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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뱃속에서 나오라 (욘2:1-10)

본문

오늘 우리가 함께 교독한 성경말씀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간절히 회개하며 기도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요나가 갇혀있는 물고기 뱃속은 누 가 생각해 보아도 고통과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물고기 뱃속이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있는 자신의 처지를
1)스올의 뱃속에 있다고 했습니다. 스올 즉, 지옥과 같은 곳입니다.
2)깊음이 자신을 에웠다 합니다.
3)산의 뿌리까지 내려갔다 했습니다. 슬픔과 절망의 자리를 흔히 골짜기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요나는 그 골짜기 보다도 더 깊은 산의 뿌리에까지 자신이 내려가 있다고 하여 그 자신의 절망이 얼마나 깊은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4)땅이 그 빗장으로 오래도록 막았다고 했습니다. 고라 자손을 삼켰던 땅이 입을 벌렸다가 다시금 봉하여 졌을때 누가 그 땅을 뚫고 올라올 수 있었겠습니까! 이렇게 볼 때 요나는 그 물고기 뱃속에서 참으로 죽을 맛을 치루게 되었습니다. 사방팔방으로 캄캄한 절 벽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구원의 빛이라고는 실날같은 줄기도 비추어지지 않는 고통의 자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에게 마치 요나를 위해 물고기를 예비해 두 었듯이 연단의 과정, 훈련의 과정으로 이 물고기 뱃속을 예비해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물고기 뱃속은 연단의 장소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깨뜨리는 곳입니다. 요나가 비록 그 물고기 뱃속에서 죽을고비를 넘겼지만 그는 그 속에서 다시금 깨닫고 새 사람이 되어 니느웨 성에서 외치는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중 누구든지 이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보는 체험을 일 생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면 그 얼마나 영적인 면에서는 불행한 사람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물고기 뱃속으로 두번 이상 들어가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또한 어디 있겠습니까 한번으로 족한 것이니 꼭 한번만 들어갔다 나오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실, 누구든 들어가기 싫고 그 지긋지긋한 연단의 자리를 경험해 보고 싶지 않겠지만, 우리 인생들은 요나와 같이 깨닫는 바가 둔하고 완고하고 주의 말씀을 거역하기 쉬운지라 이 연단의 자리를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 연단의 물고기 뱃속같은 상황에서 깨어지고 새롭게 되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자가 됩시다. 지금 이 말씀을 듣고있는 여러분 가운데 '아! 나도 지금 요나와 같이 물고기 뱃속에 갇혀있는 자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말씀을 듣고 있는 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건강을 잃고 오랫동안 앓고있는 것은 분명 물고기 뱃속에 있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지나친 물질의 연단 속에서 헤메이고 있다면, 그래서 물 질로 인해 심신이 짓눌리고 고통하는 가운데 있다면 분명 그 자리는 물 고기 뱃속입니다. 나를 짓누르는 환경 가운데서 신음하고 있다면 분명 나는 물고기 뱃속 같이 캄캄한 가운데 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구비하여 육신의 눈으로 볼 때는 조금의 고통이나 답답함이 없다 할지라도 지금 그의 영은 사탄에게 억압당하며 죄에게 종노릇하는 이들이 대단히 많이 있는데, 이 또한 물고기 뱃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왜 이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까 우리가 잘 이해할 수 있는대로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이유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 하였기 때문 아닙니까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주님 보시기에 합당치 않은 사람들을 다 이 물고 기 뱃속에다 집어 넣으십니다. 하나님은 누구라도 아무 이유없이 이 물고기 뱃속에 집어넣는 것이 아 닙니다. 하나님을 특심히도 사랑했던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를 범하고 살 인까지 하게 되었을 때 다윗의 앞길에는 물고기 뱃속같은 고통의 사건들 이 많았지 않았습니까 압살롬이라고 하는 아들에게 예루살렘 성에서 쫓겨가기도 했고, 다윗의 아내들이 아들에 의해 짓밟히기도 했습니다. 형제들간의 간음, 살인등 수 많은 시련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이 모든 까닭은 그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죄악된 삶을 살았기 때문 이었습니다. 선지자 요나나, 다윗 모두 그 불순종의 죄는 사함받았지만, 그들은 물고기 뱃속에서 죄의 댓가를 톡톡히 치루고 나올 수 있었던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분명 우리 죄를 용서하시며 그에 대한 보응을 치 루게 하십니다. 지금 내게 물고기 뱃속같은 고통이 주어졌다면 과거의 죄 때문입니다. 또한, 내가 지금 현재 잘못된 길을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속히 그 가운데서 나와야 됩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요나가 왜 배에서 쫓겨나 바다에 던져지고, 더럽고 냄새날 뿐아니라 시시각각 죽음 의 공포가 엄습하는 물고기 뱃속에 있어야 합니까 그는 분명 푸른바다 위에서 맑은 공기를 가르고 은총의 햇살을 맞으며 죄악의 성 니느웨를 향하여 하나님의 준엄한 말씀으로 질주해 가야되는 상황이 아닙니까 그러한 그가 왜 물고기 뱃속에서 신음하며 죽어가고 있느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요나는 속히 그곳으로부터 나와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 비 정상적인 자리에서 빨리 탈출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요나가 하루만 더 그 물고기 뱃속에서 거하게 된다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고난의 자리, 연단의 자리였던 물고기 뱃속은 3일3야의 기간으로 충분 합니다. 주님도 사흘을 땅 속에 묻히셨다가 부활하여 나오신 것처럼 요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사흘의 물고기 뱃속이면 깨닫기에 충분하고 새사람 되기에 충분합니다. 이 사흘이 육신의 시간과는 차이가 있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이 기간 안에 물고기 뱃속에서 나올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시편기자의 고백처럼 사망의 긴 터널 가운데서 끝까지 주님을 의지할 자 누구이며 찬송할 자 누구입니까! 너무도 긴 시간을 물고기 뱃속같은 자리에 지금 내가 처하고 있어 이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면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중에 그 속에서 탈출할 수 있는 지혜를 얻도록 합시다. "주여! 하루만 더 이곳에 머문다면 내가 죽 겠나이다!" 이 간절한 외침이 있어야겠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며 내 상황이 물고기 뱃속에 있는것으로 진단되었음에 도 불구하고 그저 태연히 하루하루를 잠든 채 지내게 된다면, 내 영혼은 질식하게 될 것이고 사망의 자리로 내려가게 될 것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그 가운데서 나와 푸른 하늘을 바라볼 수 있고, 땅을 힘 껏 밟고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은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구체적으로 어떻게하여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나 올 수 있었는지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그리고 우리도 요나의 모 습을 배우며 우리에게 주어진 고통의 자리가 있다면 속히 나올 수 있는 지혜를 얻도록 합시다.
첫째, 요나는 그 가운데서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7절에 있는 말씀과 같이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하였고, 9 절에서는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더 적극적으로 4절에서는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 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라고 고백하고 있어 그 물고기 뱃 속에서 분명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국 10절에서는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는 말씀과 같이 그 가운데서 빼내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한 분 뿐이어서 그가 하나님을 생각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럽고 축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요나는 자신을 어여삐 여겨 선지자로 삼아주시고, 그 큰 구원의 역사를 맡겨주신 하나님을 그 영혼이 피곤하고 고통과 연단 가운데 있을 때 깊 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피하여 도망가던 요나, 하나님을 생각하기 싫고 하나님이 귀 찮게 여겨졌던 요나가 이제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들이 어렵고 힘들때 누구를 생각하느냐 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5장에 나오고 있는 나아만장군은 사람의 힘으로 치료할 수 없는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그는 아무도 만날 수 없어 자꾸만 깊고 깊은 방속으로 숨어 들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스라엘에서 잡혀간 계집종 아이가 이스라엘의 선지 자 엘리사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엘리사를 생각한 나아만 장군은 그 방에서 나올 수 있었고 치료의 은총을 받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을 생각한 나아만, 그가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열왕기하 4장에서 소개되고 있는 수넴여인은 그 외아들이 죽었을 때 그 죽음 앞에서도 엘리사를 생각하고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엘리사를 생각하여 하나님을 믿었던 이 수넴 여인은 죽음까지 이기는 승리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나면서부터 소경 되었던 바디메오가 예수님의 소문을 구걸하는 중에 많이 들었습니다. 그는 매일매일 예수님을 생각하며 여리고 성문에서 기 다렸습니다. 어느날 수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예수의 생각으로 가득찼던 바디메오는 저 발자국 속에 예수님의 모 습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힘차게 다윗의 자손 예수를 불 러 그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예수님을 생각했기에 바디메오는 수많은 군중들이 지나칠 때 '오늘 횡재하는 날이구나, 어떻게 하면 많이 돈을 벌 수 있을까'를 생각하 지 않고 주님을 부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누구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는 자만이 어떠한 상황가운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3장 1절에 있는 말씀과 같이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 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성도만이 물고기 뱃속같은 상황가운데 서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며 눈물짓던 요나였기에 그 죽음의 자리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나를 구원하시고 모든 일에서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 하도록 합시다. 하나님을 생각하는 자 소망이 있는 자입니다. 문제 해 결의 열쇠를 손에 쥔 자입니다. "힘으로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만 되기"때문입니다.
둘째, 요나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회개했습니다. 8절의 말씀은 자신의 고백이었습니다.즉, "무릇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 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입니다. 요나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리고 헛된 생각에 빠져 하나님께서 가라하신 길의 정 반대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 불순종의 길을 회개하며 9절에서 밝히고 있듯이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가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킬 때까지 물고기 뱃속에 가두어 두게 되었습니다. 은혜 베푸셨던 하나님을 생각할 때 요나는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비록 물고기 뱃속이지만 생각해 보십시요. 이 물고기가 아니었으 면 요나는 벌써 바닷속에서 죽은지 오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나는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를 또다시 생각하며 회개합니다. 하나님 나 같은 불 순종의 자식을 위해 나를 아주 죽이지 아니하시고 이 고난의 자리에서 깨우치게 하시나이까! 여러분 우리도 지금 물고기 뱃속과 같은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느 껴봅시다. 그러므모 지금까지 원망과 절망의 상태였다면 이제 소망 속에 서 지난 날의 잘못이던지, 지금 현재 잘못된 가운데 있던지 나를 이 물고 기 뱃속에 집어넣은 그 일을 철저히 회개하도록 합시다. 주님은 즉시 물 고기를 명하여 그곳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셋째, 요나는 기도하였습니다. 기도는 구체적인 행위입니다. 하나님만 생각하고 말아서는 안됩니다. 잘못했다고 뉘우치는 감상적인 차원에 머물러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발걸음을 새벽 제단으로, 한밤을 지새우는 철야의 장소 로 옮겨 부르짖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나의 간절한 기도는 물고기 뱃속이라도 뚫고 올라 하늘에까지 상달 되었습니다. 성도의 기도는 어떠한 고난도 돌파하여 나갈 수 있는 능력 입니다. "너희중에 고난 다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하지 않았습니 까 다시한번 기억하십시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로다" 우리의 무릎을 주 앞에 꿇고 가슴을 찢고 부르짖는 기도만이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이고, 회개의 열매를 맺고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는 요10:10절의 말씀을 통해 인자가 온 것은 양들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습니다. 비록 물고기 뱃속 이 우리에게 필요한 장소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곳에 오래 머물면 죽습니다. 사망의 잠이 나를 덮치기 전에 깨어서 기도 하십시요. 그 물고기 뱃속은 선지자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성도의 삶은 물고기 뱃속이 아닙니다. 니느웨 성을 향한 힘찬 발걸음 이요, 주님과 동행하는 푸른초장이요, 쉴만한 물가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 시요. 속히 그 물고기 뱃속에서 나오십시요. 형통한 길을 걸으십시요. 신명기 28장은 결론적인 말씀입니다. 우리가 주께 순종하면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성읍에 서나 들에서나 떡반죽 그릇에도 복이 넘친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주님 안에서의 순종하는 자의 형통을 노래하고 있는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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