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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나무 비유 (마21:18-22)

본문

오늘 본문은 무화과나무에 대한 비유입니다. 마21장과 마가11장에 보면 저주받 은 무화과나무의 사건이 나오는데 그 말씀은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고 오늘 봉 독한 본문은 그것과는 관계없는 비유입니다. 무화과나무의 특징:
1)관상용의 나무가 아닙니다.
2)재목으로 쓸 수 있는 나무도 아닙니다.
3)아름다운 꽃이나 향기가 있는 나무가 아닙니다.
4)오직 열매를 위한 나무입니다. =이 무화과나무는 많은 수고를 하지 않아도 잘 자라고 열매도 많이 맺히는 것이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길에도 심어 두고 지나 다가 시장할 때면 이 무화과를 따먹는다고 합니다. 무화과나무는 오직 열매를 위하여 있는 나무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고백하고 인정할 것은 하나님이 내신 이 세계의 모든 것은 목적이 있는 존재하는것입니다. 더우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으로 태어난 나 에게 목적이 없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섭리적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내가 살아야하는 이 시간의 존재로서의 시간적 존재에도 목적이 있습니다.(나이가 많든지 적든지) 우리가 기적해야 하는 것은 그 어느것도 그 누 구도 하나님께서 주신 목적이 없는 이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바의 목적을 이루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 인생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 입니다. 하나 하나의 사건, 한 사람 한 사람, 그 누구에게든지 하나님이 기다리 고 계시는 열매, 즉 목적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에 나오는 무화과나무는 열매가 없습니다. 무화과의 때 가 아님이라(마11:13)있습니다만 무화과는 나름대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다른 열매들은 익어야 먹을 수 있지만 무화과는 맺히면 언제나 따먹어도 괜찬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장하셨던 예수님은 무화과의 나무에서 무화과를 얻기를 원했으 나 없자 그 나무를 저를 하여 말라 죽게 하신 것입니다.(막11) 삼년을 기다렸다:인내했다는 것이며, 참아주었다는 것입니다.
탕자가 돌아올 때 까지 악하고 교만한 심령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까지 참으십니다. 참으로 오래 오 래 기다리시며 참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냥 기다리심이 아니라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며 가꾸면서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의 기다림에는 행동이 있습니다. 우리 가 열매맺도록 즉 깨달으며 행동하며 부지런하며 진실하며 겸손하도록 그리하여 계속 열매맺도록 모든 조치를 간구하고 계십니다. 이때문에 주시기도 하시고 빼 앗 기도 하시며 건강하게도 하시고 병들게도 하며, 높이기도 하고 낮추기도 하며 칭찬 받게도 하고 능욕을 당하게도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열매맺도록 여 러 모양으로 계속 역사하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3년을 기다렸다는 말은 기다림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인내도 한계가 있습니다. 무턱대고 무진장 기다리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마냥 그렇게 기다릴 수만은 없습니다. 사랑하시지만 그러나 사랑의 한계가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사랑에는 한계가 있고 인내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에게 무한한 사랑이지 죄 짓기를 계속하는 자에게는 무한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기다려 주실 때가 있고 즉시 심판하실 때가 있습니다.
1)기다릴 때/사람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길 /때에도 참아 주셨고, 죄를 짓 거나 탕자가 집을 나갔을 때도 하나님은 참아주셨습니다.
2)급히 심판하실 때/하나님의 참으시는 인내를 만홀히 여기실 때 즉시 심판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봐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짐짓 고의적으로 잘못된 길 을 갈 때에는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죄를 죄 아니하고 정당화시키려고 할 때 하나님은 참지 않으십니다. (금송아지 사건) 하나님은 인내의 하나님이시며 참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한계에 가서는 참지 않으시며 심판이 나옵니다.(노아의 홍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의 멸망이 하나님의 기다림이 다한 인내의 한계점에서 왔다는 사실입니다. 그 한계의 절정 이 곧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인내의 상징이며 사랑의 상징 이요 동시에 사랑에 한계가 있음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마지막 조건입니다. 이것은 마지막 보루요 최후 통첩입니다. 만약 이 십자가의 은혜까지 부정 하며 하나님 앞에 도전해온다면 그는 도리 없이 용서받지를 못합니다.
십자가는 최종 복음이며 종말적 복음입니다. 어찌 땅만 버리느냐=3년동안 기다렸는데 열매가 없으니 땅만 버리는 결과가 되어습니다. 더 이상 땅을 버리지 말고 나무를 찍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은혜를 더 이상 낭비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찍어버리는 운명적인 순간의 직전에 왔 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에 복음이 있습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하며 간절히 만류의 부탁을 합니다. 무화과나무=이스라엘, 과원지기=예수님을 말합니다. 이 비유에서 주인이 과원지기를 나무라지 않는 것을 볼 때에 과원지기의 잘못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과원지기는 자신이 책임을 질테니 1년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합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한 번 더 수고하겠나이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때 과원지기가 나서지 않았 다면 그냥 찍히고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중보적 역할이요 중보적 기도입니다. 1년을 더 두고 봅시다. 이것은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는 것은 생리적으로 보지 않고 병리적으로 보았습니다. 이것은 병만치료하면 열매가 다시 맺힌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과원지기는 이 나무과 본래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무엇인가 잘못되어서 그렇지 조금만 치료하고 다른 방향으로 전 환되면 충분히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소망적으로 보았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열매가 없는 이유에 대하여 책임을 지겠다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열매맺지 못함의 책임을 자신이 지겠다는 것입니다. (이혼하고자 하는 부인이 책임을 깨닫고 이혼을 포기함) 과원지기가 최선을 다하여 파고 거름을 주어 가꿈으로 열매를 맺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화과나무입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는 것은 하나님의 바램이 요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열매없는 우리의 생활이 아닙니까 우리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하여 우리 주님은 십자가를 지셨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열매맺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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