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에 책임을 지는 요나 (욘1:11-16)
본문
어떤 한 신학자는 현대 교회의 커다란 비극을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신도들은 강단에서 설교자들이 자장가를 불러 주기를 원 하고 있다" 저는 이 지적이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내 영혼 의 잠을 깨우는 멧세지가 없다면, 그래서 초대 성도들처럼 그 말씀 이 화살이 되어 그들의 가슴에 박힐 때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 꼬"라는 영혼의 몸부림이 없다면, 교회는 계속해서 자장가를 불러 주며, 오늘도 거짓된 평안 속에서 사람들을 달래주고 있다면 우리 모두는 무서운 지옥의 파멸로 걸어가는 하나의 거짓된 종교 공동체 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강단에서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가슴에 새로운 도전을 주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선포되 어지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여러분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오늘도 우리는 요나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손길 앞에 그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더욱 간절한 소망이 있다면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형제들아, 내가 어 찌할꼬"라는 영혼의 몸부림이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난 주간에 우리는 '잠자는 요나'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다 시 한 번 정리를 해 보십시다. 요나서 1장 1절에서 10절에 나타나 고 있는 요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첫째로, 요나는 도망가는 비겁한 선지자입니다. 일터로 향해서 힘차게 나아가는 선지자가 아니라, 오히려 엉뚱한 장소로 도망가는 선지자입니다. 보십시오. 지금 좌우를 분변치 못 하는 어린아이가 12만이나 되는 니느웨에 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가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파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 도 불구하고 그는 지금 엉뚱한 다시스로 도망가고 있습니다. 요나가 이와 같은 행동을 취한 이유를 우리는 몇 가지로 추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니느웨라는 곳이 죄악이 만연해서 그 죄가 하늘 꼭대기까지 사무쳤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도 중죄인데 내가 간다고 해서 무슨 소용 이 있겠는가 가보나 마나요,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을런지도 모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자비하신 분이시다. 그렇기에 때문에 40일 후에 멸망받는다고 하지만, 그들 중에 회개하고 눈물 흘리게 되면 그 때문에 하나님은 용서하실 것이다. 따라서 40일 후 에 멸망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는 과장되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니느웨는 이스라엘을 박해한 원수지간이다. 그렇기 에 그들이 40일 후에 망한다는 것은 오히려 민족적으로 좋은 일인 데 내가 갈 필요가 있겠는가 내가 그곳에 갈 무슨 이유가 있겠는 가 오히려 손뼉치며 통쾌할 것인데… 그래서 그는 서쪽의 니느웨로 가지 아니하고 동쪽 다시스로 향하여 도망을 갑니다. 그는 지금 하나님의 명령 앞에 정면으로 반역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선교적 인 사명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가는 그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엉 뚱한 길로 도망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주님이 나에게 맡기신 어떤 명령을 감당할 수 없노라고 우리는 얼마나 자주 요나 처럼 하나님의 낯을 피하려고 하였던가요 도망가는 요나의 모습 을 통해서 우리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기의 자화상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 요나는 책망을 받는 부끄러운 선지자입니다. 그는 뱃사람들로부터 가혹한 책망을 받습니다. 요나는 그들로부터 4가지의 책망의 질문을 받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6절 말씀에 있는데, 선장이 묻습니다. "자는 자여, 어찜이뇨" 도대체 이 판국에 잠이 오느냐 지금 선장과 모든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남기 위해서 모 든 것을 다 포기하고 바다에 던지는데 그는 배 밑창에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 큰 풍랑을 만나 그 태풍이 거세게 몰아쳐 배가 깨어질 지경에 이 르자 뱃사람들은 겁에 질려 저마다 자기의 신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배를 가볍게 하려고 배 안에 있는 짐을 바다에 다 던지기까지 했습니다. 이때 선장은 그들을 독려하다가 배 밑창 에 물이 새지는 않나 걱정이 되어서 아래로 내려와 보니까, 한 사람 이 쓰러져 있는데 가만히 보니 코를 골면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 선장이 보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남들은 어떻게든지 살아 볼 려고 아우성치며 야단인데, 이러한 판국에 코를 골면서 잠을 자고 있으니 도대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어떤 사본에는 이때에 선장이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 사회는 어렵습니다. 경제위기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도 감당하기가 벅찬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엄청난 수재까지 발생했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웃에 대해 무감각하고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져 있다면 그는 반사회적이 요, 비양심적이요,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주님의 명령에 귀를 막고, 이웃으로부터 들려오는 영혼의 울부짖음을 외면 한다면 이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바라보면서 웃어야 할 것입니까 울어야 할 것입니까 민수기 32장 23절에 보면, "너희 죄가 정녕 너희를 찾아낼 줄 알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죄가 주인을 찾아낸다는 말 입니다. 죄는 그림자를 찾아내고야 만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죄를 짓고서는 절대로 그 죄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는 말입니다. 이제 선장과 사람들은 이 엄청난 풍랑 앞에서 곰곰히 생각하기를 시작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엄청난 풍랑을 만난 것은 분명히 이 배 에 누군가 죄를 지은 사람이 탄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서로 의논한 끝에 "누구 때문에 우리가 이런 엄청난 변을 당하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하면서 제비를 뽑아서 찾아 내자고 합니다. 두 번째 질문은, 제비를 뽑는 일에 있어서 요나가 제비를 뽑았을 때, 뱃사람들이 요나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뱃사람들은 모두가 제비뽑기에 참여하였습니다. 그 결과 요나가 뽑혔고, 이에 사람들은 그에게 질문을 퍼붓기 시작합니다. "당신이 무슨 짓을 했기에 우리가 이런 변을 당하느냐너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 어디에서 왔으며 고향과 국적은 어디냐" 여러분, 이 대답을 하기 전에 요나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그는 대답을 합니다. "나는 히브리 사람입니다. 하늘을 내시고, 바다와 육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의 눈앞을 떠나 도망치는 몸입니다" 요나가 말하기를 분명히 그는 히브리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히 브리 사람은 만백성 중에 선택된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뜻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선지자였습니다. 어디로 가느냐 나는 다시스로 갑니다. 왜, 다시스로 가느냐는 질문에 그는 "하나님께서 니느웨로 가라 고 하셨는데 나는 그곳에 가기가 싫어서 반역하여 도망하는 길이요" 라고 대답을 해야 했습니다. 한 마디로 도망가는 길이라고 해야 하는데 그는 이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뱃사람들이 한마디 한마디를 던질 때마다 그의 가슴에는 비수를 찔렀을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죄는 숨겨질 수가 없습니다. 언 젠가 죄는 그 주인을 찾아냅니다. 저의 말이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 자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서 "당신은 누구요 당신 가정이 왜 이렇게 되었소 이 사회가 왜 이렇게 삭막하게 되었 소 당신이 섬기는 교회가 왜 그렇게 정체되어 있는 거요"라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입니까 그러면 여러분들은 "아, 나 말이요 나는 그리스도인이요. 주님 을 나의 구주로 믿고 살지만 나는 나만 잘 믿으면 된다고 생각하여 이웃에게 평화의 복음을 전하지 않았소. '세상의 빛, 세상의 소금'이 되지를 못했소이다. 뭐 나 혼자 잘 믿으면 되는 것 아니요"라고 말할 것입니까 이웃으로부터 들려오는 영혼의 외침소리에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 고 있습니까 10절 하반절에서 뱃사람들은 세 번째 질문을 합니다.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느냐" 히브리 민족은 하나님의 민족이라고 들었는데, 그 하나님이 당신 을 니느웨로 가라고 하셨다면, "당신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소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소" 당신의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지었다면 바다도 지었는데, 그래 당신이 바다로 도망간다고 해서 찾아오시지 않겠는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이 어디를 숨든 찾아내지 못하겠는가 어 떻게 이런 일을 할 수가 있소 어떻게 이렇게 엄청난 일을 할려고 생각했소 당신이 정말로 당신 말대로 선지자라면 하나님의 명령 에 따라 죽고 살았어야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이 요 우리는 당신이 믿는 하나님을 모르오. 그러나 나 같으면 그렇 게는 못하겠소! 완악한 우리 생각으로도 도저히 못하겠는데, 히브 리 사람이요 선지자인 당신이 어떻게 이렇게 할 수가 있소 이것 보시오. 당신 때문에 우리들이 다 죽게 되지를 않았소 보십시오. 세상을 향해 책망해야 하는데 도리어 세상으로부터 책망을 듣고 있습니다. 세상을 가르치고 인도해야 할 요나가 도리 어 세상으로부터 설교를 듣고 있습니다. 세상을 향해서 선교를 해 야 하는 입장에 있는 우리가, 죄악된 세상을 가르치고 책망을 해야 하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외쳐야 하는 우리가 요나처럼 정반대 로 하고 있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지 못하면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말로는 그리스도인이 라고 외치면서도 행동으로는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훨씬 못한 사람 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도 뇌물 받기를 즐겨하고, 비도덕적인 삶을 사는 수 많은 사람들, 그들 범죄한 그리스도인들을 잡아놓고 경찰이, 세상이 무엇이라고 외치겠습니까 일천만 성도들에게 세상이 무엇이라고 외치겠습니까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여러분들을 향하여 무엇이라고 외치겠습니까 여러분, 이것은 요나가 살았던 시대,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서지를 못하고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한 우리 들에게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일을 행할 수가 있소"라고 책 망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을 행할 수가 있소" 이 절규 앞에 여러분은 무어라고 대답을 하시렵니까 본문 11절에서 네 번째로 뱃사람들은 요나에게 묻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좋겠는가" 점점 거칠어져만 가는 바다 를 바라보면서 묻습니다. "바다를 잔잔하게 하려면 우리가 너를 어 떻게 해야 좋겠는가" 이 말 속에는 뱃 사람들의 뼈에 사무친 원망 이 담겨 있습니다. 속된 말로 "너를 씹어 먹어도 시원찮겠는데…" 라는 말일 겁니다. 당신을 이 배 안에 두자니 하나님의 진노가 두 렵고, 그렇다고 제거하자니 하나님의 백성을 어떻게 제거하겠는가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할 입장에 있는 당신이 오히려 문제를 만드는 사람이니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좋겠소 여러분, 이제 우리는 여기에서 요나의 태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뱃사람들이 점점 더 거세게 일어나는 파도를 보면서 당황하면서 요나에게 묻기를 "우리가 당신을 어떻게 해야 우리 앞에 펼쳐지는 저 바다가 잔잔해지겠소" 이때 요나가 무엇이라고 대답하고 있습 니까 본문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께서 12절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 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 여기에서 우리는 문제 앞에 던져지는 요나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그 문제에 책임을 지는 요나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여기에는 두 가지 면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부정적인 면으로 부끄러운 종말입니다. 니느웨로 가라고 함에도 불구하고 다시스로 갔던 죄의 결과로 바 다에 던져지니 요나에게는 최대의 부끄러운 수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기가 죄없이 희생을 당한다면 뜻뜻하고 보람되지만, 자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었으니 이것보다 더한 수치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둘째는 긍정적 면으로, 그래도 요나는 최소한 자신의 죄를 인정 할 줄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풍랑은, 여러분들이 지금 고난을 받는 것은 다 못난 나 때문 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긍정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의 죄를 인정했다는 것은 그래도 긍정적으로 보아야 한 다는 말입니다. 보십시오. 솔직히 오늘날 엄청난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자 기의 죄를 인정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죄를 짓고서도 그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한가지 긍정적인 면으로는, 자기가 저지른 죄에 대해서 최소 한 책임을 질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때에 요나가 높은 용 상에 앉으려고 했다면 그는 정말로 철면피입니다. 자기 자신만 쏙 빼고,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했다면, 자기뿐만 아니라 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가 바다 귀신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 했습니까 "나를 들어서 바다에 던지시오. 그러면 당신들 앞의 저 바다가 잔잔해질 것이오. 바로 나 때문에 이 태풍이 당신들에게 닥쳤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소" 여러분, 오늘 우리가 우리의 가정을 복음화시키고, 행복한 가정이 되게 하려면, 어두운 이 사회를 밝은 사회로 바꾸기 위해서는, 그리고 우리 교회를 크게 부흥시키고 은혜로운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요나처럼 깨어지고 뭉개어진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 모든 문제가 나로 말미암아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책임의식이 있어 야 합니다. "여보, 우리 가정이 좀더 행복할 수 있었음에도 그렇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내 탓이구려.목사님, 우리 교회가 좀더 부흥할 수 있는데도 그렇지 못한 것은 내가 열심을 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 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 만약 이 소리까지 못했다면 그들은 무서운 종말을 맞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12절에서처럼 대답할 수 있었다는 것이 천만다행입니다. 한 때는 세상을 향하여 설교를 듣고 도망가는 비굴한 선지자였지만 마지막에는 문제에 책임을 질줄 알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그와 같이 된 것은 "다 내 탓"이라고 하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책임 이라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너의 탓이라고 하는 데서 문제가 시작이 됩니다. 그러나 내 탓이라고 하는데서 화평이 시작됩니다. 믿으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여 여러분들의 가정에 풍랑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이 은혜롭지를 못하고 문제 투성이로 바람잘 날이 없습니까 그래서 집에 들어가기조차 싫습니까 내 가정이 시끄럽고 문제로 가득한 것이 남편 때문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아내 때문도 아니요, 자식들 때문도 아닙니다. 가정의 모 든 문제가 바로 나 때문이라는 인식을 가져 볼 수는 없는 겁니까 가정의 모든 문제가 나 때문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한다면 그때부터 문제가 해결되어 은혜가 넘칠 것입니다. 불평불만이 변하여 감사가 될 것입니다. 보십시오. 요나가 그의 몸을 바다에 던지니 바다가 어떻게 되었 습니까 본문 15절을 보십시다. 여러분께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요나가 그의 몸을 풍랑에 던져질 때에 그렇게도 거세던 풍랑이 가라앉았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도 풍랑이 일어나는 여러분의 가정에, 이 사회 에 여러분의 몸을 던져 보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거센 풍랑이 잔잔 하여 질 것입니다. 요나가 그의 몸을 바다에 던졌다고 해서 그가 죽은 것이 아닙니다. 요나는 제 2의 멋진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요놈의 나'를 들어 인생의 바다에, 가정의 풍랑 앞에 던져질 때에 오늘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 된 삶, 성령님이 거하시는 기쁨의 삶, 천국의 백성된 삶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어두운 사회 앞에, 믿지 않는 가정의 풍랑 앞에 믿음의 양심을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요나가 문제에 책임을 지고 그의 몸을 바다에 던져질 때에 풍랑 이 잔잔하여 졌습니다. 요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을 뻔하였지 만, 그러나 요나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요놈의 나 때문에 내 가정과, 교회와 이 사회가 어지러움에 빠져 고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놈의 나로 인하여 내 가정과 내 교회와 이 사회가 평화를 누리고 축복된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문제 앞에 도망을 가는 요 나, 문제에 책임을 지는 요 나, 여러분 은 어떤 선택을 하시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강단에서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가슴에 새로운 도전을 주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선포되 어지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여러분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오늘도 우리는 요나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손길 앞에 그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더욱 간절한 소망이 있다면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형제들아, 내가 어 찌할꼬"라는 영혼의 몸부림이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난 주간에 우리는 '잠자는 요나'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다 시 한 번 정리를 해 보십시다. 요나서 1장 1절에서 10절에 나타나 고 있는 요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첫째로, 요나는 도망가는 비겁한 선지자입니다. 일터로 향해서 힘차게 나아가는 선지자가 아니라, 오히려 엉뚱한 장소로 도망가는 선지자입니다. 보십시오. 지금 좌우를 분변치 못 하는 어린아이가 12만이나 되는 니느웨에 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가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파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 도 불구하고 그는 지금 엉뚱한 다시스로 도망가고 있습니다. 요나가 이와 같은 행동을 취한 이유를 우리는 몇 가지로 추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니느웨라는 곳이 죄악이 만연해서 그 죄가 하늘 꼭대기까지 사무쳤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도 중죄인데 내가 간다고 해서 무슨 소용 이 있겠는가 가보나 마나요,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을런지도 모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자비하신 분이시다. 그렇기에 때문에 40일 후에 멸망받는다고 하지만, 그들 중에 회개하고 눈물 흘리게 되면 그 때문에 하나님은 용서하실 것이다. 따라서 40일 후 에 멸망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는 과장되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니느웨는 이스라엘을 박해한 원수지간이다. 그렇기 에 그들이 40일 후에 망한다는 것은 오히려 민족적으로 좋은 일인 데 내가 갈 필요가 있겠는가 내가 그곳에 갈 무슨 이유가 있겠는 가 오히려 손뼉치며 통쾌할 것인데… 그래서 그는 서쪽의 니느웨로 가지 아니하고 동쪽 다시스로 향하여 도망을 갑니다. 그는 지금 하나님의 명령 앞에 정면으로 반역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선교적 인 사명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가는 그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엉 뚱한 길로 도망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주님이 나에게 맡기신 어떤 명령을 감당할 수 없노라고 우리는 얼마나 자주 요나 처럼 하나님의 낯을 피하려고 하였던가요 도망가는 요나의 모습 을 통해서 우리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기의 자화상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 요나는 책망을 받는 부끄러운 선지자입니다. 그는 뱃사람들로부터 가혹한 책망을 받습니다. 요나는 그들로부터 4가지의 책망의 질문을 받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6절 말씀에 있는데, 선장이 묻습니다. "자는 자여, 어찜이뇨" 도대체 이 판국에 잠이 오느냐 지금 선장과 모든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남기 위해서 모 든 것을 다 포기하고 바다에 던지는데 그는 배 밑창에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 큰 풍랑을 만나 그 태풍이 거세게 몰아쳐 배가 깨어질 지경에 이 르자 뱃사람들은 겁에 질려 저마다 자기의 신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배를 가볍게 하려고 배 안에 있는 짐을 바다에 다 던지기까지 했습니다. 이때 선장은 그들을 독려하다가 배 밑창 에 물이 새지는 않나 걱정이 되어서 아래로 내려와 보니까, 한 사람 이 쓰러져 있는데 가만히 보니 코를 골면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 선장이 보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남들은 어떻게든지 살아 볼 려고 아우성치며 야단인데, 이러한 판국에 코를 골면서 잠을 자고 있으니 도대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어떤 사본에는 이때에 선장이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 사회는 어렵습니다. 경제위기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도 감당하기가 벅찬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엄청난 수재까지 발생했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웃에 대해 무감각하고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져 있다면 그는 반사회적이 요, 비양심적이요,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주님의 명령에 귀를 막고, 이웃으로부터 들려오는 영혼의 울부짖음을 외면 한다면 이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바라보면서 웃어야 할 것입니까 울어야 할 것입니까 민수기 32장 23절에 보면, "너희 죄가 정녕 너희를 찾아낼 줄 알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죄가 주인을 찾아낸다는 말 입니다. 죄는 그림자를 찾아내고야 만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죄를 짓고서는 절대로 그 죄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는 말입니다. 이제 선장과 사람들은 이 엄청난 풍랑 앞에서 곰곰히 생각하기를 시작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엄청난 풍랑을 만난 것은 분명히 이 배 에 누군가 죄를 지은 사람이 탄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서로 의논한 끝에 "누구 때문에 우리가 이런 엄청난 변을 당하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하면서 제비를 뽑아서 찾아 내자고 합니다. 두 번째 질문은, 제비를 뽑는 일에 있어서 요나가 제비를 뽑았을 때, 뱃사람들이 요나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뱃사람들은 모두가 제비뽑기에 참여하였습니다. 그 결과 요나가 뽑혔고, 이에 사람들은 그에게 질문을 퍼붓기 시작합니다. "당신이 무슨 짓을 했기에 우리가 이런 변을 당하느냐너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 어디에서 왔으며 고향과 국적은 어디냐" 여러분, 이 대답을 하기 전에 요나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그는 대답을 합니다. "나는 히브리 사람입니다. 하늘을 내시고, 바다와 육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의 눈앞을 떠나 도망치는 몸입니다" 요나가 말하기를 분명히 그는 히브리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히 브리 사람은 만백성 중에 선택된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뜻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선지자였습니다. 어디로 가느냐 나는 다시스로 갑니다. 왜, 다시스로 가느냐는 질문에 그는 "하나님께서 니느웨로 가라 고 하셨는데 나는 그곳에 가기가 싫어서 반역하여 도망하는 길이요" 라고 대답을 해야 했습니다. 한 마디로 도망가는 길이라고 해야 하는데 그는 이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뱃사람들이 한마디 한마디를 던질 때마다 그의 가슴에는 비수를 찔렀을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죄는 숨겨질 수가 없습니다. 언 젠가 죄는 그 주인을 찾아냅니다. 저의 말이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 자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서 "당신은 누구요 당신 가정이 왜 이렇게 되었소 이 사회가 왜 이렇게 삭막하게 되었 소 당신이 섬기는 교회가 왜 그렇게 정체되어 있는 거요"라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입니까 그러면 여러분들은 "아, 나 말이요 나는 그리스도인이요. 주님 을 나의 구주로 믿고 살지만 나는 나만 잘 믿으면 된다고 생각하여 이웃에게 평화의 복음을 전하지 않았소. '세상의 빛, 세상의 소금'이 되지를 못했소이다. 뭐 나 혼자 잘 믿으면 되는 것 아니요"라고 말할 것입니까 이웃으로부터 들려오는 영혼의 외침소리에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 고 있습니까 10절 하반절에서 뱃사람들은 세 번째 질문을 합니다.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느냐" 히브리 민족은 하나님의 민족이라고 들었는데, 그 하나님이 당신 을 니느웨로 가라고 하셨다면, "당신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소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소" 당신의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지었다면 바다도 지었는데, 그래 당신이 바다로 도망간다고 해서 찾아오시지 않겠는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이 어디를 숨든 찾아내지 못하겠는가 어 떻게 이런 일을 할 수가 있소 어떻게 이렇게 엄청난 일을 할려고 생각했소 당신이 정말로 당신 말대로 선지자라면 하나님의 명령 에 따라 죽고 살았어야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이 요 우리는 당신이 믿는 하나님을 모르오. 그러나 나 같으면 그렇 게는 못하겠소! 완악한 우리 생각으로도 도저히 못하겠는데, 히브 리 사람이요 선지자인 당신이 어떻게 이렇게 할 수가 있소 이것 보시오. 당신 때문에 우리들이 다 죽게 되지를 않았소 보십시오. 세상을 향해 책망해야 하는데 도리어 세상으로부터 책망을 듣고 있습니다. 세상을 가르치고 인도해야 할 요나가 도리 어 세상으로부터 설교를 듣고 있습니다. 세상을 향해서 선교를 해 야 하는 입장에 있는 우리가, 죄악된 세상을 가르치고 책망을 해야 하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외쳐야 하는 우리가 요나처럼 정반대 로 하고 있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지 못하면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말로는 그리스도인이 라고 외치면서도 행동으로는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훨씬 못한 사람 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도 뇌물 받기를 즐겨하고, 비도덕적인 삶을 사는 수 많은 사람들, 그들 범죄한 그리스도인들을 잡아놓고 경찰이, 세상이 무엇이라고 외치겠습니까 일천만 성도들에게 세상이 무엇이라고 외치겠습니까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여러분들을 향하여 무엇이라고 외치겠습니까 여러분, 이것은 요나가 살았던 시대,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서지를 못하고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한 우리 들에게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일을 행할 수가 있소"라고 책 망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을 행할 수가 있소" 이 절규 앞에 여러분은 무어라고 대답을 하시렵니까 본문 11절에서 네 번째로 뱃사람들은 요나에게 묻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좋겠는가" 점점 거칠어져만 가는 바다 를 바라보면서 묻습니다. "바다를 잔잔하게 하려면 우리가 너를 어 떻게 해야 좋겠는가" 이 말 속에는 뱃 사람들의 뼈에 사무친 원망 이 담겨 있습니다. 속된 말로 "너를 씹어 먹어도 시원찮겠는데…" 라는 말일 겁니다. 당신을 이 배 안에 두자니 하나님의 진노가 두 렵고, 그렇다고 제거하자니 하나님의 백성을 어떻게 제거하겠는가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할 입장에 있는 당신이 오히려 문제를 만드는 사람이니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좋겠소 여러분, 이제 우리는 여기에서 요나의 태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뱃사람들이 점점 더 거세게 일어나는 파도를 보면서 당황하면서 요나에게 묻기를 "우리가 당신을 어떻게 해야 우리 앞에 펼쳐지는 저 바다가 잔잔해지겠소" 이때 요나가 무엇이라고 대답하고 있습 니까 본문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께서 12절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 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 여기에서 우리는 문제 앞에 던져지는 요나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그 문제에 책임을 지는 요나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여기에는 두 가지 면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부정적인 면으로 부끄러운 종말입니다. 니느웨로 가라고 함에도 불구하고 다시스로 갔던 죄의 결과로 바 다에 던져지니 요나에게는 최대의 부끄러운 수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기가 죄없이 희생을 당한다면 뜻뜻하고 보람되지만, 자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었으니 이것보다 더한 수치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둘째는 긍정적 면으로, 그래도 요나는 최소한 자신의 죄를 인정 할 줄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풍랑은, 여러분들이 지금 고난을 받는 것은 다 못난 나 때문 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긍정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의 죄를 인정했다는 것은 그래도 긍정적으로 보아야 한 다는 말입니다. 보십시오. 솔직히 오늘날 엄청난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자 기의 죄를 인정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죄를 짓고서도 그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한가지 긍정적인 면으로는, 자기가 저지른 죄에 대해서 최소 한 책임을 질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때에 요나가 높은 용 상에 앉으려고 했다면 그는 정말로 철면피입니다. 자기 자신만 쏙 빼고,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했다면, 자기뿐만 아니라 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가 바다 귀신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 했습니까 "나를 들어서 바다에 던지시오. 그러면 당신들 앞의 저 바다가 잔잔해질 것이오. 바로 나 때문에 이 태풍이 당신들에게 닥쳤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소" 여러분, 오늘 우리가 우리의 가정을 복음화시키고, 행복한 가정이 되게 하려면, 어두운 이 사회를 밝은 사회로 바꾸기 위해서는, 그리고 우리 교회를 크게 부흥시키고 은혜로운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요나처럼 깨어지고 뭉개어진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 모든 문제가 나로 말미암아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책임의식이 있어 야 합니다. "여보, 우리 가정이 좀더 행복할 수 있었음에도 그렇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내 탓이구려.목사님, 우리 교회가 좀더 부흥할 수 있는데도 그렇지 못한 것은 내가 열심을 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 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 만약 이 소리까지 못했다면 그들은 무서운 종말을 맞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12절에서처럼 대답할 수 있었다는 것이 천만다행입니다. 한 때는 세상을 향하여 설교를 듣고 도망가는 비굴한 선지자였지만 마지막에는 문제에 책임을 질줄 알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그와 같이 된 것은 "다 내 탓"이라고 하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책임 이라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너의 탓이라고 하는 데서 문제가 시작이 됩니다. 그러나 내 탓이라고 하는데서 화평이 시작됩니다. 믿으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여 여러분들의 가정에 풍랑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이 은혜롭지를 못하고 문제 투성이로 바람잘 날이 없습니까 그래서 집에 들어가기조차 싫습니까 내 가정이 시끄럽고 문제로 가득한 것이 남편 때문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아내 때문도 아니요, 자식들 때문도 아닙니다. 가정의 모 든 문제가 바로 나 때문이라는 인식을 가져 볼 수는 없는 겁니까 가정의 모든 문제가 나 때문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한다면 그때부터 문제가 해결되어 은혜가 넘칠 것입니다. 불평불만이 변하여 감사가 될 것입니다. 보십시오. 요나가 그의 몸을 바다에 던지니 바다가 어떻게 되었 습니까 본문 15절을 보십시다. 여러분께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요나가 그의 몸을 풍랑에 던져질 때에 그렇게도 거세던 풍랑이 가라앉았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도 풍랑이 일어나는 여러분의 가정에, 이 사회 에 여러분의 몸을 던져 보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거센 풍랑이 잔잔 하여 질 것입니다. 요나가 그의 몸을 바다에 던졌다고 해서 그가 죽은 것이 아닙니다. 요나는 제 2의 멋진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요놈의 나'를 들어 인생의 바다에, 가정의 풍랑 앞에 던져질 때에 오늘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 된 삶, 성령님이 거하시는 기쁨의 삶, 천국의 백성된 삶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어두운 사회 앞에, 믿지 않는 가정의 풍랑 앞에 믿음의 양심을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요나가 문제에 책임을 지고 그의 몸을 바다에 던져질 때에 풍랑 이 잔잔하여 졌습니다. 요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을 뻔하였지 만, 그러나 요나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요놈의 나 때문에 내 가정과, 교회와 이 사회가 어지러움에 빠져 고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놈의 나로 인하여 내 가정과 내 교회와 이 사회가 평화를 누리고 축복된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문제 앞에 도망을 가는 요 나, 문제에 책임을 지는 요 나, 여러분 은 어떤 선택을 하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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