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둥병자의 외침 (마8:1-3)
본문
예수님께서 산상 설교를 마치시고 산에서 내려오실 때 허다한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문둥병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절하며 자신의 병을 고쳐 주 시기를 간구 하게 되었고 그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병을 고쳐 주신 사실이 본문입니다. 이 내용은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도 기록된 말씀입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좀더 자세하게 기록되었는데 거기에는 한 문둥병자가 예수께 나아와 꿇어 엎드리어 간구하였 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그 문둥병자의 심정과 절박한 현실 등을 잘 표현해 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 으시기 바랍니다.
1.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이 숨어 있다. 하나님은 말씀을 기록하게 하실 때 그 말씀을 통하여 전하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특별하 신 뜻이 있으셔서 기록하게 하십니다. 단순히 예수님은 이런 문둥병자도 고친다.는 사실 을 남기기 위해서 그 업적을 나열하기 위해서 기록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 몇절 되 지 않은 짧은 말씀이지만 이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에게 구원의 길을 밝히는 등불 도 될 것이며 성도들의 신행(信行)의 표본이 되기도 할 중요한 말씀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는 이 문둥병자는 소리칠 것입니다. 내가 병나은 사실이 세 복음서에 기록된 것을 보지 못하였느냐고 말입니다. 그 복음서에 너희들은 허다한 무리 같은 사람이 되지 말고 나 같은 사람이 되라고, 비록 겉 모습은 비천 했지만 주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깨끗하게 된다고, 복음서의 저자들이 주님의 능력과 주님께 나아가는 방법과 나아갔을 때 주님이 즉시 깨끗이 고쳐 주신 사실들을 기록한 것을 보지 못하였느냐고 말입니다. 그것을 보고도 어찌하여 깨닫지 못하고 준비하지 아니하였다가 이제 이렇게 부끄러운 얼 굴로 주님을 보려고 했더냐고 말입니다. 이 병자는 우리에게 호소할 것입니다. 주님을 믿 으라고 그리고 주님께 나아가서 고하라고 그래서 깨끗하게 고침을 받아 흠 없는 자로 주 님 앞에 서자고 말입니다. 이것은 지나간 한 사건이기 이전에 믿음의 도리요 한 진리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인 것입니다. 우리 화평 제단의 성도들은 모두 이 말씀을 붙잡 고 승리하는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허다한 무리와 한 문둥병자 본문에는 허다한 무리가 있습니다. 산상설교를 하시기 전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사역을 하실 때 마태복음 4장 마지막에는 기록하기를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라고 했고, 7장 끝에는 산상 설교를 마치면 서 마태는 기록하기를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의 서기관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라고 한 것으로 보아서 설교 이전의 허다한 무리보다는 더 감동되고 확신에 찬 얼굴로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다고 보아집니다. 그들이 이전에는 예수님이 병자들을 고치시는 소문을 듣고 따랐으나 이제는 그 가르치심까지 듣고 나니 더욱 놀라게 되었고 이 예수님을 만난 자부 심 이 위대한 분을 보았다는 자부심 이 역사에 없던 능력의 선지자에게 말씀도 듣고 또 능력을 행하시는 그 자리에 직접 있었다는 자부심과 그분의 제자가 된 긍지에 차 있기도 했지만, 성경은 그들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음에 주의해야 합니다. 주님은 그 허다한 무리 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비참하고 가련한 한 문둥병자에게 주님의 관심이 기울 이시고, 성경의 저자들도 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 우리는 주의를 해야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관심! 성경 저자들의 관심이 한 문둥병자에게 있음을 우리는 범상 히 보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혹시 허다한 무리에 있 습니까 그 중에 옷 잘 입은 자에게 있습니까 그 중에 재물이 많은 자에게 있습니까 아마 우리 성도들의 관심도 여전히 한 문둥 병자에게 있을 줄 믿습니다. 이 문둥병자를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이 사람은 허다한 사람들보다도 가장 모범 된 신앙가 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중요한 설교 시간에 이 문둥병자를 본 받자라는 의미로 이 사람의 신앙 의 행위를 자세히 살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나누도록 합시다.
3. 이 사람은 문둥병자입니다. 성경에 문둥병자에 대한 기록이 많습니다만, 그중에 누가복음 17:11절에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를 지나가실 때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멀리 서서 소리 높여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쳤습니다. 이 당시에는 가까이 올 수도 없는 처지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레위기 13:46절에는 진밖에 나 가서 혼자 살아야 했었습니다. 벤허 영화에는 문둥이가 가까이 올 때는 사람들이 돌을 던져서 접근을 막기도 하는 것을 볼 때 이 사람은 허다한 무리 중에 끼일 수도, 가까이 올 수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허다한 무리를 제치고 성경에 중요한 인물로 그것도 세 복음서에 모두 기록 된 사실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 사람은 분명히 허다한 무리 보다 복되고 영광 스런 사람이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허다한 무리 중에 부자도 있었을 것이고 학자도 있었을 것이고 권세 있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만 그들은 한사람도 그 신행이 기록되 지 아니했지만 이 사람 문둥병자만은 그 신앙적 행위가 성경에 기록되는 영광을 얻은 것처럼 우리 교회 성도들도 모두 하나님의 책에 기록되는 영광을 안으시기 바랍니다.
4. 성경에는 어떤 사람이 기록됩니까 오늘 본문의 문둥병자는 무엇 때문에 기록되었습니까 그 성서러운 분이 계신 곳에 문 둥병자 한사람이 있어서 기록한 것입니까 아니면 문둥병자가 고침을 받았기 때문입니 까 그런 것도 이유가 될는지 모르겠으나 성경의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기록된 이유는 그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에 있었던 중풍병이 든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 주신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도 보면 "내가 이스라엘 중에서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다 " 13절에 "가라 네 믿는 대로될지어다"라고 하시면서 그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 하셨던 것입니다. 비슷한 기록은 성경 여러 곳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9장의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예수님의 겉옷만 만져도 구원 받겠다고 믿고 옷 가에 손을 대었는데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다"하셨습니다. 곧 이어 두 소경을 고치신 사건에서도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네 믿음대로 되라" 하셨고, 마태복음 9장2절에 중풍병자를 고치실 때도 예수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셨습니다.
5. 예수님음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은 무엇을 보신다고요 "믿음을 보시고"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을 보시는 주님이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사람들은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비록 겉모습은 중풍병자 문둥이 소경이었지만 그들의 믿음을 보시 고 구원하여 주시고 그 사실을 성경에 기록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역대의 믿음의 사람들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히브리서 뿐만 아니라 전 성경은 믿음의 사람들의 신 행을 기록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문둥병자가 자랑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직 그날 주님 앞에 엎드려 간구하여 깨끗함을 받은 것! 그때 주님 앞에 겸손히 나아간 것 ! 그리고 '주께서 원하시면 나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많은 사람 앞에서 주님의 능력을 믿고 고백하고 간구한 그 믿음은 자랑할 만할 것입니다. 계시록 20:15절에는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니"라고 하 셨습니다. 성경은 기록이 완성되었으므로 우리의 이름이 성경에는 더 이상 오를 수 없습니다만 슬퍼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믿음이 생명책에 빠짐 없이 기록 될 것입니다. 생명책 에는 사람의 겉모습, '그 사람이 교회 올 때 옷을 얼마나 잘입었더냐, 화장을 얼마나 잘 했더냐 얼굴이 얼마나 잘 생겼더냐 재력이 얼마나 있는 사람이더냐'하는 것은 생명책에 하나도 기록되지 아니합니다. 한자도 기록되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 키는 작고 체격은 볼 품 없어도 지식은 좀 모자라도, 죄인일지라도 그러한 겉모습을 보시지 않고, 믿음이 어떠하냐를 기록하시는 책이 생명책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행위가 어떠하냐, 어떤 신앙관을 가지고 살았느냐, 오늘 우리가 이 문둥병 자의 기록을 읽음 같이 생명책을 펴는 날에는 그 속에 우리 화평교회 성도들의 신행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오늘 목사님이 몰라 주셔도 교인들이 나의 선행을 몰라 주어도 그날 그 생명책에는 빠짐 없이 기록 되어 있을 줄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가 한사람도 없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6. 능력을 믿은 믿음 이 병자가 기록 된 것이 믿음 때문이었는데, 그는 무엇을 믿었습니까 예수님의 능력을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원하시기만 하면 나를 깨끗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의 주님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백부장은 감히 주님이 저희 집에 들어오시다니요 저희집에 들어오심을 감당치 못하겠사 오니 이 자리에서라도 말씀만 하시 옵소서 말씀만 하셔도 능히 낫게 하실 수 있는 능력 의 주님으로 믿었습니다. 혈루증 여인은 겉옷만 만져도, 옷 가만 만져도 주의 능력이 임할 줄 믿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풀무불 속에서도 능히 건져내실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이브라함은 이삭을 바칠 때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믿었습니다. 성경은 믿음의 사람들의 행적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 곧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못하실 일이 없으신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50:2절에는 "내 손이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가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짖은즉 바다가 마르며 하수가 광야가 될 것이며 거기 물이 없으므로 어족이 갈하여 죽어 악취를 발하게 되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야고보서 4:2절에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하 셨는데 구하지 아니한 것은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의 믿음 없는 것을 책망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읍시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읍시다! 그분은 천지 만물을 지으셨고 지은 것이 그분이 없이는 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요한 복음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죄 중에 거짓말이나 부도덕한 행위를 한 것도 죄이겠지만 그 보다 더 근본적 죄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가 심판 때 얼마나 엄청난가를 압니다.
그러나 신자 중에도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믿지 않음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성경은 이 차이를 영광의 차이로 말씀하시면서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고 별의 영광이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도 다르다고 비유하고 있습니다. 별의 영광과 해의 영광을 무엇으로 비교 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의 차이가 이렇게 엄청 날 것을 우리에게 비유로 가르쳐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허다한 무리는 그 믿음이 별 과 같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희미하게 기록될까 말까 보일락 말락 하 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문둥병자는 비록 몸은 문둥병자였지만 그의 믿음은 해와 같이 빛나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믿음을 높이 평가하고 바라보고 사모하여 자기도 그러한 믿음의 사람이 되고자 애를 쓰는 것입니다. 7. 믿는 자는 하나님께 나아간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나아가게 됩니다. 이 문둥병자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믿느냐고 그러면 나같이 주님 앞에 나아가라고 말입니다. 본문의 병자는 주님의 능력을 믿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어 쩌면 돌 맞아 죽을지도 모르지만 죽을 것도 각오하고 주님께 나아갔습니다. 그것도 제일 가운데까지 나아간 것입니다. 주님께 나아가지 아니했더라면 이 사람은 평생 문둥 병자 로 사람들에게 멸시 천대를 받았을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께 나아가지 않는 자는 주의 영광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열심히 주님께 나아갑시다. 예배 시간도 게을리 하지 맙시다. 기도도 게을리 하지 맙시다. 주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일에도 게으러지 맙 시다. 나에게 믿음이 있는가 하는 것은 그 열매 된 예배 참석과 기도와 섬기는 일로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믿음이 있다 하면서 주님께 나아가지 않는 사람은 마치 예수님은 능 력이 크신 분이라고 하면서 주님께 나아가서 고하지 않는 사람과도 같을 것입니다. 그는 주님의 영광을 보지 못합니다. 마가복음에는 이 병자가 예수님께 나아와서 꿇어 엎드리 어 간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께 나아가면 어떤 병이라도 고침을 받을 수 있 다고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 이 병자 같은 행위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로마 서 10:10절에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병자는 주님께 나아가서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주님 을 믿으십니까 주님께 나아가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한 시인하여 다 구원에 이르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전능을 믿으십니까 주님께 나오기를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주께 무릎꿇고 기도하기를 쉬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을 볼 것입니다. 8. 주께서 아시도록 내가 간구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을 주님께 보이고 알려 드려야 합니다. 요한복음에 시몬 베드로는 대답했습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말입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이 알아 주셔야 합니다. 내가 교회를 사랑하는 줄을 목사님이 알아 주셔야 하고 교인들이 알아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를 누가 제일 사랑하는지 우리 집 아이들에게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아이들은 잘 압니다. 그러나 말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속으로는 다 알고 있어요. 왜 보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충성하는지 누가 열심히 하는지 그들은 보았기 때문입니다. 누가 목사님을 제일 사랑하는지도 그들은 압니다. 아이들도 아는데 하물며 우리 주님이 모르시겠습니까 이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하는 베드로의 고 백을 우리도 세 번이나 꾸밈없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알아 주셔야 하듯이 내 마음속에 속타고 애타고 간절한 사정도 주님께 고해야 합니다. 문둥병자가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는 꿇어 엎드려 간구하였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옷을 입고 머리를 손질하고 얼굴에 화장을 하게 됩니다. 요즈음은 남 자들도 화장을 한다고 합니다. 여자들은 속옷까지 패션바람이 불어서 들리는 말에는 맞 춤 속옷도 있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하루에도 두 세 번 옷을 바꾸어 입기도 하고 어떤 아가씨들은 화장을 하는데 한시간이 넘게 걸린다고도 합니다. 그것뿐입니까 모자 메니 큐 귀고리는 기본이고, 팔지 그리고 코고리 까지 악세사리에도 많은 공을 들이기도 합니다. 왜 이렇게 요란하게 사치를 하게 되었는가 하면 남들이 보아달라는 것입니다. 남들이 보아줄 것이기 때문에 화장을 하고 악세사리를 하는 것이지 만약 무인도에 혼자 사는 사람이 화장을 진하게 하고 메니큐를 바르고 악세사리를 하고 하루에 옷을 서 너 번씩 갈 아입는다고 하면 그 사람을 돌았다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에게는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남보다 더 사랑 받고 나은 대우를 받기를 원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 것 같습니다. 이렇듯이 우리 성도들도 사랑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사랑을 받아야 하고 제자는 스승에게 사랑을 받아야 하며 성도는 주님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전에도 요셉을 설교할 때 말씀 드렸습니다만 요셉은 가는 곳마다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는 어릴 때는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였고 보디발의 집에서는 그 주인에게 사랑을 받았고 감옥 에서는 전옥에게 나라에서는 바로왕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어느 곳에 가든지 자기가 머무는 처소에서 인정받고 사랑받고 존경받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이 알아 주셔야 합니다. 내 사정을 주님이 해결해 주셔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도 주님께 보이고 내 아픈 것도 주님께 고하고, 내 부족 한 것도 주님이 채워주시도록 주님께 나아가서 말합시다. 기도합시다. 간절히 간구합시다.
1.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이 숨어 있다. 하나님은 말씀을 기록하게 하실 때 그 말씀을 통하여 전하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특별하 신 뜻이 있으셔서 기록하게 하십니다. 단순히 예수님은 이런 문둥병자도 고친다.는 사실 을 남기기 위해서 그 업적을 나열하기 위해서 기록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 몇절 되 지 않은 짧은 말씀이지만 이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에게 구원의 길을 밝히는 등불 도 될 것이며 성도들의 신행(信行)의 표본이 되기도 할 중요한 말씀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는 이 문둥병자는 소리칠 것입니다. 내가 병나은 사실이 세 복음서에 기록된 것을 보지 못하였느냐고 말입니다. 그 복음서에 너희들은 허다한 무리 같은 사람이 되지 말고 나 같은 사람이 되라고, 비록 겉 모습은 비천 했지만 주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깨끗하게 된다고, 복음서의 저자들이 주님의 능력과 주님께 나아가는 방법과 나아갔을 때 주님이 즉시 깨끗이 고쳐 주신 사실들을 기록한 것을 보지 못하였느냐고 말입니다. 그것을 보고도 어찌하여 깨닫지 못하고 준비하지 아니하였다가 이제 이렇게 부끄러운 얼 굴로 주님을 보려고 했더냐고 말입니다. 이 병자는 우리에게 호소할 것입니다. 주님을 믿 으라고 그리고 주님께 나아가서 고하라고 그래서 깨끗하게 고침을 받아 흠 없는 자로 주 님 앞에 서자고 말입니다. 이것은 지나간 한 사건이기 이전에 믿음의 도리요 한 진리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인 것입니다. 우리 화평 제단의 성도들은 모두 이 말씀을 붙잡 고 승리하는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허다한 무리와 한 문둥병자 본문에는 허다한 무리가 있습니다. 산상설교를 하시기 전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사역을 하실 때 마태복음 4장 마지막에는 기록하기를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라고 했고, 7장 끝에는 산상 설교를 마치면 서 마태는 기록하기를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의 서기관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라고 한 것으로 보아서 설교 이전의 허다한 무리보다는 더 감동되고 확신에 찬 얼굴로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다고 보아집니다. 그들이 이전에는 예수님이 병자들을 고치시는 소문을 듣고 따랐으나 이제는 그 가르치심까지 듣고 나니 더욱 놀라게 되었고 이 예수님을 만난 자부 심 이 위대한 분을 보았다는 자부심 이 역사에 없던 능력의 선지자에게 말씀도 듣고 또 능력을 행하시는 그 자리에 직접 있었다는 자부심과 그분의 제자가 된 긍지에 차 있기도 했지만, 성경은 그들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음에 주의해야 합니다. 주님은 그 허다한 무리 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비참하고 가련한 한 문둥병자에게 주님의 관심이 기울 이시고, 성경의 저자들도 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 우리는 주의를 해야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관심! 성경 저자들의 관심이 한 문둥병자에게 있음을 우리는 범상 히 보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혹시 허다한 무리에 있 습니까 그 중에 옷 잘 입은 자에게 있습니까 그 중에 재물이 많은 자에게 있습니까 아마 우리 성도들의 관심도 여전히 한 문둥 병자에게 있을 줄 믿습니다. 이 문둥병자를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이 사람은 허다한 사람들보다도 가장 모범 된 신앙가 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중요한 설교 시간에 이 문둥병자를 본 받자라는 의미로 이 사람의 신앙 의 행위를 자세히 살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나누도록 합시다.
3. 이 사람은 문둥병자입니다. 성경에 문둥병자에 대한 기록이 많습니다만, 그중에 누가복음 17:11절에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를 지나가실 때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멀리 서서 소리 높여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쳤습니다. 이 당시에는 가까이 올 수도 없는 처지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레위기 13:46절에는 진밖에 나 가서 혼자 살아야 했었습니다. 벤허 영화에는 문둥이가 가까이 올 때는 사람들이 돌을 던져서 접근을 막기도 하는 것을 볼 때 이 사람은 허다한 무리 중에 끼일 수도, 가까이 올 수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허다한 무리를 제치고 성경에 중요한 인물로 그것도 세 복음서에 모두 기록 된 사실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 사람은 분명히 허다한 무리 보다 복되고 영광 스런 사람이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허다한 무리 중에 부자도 있었을 것이고 학자도 있었을 것이고 권세 있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만 그들은 한사람도 그 신행이 기록되 지 아니했지만 이 사람 문둥병자만은 그 신앙적 행위가 성경에 기록되는 영광을 얻은 것처럼 우리 교회 성도들도 모두 하나님의 책에 기록되는 영광을 안으시기 바랍니다.
4. 성경에는 어떤 사람이 기록됩니까 오늘 본문의 문둥병자는 무엇 때문에 기록되었습니까 그 성서러운 분이 계신 곳에 문 둥병자 한사람이 있어서 기록한 것입니까 아니면 문둥병자가 고침을 받았기 때문입니 까 그런 것도 이유가 될는지 모르겠으나 성경의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기록된 이유는 그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에 있었던 중풍병이 든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 주신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도 보면 "내가 이스라엘 중에서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다 " 13절에 "가라 네 믿는 대로될지어다"라고 하시면서 그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 하셨던 것입니다. 비슷한 기록은 성경 여러 곳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9장의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예수님의 겉옷만 만져도 구원 받겠다고 믿고 옷 가에 손을 대었는데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다"하셨습니다. 곧 이어 두 소경을 고치신 사건에서도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네 믿음대로 되라" 하셨고, 마태복음 9장2절에 중풍병자를 고치실 때도 예수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셨습니다.
5. 예수님음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은 무엇을 보신다고요 "믿음을 보시고"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을 보시는 주님이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사람들은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비록 겉모습은 중풍병자 문둥이 소경이었지만 그들의 믿음을 보시 고 구원하여 주시고 그 사실을 성경에 기록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역대의 믿음의 사람들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히브리서 뿐만 아니라 전 성경은 믿음의 사람들의 신 행을 기록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문둥병자가 자랑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직 그날 주님 앞에 엎드려 간구하여 깨끗함을 받은 것! 그때 주님 앞에 겸손히 나아간 것 ! 그리고 '주께서 원하시면 나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많은 사람 앞에서 주님의 능력을 믿고 고백하고 간구한 그 믿음은 자랑할 만할 것입니다. 계시록 20:15절에는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니"라고 하 셨습니다. 성경은 기록이 완성되었으므로 우리의 이름이 성경에는 더 이상 오를 수 없습니다만 슬퍼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믿음이 생명책에 빠짐 없이 기록 될 것입니다. 생명책 에는 사람의 겉모습, '그 사람이 교회 올 때 옷을 얼마나 잘입었더냐, 화장을 얼마나 잘 했더냐 얼굴이 얼마나 잘 생겼더냐 재력이 얼마나 있는 사람이더냐'하는 것은 생명책에 하나도 기록되지 아니합니다. 한자도 기록되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 키는 작고 체격은 볼 품 없어도 지식은 좀 모자라도, 죄인일지라도 그러한 겉모습을 보시지 않고, 믿음이 어떠하냐를 기록하시는 책이 생명책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행위가 어떠하냐, 어떤 신앙관을 가지고 살았느냐, 오늘 우리가 이 문둥병 자의 기록을 읽음 같이 생명책을 펴는 날에는 그 속에 우리 화평교회 성도들의 신행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오늘 목사님이 몰라 주셔도 교인들이 나의 선행을 몰라 주어도 그날 그 생명책에는 빠짐 없이 기록 되어 있을 줄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가 한사람도 없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6. 능력을 믿은 믿음 이 병자가 기록 된 것이 믿음 때문이었는데, 그는 무엇을 믿었습니까 예수님의 능력을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원하시기만 하면 나를 깨끗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의 주님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백부장은 감히 주님이 저희 집에 들어오시다니요 저희집에 들어오심을 감당치 못하겠사 오니 이 자리에서라도 말씀만 하시 옵소서 말씀만 하셔도 능히 낫게 하실 수 있는 능력 의 주님으로 믿었습니다. 혈루증 여인은 겉옷만 만져도, 옷 가만 만져도 주의 능력이 임할 줄 믿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풀무불 속에서도 능히 건져내실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이브라함은 이삭을 바칠 때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믿었습니다. 성경은 믿음의 사람들의 행적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 곧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못하실 일이 없으신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50:2절에는 "내 손이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가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짖은즉 바다가 마르며 하수가 광야가 될 것이며 거기 물이 없으므로 어족이 갈하여 죽어 악취를 발하게 되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야고보서 4:2절에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하 셨는데 구하지 아니한 것은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의 믿음 없는 것을 책망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읍시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읍시다! 그분은 천지 만물을 지으셨고 지은 것이 그분이 없이는 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요한 복음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죄 중에 거짓말이나 부도덕한 행위를 한 것도 죄이겠지만 그 보다 더 근본적 죄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가 심판 때 얼마나 엄청난가를 압니다.
그러나 신자 중에도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믿지 않음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성경은 이 차이를 영광의 차이로 말씀하시면서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고 별의 영광이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도 다르다고 비유하고 있습니다. 별의 영광과 해의 영광을 무엇으로 비교 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의 차이가 이렇게 엄청 날 것을 우리에게 비유로 가르쳐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허다한 무리는 그 믿음이 별 과 같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희미하게 기록될까 말까 보일락 말락 하 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문둥병자는 비록 몸은 문둥병자였지만 그의 믿음은 해와 같이 빛나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믿음을 높이 평가하고 바라보고 사모하여 자기도 그러한 믿음의 사람이 되고자 애를 쓰는 것입니다. 7. 믿는 자는 하나님께 나아간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나아가게 됩니다. 이 문둥병자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믿느냐고 그러면 나같이 주님 앞에 나아가라고 말입니다. 본문의 병자는 주님의 능력을 믿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어 쩌면 돌 맞아 죽을지도 모르지만 죽을 것도 각오하고 주님께 나아갔습니다. 그것도 제일 가운데까지 나아간 것입니다. 주님께 나아가지 아니했더라면 이 사람은 평생 문둥 병자 로 사람들에게 멸시 천대를 받았을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께 나아가지 않는 자는 주의 영광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열심히 주님께 나아갑시다. 예배 시간도 게을리 하지 맙시다. 기도도 게을리 하지 맙시다. 주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일에도 게으러지 맙 시다. 나에게 믿음이 있는가 하는 것은 그 열매 된 예배 참석과 기도와 섬기는 일로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믿음이 있다 하면서 주님께 나아가지 않는 사람은 마치 예수님은 능 력이 크신 분이라고 하면서 주님께 나아가서 고하지 않는 사람과도 같을 것입니다. 그는 주님의 영광을 보지 못합니다. 마가복음에는 이 병자가 예수님께 나아와서 꿇어 엎드리 어 간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께 나아가면 어떤 병이라도 고침을 받을 수 있 다고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 이 병자 같은 행위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로마 서 10:10절에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병자는 주님께 나아가서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주님 을 믿으십니까 주님께 나아가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한 시인하여 다 구원에 이르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전능을 믿으십니까 주님께 나오기를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주께 무릎꿇고 기도하기를 쉬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을 볼 것입니다. 8. 주께서 아시도록 내가 간구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을 주님께 보이고 알려 드려야 합니다. 요한복음에 시몬 베드로는 대답했습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말입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이 알아 주셔야 합니다. 내가 교회를 사랑하는 줄을 목사님이 알아 주셔야 하고 교인들이 알아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를 누가 제일 사랑하는지 우리 집 아이들에게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아이들은 잘 압니다. 그러나 말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속으로는 다 알고 있어요. 왜 보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충성하는지 누가 열심히 하는지 그들은 보았기 때문입니다. 누가 목사님을 제일 사랑하는지도 그들은 압니다. 아이들도 아는데 하물며 우리 주님이 모르시겠습니까 이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하는 베드로의 고 백을 우리도 세 번이나 꾸밈없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알아 주셔야 하듯이 내 마음속에 속타고 애타고 간절한 사정도 주님께 고해야 합니다. 문둥병자가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는 꿇어 엎드려 간구하였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옷을 입고 머리를 손질하고 얼굴에 화장을 하게 됩니다. 요즈음은 남 자들도 화장을 한다고 합니다. 여자들은 속옷까지 패션바람이 불어서 들리는 말에는 맞 춤 속옷도 있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하루에도 두 세 번 옷을 바꾸어 입기도 하고 어떤 아가씨들은 화장을 하는데 한시간이 넘게 걸린다고도 합니다. 그것뿐입니까 모자 메니 큐 귀고리는 기본이고, 팔지 그리고 코고리 까지 악세사리에도 많은 공을 들이기도 합니다. 왜 이렇게 요란하게 사치를 하게 되었는가 하면 남들이 보아달라는 것입니다. 남들이 보아줄 것이기 때문에 화장을 하고 악세사리를 하는 것이지 만약 무인도에 혼자 사는 사람이 화장을 진하게 하고 메니큐를 바르고 악세사리를 하고 하루에 옷을 서 너 번씩 갈 아입는다고 하면 그 사람을 돌았다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에게는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남보다 더 사랑 받고 나은 대우를 받기를 원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 것 같습니다. 이렇듯이 우리 성도들도 사랑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사랑을 받아야 하고 제자는 스승에게 사랑을 받아야 하며 성도는 주님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전에도 요셉을 설교할 때 말씀 드렸습니다만 요셉은 가는 곳마다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는 어릴 때는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였고 보디발의 집에서는 그 주인에게 사랑을 받았고 감옥 에서는 전옥에게 나라에서는 바로왕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어느 곳에 가든지 자기가 머무는 처소에서 인정받고 사랑받고 존경받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이 알아 주셔야 합니다. 내 사정을 주님이 해결해 주셔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도 주님께 보이고 내 아픈 것도 주님께 고하고, 내 부족 한 것도 주님이 채워주시도록 주님께 나아가서 말합시다. 기도합시다. 간절히 간구합시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