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를 걷는 베드로 (마14:22-33)
본문
풍랑만난 제자들이 바다 한 가운데서 절망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로 오셨습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말라 ‘나다.’ 하는 말씀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 하는 말씀입니다. 나는 나이다. 나는 있는 자이다. 나는 너희 가운데 있는 자다. 내가 어디 갔느냐 내가 너희를 떠난 적이 없고, 너희와 함께 있지 않았느냐 내가 있으니, 안심하라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어려운 현실에 누가 계십니까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어야합니다. 그러나 밤사경에 오신 주님. 우리가 우리 힘을 다 포기할 수밖에 없는 때가 되어야 주님이 오십니다. 그러나 실은 예수님께서 건너편에서 기도하고 계셨으나, 제자들과 함께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이 주님은 우리와 늘 함께 계시지만, 밤 사경되어서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을 깨달을 때에야 그 때에 우리가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고난 가운데 있습니까 주님 계심을 믿읍시다. 주님 말씀대로, 먼저 안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우리의 마음에 평강을 주십니다. 심령이 강하고 담대해야, 평강을 가져야 시험을 이깁니다. 어떤 악한 현실도 두려워하지 맙시다. 바다를 걸어오신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바다를 이기신 분이십니다. 바다 보다 더 크신 분이십니다. 아니, 바다를 만드신 분이십니다. 인생 여정은 갈릴리 바다임을 인식합시다. 변덕이 많습니다. 언제 어떤 일을 만날 것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건너편으로 건너가서 만나자는 주님의 약속, 명령이 있습니다. 주님의 명령 따라서 가는데에 바람도 있고, 파도도 일어나지만, 우리는 보이는 현실보고 두려워하지 맙시다. 주님의 임재와 능력을 믿읍시다. 능력의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의 약속을 잡아야합니다. 주님의 약속을 붙드는 것이 주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인간의 수단, 방법은 바람과 풍랑에서 승리하게 못합니다. 주님의 능력과 말씀을 신뢰합시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항복할 때가 주님께서 역사하시기 시작하시는 때입니다. 찾아오시는 주님은 구원의 주님입니다. 어려움의 현실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말씀은 우리를 망하는 것 같게 보이지만,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만이 구원을 받는 길입니다. 주님의 하나님되심을 인정합시다. 바람과 파도도 명하여 잠재우시는 주님이요, 바다 위를 걸어오신 주님 문제보다 더 크신 주님이십니다. 문제를 내신 주님이 해답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이 주님을 의지하고 바라보아야합니다. 이 모든 것을 만드신 주님께서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믿음을 가집시다. 믿음으로 보지 않으면 실패합니다. 예수님께서 가까이 오시면서 제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외쳤을 때에 제자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사복음서를 보면 사건 때에 항상 먼저 나타나는 사람이 시몬 베드로입니다. 우리는 이 제자의 성격을 압니다. 성급하여, 실수도 많고, 미숙한 면은 많지만, 그러나 너무나 인간적입니다. 또 예수님을 제일 따르고 사랑한 사람입니다. 참으로 반응이 항상 빠른 사람입니다. 이런 점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단점은 생각 없이 빨리 결정하고, 시도해서 곧 넘어진다는 것입니다. 시몬이 주님께 청합니다.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했습니다. 얼마나 큰 믿음입니까 담대한 마음입니다. 이 믿음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조금 전까지 바람과 풍랑만 보고도 죽을 줄 알고 벌벌 떨었던 사람이 이제 바다 위로 걷겠다고 주님의 명령을 기다립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에 그는 이전에 바람과 파도 보고 무서워하던 마음조차 다 사라졌습니다. 우리가 환난 만났을 때에 그 환난을 이기는 방법은 어떤 것입니까 일어나는 바람과 파도를 보지 말아야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바라보아야합니다. 현실을 도피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현실에 사로 잡히면 모든 것을 바로 보지 못합니다. 이 갈릴리 바다의 바람과 파도는 누가 일으켰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먼저 주님을 찾아야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합니다. 우리의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 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 모든 근심, 걱정, 염려, 불안 다 사라집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금은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과연 나도 그 때 제자들에게 물위로 걸어서 찾아오신 주님을 보고,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면 나도 이 베드로 같이 담대해 지겠다 생각하십니까 오늘 우리에게도 주님께서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또 성령님의 감동의 역사로 들려주십니다. 이 음성을 들으려고 해야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베드로의 요구에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현실에 얽매이지 말고, 내게로 오라, 내게로 가까이 오라고 하십니다. 베드로는 배에서 내립니다. 물 위를 담대히 걷습니다. 이제 현실에 종되지 않고, 주님의 능력으로 이 세상을 발로 밟는 믿음으로 걸어갑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을 이기시고, 죄와 사망과 세상의 유혹을 이기신 것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의심 없이 순종하는 자에게는 그 현실에서 이기는 승리가 있음을 보여주시는 사건입니다. 어떻게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갈수 있습니까 주님의 능력을 어떻게 믿습니까 과연 오늘 내게 이런 사건이 일어나고, 이런 명령이 있다고할 때에 나는 이 베드로 같은 믿음이 있어서 바다 위를 걷겠습니까 이 기적도 똑 같습니다. 먼저 주님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의 능력에 순종하였을 때에 베드로는 물 위로 걷는 기적을 체험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으시니, 나도 걸을 수 있다는 신념, 생각이 아닙니다. 걸어오라는 주님의 말씀이 계셨습니다. 이 말씀을 의지해서 물 위로 걸었습니다. 말씀하신 주님의 능력과 이 말씀에 대한 신뢰가 순종할 힘을 준 것입니다. 그러나 이 베드로가 갑자기 바다에 빠집니다. 죽겠다고 고함을 지르면서 주님께 나를 구원하소서 했습니다. 왜 시몬은 바다 위를 잘 걷다가 빠지게 되었습니까 그는 바람을 보았습니다. 그는 주님 명령에 따라 주님만을 바라보았을 때는 물 위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잠간 걷다가 일어나는 바람을 느꼈습니다. 지금 내가 어디를 걷고 있나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 주님 바라 보던 시선에서 자신의 현실과 그 처지를 보았을 때에 그는 바다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 때에 우리에게 초자연의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정말 예수님을 만나고나면 그 뜻대로 살고 싶어집니다. 누구를 만나도 사랑스럽고, 이 자신이 받은 사랑을 전하여주고 싶습니다. 불가능하게 생각했던 모든 일들도 하나님의 능력이면 되리라는 믿음도 생기고, 그 확신에서 모든 것을 다 긍정적으로 보게됩니다. 환난을 만나도 기뻐하고, 감사하고, 오히려 천국 소망을 더 확고히 가지는 일이 됩니다. 이것이 기적입니다. 병 낫는 것, 부자되는 것, 사업이 잘된다고 하는 것, 이런 것들이 기적이 아니라, 이 말씀대로 살고 싶고, 살아지고, 사랑하며, 섬기고, 나누는 삶을 사는 사람으로 그 행위가, 그 사람이 바뀌어지는 것이 기적아닙니까 이런행동이 이런 마음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으로 세상을 보고,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사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다 섭섭하고, 불만 스럽고, 불쾌합니다. 화가 납니다. 따지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자기는 커져보이고, 다른 사람은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합니다. 나만이 제일 잘 믿는 것 같아 보이고, 그래서 다름 사람을 정죄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물에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실, 베드로가 물위로 걷는 것이 정상입니까 물에 빠진 것이 정상입니까 물에 빠진 것이 정상입니다. 인간은 물 위를 걸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용서하고 살았던 것은 내가 아니었습니다. 이기적이고, 나만 제일로 알고, 나를 자랑하고 사는 것이 자신입니다. 아 자신이 얼마나 형편 없는 자인줄 잘 압니다. 우리는 현실에 지배받아 웃고 울고 할 그런 나약한 존재입니다.
그런데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없는 사람 까지도 사랑할수 있고, 사람을 용서하고, 형제를 껴 안아주고, 나를 비어주는 일을 하고, 나중에는 순교하는 데 까지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주님을 바라 볼 때에, 주님의 명령에 따라 순종할 때에는 물위로 처벅처벅 잘 걸었던 것처럼 이 이적의 길을 걸어갑니다. 그러나 한참 걷다가 제 정신이 났습니다. 신앙에서 이성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 때에 본 것은 바람과 파도일 것입니다. 그 순간 두려운 마음이 들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빠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곳입니까 빠지면 죽을 수밖에 없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떻게 험하더라도 주님을 바라보고 있을 때에는 잘 걸어갑니다. 예수님께 대한 시선을 놓쳤을 때는 별 수 없이 빠져드는 것입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그는 거기에서 주님을 찾았습니다. 주님께 간구했습니다.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베드로의 이 기도는 절박한 현실에서의 간구입니다. 이런 기도를 드려본 적이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즉시 손을 내밀어서 붙잡도록 했습니다. 베드로가 물에 빠져들어간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를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마14: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그는 의심했습니다. 여기 의심은 원어에서 ‘디스타조’라고 하는데, 이 디스타조의 뜻은 양쪽에서 잡아당긴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합니다. 주님께로 한 마음이 되어있어야합니다. 두 마음을 품는 자들의 기도는 하나님께 응답되지 않습니다. 갈라진 마음, 주님을 바라 보면서 바다 위로 걸어가던 베드로의 마음이 나뉘어졌습니다. 바람과 풍랑을 보았습니다. 바람 보고, 풍랑보면 무서워하지 않을 사람 어디에 있습니까 높은 사닥다리에 올라갈 때에 얼마나 두렵습니까 이런 때에 아래를 내려다 보면 두려워서 더 못 올라 갑니다. 어지럽고, 아차하면 떨어집니다. 그 때에 위만을 바라보고, 계속 올라가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위로 보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주님을 바라보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현실현실의 삶이 베드로가 주님의 명령을 따라 주님께로 바다 위로 걸어 간 것 같은 것입니다. 이 신앙생활은 우리 힘으로 어려운 정도가 아닙니다. 주님의 이적과 능력이 아니고는 이 걸음은 전혀 불가능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이 걸음을 바로 걷겠습니까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님의 명령만을 생각하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믿음이 적은 자라고 했습니다. 아주, 믿음이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나머지 제자들 보다는 그래도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무도 이런 말도 못했고, 구경만을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세상에 귀한 이 이적의 역사는 체험하고, 하나님의 능력의 무한하심을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이 사건에서 자신의 믿음 없음도 깨닫게 된 베드로입니다. 그래도 처음에는 믿음을 가졌기 땜에 믿음이 적다고 하셨습니다. 의심하는 것을 나무랐습니다. 끝까지 믿는 믿음을 가집시다. 우리의 믿음이 능력을 보려면 꾸준히 계속해야합니다. 우리 주님의 오래참으심과 용서와 사랑을 이 본문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즉시 손을 내밀어 구원해 주신 주님이십니다. 믿음이 없다고 하지 않고 그 작은 믿음이라도 가진 데 대해서는 알아주시고, 부드러운 책망으로 의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본문에 나타난 주님의 말씀을 새깁시다. (마14:27)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마14: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마14: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우리가 어려움에 처할 때에도 주님은 이 말씀으로 찾아오십니다. 안심하라, 내다. 두려워말라. 오라 의심하지 말고, 나를 믿으라 하십니다. 이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이 주님이 우리의 환난의 때에 구원하십니다.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믿음은 맡기는 것입니다. 믿음은 주님만을 바라 보는 것입니다. 믿음은 끝까지 믿어야합니다.
인간의 수단, 방법은 바람과 풍랑에서 승리하게 못합니다. 주님의 능력과 말씀을 신뢰합시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항복할 때가 주님께서 역사하시기 시작하시는 때입니다. 찾아오시는 주님은 구원의 주님입니다. 어려움의 현실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말씀은 우리를 망하는 것 같게 보이지만,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만이 구원을 받는 길입니다. 주님의 하나님되심을 인정합시다. 바람과 파도도 명하여 잠재우시는 주님이요, 바다 위를 걸어오신 주님 문제보다 더 크신 주님이십니다. 문제를 내신 주님이 해답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이 주님을 의지하고 바라보아야합니다. 이 모든 것을 만드신 주님께서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믿음을 가집시다. 믿음으로 보지 않으면 실패합니다. 예수님께서 가까이 오시면서 제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외쳤을 때에 제자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사복음서를 보면 사건 때에 항상 먼저 나타나는 사람이 시몬 베드로입니다. 우리는 이 제자의 성격을 압니다. 성급하여, 실수도 많고, 미숙한 면은 많지만, 그러나 너무나 인간적입니다. 또 예수님을 제일 따르고 사랑한 사람입니다. 참으로 반응이 항상 빠른 사람입니다. 이런 점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단점은 생각 없이 빨리 결정하고, 시도해서 곧 넘어진다는 것입니다. 시몬이 주님께 청합니다.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했습니다. 얼마나 큰 믿음입니까 담대한 마음입니다. 이 믿음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조금 전까지 바람과 풍랑만 보고도 죽을 줄 알고 벌벌 떨었던 사람이 이제 바다 위로 걷겠다고 주님의 명령을 기다립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에 그는 이전에 바람과 파도 보고 무서워하던 마음조차 다 사라졌습니다. 우리가 환난 만났을 때에 그 환난을 이기는 방법은 어떤 것입니까 일어나는 바람과 파도를 보지 말아야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바라보아야합니다. 현실을 도피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현실에 사로 잡히면 모든 것을 바로 보지 못합니다. 이 갈릴리 바다의 바람과 파도는 누가 일으켰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먼저 주님을 찾아야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합니다. 우리의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 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 모든 근심, 걱정, 염려, 불안 다 사라집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금은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과연 나도 그 때 제자들에게 물위로 걸어서 찾아오신 주님을 보고,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면 나도 이 베드로 같이 담대해 지겠다 생각하십니까 오늘 우리에게도 주님께서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또 성령님의 감동의 역사로 들려주십니다. 이 음성을 들으려고 해야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베드로의 요구에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현실에 얽매이지 말고, 내게로 오라, 내게로 가까이 오라고 하십니다. 베드로는 배에서 내립니다. 물 위를 담대히 걷습니다. 이제 현실에 종되지 않고, 주님의 능력으로 이 세상을 발로 밟는 믿음으로 걸어갑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을 이기시고, 죄와 사망과 세상의 유혹을 이기신 것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의심 없이 순종하는 자에게는 그 현실에서 이기는 승리가 있음을 보여주시는 사건입니다. 어떻게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갈수 있습니까 주님의 능력을 어떻게 믿습니까 과연 오늘 내게 이런 사건이 일어나고, 이런 명령이 있다고할 때에 나는 이 베드로 같은 믿음이 있어서 바다 위를 걷겠습니까 이 기적도 똑 같습니다. 먼저 주님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의 능력에 순종하였을 때에 베드로는 물 위로 걷는 기적을 체험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으시니, 나도 걸을 수 있다는 신념, 생각이 아닙니다. 걸어오라는 주님의 말씀이 계셨습니다. 이 말씀을 의지해서 물 위로 걸었습니다. 말씀하신 주님의 능력과 이 말씀에 대한 신뢰가 순종할 힘을 준 것입니다. 그러나 이 베드로가 갑자기 바다에 빠집니다. 죽겠다고 고함을 지르면서 주님께 나를 구원하소서 했습니다. 왜 시몬은 바다 위를 잘 걷다가 빠지게 되었습니까 그는 바람을 보았습니다. 그는 주님 명령에 따라 주님만을 바라보았을 때는 물 위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잠간 걷다가 일어나는 바람을 느꼈습니다. 지금 내가 어디를 걷고 있나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 주님 바라 보던 시선에서 자신의 현실과 그 처지를 보았을 때에 그는 바다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 때에 우리에게 초자연의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정말 예수님을 만나고나면 그 뜻대로 살고 싶어집니다. 누구를 만나도 사랑스럽고, 이 자신이 받은 사랑을 전하여주고 싶습니다. 불가능하게 생각했던 모든 일들도 하나님의 능력이면 되리라는 믿음도 생기고, 그 확신에서 모든 것을 다 긍정적으로 보게됩니다. 환난을 만나도 기뻐하고, 감사하고, 오히려 천국 소망을 더 확고히 가지는 일이 됩니다. 이것이 기적입니다. 병 낫는 것, 부자되는 것, 사업이 잘된다고 하는 것, 이런 것들이 기적이 아니라, 이 말씀대로 살고 싶고, 살아지고, 사랑하며, 섬기고, 나누는 삶을 사는 사람으로 그 행위가, 그 사람이 바뀌어지는 것이 기적아닙니까 이런행동이 이런 마음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으로 세상을 보고,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사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다 섭섭하고, 불만 스럽고, 불쾌합니다. 화가 납니다. 따지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자기는 커져보이고, 다른 사람은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합니다. 나만이 제일 잘 믿는 것 같아 보이고, 그래서 다름 사람을 정죄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물에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실, 베드로가 물위로 걷는 것이 정상입니까 물에 빠진 것이 정상입니까 물에 빠진 것이 정상입니다. 인간은 물 위를 걸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용서하고 살았던 것은 내가 아니었습니다. 이기적이고, 나만 제일로 알고, 나를 자랑하고 사는 것이 자신입니다. 아 자신이 얼마나 형편 없는 자인줄 잘 압니다. 우리는 현실에 지배받아 웃고 울고 할 그런 나약한 존재입니다.
그런데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없는 사람 까지도 사랑할수 있고, 사람을 용서하고, 형제를 껴 안아주고, 나를 비어주는 일을 하고, 나중에는 순교하는 데 까지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주님을 바라 볼 때에, 주님의 명령에 따라 순종할 때에는 물위로 처벅처벅 잘 걸었던 것처럼 이 이적의 길을 걸어갑니다. 그러나 한참 걷다가 제 정신이 났습니다. 신앙에서 이성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 때에 본 것은 바람과 파도일 것입니다. 그 순간 두려운 마음이 들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빠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곳입니까 빠지면 죽을 수밖에 없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떻게 험하더라도 주님을 바라보고 있을 때에는 잘 걸어갑니다. 예수님께 대한 시선을 놓쳤을 때는 별 수 없이 빠져드는 것입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그는 거기에서 주님을 찾았습니다. 주님께 간구했습니다.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베드로의 이 기도는 절박한 현실에서의 간구입니다. 이런 기도를 드려본 적이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즉시 손을 내밀어서 붙잡도록 했습니다. 베드로가 물에 빠져들어간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를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마14: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그는 의심했습니다. 여기 의심은 원어에서 ‘디스타조’라고 하는데, 이 디스타조의 뜻은 양쪽에서 잡아당긴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합니다. 주님께로 한 마음이 되어있어야합니다. 두 마음을 품는 자들의 기도는 하나님께 응답되지 않습니다. 갈라진 마음, 주님을 바라 보면서 바다 위로 걸어가던 베드로의 마음이 나뉘어졌습니다. 바람과 풍랑을 보았습니다. 바람 보고, 풍랑보면 무서워하지 않을 사람 어디에 있습니까 높은 사닥다리에 올라갈 때에 얼마나 두렵습니까 이런 때에 아래를 내려다 보면 두려워서 더 못 올라 갑니다. 어지럽고, 아차하면 떨어집니다. 그 때에 위만을 바라보고, 계속 올라가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위로 보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주님을 바라보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현실현실의 삶이 베드로가 주님의 명령을 따라 주님께로 바다 위로 걸어 간 것 같은 것입니다. 이 신앙생활은 우리 힘으로 어려운 정도가 아닙니다. 주님의 이적과 능력이 아니고는 이 걸음은 전혀 불가능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이 걸음을 바로 걷겠습니까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님의 명령만을 생각하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믿음이 적은 자라고 했습니다. 아주, 믿음이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나머지 제자들 보다는 그래도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무도 이런 말도 못했고, 구경만을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세상에 귀한 이 이적의 역사는 체험하고, 하나님의 능력의 무한하심을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이 사건에서 자신의 믿음 없음도 깨닫게 된 베드로입니다. 그래도 처음에는 믿음을 가졌기 땜에 믿음이 적다고 하셨습니다. 의심하는 것을 나무랐습니다. 끝까지 믿는 믿음을 가집시다. 우리의 믿음이 능력을 보려면 꾸준히 계속해야합니다. 우리 주님의 오래참으심과 용서와 사랑을 이 본문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즉시 손을 내밀어 구원해 주신 주님이십니다. 믿음이 없다고 하지 않고 그 작은 믿음이라도 가진 데 대해서는 알아주시고, 부드러운 책망으로 의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본문에 나타난 주님의 말씀을 새깁시다. (마14:27)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마14: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마14: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우리가 어려움에 처할 때에도 주님은 이 말씀으로 찾아오십니다. 안심하라, 내다. 두려워말라. 오라 의심하지 말고, 나를 믿으라 하십니다. 이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이 주님이 우리의 환난의 때에 구원하십니다.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믿음은 맡기는 것입니다. 믿음은 주님만을 바라 보는 것입니다. 믿음은 끝까지 믿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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