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 치마와 가죽옷 (창3:7,21)
본문
하나님의 은총을 생각하기 전에 인간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아야 합니다. 무화과 치마와 가죽옷은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를 아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엄청난 차이를 아는 것입니다.
1. 무화과 치마와 가죽옷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인간의 수치심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무화과 잎으로 치마를 해 입은 이유가 무었입니까 많은 화가들이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기로는 치마가 아니라 “팬츠”로 생각하고 그림도 꼭 그와같이 그렸는데 그것은 잘못입니다.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 알고”
(7)한 것을 보아서 수치심을 느끼기 시작한 것입니다. 누가 이런 질문을 합니다. 아담과 이브만 있고, 또 부부사이에 무슨 수치를 느낍니까 여기서의 수치심은 사람 앞에서의 수치심보다 하나님 앞에서의 수치심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 사람 앞에서나 하나님 앞에서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데 이것이 바로 타락의 한 양상입니다. 낮짝에다 철가면을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1) 수치를 모르는 일은 두려운 일입니다. 창3: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참회록을 쓴 프랑스의 사상가인 루쏘는 “나는 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수치만이 두렵다. 죽음보다도 형벌보다도 이 세상의 무었보다도 나는 수치가 제일 두렵다”고 말했습니다.
(2) 수치심은 죄를 진 결과로 나타나는 양심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인간의 모든 수치와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죄를 짓고도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 양심에서 이미 떠나셨다는 증거입니다. 즉 양심이 죽은 결과 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은 영혼이 살았다는 증거이며, 하나님이 마음에서 떠났다는 것은 영혼이 죽었다는 증거입니다.
2.수치를 가리기 위하여 무화과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무화과 치마를 만들어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소위 치맛바람을 타고 싸돌아다니는 여자들은 다 무화과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고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다가 무화과 잎이 시들어 버리면 수치심도 모르고 그냥 벌거벗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천사가 택함 받은 사람들을 모을 때에 구별하기 좋게 하기 위하여 벌거벗고 다니는 것 같습니다.세마포를 입은 사람과, 벌거벗은 사람을 쉽게 구별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1) 아담과 하와는 자기 스스로 죄를 가릴려고 했습니다. 죄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고, 또한 그러한 이유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죄의 문제를 해결할려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속죄할려고 하는 사람들 보다 범죄할려고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2) 무화과 치마의 특징과 그 영적의미는 무엇입니까 1 시들어 버리므로 오래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과 섭리를 떠나면 무엇이든지 시들시들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결과 무화과 치마를 입은 것은 선악과를 먹은 결과 무화과 잎처럼 시들어 가는 인간의 육체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시들시들해 가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을 보면 선악과와 무화과 잎사귀 생각이 납니다. 그 분들이 동화에서 나오는 이야기 처럼 젊어지는 비결을 안다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그러나 노쇠해 간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 주시는 생명과일을 먹고 다시 젊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독일 의사이면서 작가인 레안다는 “젊어지는 절구”라는 동화를 썼는데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옛날 옛날에 어느 곳인가 신비스럽게도 사람이 젊어지는 절구통이 있었습니다. 이 절구통 안에 노인을 모시고 한바퀴를 돌리면 절구통 안에 들어간 노인은 아름다운 아가씨로 변모(Transfiguration)되어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시골에 살던 어느 노인 할머니가 절구통 소문을 듣고는 먼 길을 걸어서 절구통이 있는 곳까지 찾아 왔습니다. 절구통을 다루는 일꾼들은 주소와 이름을 듣고는 어느 기록부를 조사하더니 종이 위에다 모두 옮겨 베겼습니다. 그 종이에 기록된 내용은 할머니가 일생을 살아 오면서 행한 일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일꾼들은 할머니에게 그 종이를 보이면서 할머니! 할머니가 젊어지시면 여기에 기록된 내용들을 그대로 되풀이 하셔야 한다는 약속을 하셔야만 합니다. 어서 이위에 서명을 하세요 할머니는 잠시동안 자기 일생의 기록을 자세히 들여다 보더니 한숨을 쉬면서 여보게들! 여기 기록된 것 중에서 고생스럽던 일들을 몇개만이라도 지워 달라고 신신부탁을 했지만 통하지를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고민을 하다가 결국 더 늙어 가지고는 화를 내면서 포기하고는 자기 집으로 멀고 먼 길을 다시 고생하면서 돌아가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여러분 새로운 인생이 주어진다고 해도 고생을 되풀이 할텐데 새로운 것이 전혀 없이 똑같은 인생을 되풀이 한다면 그 누가 좋아 하겠습니까 인간에게 창조적 기능이 없다면 인간은 무가치한 기계에 불과한 것입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벧전5: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시들어 가는 인생을 되풀이 할 바에야 하늘나라에서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쓰기 위해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더 낳은 것입니다.
2 무가치한 것입니다. 시장에서 무화과 열매는 팔아도 무화과 잎사귀는 팔지 않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자꾸 무가치한 것에 마음이 쏠리게 되는데, 이것은 바로 죄라는 놈은 가치와 무가치한 것을 구별할 수 없도록 인간의 눈을 가려 놓는 것입니다. 설상 가치있는 것을 알아도 죄라는 놈은 가치있는 것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장애물을 놓는 것입니다. 참된 가치가 무엇인줄 안다면 사람들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를 영접할 것입니다. 무가치한 것에 집착되어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입니다. 3 가린다고 하지만 불완전 합니다. 포즈(Pose)를 어떻게 취하느냐에 따라서 치부를 드러낼 수 있기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는 일이란 완전한 일이 없고, 불완전 합니다. 따라서 인간이 개발해 나갈려고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불완전한 인간이니 인간이 하는 일이 불완전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3.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고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1) 짐승을 잡아 그 가죽으로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가죽 옷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죽 옷이 주는 영적 의미가 더 중요한 의미를 부여해 줍니다. 가죽 옷이 만들어지기까지는 피흘림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이 장차 세마포 옷을 입기까지는 그리스도 예수의 희생의 보혈을 힙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영혼은 그리스도처럼 피묻은 희생의 옷을 입어야 하는데, 피와 옷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1 예수님은 피 뿌린 옷을 입으셨습니다. 계19:13 “또 그가 피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2 영계에 있는 성도들이 어린양의 피에 옷을 씻었습니다. 계7: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2) 가죽 옷을 입혀주신 하나님의 의도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1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마치 어머니가 사랑하는 자식을 위하여 옷을 만들어 입혀 주는 것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사랑, 즉 아가페 원어의 의미 속에는 존중히 여긴다, 또는 존경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죄를 범했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한성 가능성에 따른 창조성을 사랑하십니다. 죄는 미워하시지마는 인간성 그 자체는 하나님께서 사랑을 하시니 존중히 여기십니다. 즉 예수님이 비천한 몸으로,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옷을 우리 인간으로하여금 입혀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2 하나님이 인간을 보호해 주신다는 뜻이 있습니다. 무화과 치마보다, 가죽 옷이 더 보호가 되기도 하지만, 어떠한 옷이냐 하는 것보다 하나님에 의해서 입혀졌다고 하는 의미는 인간이 신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입장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이 인간을 책임져 주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것에 대해 하나님은 인간에게 100% 책임을 지도록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책임도 있지만, 하나님이 인간에 대한 책임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때문에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온 인류를 위하여 이 지상에 보내 주신 것입니다.
4.무화과 치마는 인본주의 신앙이요, 가죽옷은 신본주의 신앙을 말합니다. 인본주의는 인간의 방법이요, 신본주의는 하나님의 섭리와 이에따른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은 행위가 곧 인본주의 사상이 인간에게 침투해 들어왔다는 사실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 잎사귀로 치마를 해 입은 것을 비난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였기 때문입니다. 인간성이 중요한고로 인간의 방법도 때로는 중요한 것이니, 인간의 방법은 최선의 노력에 있고,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은 능력에 있는 것입니다. 노력이 있어야 능력도 나타나는 것처럼, 무화과 치마의 노력이 있었으니 가줏옷도 입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1) 영안으로 볼 때 무화과 치마를 입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인본주의 신앙을 소유한 자들은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을 믿어 볼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성령님의 힘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한층 쉬운 길이 됩니다. 인본주의와 인간주의는 서로 차이가 있습니다만, 또한 인본주의와 인본주의 신앙은 차이가 있습니다. 즉 신앙을 떠난 인본주의도 있고, 신앙 안에서의 인본주의도 있습니다. 육을 가진 인간이라는 존재가 제한된 존재인고로, 인본주의나 인간주의나 인본주의 신앙을 소유한 사람은 모두 무화과 치마를 입은 것과 같아서 시들어 버리거나 튼튼하지 못해서 곧 일시적인 사상에 불과 한 것입니다.
(2) 영적으로 가죽옷을 입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1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맡기는 사람들입니다. 가죽 옷을 지어 입힐 때 불평하거나 거절하였다는 내용이 성경에 없습니다. 즉 순종하는 사람들이란 내용과 같습니다.
2 새롭게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무화과 잎에서 가죽옷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이 옷을 입을 려면 짐승을 잡아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야되고, 그 짐승의 고기는 희생의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을 것으로 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가장 강한 가죽옷을 입혀 주셨는데 그것은 살 가죽입니다. 평생입는 가죽 옷입니다. 오래입으면 쭈굴쭈굴해지고, 병들면 터져서 그렇지 헤지지는 않습니다. 욥은 심한 피부병이 걸렸을 때 피부를 가죽으로 표현했습니다. 욥7:5 “내 가죽은 악창이 아물었다(합창 되었다가)가 터지는구나!” 예레미아는 탄식하기를 애3:4 “나의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나의 뼈를 꺽으셨도다!”고 하였습니다.
결론:구약시대는 가죽 옷을 입었지만, 신약시대 와서는 다른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 옷이 무슨 옷입니까 인간들의 수치를 가리워줄 흰 옷입니다. 흰 옷이라고 해서 힌색갈의 옷(White colour)으로 생각해서 안될 것은 없지만, 흰 옷은 빛이나기 때문에 흰 옷이라고 한 것입니다. 요한이 본 백보좌도 그 빛이 강하여 백보좌라고 한 것이지, 흰 색갈이 되어서 백보좌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죽 옷보다 더 좋은 옷을 입혀 주실 것을 “라오디게아”교회를 통하여 약속해 주셨습니다. 계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고 하여 흰 옷으로 수치를 가리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은 가죽옷을 입고 계시다가 하나님이 입혀주시는 흰 옷을 입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무화과 치마와 가죽옷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인간의 수치심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무화과 잎으로 치마를 해 입은 이유가 무었입니까 많은 화가들이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기로는 치마가 아니라 “팬츠”로 생각하고 그림도 꼭 그와같이 그렸는데 그것은 잘못입니다.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 알고”
(7)한 것을 보아서 수치심을 느끼기 시작한 것입니다. 누가 이런 질문을 합니다. 아담과 이브만 있고, 또 부부사이에 무슨 수치를 느낍니까 여기서의 수치심은 사람 앞에서의 수치심보다 하나님 앞에서의 수치심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 사람 앞에서나 하나님 앞에서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데 이것이 바로 타락의 한 양상입니다. 낮짝에다 철가면을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1) 수치를 모르는 일은 두려운 일입니다. 창3: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참회록을 쓴 프랑스의 사상가인 루쏘는 “나는 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수치만이 두렵다. 죽음보다도 형벌보다도 이 세상의 무었보다도 나는 수치가 제일 두렵다”고 말했습니다.
(2) 수치심은 죄를 진 결과로 나타나는 양심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인간의 모든 수치와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죄를 짓고도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 양심에서 이미 떠나셨다는 증거입니다. 즉 양심이 죽은 결과 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은 영혼이 살았다는 증거이며, 하나님이 마음에서 떠났다는 것은 영혼이 죽었다는 증거입니다.
2.수치를 가리기 위하여 무화과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무화과 치마를 만들어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소위 치맛바람을 타고 싸돌아다니는 여자들은 다 무화과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고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다가 무화과 잎이 시들어 버리면 수치심도 모르고 그냥 벌거벗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천사가 택함 받은 사람들을 모을 때에 구별하기 좋게 하기 위하여 벌거벗고 다니는 것 같습니다.세마포를 입은 사람과, 벌거벗은 사람을 쉽게 구별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1) 아담과 하와는 자기 스스로 죄를 가릴려고 했습니다. 죄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고, 또한 그러한 이유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죄의 문제를 해결할려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속죄할려고 하는 사람들 보다 범죄할려고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2) 무화과 치마의 특징과 그 영적의미는 무엇입니까 1 시들어 버리므로 오래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과 섭리를 떠나면 무엇이든지 시들시들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결과 무화과 치마를 입은 것은 선악과를 먹은 결과 무화과 잎처럼 시들어 가는 인간의 육체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시들시들해 가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을 보면 선악과와 무화과 잎사귀 생각이 납니다. 그 분들이 동화에서 나오는 이야기 처럼 젊어지는 비결을 안다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그러나 노쇠해 간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 주시는 생명과일을 먹고 다시 젊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독일 의사이면서 작가인 레안다는 “젊어지는 절구”라는 동화를 썼는데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옛날 옛날에 어느 곳인가 신비스럽게도 사람이 젊어지는 절구통이 있었습니다. 이 절구통 안에 노인을 모시고 한바퀴를 돌리면 절구통 안에 들어간 노인은 아름다운 아가씨로 변모(Transfiguration)되어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시골에 살던 어느 노인 할머니가 절구통 소문을 듣고는 먼 길을 걸어서 절구통이 있는 곳까지 찾아 왔습니다. 절구통을 다루는 일꾼들은 주소와 이름을 듣고는 어느 기록부를 조사하더니 종이 위에다 모두 옮겨 베겼습니다. 그 종이에 기록된 내용은 할머니가 일생을 살아 오면서 행한 일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일꾼들은 할머니에게 그 종이를 보이면서 할머니! 할머니가 젊어지시면 여기에 기록된 내용들을 그대로 되풀이 하셔야 한다는 약속을 하셔야만 합니다. 어서 이위에 서명을 하세요 할머니는 잠시동안 자기 일생의 기록을 자세히 들여다 보더니 한숨을 쉬면서 여보게들! 여기 기록된 것 중에서 고생스럽던 일들을 몇개만이라도 지워 달라고 신신부탁을 했지만 통하지를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고민을 하다가 결국 더 늙어 가지고는 화를 내면서 포기하고는 자기 집으로 멀고 먼 길을 다시 고생하면서 돌아가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여러분 새로운 인생이 주어진다고 해도 고생을 되풀이 할텐데 새로운 것이 전혀 없이 똑같은 인생을 되풀이 한다면 그 누가 좋아 하겠습니까 인간에게 창조적 기능이 없다면 인간은 무가치한 기계에 불과한 것입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벧전5: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시들어 가는 인생을 되풀이 할 바에야 하늘나라에서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쓰기 위해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더 낳은 것입니다.
2 무가치한 것입니다. 시장에서 무화과 열매는 팔아도 무화과 잎사귀는 팔지 않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자꾸 무가치한 것에 마음이 쏠리게 되는데, 이것은 바로 죄라는 놈은 가치와 무가치한 것을 구별할 수 없도록 인간의 눈을 가려 놓는 것입니다. 설상 가치있는 것을 알아도 죄라는 놈은 가치있는 것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장애물을 놓는 것입니다. 참된 가치가 무엇인줄 안다면 사람들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를 영접할 것입니다. 무가치한 것에 집착되어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입니다. 3 가린다고 하지만 불완전 합니다. 포즈(Pose)를 어떻게 취하느냐에 따라서 치부를 드러낼 수 있기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는 일이란 완전한 일이 없고, 불완전 합니다. 따라서 인간이 개발해 나갈려고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불완전한 인간이니 인간이 하는 일이 불완전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3.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고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1) 짐승을 잡아 그 가죽으로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가죽 옷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죽 옷이 주는 영적 의미가 더 중요한 의미를 부여해 줍니다. 가죽 옷이 만들어지기까지는 피흘림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이 장차 세마포 옷을 입기까지는 그리스도 예수의 희생의 보혈을 힙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영혼은 그리스도처럼 피묻은 희생의 옷을 입어야 하는데, 피와 옷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1 예수님은 피 뿌린 옷을 입으셨습니다. 계19:13 “또 그가 피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2 영계에 있는 성도들이 어린양의 피에 옷을 씻었습니다. 계7: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2) 가죽 옷을 입혀주신 하나님의 의도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1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마치 어머니가 사랑하는 자식을 위하여 옷을 만들어 입혀 주는 것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사랑, 즉 아가페 원어의 의미 속에는 존중히 여긴다, 또는 존경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죄를 범했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한성 가능성에 따른 창조성을 사랑하십니다. 죄는 미워하시지마는 인간성 그 자체는 하나님께서 사랑을 하시니 존중히 여기십니다. 즉 예수님이 비천한 몸으로,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옷을 우리 인간으로하여금 입혀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2 하나님이 인간을 보호해 주신다는 뜻이 있습니다. 무화과 치마보다, 가죽 옷이 더 보호가 되기도 하지만, 어떠한 옷이냐 하는 것보다 하나님에 의해서 입혀졌다고 하는 의미는 인간이 신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입장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이 인간을 책임져 주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것에 대해 하나님은 인간에게 100% 책임을 지도록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책임도 있지만, 하나님이 인간에 대한 책임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때문에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온 인류를 위하여 이 지상에 보내 주신 것입니다.
4.무화과 치마는 인본주의 신앙이요, 가죽옷은 신본주의 신앙을 말합니다. 인본주의는 인간의 방법이요, 신본주의는 하나님의 섭리와 이에따른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은 행위가 곧 인본주의 사상이 인간에게 침투해 들어왔다는 사실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 잎사귀로 치마를 해 입은 것을 비난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였기 때문입니다. 인간성이 중요한고로 인간의 방법도 때로는 중요한 것이니, 인간의 방법은 최선의 노력에 있고,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은 능력에 있는 것입니다. 노력이 있어야 능력도 나타나는 것처럼, 무화과 치마의 노력이 있었으니 가줏옷도 입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1) 영안으로 볼 때 무화과 치마를 입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인본주의 신앙을 소유한 자들은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을 믿어 볼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성령님의 힘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한층 쉬운 길이 됩니다. 인본주의와 인간주의는 서로 차이가 있습니다만, 또한 인본주의와 인본주의 신앙은 차이가 있습니다. 즉 신앙을 떠난 인본주의도 있고, 신앙 안에서의 인본주의도 있습니다. 육을 가진 인간이라는 존재가 제한된 존재인고로, 인본주의나 인간주의나 인본주의 신앙을 소유한 사람은 모두 무화과 치마를 입은 것과 같아서 시들어 버리거나 튼튼하지 못해서 곧 일시적인 사상에 불과 한 것입니다.
(2) 영적으로 가죽옷을 입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1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맡기는 사람들입니다. 가죽 옷을 지어 입힐 때 불평하거나 거절하였다는 내용이 성경에 없습니다. 즉 순종하는 사람들이란 내용과 같습니다.
2 새롭게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무화과 잎에서 가죽옷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이 옷을 입을 려면 짐승을 잡아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야되고, 그 짐승의 고기는 희생의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을 것으로 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가장 강한 가죽옷을 입혀 주셨는데 그것은 살 가죽입니다. 평생입는 가죽 옷입니다. 오래입으면 쭈굴쭈굴해지고, 병들면 터져서 그렇지 헤지지는 않습니다. 욥은 심한 피부병이 걸렸을 때 피부를 가죽으로 표현했습니다. 욥7:5 “내 가죽은 악창이 아물었다(합창 되었다가)가 터지는구나!” 예레미아는 탄식하기를 애3:4 “나의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나의 뼈를 꺽으셨도다!”고 하였습니다.
결론:구약시대는 가죽 옷을 입었지만, 신약시대 와서는 다른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 옷이 무슨 옷입니까 인간들의 수치를 가리워줄 흰 옷입니다. 흰 옷이라고 해서 힌색갈의 옷(White colour)으로 생각해서 안될 것은 없지만, 흰 옷은 빛이나기 때문에 흰 옷이라고 한 것입니다. 요한이 본 백보좌도 그 빛이 강하여 백보좌라고 한 것이지, 흰 색갈이 되어서 백보좌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죽 옷보다 더 좋은 옷을 입혀 주실 것을 “라오디게아”교회를 통하여 약속해 주셨습니다. 계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고 하여 흰 옷으로 수치를 가리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은 가죽옷을 입고 계시다가 하나님이 입혀주시는 흰 옷을 입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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