뭇별을 보여 주신 하나님 (창14:1-15:21)
본문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절망 중에 있는 아브람을 새롭게 일으 켜 세우신 사건입니다. 아브람은 애굽에서 돌아온 후에 믿음으 로 약속의 땅에 우거했습니다.
그런데 소돔 성에 살던 롯이 전 쟁의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브람은 목 자의 심정으로 연합군들을 격파하고 롯을 구출해 냈습니다. 그러나 그후 아브람은 원수들의 보복이 두려워 떨게 되었습니다. 자식 문제와 땅 문제로 인해서 마음이 한없이 연약해졌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찾아 오셔서 하늘의 뭇별을 보여 주 시고, 약속의 말씀을 굳게 잡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택하신 자들에게 승리를 주시고, 두려움과 절망에 빠진 자들에게 비전을 심어 주시는 소망의 주님을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승리를 주신 하나님 (14:1-24) 1-3절을 보십시오. 당시에 앗수르와 바벨론 지방의 지배권을 장악하고 있던 엘람(페르시아만 북쪽) 왕 그돌라오멜이 동방에 있는 3명의 왕들의 동맹군을 거느리고, 요단 계곡에 있던 다섯 개의 소도시 국가를 쳐들어 왔습니다.
1) 이들은 싯딤 골짜기 지금의 염해(사해)에 모여 대치해 있었습니다. 평화로운 그 땅에 전쟁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소 알 왕들이 12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13년째부터 조공을 바치지 않고, 반역을 꾀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14년째 되던 해 그돌라오멜이 그와 동맹한 왕들을 거느리고 쳐들어왔습니다. 그들은 동방에서 오면서 길목에 있던 6 족속을 쳤습니다 (5-7).
2) 연합군들은 사나운 맹수들처럼 약소국들을 무참하게 짓밟으며 배반자들을 잔인하게 징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그돌라오멜이 요단 계곡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요단 계곡의 평원을 장악해야만 애굽과 무역을 원활히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막강한 군사를 이끌고 싯딤 골짜기를 쳐들어왔습니다. 8-12절을 보십시오. 소돔 왕을 위시한 다섯 국가들이 공동 전선을 폈으나 인과 부족이었습니다. 소돔을 비롯한 소도시 국가들은 연합군들에게 참패를 당했 습니다. 그돌라오멜은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탈 취해 갔습니다. 소돔에 거하던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습니다. 롯은 소돔 성에서 잠시 문화 생활을 즐기다가 모든 것을 잃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전쟁의 포로로 끌려가면 평생 동안 종살이를 하며 비참하게 살아야 했 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한 도망자가 히브리 사람
3) 아브람에게 이 소식을 고했습니다. 당시 아브람은 아모리 족속 마므레라는 사람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람은 아모리 족속의 몇몇 족장들과 동맹을 맺고 있었습니다. 아브람은 조카 롯의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우고 연습한 군대 318명과 마므레와 그 형제들의 동맹군들을 거느리고 단까지 좇아갔습니다(14-16,2
4). 아브람은 가신들을 여러 패로 나누어 야간 기습 작전으로 원수들을 파하고, 다메섹 좌편 호바까지 추격하여, 모 든 빼앗겼던 재물과 조카 롯과 부녀와 인민을 찾아 왔습니다. 이는 양을 물어 간 사자에게 달려가서 그 입을 찢고 양을 구해 낸 다윗의 모습과 같습니다(삼상 17:34,35). 백발이 성성한 아 브람이 어디에서 그러한 용기와 힘이 솟아났겠습니까 이는 롯 에 대한 목자의 심정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롯은 아브람과 함 께 신앙을 출발하여 약속의 땅에 온 동역자였습니다. 롯이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죄악 된 소돔 성 에 들어가 살고 있었지만 롯에 대한 아브람의 사랑은 변함이 없 었습니다.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전쟁의 포로가 된 롯을 생각할 때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길리운 가신을 거느리고 강대국 연합군들에게 도전했습니다. 이는 계란 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이 무모한 일이었습니다. 엄청난 재산 피해와 인명 피해를 각오해야 했으며, 자기 생명을 잃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롯을 구출하기 위해서 어떤 희생도 치르고자 각오하고, 믿음으 로 진격하였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용기와 지혜를 주시 고, 야간 기습 작전으로 적의 심장부를 공격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모든 원수들을 격퇴하고 롯을 구출하고 빼앗겼던 모든 재 물을 되찾아 올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목자의 심정이 낳은 기 적이었습니다. 아브람이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 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서 아브람을 영접했습니다. 멜기세덱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습니다. '살렘'은 예루살렘의 옛 이름으로 '평화'라는 뜻이고, 멜기세덱이란 '의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고대 히브리인들의 전통에 의하면 멜기세덱이 노아의 아들 셈이라고 합니다. 창세기 11장에 의하면 셈은 노아 홍수 후 502년을 살았는데 (11:10,11), 아브라함 시대는 노아 홍수 후 약 400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셈이 이 때까지 살아 있었으며, 바벨 탑 사건으로 흩어질 때 셈 족속 이 이곳으로 이주해 왔을 가능성도 있습니다.4) 다윗은 하나님 께서 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대제사장 그리스도를 보내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시 110:4). 이 멜기세덱은 장차 올 그리스도의 그림자였습니다(히 4:14; 7:2,15-17). 하나님은 멜기세덱을 아브람에게 보내셔서 전쟁에 지친 병사들에게 떡과 포 도주를 먹이고, 힘과 위로를 주셨습니다.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 주로 대접한 후에 아브람을 축복했습니다. 19,20a절을 보십시 오.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멜기세덱은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축복해 주시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에게 위대한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모든 승리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아브 람은 멜기세덱의 축복을 받은 후 그 얻은 것의 십분의 일을 멜 기세덱에게 바쳤습니다. 이는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예 물을 드린 것입니다. 아브람은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자 기가 작전을 잘 짜서 승리했다는 자만심에 빠지기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승 리를 주셨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 리는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십일조를 드리는 기원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는 것도 우리에게 승리를 주 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물질을 주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현이요, 하나님이 축복의 근원이심을 믿고 사는 우리의 신앙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말라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십 일조를 드리는 자에게 하늘 문을 열어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말 3:10).
그러므로 우리가 십일 조를 드릴 때 의무감으로가 아니라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기쁨으로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소돔 왕은 승리하고 돌아온 아브람을 어떻게 영접했습 니까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 얼른 보면 소 돔 왕이 아브람에 큰 호의를 베푸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 은 그렇지 않습니다. 멜기세덱은 전쟁에 지친 군인들을 위해 떡 과 포도주를 준비하여 영접했으나 소돔 왕은 아무 것도 준비하 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사회적인 규례에 의하면 전쟁 에서 승리한 자는 포로들과 재물을 모두 차지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24). 그러나 소돔 왕은 일방적으로 아브람에게 사람 들을 돌려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선심을 쓰는 듯이 물 품은 네가 취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아주 이기적이고 무례한 행 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어떻게 대답합니까 22,23절을 보십시오. 천지의 주재이시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이름으 로 맹세하며 소돔 왕이 주는 물질을 거절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서입니다. 공동 번역 성경에는 다음과 같 이 되어 있습니다. "아브람이 내 덕분에 부자가 되었다고 할 속 셈이요 나는 실오라기 하나, 실끈 한 가닥도 당신의 것은 차지 하지 않겠소." 아브람은 축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굳게 믿었 습니다. 아브람은 자기가 승리를 얻고, 부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온 세상에 알리기를 원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복의 근원으로 삼으시 고 여러 가지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소돔 왕이 주는 물 질을 받게 되면 그만큼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소돔 왕이 주는 물질을 받게 되면, 다른 청을 해 올 때 거절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인 소돔 왕 과는 아예 관계성을 맺지 않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단호하게 그 의 물질을 거절하고, 실오라기 하나도 갖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에 나간 군인들이 먹은 것과 동맹군으로 참여 했던 마므레와 아넬과 에스골의 분깃은 그들이 취할 것이라고 했습니다(24). 이상에서 볼 때 아브람은 영적인 물질관이 아주 분명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람은 결코 물질 때문에 해야 할 일을 못하거 나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롯을 구출하기 위해서 막대한 물질 을 과감히 투자했습니다. 또 하나님께 바쳐야 할 물질은 기쁨으 로 바쳤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명예와 자신의 영적 생활을 위하여 소돔 왕의 물질을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동료들의 분깃을 분명히 제하고 소돔 왕에게 물질을 돌려주었습니다. 아 브람이 이처럼 성공적인 물질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축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아브람은 아름다운 목자의 삶을 살 수 있었고, 주위 왕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믿음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축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면 우리가 물질을 쓰는 태도가 달라져야 합니다. 생명을 구하는 일 에 과감히 물질을 투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물질은 기쁨으로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부정한 물질은 과 감히 뿌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할 때 물질 문제 때문에 비굴한 삶을 살게 되 고,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게 됩니다(딤전 6:9,10). 우리가 물질적인 세상에서 믿음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적인 물질관을 확립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자기는 지금 학생이고 집 에서 돈을 타 쓰는 형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릴 물질이 없다 고 생각합니다. 또 가난한 자를 볼 때도 나도 가난하니 도와줄 형편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지금 형편이 어려우니 빌 려 쓴 돈을 나중에 갚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는 사람이 돈을 많이 벌면 더 어렵습니다. 천 원 벌 때 백 원 드리기는 쉽지만 천 만원 벌 때 백 만원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가난한 자를 돕는 일도 돈이 많 이 생긴다고 많이 도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도 자기를 희생하여 더 가난한 자를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마게도니아 성도들은 예루살렘 성도들의 어려운 형편을 알 고 가난의 밑바닥에서도 힘에 넘치도록 헌금하여 구제했습니다 (고후 8:2-4). 우리가 가난할 때, 학창 시절에 성서적인 물질관 을 확립해야 합니다. 졸업 후에 신앙 생활에 실패하는 분들을 보면 대개 물질적인 시험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람 도 처음에는 물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애굽에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의 실패를 거울 삼아 철저한 물 질관을 확립하고 믿음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아브람과 같이 믿음으로 물질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Ⅱ. 뭇별을 보여 주신 하나님 (15:1-21)
첫째,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1) 1절을 보십시오. 이상 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두려워하는 아브 람에게 임했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 요,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절망과 두려움에 빠 진 아브람을 말씀으로 찾아오시고, 두 가지 사실을 깨우쳐 주셨 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아브람의 방패가 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람은 믿음으로 승리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후부터 아브람은 심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아브람은 롯이 사로잡혀 갔다는 말을 듣고 앞뒤를 돌아보지 않고 가신들 을 끌고 가서 롯을 구출해 냈습니다. 그러나 돌아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신이 너무나 무모한 일을 저지른 것을 알게 되었 습니다. 일개 부족을 이끌고 강대국 연합군들을 기습적으로 공 격하여 롯을 구출해 왔으니 그들이 가만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보복을 해 올 것만 같았습니다. 만에 하나 그들이 보복해 온다면 아브람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브람은 그 일을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려 오 고 두려움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는 너의 방패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원수들이 강해도 하나님 께서 그의 방패가 되시면 누가 아브람을 해할 수 있겠습니까 다윗은 젊은 날에 사울 왕의 미움을 받아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사울은 벼룩 잡듯이 온 이스라엘을 뒤지며 다윗은 죽이려 하였습니다(삼상 26:20).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윗의 방패가 되 셔서 그를 보호하시고, 마침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모든 대적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 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흉악 에서 구원하셨도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삼하 22:1-4)."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여러분들의 방패가 되셔서 여러분들을 보호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두려움은 사단이 심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단이 심어 주는 합리적인 생각을 물리치고, 반석 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잡 아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심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상급이라는 말은 보상(reward)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믿음 으로 사는 자들의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십니다. 아브람은 롯에게 좋은 땅을 양보했습니다. 아브람은 전쟁을 치르기 위해 많은 물 질을 썼습니다.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바쳤습니다. 소돔 왕의 물질을 거절했습니다. 가계가 기우뚱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눈 에 보이는 현실은 어렵게만 보였습니다. 장래가 암담해 보였습니다. 이때까지 믿음으로 산다고 살아 왔는데 현재 자신이 처한 형편을 돌아보니 자꾸 손해 의식이 들었습니다. 이러다가 내 인 생이 망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상 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람에게 임했습니다. "아브람 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은 아브람의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심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자신이 곧 아브람의 가장 큰 상급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람이 모든 것을 잃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자신을 소유한다면 천하를 다 소유한 것과 같습니다. 반대로 아브람이 세상의 모든 금은 보화를 다 소유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자신을 잃는다면 모든 것을 다 잃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자신을 바라보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보상해 주시는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십니다. 모세는 애굽의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이는 상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히 11:23,2
4).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란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반드시 상 주시는 분이심 을 믿는 것입니다(히 11:6).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 습니다.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백 배나 받고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 10:29,30)" 우리 하나님은 주와 복음을 위하여 핍박을 받고, 물 질적으로 손해를 본 자들에게 반드시 백 배의 상급을 주시는 분 이십니다. 그리고 가장 큰 선물인 영생을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게 하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 계시며 저와 여러분의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심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 든 것을 잃는다 하더라도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시는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2-21)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라"는 말씀이 아브람에게 임하였을 때 아브람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2,3절을 보십시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 의 상속자는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주께서 내게 씨를 아 니 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내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아브람은 그 마음에 쌓였던 문제를 하나님 앞에 털어놓았습니다. 아브람의 마음에 맺힌 문제는 바로 자식이 없는 문제였습니다. 이것은 그의 운명적인 인생 문제였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 의 약속을 믿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가나안 땅에 왔지만 10년이 다 되어도 딸자식 하나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족속은 하나님 안 믿어도 떡두꺼비 같은 아들만 잘 낳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인가이만큼 믿음으로 살면 충분히 자식을 주실 만한데 왜 하나님은 묵묵부답(不答)이신가주 여호와여, 내게 무엇을 주시려나이까" 이 말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그의 불평이 서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의 마음속에는 종 엘리 에셀을 상속자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서서히 자리를 잡고 있었 습니다. 이런 아브람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도와 주셨습니까 4절을 보 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 고" 여호와의 말씀이 또 그에게 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아브람을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 절망 적인 상황 가운데서 말씀을 붙잡고 일어서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 합니다. 문제가 해결되면 말씀을 공부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신앙 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제가 많을수록 말씀 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말씀으로 임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너희 후사 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이 말씀은 전 혀 새로운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람에게 이미 주신 말씀이 었습니다(12:2,7,13:16).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 연약해 질 때마다 그 말씀으로 찾아오셔서 약속의 말씀을 굳게 잡도록 도와주셨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주신 후 아브람을 이끌 고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을 우러 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요즈음 대도시에서는 공해 때문에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을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중동 지방 은 지금도 밤하늘 가득한 별들을 보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같이 가깝게 반짝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별 하나 자손 하 나, 별 둘 자손 둘, .' 아브람은 별을 세는 동안 무수히 많 은 별들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천 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에 아브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또 임했습니다. "네 자손이 이와 같 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시청각 교육을 시키시고, 마음의 눈을 뜨게 하시고, 그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게 하시 겠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 기 의지로 버티다가 지쳐 있는 아브람에게 다시 한 번 하나님의 권능과 사랑을 믿고, 약속의 말씀을 믿도록 도와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망하고 있는 아브람을 율법적으로 판단하시지 않 고, 소망을 심어 주시고, 새로운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이 때 아브람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6절을 보십시오. "아브람 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 람은 여호와를 믿었습니다. 여기서 믿었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멘!"이라는 말입니다.5) 아브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하나님 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 "아멘!"으로 영접했습니다. 아브람은 하 늘의 뭇별을 바라보는 가운데 마음에 가득 하던 의심의 안개가 사라졌습니다.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는 말씀이 믿어졌습니다. 잠시라도 하나님의 크신 권능과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불신 가운데 빠졌던 죄를 깊이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소망 이 없는 자기에게 끝까지 소망을 두시고, 키우시는 하나님의 크 신 사랑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생각할 때 뜨거운 회개와 감사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아브람은 그 마음 의 불신을 회개하고 여호와를 믿었습니다. 그의 이 믿음은 참으 로 놀라운 믿음이었습니다. "아브람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 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롬 4:18)." 아브람 의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불러내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그 믿음을 보시고, 모든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아브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은 그의 행위가 의로웠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롬 4:1-3). 하나님은 바로 이 믿음을 보시고, 아브람을 모 든 믿는 자의 조상으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 시는 것은 우리의 행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 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인간적으로 절망하고 불평할 수밖에 없는 그 순간에,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치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영접하는 그 믿음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는 때가 언제입니까 바로 절망 할 수밖에 없는 때입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할 수밖에 없는 그 때야말로 우리의 믿음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우리의 성실이 바닥이 나고, 신앙이 바닥이 나서 모든 것을 포 기할 수밖에 없는 그 때가 바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때입니다. 우리가 절망할 수밖에 없는 그때 믿음으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 무슨 말씀을 하 셨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우상숭배와 운명과 저주에서 불러내시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려는 "여호와"이심을 확 신시켜 주셨습니다. 그러자 아브람은 이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요구했습니다.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8)" 하나님께서 이 땅을 업으로 주신 것은 믿겠는데 그 징표를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족속들이 눈 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데 언제 어떻게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맺고 자 하셨습니다. 9-11절은 당시에 계약 체결 방법이었습니다. 계 약 당사자들이 쪼갠 고기를 벌려 놓고 그 사이로 지나감으로써 계약이 체결되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계약을 어기면 그 쪼갠 짐승과 같이 해도 좋다는 맹세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이런 언약을 맺고자 하신 것은 아브람의 마음속에 변치 않는 확 고한 믿음을 심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17절에 보면 여호와 의 타는 횃불이 그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일방적으로 인쳐 주신 것이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아브람은 계약을 체결할 준비를 해 놓고, 해 질 무렵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그때 캄캄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께서 임하여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400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 며 그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13,14)." 이 말씀은 아브람의 후손들이 40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 할 것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큰 재물을 가지고 출애굽할 것에 대한 예 언이었습니다(출 1:11).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을 고난의 풀무 에 넣으신 것은 그들의 믿음을 연단하시고, 단일 민족을 형성하 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 그 섬기는 나라를 징치하신다고 했 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크신 권능으로 그 나라를 징계하심으 로 하나님의 이름을 온 세상에 드러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동 시에 택한 백성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가를 확증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장수하고,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갈 것과 그의 자손이 4대만에 돌아와 그 땅을 자치하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15,16). 16b 절을 보십시오.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아브람의 자손에게 주시는 것도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크신 뜻 과 섭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임을 깨우쳐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후손들을 통해서 우상숭배의 죄악이 관영한 가나안 족속들을 징벌하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날 에 가나안의 10 족속의 땅, 곧 애굽 강에서부터 유브라데스 강 까지의 모든 땅을 아브람의 자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19-21). 아브람은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가 나안 땅을 후손들에게 주실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역 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심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자식이 없지만 몇 백년 후에는 하늘의 별과 같이 많 은 후손들이 큰 재물을 이끌고 이 땅으로 돌아와 이 땅을 차지 하게 될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믿음으로 살다가 낙심이 될 때, 두려움과 절망에 빠질 때,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 라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운명적인 찹貫 문제, 풀리지 않는 신앙 문제에 부딪쳐 절망이 될 때 하늘의 뭇별을 바라보 고,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고, 언약의 말씀을 굳게 잡을 수 있 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소돔 성에 살던 롯이 전 쟁의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브람은 목 자의 심정으로 연합군들을 격파하고 롯을 구출해 냈습니다. 그러나 그후 아브람은 원수들의 보복이 두려워 떨게 되었습니다. 자식 문제와 땅 문제로 인해서 마음이 한없이 연약해졌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찾아 오셔서 하늘의 뭇별을 보여 주 시고, 약속의 말씀을 굳게 잡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택하신 자들에게 승리를 주시고, 두려움과 절망에 빠진 자들에게 비전을 심어 주시는 소망의 주님을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승리를 주신 하나님 (14:1-24) 1-3절을 보십시오. 당시에 앗수르와 바벨론 지방의 지배권을 장악하고 있던 엘람(페르시아만 북쪽) 왕 그돌라오멜이 동방에 있는 3명의 왕들의 동맹군을 거느리고, 요단 계곡에 있던 다섯 개의 소도시 국가를 쳐들어 왔습니다.
1) 이들은 싯딤 골짜기 지금의 염해(사해)에 모여 대치해 있었습니다. 평화로운 그 땅에 전쟁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소 알 왕들이 12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13년째부터 조공을 바치지 않고, 반역을 꾀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14년째 되던 해 그돌라오멜이 그와 동맹한 왕들을 거느리고 쳐들어왔습니다. 그들은 동방에서 오면서 길목에 있던 6 족속을 쳤습니다 (5-7).
2) 연합군들은 사나운 맹수들처럼 약소국들을 무참하게 짓밟으며 배반자들을 잔인하게 징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그돌라오멜이 요단 계곡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요단 계곡의 평원을 장악해야만 애굽과 무역을 원활히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막강한 군사를 이끌고 싯딤 골짜기를 쳐들어왔습니다. 8-12절을 보십시오. 소돔 왕을 위시한 다섯 국가들이 공동 전선을 폈으나 인과 부족이었습니다. 소돔을 비롯한 소도시 국가들은 연합군들에게 참패를 당했 습니다. 그돌라오멜은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탈 취해 갔습니다. 소돔에 거하던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습니다. 롯은 소돔 성에서 잠시 문화 생활을 즐기다가 모든 것을 잃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전쟁의 포로로 끌려가면 평생 동안 종살이를 하며 비참하게 살아야 했 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한 도망자가 히브리 사람
3) 아브람에게 이 소식을 고했습니다. 당시 아브람은 아모리 족속 마므레라는 사람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람은 아모리 족속의 몇몇 족장들과 동맹을 맺고 있었습니다. 아브람은 조카 롯의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우고 연습한 군대 318명과 마므레와 그 형제들의 동맹군들을 거느리고 단까지 좇아갔습니다(14-16,2
4). 아브람은 가신들을 여러 패로 나누어 야간 기습 작전으로 원수들을 파하고, 다메섹 좌편 호바까지 추격하여, 모 든 빼앗겼던 재물과 조카 롯과 부녀와 인민을 찾아 왔습니다. 이는 양을 물어 간 사자에게 달려가서 그 입을 찢고 양을 구해 낸 다윗의 모습과 같습니다(삼상 17:34,35). 백발이 성성한 아 브람이 어디에서 그러한 용기와 힘이 솟아났겠습니까 이는 롯 에 대한 목자의 심정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롯은 아브람과 함 께 신앙을 출발하여 약속의 땅에 온 동역자였습니다. 롯이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죄악 된 소돔 성 에 들어가 살고 있었지만 롯에 대한 아브람의 사랑은 변함이 없 었습니다.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전쟁의 포로가 된 롯을 생각할 때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길리운 가신을 거느리고 강대국 연합군들에게 도전했습니다. 이는 계란 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이 무모한 일이었습니다. 엄청난 재산 피해와 인명 피해를 각오해야 했으며, 자기 생명을 잃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롯을 구출하기 위해서 어떤 희생도 치르고자 각오하고, 믿음으 로 진격하였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용기와 지혜를 주시 고, 야간 기습 작전으로 적의 심장부를 공격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모든 원수들을 격퇴하고 롯을 구출하고 빼앗겼던 모든 재 물을 되찾아 올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목자의 심정이 낳은 기 적이었습니다. 아브람이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 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서 아브람을 영접했습니다. 멜기세덱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습니다. '살렘'은 예루살렘의 옛 이름으로 '평화'라는 뜻이고, 멜기세덱이란 '의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고대 히브리인들의 전통에 의하면 멜기세덱이 노아의 아들 셈이라고 합니다. 창세기 11장에 의하면 셈은 노아 홍수 후 502년을 살았는데 (11:10,11), 아브라함 시대는 노아 홍수 후 약 400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셈이 이 때까지 살아 있었으며, 바벨 탑 사건으로 흩어질 때 셈 족속 이 이곳으로 이주해 왔을 가능성도 있습니다.4) 다윗은 하나님 께서 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대제사장 그리스도를 보내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시 110:4). 이 멜기세덱은 장차 올 그리스도의 그림자였습니다(히 4:14; 7:2,15-17). 하나님은 멜기세덱을 아브람에게 보내셔서 전쟁에 지친 병사들에게 떡과 포 도주를 먹이고, 힘과 위로를 주셨습니다.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 주로 대접한 후에 아브람을 축복했습니다. 19,20a절을 보십시 오.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멜기세덱은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축복해 주시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에게 위대한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모든 승리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아브 람은 멜기세덱의 축복을 받은 후 그 얻은 것의 십분의 일을 멜 기세덱에게 바쳤습니다. 이는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예 물을 드린 것입니다. 아브람은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자 기가 작전을 잘 짜서 승리했다는 자만심에 빠지기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승 리를 주셨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 리는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십일조를 드리는 기원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는 것도 우리에게 승리를 주 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물질을 주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현이요, 하나님이 축복의 근원이심을 믿고 사는 우리의 신앙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말라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십 일조를 드리는 자에게 하늘 문을 열어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말 3:10).
그러므로 우리가 십일 조를 드릴 때 의무감으로가 아니라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기쁨으로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소돔 왕은 승리하고 돌아온 아브람을 어떻게 영접했습 니까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 얼른 보면 소 돔 왕이 아브람에 큰 호의를 베푸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 은 그렇지 않습니다. 멜기세덱은 전쟁에 지친 군인들을 위해 떡 과 포도주를 준비하여 영접했으나 소돔 왕은 아무 것도 준비하 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사회적인 규례에 의하면 전쟁 에서 승리한 자는 포로들과 재물을 모두 차지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24). 그러나 소돔 왕은 일방적으로 아브람에게 사람 들을 돌려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선심을 쓰는 듯이 물 품은 네가 취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아주 이기적이고 무례한 행 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어떻게 대답합니까 22,23절을 보십시오. 천지의 주재이시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이름으 로 맹세하며 소돔 왕이 주는 물질을 거절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서입니다. 공동 번역 성경에는 다음과 같 이 되어 있습니다. "아브람이 내 덕분에 부자가 되었다고 할 속 셈이요 나는 실오라기 하나, 실끈 한 가닥도 당신의 것은 차지 하지 않겠소." 아브람은 축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굳게 믿었 습니다. 아브람은 자기가 승리를 얻고, 부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온 세상에 알리기를 원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복의 근원으로 삼으시 고 여러 가지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소돔 왕이 주는 물 질을 받게 되면 그만큼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소돔 왕이 주는 물질을 받게 되면, 다른 청을 해 올 때 거절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인 소돔 왕 과는 아예 관계성을 맺지 않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단호하게 그 의 물질을 거절하고, 실오라기 하나도 갖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에 나간 군인들이 먹은 것과 동맹군으로 참여 했던 마므레와 아넬과 에스골의 분깃은 그들이 취할 것이라고 했습니다(24). 이상에서 볼 때 아브람은 영적인 물질관이 아주 분명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람은 결코 물질 때문에 해야 할 일을 못하거 나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롯을 구출하기 위해서 막대한 물질 을 과감히 투자했습니다. 또 하나님께 바쳐야 할 물질은 기쁨으 로 바쳤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명예와 자신의 영적 생활을 위하여 소돔 왕의 물질을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동료들의 분깃을 분명히 제하고 소돔 왕에게 물질을 돌려주었습니다. 아 브람이 이처럼 성공적인 물질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축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아브람은 아름다운 목자의 삶을 살 수 있었고, 주위 왕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믿음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축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면 우리가 물질을 쓰는 태도가 달라져야 합니다. 생명을 구하는 일 에 과감히 물질을 투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물질은 기쁨으로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부정한 물질은 과 감히 뿌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할 때 물질 문제 때문에 비굴한 삶을 살게 되 고,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게 됩니다(딤전 6:9,10). 우리가 물질적인 세상에서 믿음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적인 물질관을 확립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자기는 지금 학생이고 집 에서 돈을 타 쓰는 형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릴 물질이 없다 고 생각합니다. 또 가난한 자를 볼 때도 나도 가난하니 도와줄 형편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지금 형편이 어려우니 빌 려 쓴 돈을 나중에 갚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는 사람이 돈을 많이 벌면 더 어렵습니다. 천 원 벌 때 백 원 드리기는 쉽지만 천 만원 벌 때 백 만원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가난한 자를 돕는 일도 돈이 많 이 생긴다고 많이 도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도 자기를 희생하여 더 가난한 자를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마게도니아 성도들은 예루살렘 성도들의 어려운 형편을 알 고 가난의 밑바닥에서도 힘에 넘치도록 헌금하여 구제했습니다 (고후 8:2-4). 우리가 가난할 때, 학창 시절에 성서적인 물질관 을 확립해야 합니다. 졸업 후에 신앙 생활에 실패하는 분들을 보면 대개 물질적인 시험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람 도 처음에는 물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애굽에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의 실패를 거울 삼아 철저한 물 질관을 확립하고 믿음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아브람과 같이 믿음으로 물질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Ⅱ. 뭇별을 보여 주신 하나님 (15:1-21)
첫째,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1) 1절을 보십시오. 이상 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두려워하는 아브 람에게 임했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 요,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절망과 두려움에 빠 진 아브람을 말씀으로 찾아오시고, 두 가지 사실을 깨우쳐 주셨 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아브람의 방패가 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람은 믿음으로 승리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후부터 아브람은 심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아브람은 롯이 사로잡혀 갔다는 말을 듣고 앞뒤를 돌아보지 않고 가신들 을 끌고 가서 롯을 구출해 냈습니다. 그러나 돌아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신이 너무나 무모한 일을 저지른 것을 알게 되었 습니다. 일개 부족을 이끌고 강대국 연합군들을 기습적으로 공 격하여 롯을 구출해 왔으니 그들이 가만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보복을 해 올 것만 같았습니다. 만에 하나 그들이 보복해 온다면 아브람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브람은 그 일을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려 오 고 두려움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는 너의 방패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원수들이 강해도 하나님 께서 그의 방패가 되시면 누가 아브람을 해할 수 있겠습니까 다윗은 젊은 날에 사울 왕의 미움을 받아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사울은 벼룩 잡듯이 온 이스라엘을 뒤지며 다윗은 죽이려 하였습니다(삼상 26:20).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윗의 방패가 되 셔서 그를 보호하시고, 마침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모든 대적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 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흉악 에서 구원하셨도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삼하 22:1-4)."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여러분들의 방패가 되셔서 여러분들을 보호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두려움은 사단이 심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단이 심어 주는 합리적인 생각을 물리치고, 반석 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잡 아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심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상급이라는 말은 보상(reward)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믿음 으로 사는 자들의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십니다. 아브람은 롯에게 좋은 땅을 양보했습니다. 아브람은 전쟁을 치르기 위해 많은 물 질을 썼습니다.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바쳤습니다. 소돔 왕의 물질을 거절했습니다. 가계가 기우뚱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눈 에 보이는 현실은 어렵게만 보였습니다. 장래가 암담해 보였습니다. 이때까지 믿음으로 산다고 살아 왔는데 현재 자신이 처한 형편을 돌아보니 자꾸 손해 의식이 들었습니다. 이러다가 내 인 생이 망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상 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람에게 임했습니다. "아브람 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은 아브람의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심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자신이 곧 아브람의 가장 큰 상급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람이 모든 것을 잃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자신을 소유한다면 천하를 다 소유한 것과 같습니다. 반대로 아브람이 세상의 모든 금은 보화를 다 소유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자신을 잃는다면 모든 것을 다 잃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자신을 바라보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보상해 주시는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십니다. 모세는 애굽의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이는 상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히 11:23,2
4).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란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반드시 상 주시는 분이심 을 믿는 것입니다(히 11:6).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 습니다.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백 배나 받고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 10:29,30)" 우리 하나님은 주와 복음을 위하여 핍박을 받고, 물 질적으로 손해를 본 자들에게 반드시 백 배의 상급을 주시는 분 이십니다. 그리고 가장 큰 선물인 영생을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게 하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 계시며 저와 여러분의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심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 든 것을 잃는다 하더라도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시는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2-21)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라"는 말씀이 아브람에게 임하였을 때 아브람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2,3절을 보십시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 의 상속자는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주께서 내게 씨를 아 니 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내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아브람은 그 마음에 쌓였던 문제를 하나님 앞에 털어놓았습니다. 아브람의 마음에 맺힌 문제는 바로 자식이 없는 문제였습니다. 이것은 그의 운명적인 인생 문제였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 의 약속을 믿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가나안 땅에 왔지만 10년이 다 되어도 딸자식 하나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족속은 하나님 안 믿어도 떡두꺼비 같은 아들만 잘 낳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인가이만큼 믿음으로 살면 충분히 자식을 주실 만한데 왜 하나님은 묵묵부답(不答)이신가주 여호와여, 내게 무엇을 주시려나이까" 이 말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그의 불평이 서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의 마음속에는 종 엘리 에셀을 상속자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서서히 자리를 잡고 있었 습니다. 이런 아브람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도와 주셨습니까 4절을 보 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 고" 여호와의 말씀이 또 그에게 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아브람을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 절망 적인 상황 가운데서 말씀을 붙잡고 일어서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 합니다. 문제가 해결되면 말씀을 공부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신앙 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제가 많을수록 말씀 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말씀으로 임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너희 후사 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이 말씀은 전 혀 새로운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람에게 이미 주신 말씀이 었습니다(12:2,7,13:16).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 연약해 질 때마다 그 말씀으로 찾아오셔서 약속의 말씀을 굳게 잡도록 도와주셨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주신 후 아브람을 이끌 고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을 우러 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요즈음 대도시에서는 공해 때문에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을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중동 지방 은 지금도 밤하늘 가득한 별들을 보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같이 가깝게 반짝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별 하나 자손 하 나, 별 둘 자손 둘, .' 아브람은 별을 세는 동안 무수히 많 은 별들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천 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에 아브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또 임했습니다. "네 자손이 이와 같 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시청각 교육을 시키시고, 마음의 눈을 뜨게 하시고, 그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게 하시 겠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 기 의지로 버티다가 지쳐 있는 아브람에게 다시 한 번 하나님의 권능과 사랑을 믿고, 약속의 말씀을 믿도록 도와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망하고 있는 아브람을 율법적으로 판단하시지 않 고, 소망을 심어 주시고, 새로운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이 때 아브람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6절을 보십시오. "아브람 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 람은 여호와를 믿었습니다. 여기서 믿었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멘!"이라는 말입니다.5) 아브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하나님 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 "아멘!"으로 영접했습니다. 아브람은 하 늘의 뭇별을 바라보는 가운데 마음에 가득 하던 의심의 안개가 사라졌습니다.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는 말씀이 믿어졌습니다. 잠시라도 하나님의 크신 권능과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불신 가운데 빠졌던 죄를 깊이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소망 이 없는 자기에게 끝까지 소망을 두시고, 키우시는 하나님의 크 신 사랑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생각할 때 뜨거운 회개와 감사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아브람은 그 마음 의 불신을 회개하고 여호와를 믿었습니다. 그의 이 믿음은 참으 로 놀라운 믿음이었습니다. "아브람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 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롬 4:18)." 아브람 의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불러내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그 믿음을 보시고, 모든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아브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은 그의 행위가 의로웠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롬 4:1-3). 하나님은 바로 이 믿음을 보시고, 아브람을 모 든 믿는 자의 조상으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 시는 것은 우리의 행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 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인간적으로 절망하고 불평할 수밖에 없는 그 순간에,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치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영접하는 그 믿음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는 때가 언제입니까 바로 절망 할 수밖에 없는 때입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할 수밖에 없는 그 때야말로 우리의 믿음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우리의 성실이 바닥이 나고, 신앙이 바닥이 나서 모든 것을 포 기할 수밖에 없는 그 때가 바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때입니다. 우리가 절망할 수밖에 없는 그때 믿음으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 무슨 말씀을 하 셨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우상숭배와 운명과 저주에서 불러내시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려는 "여호와"이심을 확 신시켜 주셨습니다. 그러자 아브람은 이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요구했습니다.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8)" 하나님께서 이 땅을 업으로 주신 것은 믿겠는데 그 징표를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족속들이 눈 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데 언제 어떻게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맺고 자 하셨습니다. 9-11절은 당시에 계약 체결 방법이었습니다. 계 약 당사자들이 쪼갠 고기를 벌려 놓고 그 사이로 지나감으로써 계약이 체결되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계약을 어기면 그 쪼갠 짐승과 같이 해도 좋다는 맹세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이런 언약을 맺고자 하신 것은 아브람의 마음속에 변치 않는 확 고한 믿음을 심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17절에 보면 여호와 의 타는 횃불이 그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일방적으로 인쳐 주신 것이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아브람은 계약을 체결할 준비를 해 놓고, 해 질 무렵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그때 캄캄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께서 임하여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400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 며 그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13,14)." 이 말씀은 아브람의 후손들이 40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 할 것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큰 재물을 가지고 출애굽할 것에 대한 예 언이었습니다(출 1:11).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을 고난의 풀무 에 넣으신 것은 그들의 믿음을 연단하시고, 단일 민족을 형성하 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 그 섬기는 나라를 징치하신다고 했 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크신 권능으로 그 나라를 징계하심으 로 하나님의 이름을 온 세상에 드러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동 시에 택한 백성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가를 확증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장수하고,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갈 것과 그의 자손이 4대만에 돌아와 그 땅을 자치하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15,16). 16b 절을 보십시오.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아브람의 자손에게 주시는 것도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크신 뜻 과 섭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임을 깨우쳐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후손들을 통해서 우상숭배의 죄악이 관영한 가나안 족속들을 징벌하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날 에 가나안의 10 족속의 땅, 곧 애굽 강에서부터 유브라데스 강 까지의 모든 땅을 아브람의 자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19-21). 아브람은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가 나안 땅을 후손들에게 주실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역 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심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자식이 없지만 몇 백년 후에는 하늘의 별과 같이 많 은 후손들이 큰 재물을 이끌고 이 땅으로 돌아와 이 땅을 차지 하게 될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믿음으로 살다가 낙심이 될 때, 두려움과 절망에 빠질 때,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 라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운명적인 찹貫 문제, 풀리지 않는 신앙 문제에 부딪쳐 절망이 될 때 하늘의 뭇별을 바라보 고,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고, 언약의 말씀을 굳게 잡을 수 있 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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