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로 가게 하소서 (마14:22-33)
본문
제가 몇 년 전에 브라질 상파울로에서 집회를 마치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모든 절차를 다 밟고 비행기가 이륙했습니다. 늦어도 한 20분 정도가 되면 비행기는 제 궤도에 들어서서 정상적으로 순탄한 비행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이 십분 정도 되니까 조종사의 안내 방송이 있었어요. "여러분, 우리는 지금 굉장히 어려운 곳에 와 있습니다. 제가 꼭 이 곳을 통과해야 되겠는데 여러분, 이 십분 동안 저를 믿어주시고, 안전 벨트를 꼭 메시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참아 달라"는 방송이었어요. 비행기를 타다가 이런 소리는 처음이었어요. 마음이 착찹하고, 기분이 이상 하더라구요. 조금 있는데 비행기가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그냥 흔들리는 정도가 아니예요. 마치 연이 떨어지듯이 그냥 곤두박질 치는 거예요. 비바람이 몰아치고, 상식선에서는 한 만미터 올라오면 그런 것이 없는 것인데 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몰아치는데 너무나 이상한 거예요. 부흥회가 별거 없더라구요. 그 곳에서 부흥회는 저절로 되는 거예요. 눈물이 나고, 회개가 되고, 말할 것 없어요. 한 번만 살려 달라고 하구요. 회개하지 못한 것 다 회개하고, 금방 천국문이 열려지는 거예요. 이번에 집에 가면 잘할 것이고, 교회에서도 충성할 것이고, 새벽기도는 말할 것도 없고, 저절로 하나님 앞에 서원이 되고요. 아주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몰라요. 살아나리라는 기대를 못할 정도로 비행기가 흔들리는 거예요. 비행기가 가끔 가다가 이상 기류를 만나면 참 고생한다고 하지요. 김포공항에 계시는 우리 집사님 이야기를 들으면 비행기 날개가 떨어져서 들어오는 경우도 있대요. 대단한 일이잖아요. 우리가 그런 일을 만나지 않아야 되지만은 우리가 비행기 많이 타면 안 만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렇게 어려운 고비를 넘긴 일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가 지금 경제적으로 많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우리가 듣고, 또 경험하고 있습니다. 제2의 경제위기가 오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우려하는 분도 국민 가운데 80%이상이 그런 걱정을 하고 있다는 뉴스도 들었습니다. 태풍이 대체로 잘 피해 갔는데 금년에는 두 번이나 내륙으로 통과를 했습니다. 가로질러 가면서 엄청난 피해를, 아픔을, 농민들에게 가져다주고, 얼마나 일년 내내 기대를 하던 한 곳이 농토가 무너지니까 천지가 무너지는 것이지요. 또 석유 값이 얼마나 오르는지요. 작년에 $15, $16 하던 것이 $32, $35 되니까 우리는 석유로 인해 연결이 안 되는 제품이 없습니다. 다 에너지 석유로 만들고 있고요. 움직이는 것 다 석유인데 만드는 제품들이 다 석유와 연결되어 있는데 석유 값이 이렇게 올라가니까 대기업 할 것 없이 전 국가적으로 어려움이 있고 우리 나라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선진국도 도로를 폐쇄하고 주유소 습격하고, 차를 다 세워놓고, 고속도로를 가로막고 있는. 나라마다 지금 석유 값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모든 어려움이 이상 난기류와 같이 우리에게 닥칠 때가 많습니다. 항상 평안합니까 항상 건강합니까 항상 행복합니까 항상 잘 살 수 있어요 그런 길은 없는 것이지요. 난데없이 생각지 않았던 슬픔도 오고, 환난도 오고, 시험도 오고, 풍랑도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일생 동안 영원히 항상 고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에게 닥쳤던 그 풍랑도 비행기에 있었던 그 이상 기류도 20분 지나니까 지나가는 거예요. 안전 벨트 꼭 매고, 지나가면 어려움은 반드시 지나가게 되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 낙심하거나 좌절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신앙의 안전 벨트, 기도의 안전 벨트, 어려울 때를 위해서 벨트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벨트는 어려울 때에 바짝 조이면 어려움은 넘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가정의 어려움이든 국가의 어려움이든 교회의 어려움이든 간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정상입니다. 얼마나 그 국민이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사랑하는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다닐 때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예수 잘 믿는 주님이 선택한 제자들에게도 풍랑이 있었습니다. 예수 잘 믿는 주님이 선택한 제자들에게도 풍랑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는 삶이었지만 흉년이 있었고, 이삭과 야곱도 흉년이 있어서 요셉은 애굽에 팔려가서 흉년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으로 완전히 이주하기까지 그런 고생을 하지 않습니까 다윗에게도 어려움이 있었고, 사무엘에게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모든 분들에게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면 어려울 때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찾아 오셨어요. 환난 중에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혼자 있지 않습니다. 혼자 우리가 파도와 싸우도록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주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늘에서 이 땅으로, 땅에서 또 땅으로 내가 있는 모든 처소에 주님이 항상 오셔서 외로운 곳에 함께 주무시고, 입원한 곳에 같이 치료를 받으시고, 부끄러움과 환난과 눈물 중에 같이 눈물 흘리시면서 내 눈물을 닦아주시는 주님이신 줄 믿습니다. 사람은 어려울 때 떠나가지요. 그러나 주님은 어려울 때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더 굳센 의지와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어려움을 바라보면 큰 어려움도 적게 보이고, 또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소망을 가지고 지나가면 우리는 어려움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의지가 너무 약합니다. 현대인들은 어려움에 대처하는 능력이 너무 약합니다. 그래서 당황하고, 시험 들고, 어려움보다 더 큰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 오늘 현대인들인 것입니다. 나만 외로운 것 아닙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을 보면 너무 좋은 환경, 좋은 직장, 부족함이 없는데도 외로워해요. 모든 좋은 조건 속에서도 시험이 잘 들어요. 모든 사람들은 대체로 낙심도 잘하고, 괴로움도 많고, 고민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를 구원하러 오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를 치료해 주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영국에는 개인이나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 격언처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신문에 Burton Bait 기억하라! 개인적으로도 어려움이 있으면 Burton Bait호를, 기억하라, 부모가 자녀에게,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Burton Bait호를, 기억하라. 이 배는 130년 전에 만든 해군 수송선입니다. 이 배가 케이프 타운이라고 하는 아프리카 최남단을 통과하다가 케이프 타운 65km 지점에 암초에 부딪혀서 이 배가 가라앉게 되었어요. 이 배에 구조선은 3척밖에 없었습니다. 몇 백명의 사람이 있는데 구명정은 3척 뿐입니다. 그 때 사령관은 모든 군인들을 갑판 위에 질서 있게 세우고, 구명정을 내려놓고 여자들과 어린아이들과 힘이 없는 노인들을 먼저 실었습니다. 그리고 군인들에게 지시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배 위에서 물에 뜰 수 있는 것은 다 떨어뜨리십시오. 배에 있는 모든 물위에 들 수 있는 것은 다 떨어 뜨렸습니다. 여러분도 다 뛰어내리세요. 모든 사람은 다 뛰어 내렸고, 물위에 뜬것들을 붙잡고 헤엄을 치며 나갔습니다.
마지막 사령관도 뛰어 내렸습니다. 간단한 이야기 같지만은 사람들은 대체로 어려움이 있을 때 우왕좌왕 합니다. 몰립니다. 서로 내가 살겠다고 합니다. 이성을 잃습니다. 신앙을 잃습니다. 내 혼자 생명을 건지려고 하다가 며칠 전에도 불이 나서 차례대로 나오면 다 살 수 있는데 전부 몰립니다. 그래서 나만 살아야 되겠다. 정신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위기를 당하였을 때 침착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어떤 위기 속에서도 우리의 소망이 되시는 주님, 다니엘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풀무불 속에서도 살려 주시는데 능치 못하심이 없는 우리 하나님을 믿으면서 가정에나 기업에나 우리의 주변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라도 우리는 담대해야 합니다. 침착해야 합니다. 조용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나라만 어려운 줄 아세요. 세계 경제 대국인 일본, 우리보다 열배 스무배 잘사는 일본도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6-7년을 불경기로 보내고 있습니다. 세계에 있는 일본의 땅을 모두 팔고요, 동경 시내 땅 값이 반으로 줄어 들었어요. 일본은 지금 경제 성장이 zero입니다. 몇 년을 그렇게 내려옵니다. 그러나 얼마나 조용합니까 침착합니다. 독일도 보세요. 지금을 제외한 경제 대국이 일본과 독일입니다. 그러나 동, 서독이 통일된 다음에 경제가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 선교사가 지금 그 곳에 가 있잖아요. 저도 그 곳에 가보니까. 그 전 독일이 아니예요. 계속하여 지금 뒤떨어지고 있습니다. 세계를 삼키려고 하던 독일이 경제 2등국으로 물러 앉고 있습니다. 그래도 조용합니다. 침착합니다. 그런 어려움이 어디 있느냐 할 정도로 독일은 슬기롭게 이겨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어려울 때마다 꼭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어려움 속에서 누구를 원망하거나 치우치거나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나만, 우리만, 우리집만 이렇게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 안되고 오히려 우리보다 더 큰 어려움을 당하고도 잘 이겨내는 민족을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줄 믿습니다. 특별히 교인들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어려울수록 정직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제일 문제가 사기범이 얼마나 많이 등장을 하는지요. 거짓말해서 나만 살겠다고 한 사람이 천 가정을 망치고, 몇백 가정을 망치고, 도망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려울 때 정직해야 합니다. 빛나는 것이지요. 캄캄한데 누구에게나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요. 어려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머니가 없는 두 부자가 하루는 빵을 사다가 먹는데 빵 속에서 금이 나왔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세상에 가난하던 이 집에 금 덩어리가 나왔으니 팔자를 고친 것이지요. 우리 같으면 그 금을 갖고 싶었지만 "아빠, 빵 주인이 모르고 빵 속에 금이 들어 갔나봐요. 가져다가 드려야지요.그래, 금을 얼마나 찾겠느냐" 두 부자는 빵을 들고 빵집으로 갔어요. "아저씨, 빵 속에 금이 들어있었어요. 저희는 빵만 샀지금을 산게 아니예요." 주인은 기쁜 모습으로 대하며 그 빵집 주인은 굉장한 부자였는데 많은 재산을 물려줄 자식이 없었어요. 그러던 중 정직한 사람을 찾았어요. 그는 금 덩어리를 여러곳에 넣었어요. 그러나 아무도 금을 다시 가져온 사람은 없었어요.
그런데 가난한 이 두 부자가 가져 왔어요. 그는 기뻐하며 그 많은 재산을 그 두 부자에게 주었고, 잘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수지 맞은 거예요. 어려울수록, 가난할수록, 정직해야 됩니다. 여러분, 내 정직함만 보이면 정직하다는 이 말만 들으면 우리는 이 세상 어디 가서도 살 수 있습니다. 어디서 살든지 내 주변에서 나를 볼 때 신용 있는 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도록 여러분을 관리해야 합니다. 어려울수록 소망을 가지세요. 좋은 것을 생각하세요.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세요. 주님을 바라 보세요. 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질병 환난을 당할지라도 주님은 내 곁에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 나의 친구 아멘. 아멘. 예수 나의 사랑 아멘. 아멘. 예수 나의 기쁨 아멘. 아멘♪ 예수가 나의 기쁨이 되십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저의 친구 목사님 가운데 이명중 목사님이 계신데 이 목사님은 25년 전에 해군 군목으로 군에 입대했어요. 군대가 다 어렵지만 특히 해병대는 훈련이 어렵습니다. 굉장히 어렵습니다. 하루는 팬티만 입고 집합 하더래요. 군에는 그런 일이 많습니다. 이 목사님이 팬티를 찾으니 팬티가 없는 거예요. 누가 가져간 거예요. 군에는 없는 것이 많아요. 자기 것이 없어지면 다른 사람 것을 훔쳐가고, 또 다른 사람이 가져가고 해서 없는 일이 많아요. 모자도 없는 일이 많아요. 누가 가져가면 어떻게 하느냐 하면 남의 중대에 가서 누가 화장실에 앉아 있으면 앉아 있는 사람의 모자를 벗겨오는 거예요. 앉아서 볼일을 보는 중이라 따라 올 수도 없는 거예요. 그러면 이것이 자꾸 넘어가는 거예요. 없으면 안되니까요. 이 목사님은 자기의 것이 없어졌지만 다른 것을 가져올 수가 없어서 바지만 입고 집합했어요. 조교가 왔는데 모두가 팬티만 입고 서 있는데 혼자 바지를 입고 있으니까 온갖 욕을 하면서 발로 배를 차고 개 잡듯이 두드려 패더라는 거예요. 군목이나 군의관이나 법무관도 들어와 있지만 훈련은 같이 받아야 하는 거예요. 목사님을 마구 때리는 거예요. 그리고 중대장한테 불려 갔어요. 팬티만 입으라고 했는데 너는 왜 바지를 입었느냐 군은 복종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느냐 하는 거예요. 목사님이 대답합니다. "저는 목사입니다. 저는 제가 잃었다고 훔칠 수가 없습니다. 제 것은 누가 가져가 버렸습니다." 중대장이 보고는 이 분은 진짜 목사님이시다. 해서 그 이후로 군 생활을 아주 잘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그 목사님을 믿어주는 거예요. 입던, 안 입던, 조금 어렵다고 해서 남의 것을 훔치고 하면. 믿는 사람에게 와서 스톱되어야지 계속 이어지면 이 사회가 어떻게 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 훔쳐도 내게 오면 그 일이 끝나고 다 거짓말해도 내게 오면 거짓말이 끝나야 되는 것입니다. 다 불의하고, 다 바람 피워도 내게 오면 바람이 끝나야지 계속 동남풍이 진행해서야 되겠느냐 하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남의 나라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는데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안 계시는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바다에서도 함께 하시고, 산에서도, 들에서도, 전쟁 중에서도 함께 하시고, 환난을 당할 때도 기근을 당할 때도 만군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우리는 풍랑이 일지라도 치우치지 말고 주님을 기다리고 주님을 바라보고 걸어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고, 주님과 함께 험한 세상을 승리하는 걸어가는 성도 되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믿고, "주여, 나로 물위로 걸어 오라 하소서" 주님을 바라보고 물위를 걸어 갔습니다. 기독교는 철학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수양의 종교도 아닙니다. 감상의 종교도 아닙니다. 자기 완성을 위해 힘쓰는 도의 종교가 아닙니다. 기의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요, 생명의 종교요, 구원의 종교입니다. 없는데서 있게 하시는 창조의 종교요, 죽은 자도 살리시는 생명의 주님이신 줄로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바다라고 해서, 산이라고 해서 못 건너는 것이 아닙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우리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는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땅을 떠날 때 말씀하셨어요.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누가복음에 보면 너희는 귀신을 쫓아내며 뱀을 집으며, 병든 자를 고치며, 복음을 증거하며, 하나님과 함꼐 하는 주님과 함께 하듯이 오늘 우리와 함께 하셔서 능력 있는 모든 것을 다스리고 보존하는 능력 있는 주의 자녀가 된 줄 믿습니다. 베드로는 주님과 함께 물위를 걸어가다가 오늘 본문에 보면 물에 빠졌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가 예수를 평생 잘 믿으면 좋겠지요. 그런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사람은 다 세상을 사랑하고, 원치 아니하는 길을 걸어가고,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고, 실수하고, 범죄하고, 넘어지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다가도 뒤로하고, 주의 종을 믿다가도 불평 불만하고, 이것이 사람이예요. 예수님의 제자들도 다 주님을 저 버렸구요. 배반했구요. 욕하구요, 물에 빠지기도 하구요, 실수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우리를 사랑하시고, 끝까지 버리지 아니하시고, 용서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인간은 모두가 약점이 있습니다. 결심하지만 결심대로 살지 못하고, 서원 하지만 서원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빠지지만은 세상을 늘 바라봅니다. 세상을 사랑합니다. 자기를 믿고 자기를 의지합니다. 사람을 믿지 말라고 했는데 사람을 철썩 같이 믿다가 어려움을 당합니다. 물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고, 권력을 의지하고, 죄에 타협하는 것이 우리 인간인 것입니다. 이러한 연약한 우리 인간을 주님은 언제나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시고, 한 번 죄 지었다고 해서 나를 죄인으로 보지 아니하세요. 어떤 사람도 주님은 장점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셔서 위대한 베드로처럼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교회와 멀어지면 늘 넘어지지요. 기도하다가 기도의 힘이 떨어지면 우리의 마음이 무너지고 연약해질 때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우리를 다시 일으키시는 주님이십니다. 어떤 목사님이 강단에서 설교하시다가 종이를 교인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여러분, 이 곳에 무엇이 보입니까 점이 보입니다. 많은 사람은 종이를 볼 때 점을 봅니다. 주님은 우리를 그렇게 보지 않아요. 한 사람에게 약점이 있으면 그것만을 봅니다. 실수가 있으면 실수를 그 전체의 인격으로 보아서 매장을 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볼 때 깨끗한 종이로 보시고, 이 점을 가지고 주님은 훌륭한 스케치를 해서 멋진 작품으로 만들어 내시는 주님이십니다. 부모의 눈도 그래요. 부모는 자녀가 잘못하거나 실수를 해도 이만한 잘못 없는 아이가 어디 있느냐고 부모는 사랑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크게 보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사랑의 주님이예요. 세상은 한가지 점만 있으면 그것 때문에 망해요. 살 수 없어요. 일할 수 없어요. 어디 가서든지 버림받아요. 그러나 주님은 여러분의 약점을 적게 봅니다. 아주 커다란 종이에 조그마한 점에 지나지 않습니다.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남들처럼 무슨 부족함이 있고, 배우지 못한 것이 있고, 실수가 있고, 잘못이 있을지라도 주님은 그로 통하여 여러분을 들어 쓰시고, 더 위대한. 오늘 내게 이 문제가 있으므로 하나님은 그 방면을 통하여 힘을 주셔서 더 큰 일을 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제가 어제 신문을 보니까 미국의 기업가운데 금년에 600대 기업 중에 대학을 못 들어가고 대학 공부를 안 했는데도 미국 600대 재벌 기업에 들어간 분들이 많이 있더라구요. 지금은 능력만 있으면 또 요즈음 벤처라는 것이 있잖아요. 꼭 일등 해서만이 아닙니다.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신앙과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우리 나라도 아니고 미국에서 대학도 안 나오고, 몇 만명을 거느릴 수 있어요 그러나 사람이 부족한 줄 알고, 더 열심히 하는 사람이 계속하여 발전할 수 있는 거예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능력의 주님이신 줄 믿습니다. 사람은 다 부족함이 있습니다. 저는 이번 올림픽 게임 가운데 배구와 농구를 자주 보았어요. 우리 배구가 얼마나 잘하는지요. 남녀 배구 팀들이 러시아를 이기구요, 대단해요. 러시아가 세계 챔피언이었거든요. 미국하고도 이기구요, 얼마나 신나는지요.
그런데 배구, 농구 선수들 보면 배구는 6명이 하는데요. 그냥 코트가 꽉 찹니다. 공이 넘어오면 2m의 장대 같은 자들이 앞을 가로막으면 공이 날아 올데가 없습니다. 빈틈없이 막아냅니다. 그래도 스파이크하면 그대로 꽂히거든요. 너무너무 신나요. 배구, 농구를 볼 때 완벽한 방어를 해도 약점이 있는 것을 적이 아는 거예요. 만약에 미스를 하지 않고, 3시간을 공이 왔다갔다한다고 생각해 봐요. 누가 그것을 보겠어요 몸서리나서 그것을 보러 안 가지요. 약점에, 빈자리에 공이 꽂히는 것을 볼 때에 신나는 것이지요. 사람이 약점이 있는 것, 그것이 아름다움이에요. 아내가 약점이 없어봐요. 그게 귀신이지 사람이에요 약점 하나 있다고 그것을 들춰내고 그러면 안됩니다 남편에게 약점이 있어야지요. 약점이 없는 사람은 천사지 사람이 아니예요. 오늘 우리 모든 성도들이 주님의 눈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물에 빠져도 주님을 다시 붙잡으면 일어설 수 있습니다. 나는 왜 이러는지 몰라. 나는 왜 이렇게 약한지 몰라. 다 그래요. 이러한 연약한 우리를 주님은 오늘도 사랑하시고, 기도하면 빨리 손잡아 주셔서 물에 빠진 우리를 건져 주실 줄 믿습니다. 시편 107편에 사람이 흑암에 거하고,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사람이 곤고와 고통을 당하는 것은 지존자의 뜻을 멸시하고, 하나님의 뜻을 떠나서 그런 어려움이 왔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떠날 때 언제나 물에 빠지는 것을 알고 시편 51편에 나오는 다윗처럼, 베드로처럼 하나님 앞에 눈물로 울부짖고, 회개할 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건져 주실 줄 믿습니다. 답답할 때 골프 치면 좋지요. 그러나 골프 쳐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골프 치는 것은 대체로 6시간 정도 걸립니다. 차 타고 가야지요, 4시간 정도 돌아야지요, 목욕도 해야지요. 그리고 밥 먹고 오면 8시간 잡아야 됩니다. 그렇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 되나요 조금 좋지요. 안 나가는 것 보다 낫지요. 그러나 30분만 찬송 불러봐요. 성령 충만. 일나요. 일. 20분만 기도해 봐요. 그건 죽어도 안하고, 가방만 메고 가려고 하면 안됩니다. 성령 충만해서 물에 빠진 우리 자신부터 일어나기 위해서 기도의 손을 붙잡고 찬송의 입을 열고, 천국을 향하여 주님을 향하여 마음을 열기 바랍니다. 소망을 가지십시오. 우리는 어려워도 주님이 함께 하시면 분명히 이길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저는 책을 볼 때 타이틀이 뭐냐 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책을 보면 목사님인데도 타이틀이 좋지 않을 때가 있어요. 얼마 전에 어떤 목사님 책을 보니까 제목이 '고독한 나그네 목회'. 교인들도 고독해 하고, 낙심이 많은데 목사 마저 '고독한 나그네 목회'라. 그렇게 해서야 어떻게 목회가 되겠어요. 하숙생인가 나그네인가. 제목을 고독한 나그네와 함께 하시는 주님. 이렇게 하든가. 무슨 소망이 있어야지요. 무슨 염세 주의적 이런 말을 쓰는 것이 좋은 게 아니예요. 물에 빠진 인생, 허우적거리는 기업, 우리는 주님을 붙잡는 목회를, 소망 있는 말을 해야 합니다. 어려울수록 그런 소망 있는 용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갈릴리 바다 풍랑 가운데 찾아오시는 주님. 환난 중에 함께 하시는 주님. 나의 길을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 할렐루야. 남은 여생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이 올지라도 주님과 함께 이 풍랑 이겨내고, 또다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성도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모든 어려움이 이상 난기류와 같이 우리에게 닥칠 때가 많습니다. 항상 평안합니까 항상 건강합니까 항상 행복합니까 항상 잘 살 수 있어요 그런 길은 없는 것이지요. 난데없이 생각지 않았던 슬픔도 오고, 환난도 오고, 시험도 오고, 풍랑도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일생 동안 영원히 항상 고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에게 닥쳤던 그 풍랑도 비행기에 있었던 그 이상 기류도 20분 지나니까 지나가는 거예요. 안전 벨트 꼭 매고, 지나가면 어려움은 반드시 지나가게 되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 낙심하거나 좌절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신앙의 안전 벨트, 기도의 안전 벨트, 어려울 때를 위해서 벨트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벨트는 어려울 때에 바짝 조이면 어려움은 넘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가정의 어려움이든 국가의 어려움이든 교회의 어려움이든 간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정상입니다. 얼마나 그 국민이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사랑하는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다닐 때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예수 잘 믿는 주님이 선택한 제자들에게도 풍랑이 있었습니다. 예수 잘 믿는 주님이 선택한 제자들에게도 풍랑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는 삶이었지만 흉년이 있었고, 이삭과 야곱도 흉년이 있어서 요셉은 애굽에 팔려가서 흉년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으로 완전히 이주하기까지 그런 고생을 하지 않습니까 다윗에게도 어려움이 있었고, 사무엘에게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모든 분들에게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면 어려울 때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찾아 오셨어요. 환난 중에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혼자 있지 않습니다. 혼자 우리가 파도와 싸우도록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주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늘에서 이 땅으로, 땅에서 또 땅으로 내가 있는 모든 처소에 주님이 항상 오셔서 외로운 곳에 함께 주무시고, 입원한 곳에 같이 치료를 받으시고, 부끄러움과 환난과 눈물 중에 같이 눈물 흘리시면서 내 눈물을 닦아주시는 주님이신 줄 믿습니다. 사람은 어려울 때 떠나가지요. 그러나 주님은 어려울 때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더 굳센 의지와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어려움을 바라보면 큰 어려움도 적게 보이고, 또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소망을 가지고 지나가면 우리는 어려움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의지가 너무 약합니다. 현대인들은 어려움에 대처하는 능력이 너무 약합니다. 그래서 당황하고, 시험 들고, 어려움보다 더 큰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 오늘 현대인들인 것입니다. 나만 외로운 것 아닙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을 보면 너무 좋은 환경, 좋은 직장, 부족함이 없는데도 외로워해요. 모든 좋은 조건 속에서도 시험이 잘 들어요. 모든 사람들은 대체로 낙심도 잘하고, 괴로움도 많고, 고민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를 구원하러 오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를 치료해 주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영국에는 개인이나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 격언처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신문에 Burton Bait 기억하라! 개인적으로도 어려움이 있으면 Burton Bait호를, 기억하라, 부모가 자녀에게,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Burton Bait호를, 기억하라. 이 배는 130년 전에 만든 해군 수송선입니다. 이 배가 케이프 타운이라고 하는 아프리카 최남단을 통과하다가 케이프 타운 65km 지점에 암초에 부딪혀서 이 배가 가라앉게 되었어요. 이 배에 구조선은 3척밖에 없었습니다. 몇 백명의 사람이 있는데 구명정은 3척 뿐입니다. 그 때 사령관은 모든 군인들을 갑판 위에 질서 있게 세우고, 구명정을 내려놓고 여자들과 어린아이들과 힘이 없는 노인들을 먼저 실었습니다. 그리고 군인들에게 지시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배 위에서 물에 뜰 수 있는 것은 다 떨어뜨리십시오. 배에 있는 모든 물위에 들 수 있는 것은 다 떨어 뜨렸습니다. 여러분도 다 뛰어내리세요. 모든 사람은 다 뛰어 내렸고, 물위에 뜬것들을 붙잡고 헤엄을 치며 나갔습니다.
마지막 사령관도 뛰어 내렸습니다. 간단한 이야기 같지만은 사람들은 대체로 어려움이 있을 때 우왕좌왕 합니다. 몰립니다. 서로 내가 살겠다고 합니다. 이성을 잃습니다. 신앙을 잃습니다. 내 혼자 생명을 건지려고 하다가 며칠 전에도 불이 나서 차례대로 나오면 다 살 수 있는데 전부 몰립니다. 그래서 나만 살아야 되겠다. 정신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위기를 당하였을 때 침착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어떤 위기 속에서도 우리의 소망이 되시는 주님, 다니엘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풀무불 속에서도 살려 주시는데 능치 못하심이 없는 우리 하나님을 믿으면서 가정에나 기업에나 우리의 주변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라도 우리는 담대해야 합니다. 침착해야 합니다. 조용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나라만 어려운 줄 아세요. 세계 경제 대국인 일본, 우리보다 열배 스무배 잘사는 일본도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6-7년을 불경기로 보내고 있습니다. 세계에 있는 일본의 땅을 모두 팔고요, 동경 시내 땅 값이 반으로 줄어 들었어요. 일본은 지금 경제 성장이 zero입니다. 몇 년을 그렇게 내려옵니다. 그러나 얼마나 조용합니까 침착합니다. 독일도 보세요. 지금을 제외한 경제 대국이 일본과 독일입니다. 그러나 동, 서독이 통일된 다음에 경제가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 선교사가 지금 그 곳에 가 있잖아요. 저도 그 곳에 가보니까. 그 전 독일이 아니예요. 계속하여 지금 뒤떨어지고 있습니다. 세계를 삼키려고 하던 독일이 경제 2등국으로 물러 앉고 있습니다. 그래도 조용합니다. 침착합니다. 그런 어려움이 어디 있느냐 할 정도로 독일은 슬기롭게 이겨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어려울 때마다 꼭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어려움 속에서 누구를 원망하거나 치우치거나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나만, 우리만, 우리집만 이렇게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 안되고 오히려 우리보다 더 큰 어려움을 당하고도 잘 이겨내는 민족을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줄 믿습니다. 특별히 교인들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어려울수록 정직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제일 문제가 사기범이 얼마나 많이 등장을 하는지요. 거짓말해서 나만 살겠다고 한 사람이 천 가정을 망치고, 몇백 가정을 망치고, 도망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려울 때 정직해야 합니다. 빛나는 것이지요. 캄캄한데 누구에게나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요. 어려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머니가 없는 두 부자가 하루는 빵을 사다가 먹는데 빵 속에서 금이 나왔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세상에 가난하던 이 집에 금 덩어리가 나왔으니 팔자를 고친 것이지요. 우리 같으면 그 금을 갖고 싶었지만 "아빠, 빵 주인이 모르고 빵 속에 금이 들어 갔나봐요. 가져다가 드려야지요.그래, 금을 얼마나 찾겠느냐" 두 부자는 빵을 들고 빵집으로 갔어요. "아저씨, 빵 속에 금이 들어있었어요. 저희는 빵만 샀지금을 산게 아니예요." 주인은 기쁜 모습으로 대하며 그 빵집 주인은 굉장한 부자였는데 많은 재산을 물려줄 자식이 없었어요. 그러던 중 정직한 사람을 찾았어요. 그는 금 덩어리를 여러곳에 넣었어요. 그러나 아무도 금을 다시 가져온 사람은 없었어요.
그런데 가난한 이 두 부자가 가져 왔어요. 그는 기뻐하며 그 많은 재산을 그 두 부자에게 주었고, 잘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수지 맞은 거예요. 어려울수록, 가난할수록, 정직해야 됩니다. 여러분, 내 정직함만 보이면 정직하다는 이 말만 들으면 우리는 이 세상 어디 가서도 살 수 있습니다. 어디서 살든지 내 주변에서 나를 볼 때 신용 있는 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도록 여러분을 관리해야 합니다. 어려울수록 소망을 가지세요. 좋은 것을 생각하세요.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세요. 주님을 바라 보세요. 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질병 환난을 당할지라도 주님은 내 곁에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 나의 친구 아멘. 아멘. 예수 나의 사랑 아멘. 아멘. 예수 나의 기쁨 아멘. 아멘♪ 예수가 나의 기쁨이 되십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저의 친구 목사님 가운데 이명중 목사님이 계신데 이 목사님은 25년 전에 해군 군목으로 군에 입대했어요. 군대가 다 어렵지만 특히 해병대는 훈련이 어렵습니다. 굉장히 어렵습니다. 하루는 팬티만 입고 집합 하더래요. 군에는 그런 일이 많습니다. 이 목사님이 팬티를 찾으니 팬티가 없는 거예요. 누가 가져간 거예요. 군에는 없는 것이 많아요. 자기 것이 없어지면 다른 사람 것을 훔쳐가고, 또 다른 사람이 가져가고 해서 없는 일이 많아요. 모자도 없는 일이 많아요. 누가 가져가면 어떻게 하느냐 하면 남의 중대에 가서 누가 화장실에 앉아 있으면 앉아 있는 사람의 모자를 벗겨오는 거예요. 앉아서 볼일을 보는 중이라 따라 올 수도 없는 거예요. 그러면 이것이 자꾸 넘어가는 거예요. 없으면 안되니까요. 이 목사님은 자기의 것이 없어졌지만 다른 것을 가져올 수가 없어서 바지만 입고 집합했어요. 조교가 왔는데 모두가 팬티만 입고 서 있는데 혼자 바지를 입고 있으니까 온갖 욕을 하면서 발로 배를 차고 개 잡듯이 두드려 패더라는 거예요. 군목이나 군의관이나 법무관도 들어와 있지만 훈련은 같이 받아야 하는 거예요. 목사님을 마구 때리는 거예요. 그리고 중대장한테 불려 갔어요. 팬티만 입으라고 했는데 너는 왜 바지를 입었느냐 군은 복종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느냐 하는 거예요. 목사님이 대답합니다. "저는 목사입니다. 저는 제가 잃었다고 훔칠 수가 없습니다. 제 것은 누가 가져가 버렸습니다." 중대장이 보고는 이 분은 진짜 목사님이시다. 해서 그 이후로 군 생활을 아주 잘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그 목사님을 믿어주는 거예요. 입던, 안 입던, 조금 어렵다고 해서 남의 것을 훔치고 하면. 믿는 사람에게 와서 스톱되어야지 계속 이어지면 이 사회가 어떻게 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 훔쳐도 내게 오면 그 일이 끝나고 다 거짓말해도 내게 오면 거짓말이 끝나야 되는 것입니다. 다 불의하고, 다 바람 피워도 내게 오면 바람이 끝나야지 계속 동남풍이 진행해서야 되겠느냐 하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남의 나라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는데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안 계시는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바다에서도 함께 하시고, 산에서도, 들에서도, 전쟁 중에서도 함께 하시고, 환난을 당할 때도 기근을 당할 때도 만군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우리는 풍랑이 일지라도 치우치지 말고 주님을 기다리고 주님을 바라보고 걸어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고, 주님과 함께 험한 세상을 승리하는 걸어가는 성도 되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믿고, "주여, 나로 물위로 걸어 오라 하소서" 주님을 바라보고 물위를 걸어 갔습니다. 기독교는 철학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수양의 종교도 아닙니다. 감상의 종교도 아닙니다. 자기 완성을 위해 힘쓰는 도의 종교가 아닙니다. 기의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요, 생명의 종교요, 구원의 종교입니다. 없는데서 있게 하시는 창조의 종교요, 죽은 자도 살리시는 생명의 주님이신 줄로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바다라고 해서, 산이라고 해서 못 건너는 것이 아닙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우리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는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땅을 떠날 때 말씀하셨어요.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누가복음에 보면 너희는 귀신을 쫓아내며 뱀을 집으며, 병든 자를 고치며, 복음을 증거하며, 하나님과 함꼐 하는 주님과 함께 하듯이 오늘 우리와 함께 하셔서 능력 있는 모든 것을 다스리고 보존하는 능력 있는 주의 자녀가 된 줄 믿습니다. 베드로는 주님과 함께 물위를 걸어가다가 오늘 본문에 보면 물에 빠졌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가 예수를 평생 잘 믿으면 좋겠지요. 그런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사람은 다 세상을 사랑하고, 원치 아니하는 길을 걸어가고,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고, 실수하고, 범죄하고, 넘어지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다가도 뒤로하고, 주의 종을 믿다가도 불평 불만하고, 이것이 사람이예요. 예수님의 제자들도 다 주님을 저 버렸구요. 배반했구요. 욕하구요, 물에 빠지기도 하구요, 실수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우리를 사랑하시고, 끝까지 버리지 아니하시고, 용서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인간은 모두가 약점이 있습니다. 결심하지만 결심대로 살지 못하고, 서원 하지만 서원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빠지지만은 세상을 늘 바라봅니다. 세상을 사랑합니다. 자기를 믿고 자기를 의지합니다. 사람을 믿지 말라고 했는데 사람을 철썩 같이 믿다가 어려움을 당합니다. 물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고, 권력을 의지하고, 죄에 타협하는 것이 우리 인간인 것입니다. 이러한 연약한 우리 인간을 주님은 언제나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시고, 한 번 죄 지었다고 해서 나를 죄인으로 보지 아니하세요. 어떤 사람도 주님은 장점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셔서 위대한 베드로처럼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교회와 멀어지면 늘 넘어지지요. 기도하다가 기도의 힘이 떨어지면 우리의 마음이 무너지고 연약해질 때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우리를 다시 일으키시는 주님이십니다. 어떤 목사님이 강단에서 설교하시다가 종이를 교인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여러분, 이 곳에 무엇이 보입니까 점이 보입니다. 많은 사람은 종이를 볼 때 점을 봅니다. 주님은 우리를 그렇게 보지 않아요. 한 사람에게 약점이 있으면 그것만을 봅니다. 실수가 있으면 실수를 그 전체의 인격으로 보아서 매장을 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볼 때 깨끗한 종이로 보시고, 이 점을 가지고 주님은 훌륭한 스케치를 해서 멋진 작품으로 만들어 내시는 주님이십니다. 부모의 눈도 그래요. 부모는 자녀가 잘못하거나 실수를 해도 이만한 잘못 없는 아이가 어디 있느냐고 부모는 사랑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크게 보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사랑의 주님이예요. 세상은 한가지 점만 있으면 그것 때문에 망해요. 살 수 없어요. 일할 수 없어요. 어디 가서든지 버림받아요. 그러나 주님은 여러분의 약점을 적게 봅니다. 아주 커다란 종이에 조그마한 점에 지나지 않습니다.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남들처럼 무슨 부족함이 있고, 배우지 못한 것이 있고, 실수가 있고, 잘못이 있을지라도 주님은 그로 통하여 여러분을 들어 쓰시고, 더 위대한. 오늘 내게 이 문제가 있으므로 하나님은 그 방면을 통하여 힘을 주셔서 더 큰 일을 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제가 어제 신문을 보니까 미국의 기업가운데 금년에 600대 기업 중에 대학을 못 들어가고 대학 공부를 안 했는데도 미국 600대 재벌 기업에 들어간 분들이 많이 있더라구요. 지금은 능력만 있으면 또 요즈음 벤처라는 것이 있잖아요. 꼭 일등 해서만이 아닙니다.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신앙과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우리 나라도 아니고 미국에서 대학도 안 나오고, 몇 만명을 거느릴 수 있어요 그러나 사람이 부족한 줄 알고, 더 열심히 하는 사람이 계속하여 발전할 수 있는 거예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능력의 주님이신 줄 믿습니다. 사람은 다 부족함이 있습니다. 저는 이번 올림픽 게임 가운데 배구와 농구를 자주 보았어요. 우리 배구가 얼마나 잘하는지요. 남녀 배구 팀들이 러시아를 이기구요, 대단해요. 러시아가 세계 챔피언이었거든요. 미국하고도 이기구요, 얼마나 신나는지요.
그런데 배구, 농구 선수들 보면 배구는 6명이 하는데요. 그냥 코트가 꽉 찹니다. 공이 넘어오면 2m의 장대 같은 자들이 앞을 가로막으면 공이 날아 올데가 없습니다. 빈틈없이 막아냅니다. 그래도 스파이크하면 그대로 꽂히거든요. 너무너무 신나요. 배구, 농구를 볼 때 완벽한 방어를 해도 약점이 있는 것을 적이 아는 거예요. 만약에 미스를 하지 않고, 3시간을 공이 왔다갔다한다고 생각해 봐요. 누가 그것을 보겠어요 몸서리나서 그것을 보러 안 가지요. 약점에, 빈자리에 공이 꽂히는 것을 볼 때에 신나는 것이지요. 사람이 약점이 있는 것, 그것이 아름다움이에요. 아내가 약점이 없어봐요. 그게 귀신이지 사람이에요 약점 하나 있다고 그것을 들춰내고 그러면 안됩니다 남편에게 약점이 있어야지요. 약점이 없는 사람은 천사지 사람이 아니예요. 오늘 우리 모든 성도들이 주님의 눈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물에 빠져도 주님을 다시 붙잡으면 일어설 수 있습니다. 나는 왜 이러는지 몰라. 나는 왜 이렇게 약한지 몰라. 다 그래요. 이러한 연약한 우리를 주님은 오늘도 사랑하시고, 기도하면 빨리 손잡아 주셔서 물에 빠진 우리를 건져 주실 줄 믿습니다. 시편 107편에 사람이 흑암에 거하고,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사람이 곤고와 고통을 당하는 것은 지존자의 뜻을 멸시하고, 하나님의 뜻을 떠나서 그런 어려움이 왔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떠날 때 언제나 물에 빠지는 것을 알고 시편 51편에 나오는 다윗처럼, 베드로처럼 하나님 앞에 눈물로 울부짖고, 회개할 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건져 주실 줄 믿습니다. 답답할 때 골프 치면 좋지요. 그러나 골프 쳐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골프 치는 것은 대체로 6시간 정도 걸립니다. 차 타고 가야지요, 4시간 정도 돌아야지요, 목욕도 해야지요. 그리고 밥 먹고 오면 8시간 잡아야 됩니다. 그렇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 되나요 조금 좋지요. 안 나가는 것 보다 낫지요. 그러나 30분만 찬송 불러봐요. 성령 충만. 일나요. 일. 20분만 기도해 봐요. 그건 죽어도 안하고, 가방만 메고 가려고 하면 안됩니다. 성령 충만해서 물에 빠진 우리 자신부터 일어나기 위해서 기도의 손을 붙잡고 찬송의 입을 열고, 천국을 향하여 주님을 향하여 마음을 열기 바랍니다. 소망을 가지십시오. 우리는 어려워도 주님이 함께 하시면 분명히 이길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저는 책을 볼 때 타이틀이 뭐냐 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책을 보면 목사님인데도 타이틀이 좋지 않을 때가 있어요. 얼마 전에 어떤 목사님 책을 보니까 제목이 '고독한 나그네 목회'. 교인들도 고독해 하고, 낙심이 많은데 목사 마저 '고독한 나그네 목회'라. 그렇게 해서야 어떻게 목회가 되겠어요. 하숙생인가 나그네인가. 제목을 고독한 나그네와 함께 하시는 주님. 이렇게 하든가. 무슨 소망이 있어야지요. 무슨 염세 주의적 이런 말을 쓰는 것이 좋은 게 아니예요. 물에 빠진 인생, 허우적거리는 기업, 우리는 주님을 붙잡는 목회를, 소망 있는 말을 해야 합니다. 어려울수록 그런 소망 있는 용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갈릴리 바다 풍랑 가운데 찾아오시는 주님. 환난 중에 함께 하시는 주님. 나의 길을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 할렐루야. 남은 여생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이 올지라도 주님과 함께 이 풍랑 이겨내고, 또다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성도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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