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근원을 고쳐야 합니다 (왕하2:19-22)
본문
어떤 목사님이 깊은 산골 길을 가다가 호랑이를 만났습니다. 입을 쩍 벌리고 앞을 가로막는 호랑이를 보는 순간 목사님은 식은 땀이 흐르고 ‘아’이제 마지막이로구나‘ 라는 절망과 공포가 전신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러나 그냥 잡혀 먹힐 순 없었습니다. 털썩 주저앉아 벌벌 떨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주여 살려 주십시오. 부족한 종을 살려 주시면 남은 여생 죽도록 충성을 다 하겠사오니 호랑이 입에서 종을 건져 주시옵소서.” 얼마나 힘써 기도했는지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눈을 떠보니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호랑이가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놀란 목사님이 호랑이에게 물었습니다. “호랑이야, 네가 어떻게 기도를 하고 있니” 호랑이가 대답했습니다. “목사님은 식사 전에 식사기도도 안 하십니까” 이 이야기는 호랑이 시리즈에 나오는 우스개 이야기입니다. 엘리사가 여리고 지방에 머물고 있던 어느 날 그 지역 주민들이 엘리사를 찾아와 이 지역은 경치도 좋고 살기도 좋지만 물이 좋지 않아 열매가 결실을 못하고 떨어진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엘리사가 소금을 물 가운데 던져 물을 고쳤고 그 이후로는 열매가 익기 전에 떨어지는 일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본문이 주는 몇 가지 교훈을 찾겠습니다.
1. 문제의 발견 19절에 보면 “그 성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우리 주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 지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곡식이나 과일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는 이유를 알고 있었습니다. 여리고는 유대나라 여러 도시들 가운데 물이 가장 넉넉해 숲이 우거지고 살기가 좋은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그러나 그 도시의 약점은 물이 좋지 못해 곡식이 익지 못하고 떨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도시가 됐건 사람이 됐건 아름다운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에겐 아름다워지고 싶은 본능이 있습니다. 누가 가르치는 것도 아닌데 세 살난 아이도 거울을 들여다 보고 옷을 갈아 입습니다. 그러나 얼굴만 예쁘고 옷치장만 한다고 해서 미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잡지를 보니까 8천만 원만 있으면 누구라도 황신혜가 될 수 있고 김희선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현대 성형의학으로 못 고치는 부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내적 아름다움, 정신적 아름다움, 더 나아가 영혼의 아름다움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여리고는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수질이 좋지 않아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는 문제의 도시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물 근원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유엔 인구기금(UNFPA)의 발표에 의하면 99년 10월이 되면 세계 인구가 60억을 넘어 서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매년 7,800만 명이 증가하고 있으며 매일전세계적으로 1만 6천 명이 에이즈에 감염되고 있다고 합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 물 회의 보고에 따르면 앞으로 25년 안에 전세계는 심각한 물 부족으로 고통받을 것이며 물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현재 25개국이 물 부족으로 신음하고 있는데 2025년에는 34개국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인구의 20%인 24억이 물 부족으로 고통을 겪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은행 총재였던 이스마일 시게딘은 “금세기의 전쟁은 기름 때문이었으나 21세기는 물 때문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미 그런 조짐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집트와 수단, 이디오피아는 나일강을 놓고 충돌하고 있으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역시 요르단 강의 물 분배가 문제되고 있습니다. 워싱턴에 있는 월드워치 연구소에 따르면 매년 지하수의 수면이1-3m씩 감소되어 낮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하수량의 감소에다 급속한 오염으로 21세기는 물 부족으로 인한 국제간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인 것입니다. 물은 귀합니다. 물은 생명을 유지하는 절대 조건입니다. 밥은 40일이나 100일을 굶을 수 있지만 물은 마시지 않으면 죽고 맙니다. 여리고의 문제는 물 근원에 있었고 그것을 발견하고 알았기 때문에 해결의 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물이라고 다 물이 아닙니다. 물이라고 어떤 물이나 다 마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살리는 물이 있고 죽이는 물이 있습니다. 물이 죽으면 물고기도 죽고 해초도 죽고 나무도 죽습니다. 썩은 물을 마시면 짐승도 죽고 사람도 죽습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생수를 마시면 초목도 짐승도 사람도 살아납니다. 요한복음 4장 14절을 보면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수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없으면 썩은 정치, 썩은 경제, 썩은 문화, 썩은 교육, 썩은 예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생명수 예수가 있어야 모든 것은 생명을 얻고 되살아날 수 있는 것입니다.
2. 엘리사의 처방
첫째,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오라고 했습니다(20절). 새 그릇에 담아오라는 것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된다”는 것과 궤를 같이 합니다. 새 그릇과 새 부대는 새로 변화된 사람을 상징합니다. 누가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고린도후서 5장 17절을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습니다. 정권을 바꾸고 개혁을 부르짖고 구조조정을 하고 사정작업을 계속한다고 해서 새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라고 했습니다. 이전 것이 지나가야 하는데 지금 우리 나라는 이전 것들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뇌물을 주고 받는 것, 호화 사치에 빠지는 것, 부정부패를 조장하는 것들이 이전 것들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변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변해서 새 그릇이 되고 새 부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새 그릇에 다가 정치를 담고 경제를 담고 교육을 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요즘 정치권에서는 젊은 피 수혈론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젊은 피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피는 검사해 보아야 합니다. 피검사 한 가지만으로도 수십 가지의 질병여부를 판가름 할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 젊다고 그 피가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피로 거듭난 사람. 예수의 정신과 양심으로 새롭게 변화된 사람들이 새 그릇이고 새 부대인 것입니다. 엘리사는 소금을 담아 오라고 했습니다. 소금은 절대 필요한 조미료입니다. 소금으로 맛을 내지 않으면 음식은 먹을 수가 없습니다. 소금은 썩는 것을 막는 방부제입니다. 그리고 소금은 치료제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5장 13절에서 주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고 했습니다. 맛 잃은 소금이 되지 맙시다. 그 동네, 그 직장에서 맛을 내는 사람, 썩는 것을 막는 사람이 됩시다. 세상 사람보다 더 썩고 더 말썽을 일으키는 문제의 장본인이 되지 맙시다. 나 때문에 주님의 영광이 가리워지고 교회가 욕먹는 일을 하지 맙시다.
둘째, 그 소금을 물 근원에 던졌습니다. 소금은 물에 들어가면 녹아 없어지고 짠맛만 남습니다. 나무나 돌은 물에 던지면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지만 소금은 녹아 없어져 버립니다. 자신을 녹이고 용해시키는 희생의 상징인 것입니다. 주님은 소금처럼 녹아 자신을 바침으로 우리를 살리고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썩은 물 속에 병든 물 속에, 소금을 던졌다는 것은 소금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쓸모 없이 밟히는 소금은 되지 맙시다.
셋째, 하나님이 고치셨습니다. 21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라고 했습니다. 새 그릇을 찾아 소금을 담아 가져오는 것, 그리고 그 소금을 수원지에 던지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물을 고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부르짖고 기도하고 간구하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여리고 수원지에 수천 톤의 소금을 뿌린다고 해서 물이 고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해 바다처럼 소금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고 하나님이 고치시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을 보면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치료받아야 할 사람들이지 치료자가 아닙니다. 역대정권이나 대통령마다 새 나라와 새 정치를 말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생각대로 말대로 안된 이유는 사람이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으며 사람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는 진리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3. 문제의 해결 21절의 끝을 보면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지니라”고 했고, 22절을 보면 “그 물이 엘리사의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날에 이르렀더라”고 했습니다. 물 근원을 고치니까 토질이 좋아졌고, 토질이 좋아지니까 농작물이 나서 과일나무가 죽은 일도 없어졌고, 열매가 익다가 떨어지는 일도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계속 기침을 하게 되자 감기겠거니 생각하고 감기약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 기침은 더 심해질 뿐 그치질 않았습니다. 병원에 가서 진찰했더니 폐결핵이었습니다. 눈으로 사물을 보면 둘이나 셋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안질이려니 생각하고 안약만 넣다가 어느 날 병원에 가서 진찰을 했더니 뇌신경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코가 막히는 사람이 코 끝에 연고만 바르다가 병원에 가서 진찰을 했더니 축농증이었습니다. 병은 원인을 찾아서 고쳐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나라가 안되고 기업이 안되고 인생길이 막히고 가정이 힘들고 회사가 어려워 앞길이 막히면 원인을 빨리 찾아야 합니다. 코 끝에 연고만 바르고 있으면 안됩니다. 우린 세 가지 면에서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잘못은 없는가 다시 말하면 영적으로 문제가 없는가 신앙생활은 똑바로 잘 했는가 그랬는데도 문제가 일어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바로 믿고 바로 살았는가를 돌이켜보아야 합니다.
둘째는 사람과의 관계는 문제가 없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셋째는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마치 중병 걸린 사람처럼 신음하고 있습니다. 정부나 관련 기관들이 처방을 내리기도 하고 조처를 취하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물 근원을 고쳐야 물이 살아나고, 물이 살아나야 그 물을 마시는 사람도 살아나며, 그 물을 먹는 동물도 식물도 농사도 과수원도 살아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물 근원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정신이며 영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을 살리는 운동을 벌여야 합니다. 영혼 살리는 운동은 예수 운동입니다. 구조 조정보다 사정보다 제 2건국 운동보다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운동입니다. 예수를 전하고 예수를 믿고 예수 정신으로 이 땅을 고치는 것이 급선무 입니다. “내가 이 물을 고치겠다.” “내가 이 땅을 고치겠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주님 앞에 나와 고침 받읍시다. 아멘.
1. 문제의 발견 19절에 보면 “그 성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우리 주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 지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곡식이나 과일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는 이유를 알고 있었습니다. 여리고는 유대나라 여러 도시들 가운데 물이 가장 넉넉해 숲이 우거지고 살기가 좋은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그러나 그 도시의 약점은 물이 좋지 못해 곡식이 익지 못하고 떨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도시가 됐건 사람이 됐건 아름다운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에겐 아름다워지고 싶은 본능이 있습니다. 누가 가르치는 것도 아닌데 세 살난 아이도 거울을 들여다 보고 옷을 갈아 입습니다. 그러나 얼굴만 예쁘고 옷치장만 한다고 해서 미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잡지를 보니까 8천만 원만 있으면 누구라도 황신혜가 될 수 있고 김희선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현대 성형의학으로 못 고치는 부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내적 아름다움, 정신적 아름다움, 더 나아가 영혼의 아름다움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여리고는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수질이 좋지 않아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는 문제의 도시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물 근원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유엔 인구기금(UNFPA)의 발표에 의하면 99년 10월이 되면 세계 인구가 60억을 넘어 서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매년 7,800만 명이 증가하고 있으며 매일전세계적으로 1만 6천 명이 에이즈에 감염되고 있다고 합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 물 회의 보고에 따르면 앞으로 25년 안에 전세계는 심각한 물 부족으로 고통받을 것이며 물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현재 25개국이 물 부족으로 신음하고 있는데 2025년에는 34개국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인구의 20%인 24억이 물 부족으로 고통을 겪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은행 총재였던 이스마일 시게딘은 “금세기의 전쟁은 기름 때문이었으나 21세기는 물 때문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미 그런 조짐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집트와 수단, 이디오피아는 나일강을 놓고 충돌하고 있으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역시 요르단 강의 물 분배가 문제되고 있습니다. 워싱턴에 있는 월드워치 연구소에 따르면 매년 지하수의 수면이1-3m씩 감소되어 낮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하수량의 감소에다 급속한 오염으로 21세기는 물 부족으로 인한 국제간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인 것입니다. 물은 귀합니다. 물은 생명을 유지하는 절대 조건입니다. 밥은 40일이나 100일을 굶을 수 있지만 물은 마시지 않으면 죽고 맙니다. 여리고의 문제는 물 근원에 있었고 그것을 발견하고 알았기 때문에 해결의 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물이라고 다 물이 아닙니다. 물이라고 어떤 물이나 다 마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살리는 물이 있고 죽이는 물이 있습니다. 물이 죽으면 물고기도 죽고 해초도 죽고 나무도 죽습니다. 썩은 물을 마시면 짐승도 죽고 사람도 죽습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생수를 마시면 초목도 짐승도 사람도 살아납니다. 요한복음 4장 14절을 보면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수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없으면 썩은 정치, 썩은 경제, 썩은 문화, 썩은 교육, 썩은 예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생명수 예수가 있어야 모든 것은 생명을 얻고 되살아날 수 있는 것입니다.
2. 엘리사의 처방
첫째,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오라고 했습니다(20절). 새 그릇에 담아오라는 것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된다”는 것과 궤를 같이 합니다. 새 그릇과 새 부대는 새로 변화된 사람을 상징합니다. 누가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고린도후서 5장 17절을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습니다. 정권을 바꾸고 개혁을 부르짖고 구조조정을 하고 사정작업을 계속한다고 해서 새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라고 했습니다. 이전 것이 지나가야 하는데 지금 우리 나라는 이전 것들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뇌물을 주고 받는 것, 호화 사치에 빠지는 것, 부정부패를 조장하는 것들이 이전 것들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변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변해서 새 그릇이 되고 새 부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새 그릇에 다가 정치를 담고 경제를 담고 교육을 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요즘 정치권에서는 젊은 피 수혈론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젊은 피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피는 검사해 보아야 합니다. 피검사 한 가지만으로도 수십 가지의 질병여부를 판가름 할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 젊다고 그 피가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피로 거듭난 사람. 예수의 정신과 양심으로 새롭게 변화된 사람들이 새 그릇이고 새 부대인 것입니다. 엘리사는 소금을 담아 오라고 했습니다. 소금은 절대 필요한 조미료입니다. 소금으로 맛을 내지 않으면 음식은 먹을 수가 없습니다. 소금은 썩는 것을 막는 방부제입니다. 그리고 소금은 치료제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5장 13절에서 주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고 했습니다. 맛 잃은 소금이 되지 맙시다. 그 동네, 그 직장에서 맛을 내는 사람, 썩는 것을 막는 사람이 됩시다. 세상 사람보다 더 썩고 더 말썽을 일으키는 문제의 장본인이 되지 맙시다. 나 때문에 주님의 영광이 가리워지고 교회가 욕먹는 일을 하지 맙시다.
둘째, 그 소금을 물 근원에 던졌습니다. 소금은 물에 들어가면 녹아 없어지고 짠맛만 남습니다. 나무나 돌은 물에 던지면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지만 소금은 녹아 없어져 버립니다. 자신을 녹이고 용해시키는 희생의 상징인 것입니다. 주님은 소금처럼 녹아 자신을 바침으로 우리를 살리고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썩은 물 속에 병든 물 속에, 소금을 던졌다는 것은 소금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쓸모 없이 밟히는 소금은 되지 맙시다.
셋째, 하나님이 고치셨습니다. 21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라고 했습니다. 새 그릇을 찾아 소금을 담아 가져오는 것, 그리고 그 소금을 수원지에 던지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물을 고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부르짖고 기도하고 간구하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여리고 수원지에 수천 톤의 소금을 뿌린다고 해서 물이 고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해 바다처럼 소금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고 하나님이 고치시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을 보면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치료받아야 할 사람들이지 치료자가 아닙니다. 역대정권이나 대통령마다 새 나라와 새 정치를 말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생각대로 말대로 안된 이유는 사람이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으며 사람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는 진리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3. 문제의 해결 21절의 끝을 보면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지니라”고 했고, 22절을 보면 “그 물이 엘리사의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날에 이르렀더라”고 했습니다. 물 근원을 고치니까 토질이 좋아졌고, 토질이 좋아지니까 농작물이 나서 과일나무가 죽은 일도 없어졌고, 열매가 익다가 떨어지는 일도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계속 기침을 하게 되자 감기겠거니 생각하고 감기약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 기침은 더 심해질 뿐 그치질 않았습니다. 병원에 가서 진찰했더니 폐결핵이었습니다. 눈으로 사물을 보면 둘이나 셋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안질이려니 생각하고 안약만 넣다가 어느 날 병원에 가서 진찰을 했더니 뇌신경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코가 막히는 사람이 코 끝에 연고만 바르다가 병원에 가서 진찰을 했더니 축농증이었습니다. 병은 원인을 찾아서 고쳐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나라가 안되고 기업이 안되고 인생길이 막히고 가정이 힘들고 회사가 어려워 앞길이 막히면 원인을 빨리 찾아야 합니다. 코 끝에 연고만 바르고 있으면 안됩니다. 우린 세 가지 면에서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잘못은 없는가 다시 말하면 영적으로 문제가 없는가 신앙생활은 똑바로 잘 했는가 그랬는데도 문제가 일어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바로 믿고 바로 살았는가를 돌이켜보아야 합니다.
둘째는 사람과의 관계는 문제가 없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셋째는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마치 중병 걸린 사람처럼 신음하고 있습니다. 정부나 관련 기관들이 처방을 내리기도 하고 조처를 취하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물 근원을 고쳐야 물이 살아나고, 물이 살아나야 그 물을 마시는 사람도 살아나며, 그 물을 먹는 동물도 식물도 농사도 과수원도 살아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물 근원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정신이며 영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을 살리는 운동을 벌여야 합니다. 영혼 살리는 운동은 예수 운동입니다. 구조 조정보다 사정보다 제 2건국 운동보다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운동입니다. 예수를 전하고 예수를 믿고 예수 정신으로 이 땅을 고치는 것이 급선무 입니다. “내가 이 물을 고치겠다.” “내가 이 땅을 고치겠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주님 앞에 나와 고침 받읍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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