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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앞에서 도전하라! (빌1:12-30)

본문

인생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문제 투성이입니다. 문제 없는 인생이 없다는 것입니다. 가끔 고난을 당하는 분들 중에 ‘왜 나만 이런 고난을 받아야 하느냐’라면서 괴로워하고 원망하시는 분들을 봅니다. 그러나 자신만이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도 당하는 일들입니다. 다만 그 사람들은 감추고 있는 것이고, 그리고 모양이 조금씩 다를 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사도도 여러가지 문제를 당하여서 고통하고 있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당한 문제는 세가지 였습니다.
첫째는 환경의 문제였으며,둘째는 인간관계에서 당하는 아픔이며,셋째는 삶과 죽음의 문제입니다. 바울사도가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헤쳐나가고 있는지를 주목해 보십시다.
1.환경의 문제입니다. 그는 지금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는 갖은 모욕과 멸시를 경험하였으며, 지금 불확실한 가운데 감옥에서 2년여동안을 쇠사슬에 매여서 갇혀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중의 그의 고백을 봅시다. 12절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그는 자신이 당한 모든일에 대하여 불평하거나 단순한 괴로움에 붙잡혀 있지 않습니다. 자신이 복음을 전하다가 당하는 아픔임에도 그것으로 죄절하지 않습니다.
예)어떤 사람들은 고난이 오면 교회다니는데 왜 이러냐고 불평합니다. 교회오다가 무슨 일을 당하여도 불평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되었다고 합니다. ‘당한일이 도리어’ 참으로 멋진 고백입니다. ‘당한 일이 도리어’ 여기서 ‘복음의 진보’라고 할 때에 ‘진보’는 나무를 찍어가면서 전진한다는 뜻입니다. 다시말하면 로마의 군인의 무기는 전차인데 그것으로 쳐들어가기 위하여 공병대가 먼저 길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로마는 길을 잘 만들었습니다. 나중에는 이 길이 복음의 길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감옥의 생활이 복음을 전하는데 정지되거나 후퇴된 것이 아니고 도리어 진보되었다는 것입니다. 13절을 봅시다.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시위대는 로마의 왕을 지키는 친위대입니다. 그 사람들은 당시 가장 영향력있는 정치가들입니다. 쇠사슬에 매인채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바울이 자유스러울 때에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감옥에 갇히므로서 그 사람들을 만나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때에 전파된 복음이 그후 300년도 안되어서 로마가 복음화되는데에 결정적인 역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헛되게 일하시지 않습니다. 다 그분의 뜻이 있어서 행하시는 일입니다. 우리의 고난도 그 분의 뜻이 있어서 그 일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예수안에 사는 그리스도인은 헛된 고생이나 쓸데없는 고생이란 없습니다. 여기서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복음의 진보’입니다.
25절에 가서보면 ‘믿음의 진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리스도인은 ‘진보되는 신앙’ 이어야 합니다. 진보의 반대는 퇴보입니다. 퇴보하면 안됩니다. 점점 나아져야 합니다. 비록 고난이 오고 환란이 와도 그것으로 퇴보하면 안됩니다. 오히려 바울처럼 그것으로 인하여 ‘도리어 진보’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히10:38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잠1:32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킨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전진되어야 합니다. 앞에 있는 장애물들을 거두어가면서 전진하는 ‘진보의 신앙’이 나타나야 합니다. 바울은 딤전 4:15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우리의 당한 일이 그것이 실패이든 질병이든 그것이 어떤 아픔 어떤 괴로운 일이든 이 모든 당한 일이 도리어 ‘진보되는 신앙’의 힘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좋지못한 환경의 고난이 와도 그것으로 인하여 신앙의 퇴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의 성숙과 복음의 확장이 나타날 수있도록 모든 사람에게 날마다 성장하는 ‘진보적 신앙’을 나타내시기를 바랍니다. 성장합시다. 진보됩시다. 나의 신앙생활에 어떤 장애물을 가져다가 놓아도 그것을 극복하고 넘어서서 전진하는 멋진 그리스도인이 되어집시다.
2.인간관계의 문제입니다. 17절을 읽어보면 바울의 문제를 알게됩니다.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15절에도 ‘투기와 분쟁’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야기인즉 그렇습니다. 바울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가짜사도라고 헛소문을 냅니다. 그를 음해하려는 말을 합니다. 그가 감옥에 있는 동안에 그는 너무나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합니다. 자신은 그렇지 않은데 다른 사람들은 자기에게 괴로움과 고통을 주려고 합니다. 나아가서 그들은 바울이 감옥에 있는 동안에 옛날보다 더욱 복음을 위해서 일합니다.
왜냐하면 바울을 이겨보려고 말입니다. 사람이 서로의 관게를 가지고 살아갈 때에 오해로 문제를 발생시킬 때가 종종 있습니다. 또한 시기와 질투로 자신을 괴롭힐 때도 있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당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참으로 괴로운 일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18절 하반절에 보면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시기나 질투로 일하지만 결국은 예수님의 복음이 전파되기 때문입니다. 시기나 질투로 바울을 이겨볼 생각으로 더욱 열심히 일하는 데 그것 때문에 복음이 더욱 확장되었으니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바울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괴로움과 아픔의 문제를 자신에게 당한 일로 괴로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를 보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예)어는 시골에 젊은 처녀가 어떤 남자하고 연애를 하여서 아이를 낳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부끄러우니까 그 교회 목사님의 아이라고 뒤집어 쒸웁니다. 그리고는 그아이를 교회에다가 가져다 놓고는 그 남자와 도망을 갔습니다. 이것이 교회에서는 시험이 되어서 많은 교인들이 떠나가고 그 목사님을 괴롭혔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은 아무런 말을 안합니다. 세월이 몇년이 흐른뒤 그 젊은남녀가 교회를 찾아옵니다. 그리고는 회개하고 고백하며 누명을 벗었습니다. 그후 그 목사님은 더욱 존경하개 되었고 그 일로 온 동네에 복음이 전파되어 교회가 더욱 부흥하게 되었고 그 젊은 부부도 충성된 일꾼이 되었다는 것임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항상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도 에외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러한 인간관게의 문제를 지혜롭게 인내를 가지고 대처할 때에 더욱 좋은 관게가 형성되며, 그 일이 더욱 깊은 사랑으로 맺어져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배워야 할 것은 ‘시기와 질투’는 인간관게를 파괴시키는 가장 무서운 사단의 무기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인하여서 다툼이 생기며 그 다툼은 분열을 조장 시킵니다. 이러한 사람은 영적인 유아기입니다. 가장 성숙되지 못한 사람입니다. 인간의 최초의 살인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시기와 질투입니다. 사울이라는 인물은 시기와 질투로 무너진 사람입니다. 하여튼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여러가지 일들로 인하여서 시험받고, 상처입고, 괴로워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을 지혜롭게 잘 대처해 가며 승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삶과 죽음의 문제입니다. 빌1:23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 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두사이에 끼였다고 합니다. 다시말하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그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축복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특별히 말할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왜 사느냐 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둘째는 죽음 이후의 거처가 확실히 정해졌다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 사도의 고백을 통하여서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먼저, 죽음의 문제가 확실합니다. ‘떠나서’라는 고백을 그는 합니다. 이 말은 ‘천막을 걷는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야영하다가 시간이 되면 천막을 거두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의미는 ‘닻을 감는다’는 의미입니다. 즉 어딘가로 출발할 때가 되면 닻을 끌어올립니다. 그리고는 출발합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이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이 마쳐지면 육신의 장막을 거두어 들고 또 다른 목적지를 향하여 닻을 감고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음후에 갈 곳이 어디인가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예)프랑스의 계몽주의학자요 무신론자인 볼테르는 임종이 가까이 오자 그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버림을 받았소 내 생명이 6개월만 연장된다면 나는 내게 있어서 가장 가치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의 절반을 내놓겠소. 나는 이제 그만 두렵고 떨리는 지옥으로 가게 되었소. 당신도 가게 될는지 모르오” 그리고는 임종 때에는 이렇게 부르짖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여, 나를 도와 주소서.”
예)영국의 회의론자 토마스 홉즈는 그의 일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이렇게 탄식합니다. “아, 하루만이라도 더 살고 싶다. 나느는 내 앞에 다가오고 있는 저 세상이 무섭다. 저 세상을 조금이라도 들여다 볼 수있는 구멍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무엇인지도 모르나 이 마지막 어두움 속으로 그냥 덥석 뛰어들어가는 것 같다.” 바울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그는 고백합니다. 바울은 차라리 죽는 것이 그에게는 더욱 큰 축복이라고 합니다. 왜요, 죽음후에 새로운 삶을 그는 알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아버지의 집이 그가 죽은후에 갈 곳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죽는다면 아버지의 이 집에 갈 자신이 있습니까 누가 그럴수가 있나요 그것은 돈으로도 아닙니다. 세상의 명예나 권세로도 아닙니다. 지식으로나 세상의 학문의 힘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의 죄를 사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서 가능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누구든지 바울의 고백을 할 수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멸망치 않고 죽음이후의 세계가 내 아버지의 영원한 집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죽음을 준비하셨습니까 가장 우선적으로 준비하셔야 할 것은 바로 이 죽음후의 거처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이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어서 심판의 하나님을 만나지 마시고 살아서 은혜의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축복합니다. 바울의 고백을 계속봅시다. 그는 죽는 것이 훨씬 좋다고 하면서도 왜 사는가를 말 합니다. 그것은 빌 1:24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빌1:20,21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가 살아야 할 분명한 이유는 두가지 입니다. 하나는 그의 삶을 통하여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또한가지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왜 사느냐하는 이유를 모릅니다. 자신이 이 세상에 보내어진 분명한 이유를 모릅니다. 그러기때문에 삶에 의욕이 없고, 마음이 피곤합니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 자신만의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서 살아갈 때에 우리는 삶의 보람과 의미를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땅의 짧은 삶을 바라면서 사는 자가 아니라, 영원한 저 하늘나라를 바라보면서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좀더 우리의 삶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도록 살아갑시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거치는 자가되고 가시같은 존재로 살아가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면서 살아가는 삶이 되어지도록 노력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은 문제로 싸여있습니다. 죽는날 까지 그럴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의 하루 하루는 근심과 걱정으로 그리고 두려움과 슬픔으로 게속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그렇게 사아서는 안됩니다.
예)바스커 빌 이란 분의 간증입니다. 행복한 월요일, 복된 화요일, 즐거운 수요일, 유쾌한 목요일, 좋은 금요일, 영광스런 토요일, 하늘의 기쁨이 넘치는 일요일. 일주일 내내 좋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동역자 여러분! 우리의 믿음의 삶이 비록 불완전한 이 세상의 삶으로 인하여서 많은 시험과 문제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모든 문제를 긍정적으로 믿음으로 승리하여서 하루 하루가 다 좋은 날. 하루 하루가 다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는 날. 매일 매일 숨쉬는 순간마다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가 넘치는 좋은 날이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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