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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이적 (요2:1-11)

본문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신 첫 번째 이적으로 보통 예수님의 첫 이적으로 보고 있다. 오늘 본문에는 “표적”이라는 단어로 번역이 되어져 있다. 헬라어 원문에는 “세메이온(σημεον)”이란 말로 스포츠에서 사용하는 사인(sign)을 말한다. 성경에 여러 다른 말로 번역되었으나, 우리에게 친숙한 말은 이적, 표징, 징조, 표적…. 등이다. 이 “표적”은 창조자이신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피조물인 인간에게 직접 알려주시는 계시로 하나님의 사인(sign)이다. 사도 요한이 바라본 예수님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곧 메시아이다. 이 메시아를 알려서 믿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 요한의 목적이었다(20:31). 세례 요한과 제자들의 증언을 통하여 알려지던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 곧 메시아이심을 밝히는 일을 예수님이 이적을 통하여 이제 직접하시는 것이다. 이 예수님의 첫 번째 이적을 행하신 곳은 “갈릴리 가나”이다. 수리아 지방에도 “가나”라는 곳이 있어서 “갈릴리 가나”로 기록을 하고 있다. 이곳은 나사렛에서 시오리 길이었으며, 나다나엘의 고향이기도 하다(요21:2).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이적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 집에서 행하신 예수님의 첫 번째 이적이다. 이 첫 이적이 우리 성도들에게 주는 “의미”를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살펴 보고져 한다.
1.모자람이 변하여 풍성함이 되는 이적이다. 본문 3절/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에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셨고, 예수님과 제자들도 그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아 참석을 했다. 마리아의 초대에 대한 언급이 없고, “거기 계셨다”는 사실과 하인들에게 지시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아, 이 혼인 잔치는 마리아의 친척집으로 추측이 된다.
1.포도주의 모자람 본문 3절/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혼인 잔치집에 포도주가 모자란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잔치는 먹고, 마시며 함께 즐기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춤과 노래로 흥을 돋구기 위해 의례껏 술이 동원된다. “모자람” 바로 이것이 인간의 문제이다. 모든 것이 풍성하다면 괴로움도, 슬픔도, 눈물도 없는 낙원을 이루리라. 아담의 범죄로 “실락원”을 맞게 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쓸 것을 땀흘려 수고해서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자급자족(自給自足)의 삶이 되고 보니 “모자람”이 찾아 온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인간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동거하며, 더불어 함께 살게 되어 있었다. 식물도, 삶의 터전도, 삶의 여러 여건도 6일간의 창조로 다 구비해 놓으시고 마지막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다. 마태복음 6:31절/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범죄로 “실락원”을 하기 전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하나님이 친히 공급해 주셨다.
그러므로 먹을 걱정, 마실 걱정, 입을 걱정이 필요 없었다. 하나님은 “모자람”의 하나님이 아니시다. “모자람” 이것은 또한 우리 성도들의 문제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가장 큰 문제이다(막9:24). 믿음이 없으니 행함도 없고(약2:17), 열매도 없고(엡5:11), 지혜도 없고(엡5:15), 두 마음을 품어 정함도 없고(약1:8), 성령님도 없고(유1:19),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다(엡2:12). 아모스 8:11-12절/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이 믿음 없는 세대가(막9:19) 극에 달하면 육신의 양식이 없어서 기근으로 고통을 당하게 된다(마24:7). 그러나 이 육신의 기근보다 더한 고통은 영혼의 기근이다. “여호와의 말씀”의 기근이 찾아오게 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으로 놀라운 것은 말씀의 홍수 속에서 당하는 기갈이라고 합니다. 물이 많다고 다 먹을 수 있는 물이 아닙니다. 홍수가 범람하여 수해를 입고 있는 지역에 급수 차량으로 식수를 공급하는 것을 봅니다. 결코 물이 없어서 당하는 기갈이 아닙니다. 마실 물이 없어서 당하는 기갈입니다. 생수가 없어서 당하는 기갈입니다. 말세가 가까울수록 문명의 이기는 더욱 발달하게 됩니다. 오늘날의 수준만으로도 대단합니다. 쉽게 출판을 할 수 있고, 쉽게 책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서점에 나가 보면 정말로 말씀의 홍수를 만난 것 같은 엄청난 많은 설교집을 대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지금 이 시대만 살펴 보아도 무슨 집회, 무슨 세미나, 무슨 훈련, 무슨 강좌, 무슨 운동, 무슨 공부. 서점에 대할 수 있는 그 홍수같이 범람하는 말씀들
그런데도 왜 이렇게도 수많은 집회들이 있고, 그곳을 찾아 헤매이는 사람들이 많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말씀을 구하려 쫓아다니는 사람들 정작 자신들의 손안에 있는 성경을 외면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성경 읽기에는 너무도 게으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스스로 재료를 구입해서 자신의 손으로 요리를 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남이 만들어 놓은 음식을 돈을 내고 편하게 먹으려 하는 사람들입니다. 무슨 운동으로 교회가 성장했다는 소문이 나면 그곳에는 자리가 비좁게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라면이나 수프(soup)를 끓여 먹는 인스턴트(instant) 시대 하나님의 말씀을 요리해야 하는 목회자들의 세계에도 인스턴트 시대의 말씀 요리가 점점 판을 쳐가고 있습니다. “모자람” 바로 이것이 문제이다. 육신의 즐거움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잔치 집에 포도주가 “모자람”이 문제이다. 영혼의 즐거움이 넘쳐야 하는 잔치집 교회에 믿음도 없고, 말씀도 없는 “모자람”이 문제이다.
2.해결할 수 없는 인간 본문 3절/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모자람”이 인간에게 주어진 문제이다. 이 “모자람” 보다 더 큰 문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인간에게 없다는 것이다. 문제를 만나고, 이를 해결하고 이것이 인생의 삶이다. 문제의 해결이 있는 곳에는 소망이 있고, 해결이 없는 곳에는 절망이 있다. 오늘 우리가 통과해야 할 경제위기 시대 이 어려운 경제 난국을, 우리 나라의 힘으로 해결할 힘이 없어서 경제의 주권을 넘겨주는 경제위기 시대가 온 것이다. 이 경제위기 시대가 우리 성도들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일까 문제를 가진 자는 문제의 해결자에게 모든 것을 내어 맡겨야 하고, 지시대로 따라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바로 문제의 해결자 주님께 모든 것을 다 맡겨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주께 두 손을 들고 그 문제를 가지고 나오게 되는 것이다. “포도주가 없나이다” 주님께 아뢰는 것이다. 나의 문제를 가지고 나와서 주님께 맡기는 것이다. 곧 기도이다. 3해결자 예수 본문 7-8절/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바로 주님의 첫 번째 이적이 행해지는 모습이다. “물을 채우라”, “떠서 갖다 주라” 예수님은 명하시고, 하인들은 순종하는 것이다. 물을 돌항아리에 채우고, 떠다 주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다. 포도주가 떨어진 잔치집에 여섯 항아리 가득 포도주가 풍성해졌다. 그렇다. 문제가 해결되면 “모자람”이 변하여 풍성케 된다. 근심이 변하여 즐거움이 된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눈물이 변하여 웃음이 된다. 바로 이적의 놀라운 힘이다.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주님(요1:3), 천지 만물의 주인이요, 주장자이심을 보여 주는 일이다. 곧 메시아임을 증거하는 일이다. 세례 요한과 제자들 사람들의 증거를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친히 자신 메시아이심을 증거하시는 이적이다.
2.말씀이 변하여 생명 역사를 하는 표적이다. 요한복음 6:53-54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 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 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이가 바로 예수님이시다. 말씀이 육신이요, 그 육신 속에 피가 있다. 말씀은 물로(요3:5, 엡5:26) 피는 포도주로(마26:28)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이적 바로 말씀이 변하여, 생명 역사를 일으키는 것을 의미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려주는 말씀이요, 그 사실을 믿고 구원 얻는 역사가 일어나는 생명 역사를 말해 준다.
1.아구까지 채우라 본문 7절/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결례를 따라 놓여진 돌항아리는 물을 담아 놓는 항아리이다. 식사 전후나, 외출에서 돌아올 때 손을 씻을 물을 담아 놓는 항아리이다. 두 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있었는데, 물을 채우라고 했다. 하인들의 순종은 당연했다. 물항아리에 물을 갖다 채우라는 말씀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말이요, 또 순종할 수 있는 말이요,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보통 사람과 차이를 느낄 수 없는 말이다. 포도주가 모자란다는 마리아의 이르는 말에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했다 하신 후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셨으니 다음의 일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여기의 하인들은 누구이며, 돌항아리는 무엇일까 하인들은 주님의 명하시는 말씀을 따라 순종해야 할 사람이요, 돌항아리는 물 곧 말씀을 담아 놓아야 할 그릇이다. 이를 정리하면 하인이나 돌항아리는 바로 주의 부르심을 입은 주의 종들이다. 주의 종들은 돌항아리 같은 머리 속에, 돌항아리 같은 가슴속에 말씀의 물을 아구까지 채워야 한다. 바로 주의 종들이 먼져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앞서도 생각해 보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돌항아리에 물을 아구까지 채우는 일을 게을리 하거나 생략하려는 하인들이 점점 많아져 가고 있다. 남이 만들어 놓은 음식으로 인스턴트 식품으로 돈을 주고 구입해다가 물만 부어 끓여 내어놓는다. 돌항아리에 아구까지 물을 채우는 일에 게을러지기 쉬운 시대이다. 인스턴트 식품이 많기 때문이다. 물만 부어 끓이면 요리가 되도록 준비되어진 식품들이 많은 시대이다. 사도행전 6:2절/ 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주의 부르심을 입은 사도들이 “말씀을 제쳐 놓고” 다른 일을 했다. 성령님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하던 때와 달라져 버린 모습이다.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집의 하인들 곧 주의 부르심을 입은 종들의 할 일은 돌항아리에 물을 아구까지 가득 채우는 일이다.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행6:4) 초대 교회의 사도들도 “말씀을 제쳐 놓고”에서. 말씀과 기도를 전무하리라로 돌아간다. 오늘날의 우리 교회의 모습도 말씀과 기도로 돌아가야 한다. 목회자나, 성도들 할 것 없이 말씀의 물로 아구까지 채우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 무슨 집회, 무슨 세미나, 무슨 훈련, 무슨 강좌, 무슨 운동, 무슨 공부. 왜 이렇게도 수많은 집회들이 있고, 그곳을 찾아 헤매이는 사람들이 많을까 남들이 해 놓은 요리로, 인스턴트 식품으로 돌항아리의 아구까지 채우라는 것이 아니다. 말씀의 물로 채워야 한다 자신이 스스로 채워야 한다. 주일 예배에 사용한 성경책이 1주일 내내 제자리에 그냥 놓여져 있으면서 그래도 무슨 세미나, 무슨 운동, 무슨 집회에는 열심이라면 무언가 한참 잘못된 것이다.
2.믿고 순종하라 본문 본문 5절/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인들에게 당부하는 마리아의 이 말 속에는 주님이 이르실 말씀이 하인들이 수긍하기 힘든 말씀이리라는 것이 암시되어져 있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이유를 묻지 말고, 따지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수긍하기 힘들어도 그대로 하라는 것이다. 의심 없이 믿고, 따르고, 순종하라는 것이다.
3.떠서 갖다 주라 본문 8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연회장은 식탁을 돌보고, 음식의 맛을 보는 사람으로 잔치집의 자리를 주관하였다.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는 말씀은 결례를 따른 손 씻을 물을 갖다 주라는 말씀이 아니다. 그렇다고 물맛을 보라는 것도 아니다.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은 믿음이 동반되는 일이다. 자신들이 아구까지 채운 것은 물이지 포도주가 아니다. 하인이 돌항아리에서 떠서 연회장에게 가져가는 것도 물이지 포도주가 아니었다. 이미 물이 포도주로 변해 있었다면 하인의 놀람과 경탄의 소리가 온 잔치집을 울렸으리라. 그러나 오늘 본문에는 전혀 하인의 놀란 기색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는 마리아의 당부에 못 이겨 순종한 것이다. 그 하인들은 예수를 “미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주님의 친속들도 “미쳤다”고 붙들러 다녔다(막3:21). 유대인들과 바리세인들이 귀신들렸다고 하고 있다.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주님의 말씀에 이유를 묻지 않고, 따지지 않고, 의심하지 않고 순종한 결과는 놀라운 축복이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이적 이 예수님의 첫 번째 이적 연회장도 모르고, 제자들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는 주님의 첫 이적을 아는 축복이요, 주님의 첫 이적에 쓰임 받은 축복이다. 음식에 전문가인 연회장도 모르는 사실을 이 하인은 알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구까지 채워진 물을 떠서 갖다 주는 일은 말씀을 전하는 일이요, 전도하는 일이다. 죽은 생명을 다시 살리는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는 일이다.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우리 성도가 복음의 말씀을 가지고 나가 보면 나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잘난 사람도 만나게 되고, 힘있는 사람도 만나게 되고, 학식 있는 사람도 만나게 되고, 전문가도 만나게 된다. 그러나, 무식한 하인의 손을 통하여 연회장이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이적의 맛을 볼 수 있었던 것처럼 말씀이 변하여 생명 역사를 하는 놀라운 일은 살아 있는 말씀 자체의 생명 역사이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이적 누구의 손을 통하여, 누구의 입을 통하여 전달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그 전달되어지는 말씀 자체가 살아 있는 말씀이다. 다시 말해서 하인이 연회장에게 떠다 준 것은 물이지만 연회장이 받아 마신 것은 포도주였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이적 그 이적의 원동력은 예수님의 말씀이다. 살아 있는 말씀이다.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던 말씀이다. 달리다굼 하시던 말씀이다. 나사로야 날오라 하시던 말씀이다. 청년아 일어나라 하시던 말씀이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이적 누가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느냐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돌항아리에서 물을 떠 가는 사람은 이 이적의 심부름꾼이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이적을 일으키는 일과는 상관이 없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돌항아리 같은 내 속에 채워놓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서 누구에게든지 갖다 주면 됩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이적은 내가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적의 원동력은 살아 있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떠서 갖다 주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이유를 묻지 말고, 따지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수긍하기 힘들어도 그대로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이적의 체험은 얼마만큼 의심 없이 믿고, 따르고, 순종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3.자연인이 변하여 신앙인이 되는 이적이다 본문 본문 9-10절/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이적 바로 자연인이 변하여 신앙인이 되는 이적이다. 예수님이 첫 번째 이적을 행하신 목적이다.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친히 증거하신 이적이다. 이 이적을 통하여 영광을 나타내고, 믿게 하려는 것이다.
1.사람마다(자연인)의 방법 먼저 좋은 포도주, 취한 후에 낮은 것 먼저 좋은 것으로 취하게 한 후에 잘 알지 못할 때에 질 낮은 값싼 포도주로 대접하는 것이 사람마다의 방법이다. 죄인의 방법이다. 곧 자연인의 방법이다. 한마디로 남을 속이는 것이다. 바로 범죄로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말해 준다. 남을 속이고, 거짓으로 치장을 하고, 자신의 유익을 위하고, 자신의 욕심을 챙기는 타락한 모습이다.
2.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사람마다의 방법이 아니다. 곧 자연인의 방법이 아니다. 범죄로 타락한 모습이 아니다. 먼저 취하게 하여 남을 속이려는 게 아니다. 자신의 욕심을 챙기려는 모습이 아니다. 처음과 나중이 동일한 모습이다. 변함이 없는 모습이다. 바로 진실된 모습이다. 거짓된 모습이 아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모습이다. 자연인이 변화된 모습이다. 처음과 나중이 동일한 모습 여기에 진실이 있다. 여기에 칭찬이 있다. 여기에 경탄이 있다. 여기에 신뢰가 있다. 여기에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감동이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자연인이 변하여 신앙인이 된 이적을 이룬 모습인가요 아니면 사람마다의 모습인가요 먼저 좋은 것으로 취하게 하여 속이고 빼앗는 모습인가요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이적 이 예수님의 첫 번째 이적은 먼저 나에게 이루어져야 할 이적입니다. 자연인이 변하여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할 수 있는 순종의 사람이 됩니다. 주의 말씀 순종하여 돌항아리 같은 내 속에 채워진 말씀의 물을 떠서 누구에게든지 갖다 줄 때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이적이 일어납니다. 무가치한 삶에서 가치 있는 삶을 하게 된다. 절망의 사람이 소망의 사람으로 바뀌게 됩니다. 삶의 낙이 없던 사람이 삶의 재미를 맛보게 됩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이적 모자람이 변하여 풍요를 누리는 축복입니다. 처음보다 나중이 더 나은 축복입니다.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 해지는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나이다” 포도주가 없다는 사실은 모자람이요, 궁핍입니다. 기근이요, 기갈입니다. 그러나, 절망은 아닙니다. 포도주가 없다는 사실을 아뢸 주님이 계시기에 절망은 없습니다. 물을 채우라 이제는 떠서 갖다 주라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이적의 원동력인 살아 있는 주님의 말씀이 있기에 염려, 근심, 걱정이 필요 없습니다. 이제는 떠서 갖다 주라 이유를 묻지 말고, 따지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이제는 떠서 갖다 줍시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이적 그것은 바로 나의 것입니다. 그가 비록 연회장이라도, 그가 비록 존귀한 자라도, 그가 비록 큰 자라도 이제는 떠서 갖다 줍시다. 그 때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이적은 바로 나의 것이 됩니다.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집의 하인만이 쓰임 받는 자가 아니요, 심부름꾼이 아닙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도 바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이적의 현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목도할 수 있습니다. 이런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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