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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피가 나오더라 (요19:34)

본문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후은 병정등이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더니 물과 피가 나왔다고 한다. 그날이 안식일을 예비하는 준비일이였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그 시체를 두고 안식일을 보낼 수 없었으므로 빌라도에 청을 해서 아직 안 죽었으면 다른 방법으로 죽여서 그날 시체를 치워 주 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군명들은 가서 양편의 강도의 뼈를 꺽어서 다시 죽게 하고 예수님은 벌써 죽었기 때문에 다리를 꺽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한 군병이 예수의 옆구리를 찌르니 물과 피가 나오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요한은 다시 ' 이것을 본 자가 증거하니 이 증거가 참되다.' 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또 요한 1서 에서 요한은 '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피로 임하셨 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님이시니 성령님은 진리이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님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만일 우리가 사람들 의 증거를 받을찐데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 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 말 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 거를 믿지 아니 하였음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 라.' 라고 기록 하고 있다. 마태나 누가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성령님으로 오시어 마리아에게 잉 태하신 분으로 기록하고 있는 반면 요한은 물과 피로 임하신 분으로 말 하고 있다. 요한에게 예수님은 옆구리에서 흐르는 물과 피로 왔다는 인상이 강했기 때문에 요한복음의 서두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고 전제하고 마지막에 물과 피로 임하신다고 기록하게 되었다 '말씀이 육신 이 되어 ' 라고 할 때 육신이라는 것도 육체를 말하고 ' 물과 피가 나오 더라 ' 라는 것도 결국 그는 육체로 오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은 또 이것을 본자가 증거하였으므로 이 증거가 참되다고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시대에 노스틱주의 자들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죽으신 것은 단지 십자가위에서 죽은 것으로 보인 것 뿐이지 실제로 죽 을 분이 아니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神으로 땅에 오신 것이지 사람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이것을 깨기위해 요한은 요한 1,2,3서를 쓰게 되었던 것이다. 요한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은 神으로가 아니고 사람으로 오셨 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그의 몸에서 물과 피가 흐르더라는 것을 증거 하고 있다. 요한에게 있어서 예수님이 가장 사람으로 보인 자리가 바로 이 자리였기 때문이다. 물론 요한에게 비친 예수의 모습은 여러가지였다. 바다를 걸어가던 일 , 五餠二魚의 사건 , 죽은 나사로를 일으키신 예수님은 사람이라기 보다 神이었다. 이런 사건속에서 예수는 神이라고 증거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십자가에 죽으신 자리는 아무도 神이라고 할 수 없는 자리이다. 이 사건에서만은 예수는 완전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옆구리를 찌렀을 때 물과 피가 나온 자리는 더욱 더 사람인 것을 증 명하였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죽지도 않지만 더구나 물과 피가 나오지 않는다. 사람만이 죽은 뒤 물과 피가 나온다고 한다. 요한에게 임하신 예수는 물과 피가 나오는 사람이었다. 육체를 가진 확 실한 사람을 요한은 본 것이다. 육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것을 요한은 일생동안 증거하고 있다. ' 육체로 오신 그리스도 ' 라는 것을 단순히 육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 어떻게 하나님이 육체로 우리에게 임하겠는가 '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도저히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가 아니면 또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실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우리와 같은 육체로 보여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보겠냐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육체로 보여주 실 수 밖에 없었다. 보이지 않는 분은 우리에게 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도 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나면서부터 소경인 사람은 빨강색에 대한 개념이 없기 때문에 그 마음에 빨간색이 임할 수 없는 것과 같이 하나님도 육체 로 오지 않으셨다면 사람안에 임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육체인 것을 부인하는 것은 적 그리스도라고 성경은 말한다. 요한 은 적 그리스도에 대하여 확실하게 말하고 있다. 요한 1서에서 요한은 적 그리스도에 대하여 확실하게 지적하고 있는데 그 첫째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부인하는 자 ,둘째는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부인하는 자 ,셋째 예수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 이다. 결국 이 셋을 합하면 예수가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육체로 오지않고 사람에게 임할 방법은 없다. 사람이라는 제한 을 가지고 왔어도 처음에 기적을 베푼 것으로 인해 그가 사람인 사실에 대해 오해를 받았지만 그가 옆구리를 찔리고 물과 피가 나왔을 때 도저 히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완전한 사람이었다. 유 대인들은 바로 이 사람을 부인하는 것이고 요한은 바로 이 사람을 받아 들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받아 들였다.
그렇다면 구약에서는 어떠했는가 마찬가지로 그때도 역시 사람이 보내지고 있었다. 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었지만 그때마다 선지자들은 핍박을 받았고 버림을 받아 왔다는 것이다. 아무도 그들이 하나님께 보냄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살았 을 때는 아무도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들의 말을 싫어 하고 결국에는 죽이게 되지만 그들이 죽고 나서는 그들을 '하나님의 선 지자'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구약은 이런 역사의 반복이라 할 수 있다. 살았을 때는 인정하지 않고 죽고 나면 인정하는 역사이다.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왔지만 사람들은 그가 사람 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죽고나면 슬퍼하고 무덤 을 만들고 비석을 세우곤 했다. 이것이 구약이다.
그런데 이것이 단지 구약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기독교안에서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초대교회시대에는 노스틱주의가 이것이고 현재도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고있다 고 말하면 아무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불덩어리로 , 혹은 구름으로 , 바람으로 온다고 하면 믿지만 사람으로 온다고 하면 참람하 다하여 이단으로 몰리고 말게 된다. 이것이 현대의 노스틱주의이고 적 그리스도이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사람들은 대충 하나님을 경배하면 되는 줄 알고 의식만을 중요시 하지만 그러나 만일 하나님이 육체로 임하실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이 요한 이 말하는 적 그리스도이다. 하나님이 육체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을 영원히 하늘에만 계시게 하는 것이고 땅에는 오실 자격이 없다고 고집하는 것이다. 그래서 땅은 하나님나라가 될 수 없고 적 그리스도가 지배할 수 밖에 없는 결과가 오게 된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은 땅에 내려올 수 없고 따라서 예수님도 지금은 하늘에 계시고 장차 구름을 타고 오실 분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모두 적 그리스도의 영이다. 절대로 하나님은 육체 가 될 수 없다는 생각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육체로 임 하지 않으면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불덩 어리로 , 바람으로 임할 때 우리는 단순히 불덩어리와 바람을 만날뿐 그 속에서 마음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불덩어리와 바람속에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은 느낄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는 없다. 하나님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우리가 그의 마음을 아는 것을 좋아하신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기의 마음을 심고자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물과 피로 우리에게 임하시고 있다.
창세기 2 장에 보면 아 담을 깊이 잠들게 한 후에 갈빗대 하나로 하와를 지었다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과 ' 옆구리를 찌르니까 물과 피가 나오더라'는 말씀은 모두 하나님이 사람에게 오시고 있는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과 피로 우리 에게 임하고 있는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 물과 피는 바로 우리와 같은 생명을 말한다. 요한이 이것을 쓴 이유도 바로 물과 피를 흘리신 예수가 우리의 생명이 되었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하나님이 육체로 오셨음을 나타내고 있다. 예수로 인해서 하나님은 육체가 될 수 없는 운명에서 육체가 될 수 있는 운명으로 바꾸어 졌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생명으로 조성되게 되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아담을 잠들게 하시고 갈비뼈를 빼서 만든 것이 또 하나의 아담이 아니고 하와였다. 남자가 아닌 여자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나온 물과 피는 우리에게 임하여 교회가 되었다. 우리에게 예수님의 물과 피가 임하면 교회가 된다. 교회는 사람이다. 교회는 물질이 아니고 물과 피로 된 사람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사람이다. 예수의 神적인 성분이 들어와서 된 것이 면 神이라 하겠지만 예수의 물과 피가 들어와서 되었기 때문에 교회는 사람이다.
그런데 요즘의 교회의 문제는 바로 이 사람이 없는 것이다. 성령님도 있고 능력도 있는데 물과 피가 없는 것이 문제이다. 교회는 사람으로 구성된 인격체이다. 인격이 아닌 어떤 것도 교회가 될 수 없다. 하와가 오직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것처럼 교회는 오직 예수님의 물과 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교회가 실패하는 것은 곧 예수님 이 실패하는 것이고 예수님이 실패하는 것은 하나님이 실패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완전한 사람이 되지 못하면 하나님은 실패한 것이다. 세상에서 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공산주의가 이론은 흠잡을데 없이 좋다고 하지 만 그것의 실천단계에 와서 많은 문제가 들어났다. 레닌, 스탈린 , 김일 성등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였기 때문에 결 국 무너지게 되었던 것이다. 어떤 이론이 육신화하는 단계에서 실패하면 그 이론은 틀린 것으로 밝혀진다는 말이다. 성육신이 되었을 때 그것이 온전한 것인지 아닌지 알게 되는 것이다. 농부가 씨앗을 사는 것도 마찬 가지다. 살 때는 그것이 몇년 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땅에 뿌려보면 그 것이 묵은 것인지 햇것인지 알게 된다. 묵은 씨는 조금 자란 후 곧 꽃대 가 나오기 때문에 채소로 사용할 수 없고 종자를 받는데만 쓰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완전한 성공은 성육신에 있다. 예수님이 완전한 사람으로 나타난 것이 하나님의 성공이다. 하와를 보고 그것의 재료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처럼 예수의 옆구리에서 나온 물과 피를 보고 우리는 예수의 재료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생명의 기초가 되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과 피로 임하셨다. 자기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었다는 말이다. 창세기 1 장에서 '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 할 때 그것은 단순한 관념이 아니었다. 그것은 창 세기 2 장에서 더 구체화 되여 아담의 갈비뼈를 빼어 하와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와서 물과 피로 임하신 분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아들이다. 예수님을 자기의 생명되는 분으로 만난 사람은 그와 같은 사람이 된다. 생명이 있는 사람이 되어 교회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예수의 물과 피만이 교회의 재료가 되기 때문에 이것이 임한 사람은 교회로 발견이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교회로 발견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설계자 이고 예수님은 재료였다.
그런데 우리에 대하여 예수님은 설계자이다. 우리는 그의 재료로 조성되고 있다. 사탄은 우리가 예수님의 재료가 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가 예수님의 재료가 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사탄의 계략인 것이다. 첫번째 계략이 아담에게 먹 게 한 선악과이다. 아담은 하나님 나라를 건축하는 재료가 되기 위해서 창조되었다. 사탄은 이재료를 망가뜨림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우지 못하 게 하였던 것이다. 생명과를 먹고 자라서 하나님 나라의 재료가 될 아담 에게 선악과를 먹도록 한 것이 그의 첫번째 계략이었다. 그후 아담은 선 악으로 인한 지식으로 계속 싸우게 되고 하나님 나라는 조용할 시간이 없게 되었다. 시끄러운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아무리 기도해도 안되고 성경을 읽어도 안되었다. 사탄은 하나님의 설계도는 고칠 수 없는 존재 였지만 재료를 방해해서 하나님 나라를 지연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사탄 은 계속해서 재료를 침투해 들어갔다. 사도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교회 속에 ' 사람은 안돼 ' ' 예수는 사람이 아니고 神이야 ' 같은 생각을 집 어 넣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가 지금까지 지연된 이유이다. 이런 말 때문에 교회의 모양은 있지만 교회가 인격이 되지는 못하였다. 단지 천 당에 가기위한 대기소로 교회가 전락하고 만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몸이다. 하나님의 설계도의 실현이고 성육신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물과 피로 우리에게 임하시고 우리는 또 다른 사람에게 물 과 피로 임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육신도 유전되는 것은 결혼을 통 해서 이듯이 하나님 나라도 그의 물과 피가 우리에게 임하는 것이 아니 면 유전이 될 수 없다. 이렇게 생명이 번식되는 과정은 육신적이든 영적 이든 같아서 물과 피를 받은 사람은 역시 물과 피를 내놓게 되어있다.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나온 것이 요한에게 생명으로 받아들여 졌기 때문에 그는 그것이 자기에게 들어온 것으로 말하고 있다. 주님이 물과 피로 임하시고 이 증거가 참되다고 사도 요한은 말하고 있다. 옛날에는 우리나라가 가난하였기 때문에 대부분 보리밥을 먹었다.
그리고 기계가 발달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집에서 두꺼운 껍질을 벗겨서 먹느라고 여자들이 고생을 많이 하였다. 겉껍질을 벗기고도 절구에 찧고 또 그것을 문지르고 다시 두번 삶아야 겨우 부드러운 보리밥이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어떤 식물이 우리 몸에 들어오기 까지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통보리가 바로 우리 몸 속에 들어올 수 없는 것처럼 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통채로 삼킬 수 없다는 것이다. 물과 피, 이것은 통보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빻고 문질러서 우리가 먹기에 좋은 보리로 변한 것을 말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장면을 생각해 보자. 맨 처음 그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갔다. 그 다음 유대인들이 저주하고 빌라도가 백성에게 내어주고 군병들이 조롱하고 겉 옷을 가져가고 속옷을 제비뽑고 다시 해 융을 마시게 하므로 몸안에 남은 수분을 완전히 빼내고 마지막에 그의 영혼을 포기 하셨다. 이것은 마치 겉보리가 빻아지고 빻아져서 우리의 음식이 되는 과정과 같은 것이다. 모든 생명은 다 우리에게 먹혀질 때 까지 이런 과정을 지나게 된다. 하늘에 있는 하나님도 처음에는 겉보리 이지만 물과 피로 임하실때 까지 완전하게 깍여서 우리안에 들어 올 수 있는 분이 되었다. 그가 완전하게 사람이라고 들어난 자리에서 그와 우리는 한 운명으로 보이게 되었다. 그 안에 우리의 창조가 있고 그 안에 서 우리는 주님을 만날 수 있다. 이것이 아니면 참 예수를 만난 것이 아니다. 물론 사람마다 예수를 만난 자리가 다르다. 홍해바다에서 만남 사람 , 여리고성에서 만남 사람 , 요단강에서 만난 사람 등이 있어서 그 사람마다 우리가 소화하는 정도가 다르게 된다. 물과 피로 임한 예수는 우리가 먹기에 가장 부드러운 음식이다. 이 분만이 우리에게 참 우리자 신이 누구인가를 알게 하신다. 물과 피로 임한 자리가 곧 내 자신인것을 알게 하신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어느날 모든 것을 벗게 된다. 학교, 직장 , 생활을 모두 벗고 나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그의 영과 물과 피일 것이다. 이것을 지금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미리 보는 것이다. 우리의 참 모습을 일찍 보는 것이고 그것을 살려가는 삶은 얼마나 복된 것인가. ! "우리는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재료가 되는 것이지 옳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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