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밖에서 서서 두드리시는 예수님 (계3:20-22)
본문
오늘은 주님께서 책망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부족한 라오디게아교회를 향해 무엇을 원하며 또 어떻게 그 교회를 대하셨는지를 생각해 보면서 책망 거리가 많은 오류의 교회를 적용시켜 보도록 하겠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화가 (Hunt,Willan Holman(1827-1910)이 그린 [세상 의 빛]이란 그림은 본문의 말씀을 잘 표현하고있습니다. 문밖에 서서 안에서 문을 열어 주기를 노크하며 기다리시는 주님의 안타까운 표정을 볼수 있습니다. 이 문은 안에서 굳게 잠구어 놓았기 때문에 문밖에서는 그냥 열 수 없습니다. 안에서 열어 주어야지 그렇 지 않으면 누구도 열 수 없습니다. 우리들이 열어 주어야 할 이 문앞 에는 언제나 많은 삶들이 와서 두드립니다. 문을 두드리는 방문 객중에는 유혹자도 있고 이단자도 있고 거짓선지 자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 두드리는 자의 신분을 꼭 확인하 고 문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잘못된 이들에게 쉽게 문을 열어 줌으로 해서 귀한 신앙을 도둑맞는 일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분은 문을 열어 주지 아니하면 섭섭히 뒤돌아 서시고 말며 따라서 우리 자신은 그 축복의 문을 닫음으로 해서 크나큰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체하지 말고 그분에게 문을 열어 드리고 정중히 영접해야 합니다. 구분은 누구신고 하니 바로 우리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는 본문 20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 리노니 누군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며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 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문을 두드리시고 계시는 예수님의 표현에서 우리는 다음 몇가지의 뜻을 찾 아 볼 수 있습니다.
1. 회개를 권하를 표현입니다. 소아시아에 흩어져있는 7교회중에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 두 교회는 결점이 없는 좋은 교회이고 나머지 에베소,버가모,두아드라,사 데,이 네 교회는 장단점이 다 있는 교회였지만 유독히 이 라오디게아 교회만은 장점은 하나도 없고 결점 투성이 교회였습니다. 교회 신상 상태는 한마디로 열시미 없는 미지근한 교회입니다. 물질적으로는 부유했지만 영적으로는 가난이 극심했고 세상은 세밀히 잘볼 줄 알면서도 영안은 어두워서 벌거벗은 수치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좋은 점이라고는 전혀 없는 단점 투성이인 라오디게아교회에 주님께서 친히 찾아오셔서 문을 두드리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9장 13절 하반절의 말씀대로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는 말씀이 진실임을 나타내야 마땅할 이 교회에 주님은 조용히 문을 두드리시고 계십니다. 그 문안에 있는 사람은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실만한 자격을 갖춘 의인이 아닙니다. 단점만이 충만한 라오디게야 교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을 향해 [열심을 내라][회사하라]고 말씀하시고 문을 두드리신 것입니다. 다른 조건이 없고 다만 한가지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회개의 문]을 여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까지 보내시고 제물로 삼으셔서 인생의 구원 길을 완전히 준비하고 계시는데 인간편에서 할 일을 회개 하고 그를 믿는 일 뿐입니다. 예수님 공생애 시작하자 마자 군중을 향해 외치신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결국 이 말씀도 군종을 살리려고 안타깝게 회개를 권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이신고로 결코 자기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 이 죄로 죽어가는 것을 그냥 못 본체 할 수 없엇던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구원받기를 간절히 기다리시는 아버지이십니다. 탕자 비유를 잘 아시지요 이 비유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해석합니다. 만 뭐니뭐니해도 이 비유의 촛점은 아버지의 애틋한 사랑과 탕자의 회개에 있는 것입니다. 가령 사랑하는 자녀가 물에빠져 허우적거리며 떠 내려가면서 아버지 살려달라고 할때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는 부모 가 어디 잇겠습니까 비록 물에빠져 죽는 한이 있더라도 뛰어들어 구 출하려고 하지 않겠습니까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인생들에 죄를 토하며 버리고 주께 돌아와 살기를 염원하고 계십니다. 심령의 완악한 문을 열고 죄를 회개하고 주님 영접하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주님이 바로 여러분의 문앞에 서 계심 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가족중에 아직까지 주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계신분 있다면 주님의 이 간절한 소원과 사랑을 분명히 알게 하셔서 마음문을 열고 문밖에 서서 노크하시는 주님을 모셔 들이도록 애써 주 시기 바랍니다.
2.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주님의 표현에서 우리는 주님이 얼마나 우리 가까이 계시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문을 두드리려면 문에 바짝붙어 있어야 두드릴 수 있지 문에서 5미터 아니 1미터만 떨어져도 문을 두드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문을 두드리신다는 표현은 주님이 바로 우리곁에 계신다는 뜻입니다. 주님 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 인을 불러 구원시키려 오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과 멀리 떨어져 계시 기를 원치 아니하십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 [세상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요한 복음14장 18절)[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로 오리라] 이 모든 약속은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멀리 떨어 져 계실 수 없다는 말씀들인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는 주님의 특별한 사랑을 다시한번 깨닫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릴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이니 항상 나와같이, 내옆에 아니 내 마음속에 내 거장에 내 직장에, 바로 이자리에 같이 임재해 계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한번은 거라사 지방에 전도하러 가셨는데 귀신들린자 2명 이 무덤사이에서 사납게 발광하고 있었습니다. 귀신도 예수님의 권능 으로 쫓겨 나갈것을 알고 예수님께 간구하기를 [우리들 쫓아 내시면 돼지떼에 들어 보내소서]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허락하사 [가라] 하시 니 곧 귀신들이 돼지떼에 들어가니 그 돼지들이 다 물에 빠져 주고 귀 신들린 사람들의 실수를 볼 수 있습니다. 한 생명을 천하보다 사랑하 시는 주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귀신들린 자들을 깨끗케 해주신 주님을 더욱 귀히 여기고 사랑하여 떠나 가시지 못하도록 했 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물질을 주님보다 사람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에 생명의 주를 쫓아내고 맡았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문전에 주님이 서시자 문을 두드리실 때 곧 지체 말고 열어 드리도록 합시다. 문을 계속 잠구어둠으로 해서 주님을 되돌려 보내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시편 69편 18절 [내 영혼에 가까이 하사 구속하시며 내 원수를 인하 여 나를 속량하소서] 주님은 내 영혼에 가까이 해서 구속해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곁에 문두드리는 거리 가까이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문을 두드리시고 계시는 표현에서 우리는 그의 사랑의 방문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극드라마에서 종종 봅니다. 충신이 갑자기 역적으로 몰려 체포를 당하는 장면인데 왕의 영을 집행하는 관리가 令자 쓴 깃발을앞 세우고 포졸들을 거느리고 죄인의 [문전에 당도해서 문열어 어명이다 문열어] 사납게 외치면서 대문을 요란스럽게 두드립니다. 그때 빨리 열지 않으면 대문을 부수고 들어갑니다. 이것은 아무리 보아도 사랑의 방문은 아닙니다. 잡아 죽이려는 무서운 방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두드리는 것은 위의 장면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노크입니다. 문에 조 용히 다가가서 귀를 기울이고 손가락으로 조용히 똑,똑,똑,노크하십니다. 너무 커서 시끄러울까봐 조심조심 두드리는 주님의 손 너무적어도 안 들릴까봐 조심하는 주님의 손입니다. 우리는 때로는 세상일에 너무 분주해서 주님이 문밖에 서서 두드리는 소리를 듣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세상에 찢기고 상한 완악만 마음의 문을 열만한 마음의 여유를 가지지 못할 때가 많습바니다. 인간의 사랑은 조건적이고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입니다. 마태복음 18장 21-22절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질문합니다.[주여 형제 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 하오리까] (조건의 용서) 이때 예수님 대답은 [일곱번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 이라고 할찌니라](무조건적 용서) 주님은 문을 한두번 두드리시다가 안열어 준다고 아주 돌아서버릴 주 님이 아니십니다.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열때까지 두드리시는 사랑의 주님이심을 생각할때 우리는 감사치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의 방문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조용히 공부할때도 사무실에서 도,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주님의 사랑의 방문을 알아야 하고 그를 기쁘게 반가이 영접해야 합니다.
4. 문을 열면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축복이 된다고 했습니다.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도 들어가 그로 더 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문을 열면 주님이 들어가신다 고 말씀했습니다. 문밖에 서서 속히 문열어 주기를 고대합니다. 왜 그 렇습니까무한한 축복과 따뜻한 사랑을 가지고 들어가시려고! 문만 열면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조건없이 용서 해주십니다. 냄새나는 방이든 누추한 방이든 어디든지 들어가십시다. 얼마전 모교회 권사 한분이 신구약 성경 한권과 편지 한통을 가지고 찾아왔습니다.꿈에 김 현희에게 전도하라는 음성을 듣고 생각하니 목사님을 찾게 되었다는 것입니다.김현희의 마음을 주님이 노크하십니다. 아무리 큰 죄인이라 도 그가 열면 그는 큰 축복을 받는 것자비니다. 지금 곧 우리 마음을 엽시다. 주는 우리 마음문 밖에 와 계십니다. 성도여러분! 한강물이 한번도 푸른 한강물에 마개를 꼭 막은 빈병 하 나를 던졌다고 할때 그병에 물이들어가겠습니까 아무리 물이 많아도 못들어 갑니다. 왜 그럴까요 병마개를 막아놓았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축복의 분량은 한강물보다 더 풍족합니다. 그러나 축복 못받는 것은 우리들 마음문이 꼭 닫혀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81편10절에 [네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이제 우리 마음 의 문을 넓게 엽시다. 기도의 입을 넓게 엽시다. 찬송의 입을 넓게 엽 시다. 폐수가 흐르는 강가가 들어오고 생수가 흐르는 강가에서 수문을 열면 생수가 들어 옵니다. 이와같이 우리 주님이 문앞에서 계실때 문을 열 면 주님이 곧 들어오시는데 많은 축복을 가지고 들어 오실 것입니다. 결점투성이 라오디게아 교회를 주님이 크게 사랑했습니다. 우리 교회 에 부족한 점 많지만 주님이 크게 사랑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허물과 죄가 많지만은 주님이 문밖에 서서 사랑의 노크를 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다같이 문을 엽시다. 문을 열어 드리고 주님 을 기쁘게 영접합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 두드리는 자의 신분을 꼭 확인하 고 문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잘못된 이들에게 쉽게 문을 열어 줌으로 해서 귀한 신앙을 도둑맞는 일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분은 문을 열어 주지 아니하면 섭섭히 뒤돌아 서시고 말며 따라서 우리 자신은 그 축복의 문을 닫음으로 해서 크나큰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체하지 말고 그분에게 문을 열어 드리고 정중히 영접해야 합니다. 구분은 누구신고 하니 바로 우리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는 본문 20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 리노니 누군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며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 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문을 두드리시고 계시는 예수님의 표현에서 우리는 다음 몇가지의 뜻을 찾 아 볼 수 있습니다.
1. 회개를 권하를 표현입니다. 소아시아에 흩어져있는 7교회중에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 두 교회는 결점이 없는 좋은 교회이고 나머지 에베소,버가모,두아드라,사 데,이 네 교회는 장단점이 다 있는 교회였지만 유독히 이 라오디게아 교회만은 장점은 하나도 없고 결점 투성이 교회였습니다. 교회 신상 상태는 한마디로 열시미 없는 미지근한 교회입니다. 물질적으로는 부유했지만 영적으로는 가난이 극심했고 세상은 세밀히 잘볼 줄 알면서도 영안은 어두워서 벌거벗은 수치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좋은 점이라고는 전혀 없는 단점 투성이인 라오디게아교회에 주님께서 친히 찾아오셔서 문을 두드리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9장 13절 하반절의 말씀대로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는 말씀이 진실임을 나타내야 마땅할 이 교회에 주님은 조용히 문을 두드리시고 계십니다. 그 문안에 있는 사람은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실만한 자격을 갖춘 의인이 아닙니다. 단점만이 충만한 라오디게야 교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을 향해 [열심을 내라][회사하라]고 말씀하시고 문을 두드리신 것입니다. 다른 조건이 없고 다만 한가지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회개의 문]을 여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까지 보내시고 제물로 삼으셔서 인생의 구원 길을 완전히 준비하고 계시는데 인간편에서 할 일을 회개 하고 그를 믿는 일 뿐입니다. 예수님 공생애 시작하자 마자 군중을 향해 외치신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결국 이 말씀도 군종을 살리려고 안타깝게 회개를 권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이신고로 결코 자기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 이 죄로 죽어가는 것을 그냥 못 본체 할 수 없엇던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구원받기를 간절히 기다리시는 아버지이십니다. 탕자 비유를 잘 아시지요 이 비유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해석합니다. 만 뭐니뭐니해도 이 비유의 촛점은 아버지의 애틋한 사랑과 탕자의 회개에 있는 것입니다. 가령 사랑하는 자녀가 물에빠져 허우적거리며 떠 내려가면서 아버지 살려달라고 할때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는 부모 가 어디 잇겠습니까 비록 물에빠져 죽는 한이 있더라도 뛰어들어 구 출하려고 하지 않겠습니까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인생들에 죄를 토하며 버리고 주께 돌아와 살기를 염원하고 계십니다. 심령의 완악한 문을 열고 죄를 회개하고 주님 영접하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주님이 바로 여러분의 문앞에 서 계심 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가족중에 아직까지 주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계신분 있다면 주님의 이 간절한 소원과 사랑을 분명히 알게 하셔서 마음문을 열고 문밖에 서서 노크하시는 주님을 모셔 들이도록 애써 주 시기 바랍니다.
2.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주님의 표현에서 우리는 주님이 얼마나 우리 가까이 계시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문을 두드리려면 문에 바짝붙어 있어야 두드릴 수 있지 문에서 5미터 아니 1미터만 떨어져도 문을 두드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문을 두드리신다는 표현은 주님이 바로 우리곁에 계신다는 뜻입니다. 주님 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 인을 불러 구원시키려 오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과 멀리 떨어져 계시 기를 원치 아니하십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 [세상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요한 복음14장 18절)[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로 오리라] 이 모든 약속은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멀리 떨어 져 계실 수 없다는 말씀들인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는 주님의 특별한 사랑을 다시한번 깨닫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릴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이니 항상 나와같이, 내옆에 아니 내 마음속에 내 거장에 내 직장에, 바로 이자리에 같이 임재해 계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한번은 거라사 지방에 전도하러 가셨는데 귀신들린자 2명 이 무덤사이에서 사납게 발광하고 있었습니다. 귀신도 예수님의 권능 으로 쫓겨 나갈것을 알고 예수님께 간구하기를 [우리들 쫓아 내시면 돼지떼에 들어 보내소서]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허락하사 [가라] 하시 니 곧 귀신들이 돼지떼에 들어가니 그 돼지들이 다 물에 빠져 주고 귀 신들린 사람들의 실수를 볼 수 있습니다. 한 생명을 천하보다 사랑하 시는 주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귀신들린 자들을 깨끗케 해주신 주님을 더욱 귀히 여기고 사랑하여 떠나 가시지 못하도록 했 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물질을 주님보다 사람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에 생명의 주를 쫓아내고 맡았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문전에 주님이 서시자 문을 두드리실 때 곧 지체 말고 열어 드리도록 합시다. 문을 계속 잠구어둠으로 해서 주님을 되돌려 보내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시편 69편 18절 [내 영혼에 가까이 하사 구속하시며 내 원수를 인하 여 나를 속량하소서] 주님은 내 영혼에 가까이 해서 구속해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곁에 문두드리는 거리 가까이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문을 두드리시고 계시는 표현에서 우리는 그의 사랑의 방문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극드라마에서 종종 봅니다. 충신이 갑자기 역적으로 몰려 체포를 당하는 장면인데 왕의 영을 집행하는 관리가 令자 쓴 깃발을앞 세우고 포졸들을 거느리고 죄인의 [문전에 당도해서 문열어 어명이다 문열어] 사납게 외치면서 대문을 요란스럽게 두드립니다. 그때 빨리 열지 않으면 대문을 부수고 들어갑니다. 이것은 아무리 보아도 사랑의 방문은 아닙니다. 잡아 죽이려는 무서운 방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두드리는 것은 위의 장면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노크입니다. 문에 조 용히 다가가서 귀를 기울이고 손가락으로 조용히 똑,똑,똑,노크하십니다. 너무 커서 시끄러울까봐 조심조심 두드리는 주님의 손 너무적어도 안 들릴까봐 조심하는 주님의 손입니다. 우리는 때로는 세상일에 너무 분주해서 주님이 문밖에 서서 두드리는 소리를 듣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세상에 찢기고 상한 완악만 마음의 문을 열만한 마음의 여유를 가지지 못할 때가 많습바니다. 인간의 사랑은 조건적이고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입니다. 마태복음 18장 21-22절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질문합니다.[주여 형제 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 하오리까] (조건의 용서) 이때 예수님 대답은 [일곱번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 이라고 할찌니라](무조건적 용서) 주님은 문을 한두번 두드리시다가 안열어 준다고 아주 돌아서버릴 주 님이 아니십니다.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열때까지 두드리시는 사랑의 주님이심을 생각할때 우리는 감사치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의 방문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조용히 공부할때도 사무실에서 도,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주님의 사랑의 방문을 알아야 하고 그를 기쁘게 반가이 영접해야 합니다.
4. 문을 열면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축복이 된다고 했습니다.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도 들어가 그로 더 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문을 열면 주님이 들어가신다 고 말씀했습니다. 문밖에 서서 속히 문열어 주기를 고대합니다. 왜 그 렇습니까무한한 축복과 따뜻한 사랑을 가지고 들어가시려고! 문만 열면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조건없이 용서 해주십니다. 냄새나는 방이든 누추한 방이든 어디든지 들어가십시다. 얼마전 모교회 권사 한분이 신구약 성경 한권과 편지 한통을 가지고 찾아왔습니다.꿈에 김 현희에게 전도하라는 음성을 듣고 생각하니 목사님을 찾게 되었다는 것입니다.김현희의 마음을 주님이 노크하십니다. 아무리 큰 죄인이라 도 그가 열면 그는 큰 축복을 받는 것자비니다. 지금 곧 우리 마음을 엽시다. 주는 우리 마음문 밖에 와 계십니다. 성도여러분! 한강물이 한번도 푸른 한강물에 마개를 꼭 막은 빈병 하 나를 던졌다고 할때 그병에 물이들어가겠습니까 아무리 물이 많아도 못들어 갑니다. 왜 그럴까요 병마개를 막아놓았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축복의 분량은 한강물보다 더 풍족합니다. 그러나 축복 못받는 것은 우리들 마음문이 꼭 닫혀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81편10절에 [네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이제 우리 마음 의 문을 넓게 엽시다. 기도의 입을 넓게 엽시다. 찬송의 입을 넓게 엽 시다. 폐수가 흐르는 강가가 들어오고 생수가 흐르는 강가에서 수문을 열면 생수가 들어 옵니다. 이와같이 우리 주님이 문앞에서 계실때 문을 열 면 주님이 곧 들어오시는데 많은 축복을 가지고 들어 오실 것입니다. 결점투성이 라오디게아 교회를 주님이 크게 사랑했습니다. 우리 교회 에 부족한 점 많지만 주님이 크게 사랑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허물과 죄가 많지만은 주님이 문밖에 서서 사랑의 노크를 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다같이 문을 엽시다. 문을 열어 드리고 주님 을 기쁘게 영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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