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하나님 (렘50:20)
본문
물하나님 이란 말을 하고싶어 질때가 있습니다. 성서 속의 하나님을 때론 그렇게 부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때로는 과연 하나님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를 묻고 싶어집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잘 알지 못하게 하는 야훼의 말과 행위를 보게 될 때 바로 그러합니다. 하나님이 너무나 어이가없고 가소로와 웃게하였던 이스라엘의 반역적 행태는 시간이 얼추 지났다 고 해서 더 나아지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는 눈멀고 귀먹어 띠엄 띠엄 이면서도 하나님 앞에 서 방자한 태도를 바꾸지 않았던것입니다. 야훼의 말씀을 아예 따를 생각이 없고 마음이 이미 다른 곳에 가 있었던 이스라엘을 향해 가슴이 아픈 하나님은 말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똑똑히 지켜 보리라. 잘 돌봐 주려는 것이 아니라 재앙을 내리기 위하여 지켜 보리라 (44:27)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기의 백성이라고 칭하시었던 이스라엘을 이제는 재앙의 표적으로 삼기로 하 셨다는 말씀입니다. 더 두고 볼것도 없고,지켜본다면 오직 재앙을 가져오기 위하여 그러할 것이라고 말하고 계신겁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언은 단호한데다가 거침이 없었습니다. 결코 돌이키지 못할만 큼 말입니다. 그렇지만,사실 하나님은 백성을 아주 버릴 생각이 없으시다는 것을 알수 있니다. 아주 멸망에 내던 지는 건 애초 기대하는 바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에 울며 돌아와 야 훼를 찾으며,시온으로 가는 길을 물어 찾아 오며 영원한 계약을 다시는 저버리지 말자 라고 서로 다 짐하는 (50:5)모습을 기대하시며 내다보시는 겁니다. 이쯤에 이르면 하나님의 그 단호한 선언내용이 결정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날이 오면,그 때가 되면 나는 살아 남은 이스라 엘의 죄를 용서하여 주리라. 누군가 이러한 야훼의 발언을 향해서 에이,물-하나님 이라고 말하여도 압바 하나님은 그래 나를 향해 물 하나님이라고들 하는 모양인데,그래도 좋아 물이 되었건, 흙이 되 었건,하늘 하나님이라고 하든지 상관이 없어. 나는 내 백성이 어떠한 마음을 갖고 있느냐, 무엇에 관 심을 두고 있는지가 중요해. 내 백성의 관심사가 내가 바라던 대로라면 나는 언제라도 그들을 위해 움직인다 고 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고해서 하나님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주관이 없는 변덕장이 정도로 생각하진 말아야 합니다. 야훼 하나님의 선언은 하나라도 사라져 버리는 법이 없습니다. 야훼 하나님의 말은 언제나 역사 속에서 현실이 되어 집니다. 거침이 없고 단호하며 언제나 정의롭습니다. 그러나 그 단호하고 정의로 운 하나님의 말은 사람을 대적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하여야 합니다. 오히려 왜곡되고 얽혀있는 것을 풀어내고 바로잡는 것에 촛점이 모아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흔들림 없을 듯한 단호한 하나님의 멸망의 선언 이 어느순간에 용서의 선언으로 바뀌어 있다면, 야훼 하나님은 뒤틀려 있는 사람과 현실을 바로잡는 원래의 자기 관심사를 드러내고 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피조 세계 에 대한 파괴적인 심판을 즐기는 분이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며 일그러져 있는 세계를 오히려 치유 하며 새롭게 하는 것이 궁극적인 하나님의 심지인 것입니다. 아직도 이러한 야훼 하나님을 물 하나님 이라고 부르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되 처 음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어 인격적 교제의 대상 으로 생각하셨을 때 부터 턱없이 못나고 엉킨 존재 들을 끝까지 자신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사랑하시었던 것을 알아차린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결국에는 그렇게 말하진 못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까닭에 물 하나님 이란 표현조차도 상관치 않으시며 우리 네 편협하고 되먹지 못한 행태의 변화에 오직 관심을 두시는 압바이신 야훼의 넉넉한 마음자리를 감 격할 따름입니다. 이번주에 우리가 해야 할일은 우리의 관심사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왜곡된 부분은 없는가, 흐트러 진 부분은 없는가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속에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내야 할 모 든 시간 속에서 함께 하시며 뒤틀리고 왜곡된 것들을 바로잡는 일을 용기롭게 실천하게 하십니다. 먼저 우리 자신과 공동체 속에 이러한 왜곡된 부분이 없는지를 살피며 점검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언은 단호한데다가 거침이 없었습니다. 결코 돌이키지 못할만 큼 말입니다. 그렇지만,사실 하나님은 백성을 아주 버릴 생각이 없으시다는 것을 알수 있니다. 아주 멸망에 내던 지는 건 애초 기대하는 바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에 울며 돌아와 야 훼를 찾으며,시온으로 가는 길을 물어 찾아 오며 영원한 계약을 다시는 저버리지 말자 라고 서로 다 짐하는 (50:5)모습을 기대하시며 내다보시는 겁니다. 이쯤에 이르면 하나님의 그 단호한 선언내용이 결정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날이 오면,그 때가 되면 나는 살아 남은 이스라 엘의 죄를 용서하여 주리라. 누군가 이러한 야훼의 발언을 향해서 에이,물-하나님 이라고 말하여도 압바 하나님은 그래 나를 향해 물 하나님이라고들 하는 모양인데,그래도 좋아 물이 되었건, 흙이 되 었건,하늘 하나님이라고 하든지 상관이 없어. 나는 내 백성이 어떠한 마음을 갖고 있느냐, 무엇에 관 심을 두고 있는지가 중요해. 내 백성의 관심사가 내가 바라던 대로라면 나는 언제라도 그들을 위해 움직인다 고 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고해서 하나님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주관이 없는 변덕장이 정도로 생각하진 말아야 합니다. 야훼 하나님의 선언은 하나라도 사라져 버리는 법이 없습니다. 야훼 하나님의 말은 언제나 역사 속에서 현실이 되어 집니다. 거침이 없고 단호하며 언제나 정의롭습니다. 그러나 그 단호하고 정의로 운 하나님의 말은 사람을 대적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하여야 합니다. 오히려 왜곡되고 얽혀있는 것을 풀어내고 바로잡는 것에 촛점이 모아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흔들림 없을 듯한 단호한 하나님의 멸망의 선언 이 어느순간에 용서의 선언으로 바뀌어 있다면, 야훼 하나님은 뒤틀려 있는 사람과 현실을 바로잡는 원래의 자기 관심사를 드러내고 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피조 세계 에 대한 파괴적인 심판을 즐기는 분이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며 일그러져 있는 세계를 오히려 치유 하며 새롭게 하는 것이 궁극적인 하나님의 심지인 것입니다. 아직도 이러한 야훼 하나님을 물 하나님 이라고 부르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되 처 음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어 인격적 교제의 대상 으로 생각하셨을 때 부터 턱없이 못나고 엉킨 존재 들을 끝까지 자신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사랑하시었던 것을 알아차린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결국에는 그렇게 말하진 못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까닭에 물 하나님 이란 표현조차도 상관치 않으시며 우리 네 편협하고 되먹지 못한 행태의 변화에 오직 관심을 두시는 압바이신 야훼의 넉넉한 마음자리를 감 격할 따름입니다. 이번주에 우리가 해야 할일은 우리의 관심사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왜곡된 부분은 없는가, 흐트러 진 부분은 없는가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속에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내야 할 모 든 시간 속에서 함께 하시며 뒤틀리고 왜곡된 것들을 바로잡는 일을 용기롭게 실천하게 하십니다. 먼저 우리 자신과 공동체 속에 이러한 왜곡된 부분이 없는지를 살피며 점검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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