벨론 제국에 흩어져 살며 모국어인 히브리어를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 자랐던 지방에 따라 문화적 차이도 많았으리라 본다. 그러한 사람들이 모였기에 학사 에스라의 말을 몇몇 사람들이 백성들에게 전하고 일깨워 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8절)
2.새벽부터 정오까지 계속되었다. 본문 3절에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오정까지 남자,여자 무릇 알아 들을만한 자의 앞에서 읽으매 뭇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라 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새벽부터 정오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고 했다. 예배 시간이 길다고 불평하는 오늘의 성도들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1.수문 앞 광장 노천 광장이다. 햇볕이 쨍쨍 내려 쬐이고 바람 불어 먼지 날리는 곳이지만 불평이 없었다. 옷 버린다며 의자 없는 교회는 가지 않는 오늘의 현실과는 너무나 차이가 있다.
2.일어서서. 본문 5절에 “학사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저희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심과 학사 에스라에 대한 존경심으로 볼 수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일어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한다는 것은 여간 정성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3.6시간 동안 “새벽부터 정오까지”라 했다. 이스라엘의 시간은 낮을 12시간으로 나눈다. 즉 해 뜰 때를 0, 해 질 때를 12, 정오를 6시로 구분한다. 새벽부터 정오까지는 016시까지를 말한다. 장장 6시간 동안이다. 오늘의 우리 교회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1시간 예배도 길다고 불평하는 이도 있다. 우리 한국 교회도 초창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시작하는 시간은 있었어도 마치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1시간 예배. 다른 예배 순서를 감안하면 말씀 증거하는 시간은 30분도 잘 안된다. 그래서 요즈음은 25분 설교, 심지어 20분 설교를 작성하는 분도 있다고 한다. 모두가 사람 중심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오늘의 본문 말씀을 통해 보면 짧게 요구하는 것도 사람 중심이요, 거기에 맞추어 짧게 준비하고 증거하는 것도 사람 중심이다. 참으로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겸손하고 진지해야 하겠다. 가뭄에 단비를 기다리듯 간절한 심령으로 사모해야 하겠다. 다윗처럼 꿀송이 보다 더 단 맛이어야 한다.
3.율법의 말씀을 듣고 울었다. 본문 9절에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말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결과요, 깨달음이요, 반응이다.
1.회개 하나님의 말씀은 심령의 거울이다. 말씀을 통해 우리의 마음 속에 더럽고 악한 죄를 볼 수 있다. 부끄럽고 추한 죄악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다. 귀를 기울여 율법의 말씀을 듣고 보니 70년 바벨론의 포로 생활이 하나님을 버린 죄 때문임을 깨닫고 회개하는 것이다. 성전 수리 중에 발견한 율법책의 말씀을 들은 요시야 왕이 그러했고(왕하22:11) 선지자 나단을 통해 책망을 받은 다윗이 그러했고(삼하12:1)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유대인들이 그러했다(행2:37)
2.강퍅케 됨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죄악을 들추어냄으로 회개치 않는 자들은 더욱 강퍅해진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룩이 받아 적은 두루마리 책이 있다. 여호야김 왕은 유다의 죄악상을 책망하는 말씀을 듣고,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낭독한 두루마리 책을 한편씩 화로에 불태웠다(렘36:23) 또한 에굽 왕 바로는 강퍅함의 대명사요, 스데반의 말을 듣고 이를 갈며 스데반을 돌로 쳐 죽여 돌무덤을 쌓았던 유대인들도 있다.
3.결단 죄를 뉘우치고 회개한 사람은 새로운 삶으로의 결단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잘못 된 삶을 청산하고 새 삶을 살아갈 때 진정한 회개의 열매를 거두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스라엘 자손들도 9:1절 이하의 말씀을 살펴보면 금식을 선포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이방인과의 교제를 끊고 자신과 열조의 죄악을 자복하고 회개했다. 낮 ¼은 율법책을 낭독하며 경청하고, 낮 ¼은 죄를 자복하고 회개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삶의 모습이다. 새로운 삶의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다. 왕하22-23장의 말씀을 살펴보면 요시야 왕의 결단을 볼 수 있다. 성전 수리 중에 발견한 율법책을 백성들 앞에 낭독하고 지금까지의 잘못 된 죄악을 청산하는 결단을 내린다. 여호와 앞에 왕과 백성들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키기로 언약을 세웠다. 우상숭배를 금하고 아세라 목상과 바알 산당을 불태웠다. 솔로몬 왕과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에 의해 남겨진 산당들도 모두 불태워 버리는 그 유명한 종교 개혁을 이룩하였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참으로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났다. 변화의 역사가 누구에게나 다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마음이 더욱 강퍅해지는 사람들도 있음을 보았다. 진한 감동과 뜨거운 감격이 넘치는, 오늘 내 가슴에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맛보기 위해서는 본문 말씀의 이스라엘의 뭇 백성들처럼 간절한 심령으로 말씀을 기다려야 하겠다. 가뭄에 단비를 기다리듯 말씀을 사모해야 하겠다. 수문 앞 광장, 새벽부터 정오까지…. 그들과 비교할 수 없는 좋은 여건과 환경 속에서도 나는 불평하고 있지나 않는지 참으로 그들처럼 말씀을 대하고 있는지 우리 이 시간 자신을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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