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무지에서 눈뜸으로 (요1:9-13)

본문

오늘 본문은 상단히 어려운 말씀 가운데 하니입니다. 특별히 어려운 이유는 12절 말씀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12절 말씀은 우리 알고 있는 약속들 중에서 가장 힘이 되고 확신의 근거가 되는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 말씀 때문에 9-13절의 말씀 전체의 의미가 빛을 보지 못하고 가리워 지는 경향 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다시말해 9-13절 사이에 나타난 구원의 깊 이와 오묘함을 다 인식하는데 있어서 12절 말씀에만 시선이 머물어 버릴려고 하는 경향이 구원이 갖는 더 깊은 의미와 은혜를 보지 못하게 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본문 가운데 나타나 있는 구원의 올바른 의미에 대하려 추적해 보 고자 하는 것입니다.
'본론'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 가장 잘 착각하는 것 중에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왜 당 연한 이 말씀을 믿지 않은가' 하는 의문점을 갖는 것입니다. 이것은 흔히 우리 신 자들이 가지기 쉬운 맹점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축복을 받는다고 하면서 전도도 할 수 있고 신앙 생활에 분발할 것 을 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권면이 상당히 잘못된 방향으로 몰고갈 위 험성을 안고 있다는 데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본문 9-10절을 보십시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 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 지 못하였고" 빛이 왔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가 오셨으되 피조물 이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또한 11절에서는 그 땅의 주인이시요 그 땅의 왕이 신 분이 자기 땅에 오셨는데도 백성들은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같은 성경의 지적에 대하여 우리가 죄인된 것을 책하는 것이라고 쉽게 생각을 합니다. 빛이 왔는데도 빛을 알아보지 못하고 하나님이 오셨는데 하나님인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다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며 도대체 이럴 수가 있는가 하는 생각 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나는 적어도 믿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나는 예수를 믿었는데 왜 이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가 하면서 자꾸만 그 근거로서 12절을 들먹이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는 이 말씀대로 나는 믿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왜 믿지 않는 것일까 하면서 비교 하는 습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의미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본문의 결론은 13절입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 들이니라" 이 얼마나 무서운 말씀인지 아십니까 12절의 말씀이 인간의 힘으로는 도무지 불 가능하다는 이야기 입니다. 인간으로서는 영접하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혹시 그런 사람이 생기거든 그 사람은 자기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을 통과한 사람인 줄을 알아라는 이야기가 13절 말씀입니다. 9-11절의 말씀에서 사람이 빛되신 하나님이 오셔도 알지 못하고 영접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당연한 일이고, 12절에서 우리가 그 이름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다는 이야기는 이상한 것이며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자기가 기독교인이 되고 예수를 믿게된 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이요, 기적인가 하는 사실을 도무지 잘 알지 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예수를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버립니다. 그래서 전도할 때에 누구에게든지 믿어야 할 정당성을 제시하고 설명을 하고 설득을 하였는데도 안 믿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라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같은 생각은 성경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성경은 오히려 반대로 이야기합니다. 안 믿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하십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우리가 믿는 것을 가리켜 기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빛을 비춰도 빛을 보지 못하고 자기를 만든 조물주가 와도 모르고 왕 되신 이가 와 도 영접할 줄 모르는 자들이므로 그를 영접하게 되는 길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어떠합니까 그를 영접한 자들이 많지 않습니까 이것에 대해 서 성경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13절에서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바로 여기 에 기독교 복음이 제시하는 은혜와 축복과 기적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을 정검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신앙생활 가운데서 가장 많이 흔들리는게 무었입니까 그건 내가 믿기는 분명히 믿는데 이 믿는다는 것을 증명할 만한 제 2의 축복, 제 3의 축복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까 내가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도 예수를 믿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무슨 도장을 찍어누는 게 없습니다. 이마에 십자가 표식이 나타난다 든지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면 무지개가 나타나든지 생수가 흐르는 환상이 나타난다 든지 하는 식으로 나의 믿음에 기초적인 확신의 근거로 제 시되어진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뭐라고 하느냐 하면 내가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는 그 것 자체를 내가 신자된 특권과 사랑과 확신과 축복의 기초로 제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꾸만 예수를 믿는 것에 대해 내쪽에서 내건 조건으로 만족 되어야 확신이 되고 확인이 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내가 예수를 믿었고 교회에 와 주고 헌금을 내 주고 기도해 주고 철야해 주고 그랬는데도 뭔가 기대하는 것이 나오질 않는다고 안타까와 합니다. 이것이 어디서 부터 틀려진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어떤 것 이며, 어떤 기적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요구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 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불가능한 일 중 불가능한 일입니다. 인간으로서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내가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믿을 수 있었을까요 그 확실한 대답이 마20:28절에 나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 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시지 않았습니다. 섬기러 오셨습니다. 게다가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러 오셨습니다. 빛이신 예수님께서는 빛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에게 오셨습니다. 그것은 저주하고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 니었습니다. 빛을 비추는데도 너희가 나를 몰라보느냐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다 그런 줄 알고 오셨습니다. 빛으로서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 기러 오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장님인 것과 우리가 영적으로 죽어 있는 것과 죄 인인 것과 멸망의 자녀인 것을 알고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 분을 몰라 볼 것을 그 분이 더 잘 아십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우리를 섬기셨기에 무지하고 몽애하고 소경이던 우리가 고침 을 받아 영안이 열려 빛을 보게 되고 깨닫게 되고 알게 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 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은 너무도 감격스런 기적입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이 사실에 대하여 허술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이미 믿는 자가 되었다는 것이 무었인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결과 사람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안 믿는가에 대하여 이해가 안되는 것입니다. 기왕이면 죽고난 다음 에 영생이면 낫지 죽은 다음 지옥 가면 어떻하려구 그럽니까 하면서 반문해 보지 만 도무지 믿지를 못하는 저들이 답답하고 미련하고 이해가 잘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래 사람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향해 믿음을 갖는 일에 있어서 어떠한 존재이었는 지를 구약 말씀에서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말씀이 이사야 1:2-17절입니다. 한번 찾아 보시겠습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귀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 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를 향하여 하신 끔찍한 말씀입니다. 3절에서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나를 모르는도다"라는 말씀이 나오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이 말씀이 요 1:9-11절에 있는 말씀과 무었이 다릅니까 똑같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많은 기적을 베푸시고 일일이 간섭하시고 더 많은 어떤 것을 베푸신다고 해서 더 나아지지 않습니다. 근본적인 기적과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은 어떠한 간섭으로 더 많이 베풀고 더 많이 찾아와도 똑같습니다.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10절에 이렇게 말씀하셨겠습니까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고모라 백성들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귀울일지어다."(사1:10) 이것이 누구를 향한 말씀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켜 소돔의 관원이라, 고모 라 백성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소돔과 고모라 성읍들은 역사상 하나님 앞에서 징계 를 받은 대표적인 성읍이 아닙니까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었을 지적하고 싶으신 것입니까 하나님의 지적은 단 하나입니다. 인간이 자기 문제를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는 해결할 능력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이야 기 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이 거듭거듭 말씀하신 것이 무었이었습니까 그것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즉, 아무도 자신을 구원할 수 없으며 구원에 대하여, 진리에 대하여, 생명에 대하여 아는 자도 없고 관심을 가진 자도 없다는 것이 성경의 끊임없는 주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성경 이 지적하고자 하는 대목입니다. 도대체 어찌하여 너희가 예수를 알게 되었으며 어 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도리어 자신을 많은 사람 들의 대속물로 주기 위하여 오셨는데 바로 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게되는 이같이 놀라운 기적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꿈에라도 내가 믿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기적으로 말미암았는 지를 아십니까 그런데 이 엄청난 기적에 대하여 왜 우리는 그토록 무력해 하고 과소평가를 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이사야 1장에 말씀했던 것과 마찬가로 구약은 이렇게 끝납니다. 말라기 1:10절을 찾아 보십시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구약은 이렇게 끔찍한 말씀으로 끝이 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을 건져 출애굽 시켰습니다.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게 하시고, 아브라함을 불러 내시고, 다니엘을 보내 사자들의 입을 막으시고, 엘리야에게 갈멜산의 승리를 이루게 한 그 자랑스러운 역사들이 이어져 내려와 내 린 결론이 무었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순종을 했습니까 아닙니다. "성전 문을 닫아라 더 이상은 이제 너희의 얼굴도 보기 싫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게 끝이고 저주입니까 그 말씀은 저주의 말씀도 아니요 심판의 목소리도 아니었습니다. 그후 에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 이스라엘의 역사에 걸쳐서 확실한 증거를 삼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야 할 필요성을 나내셨던 것입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선언이 진리가 되고 우리 모두가 아멘으로 확실히 인정할 수 밖에 없도록 구약 의 수없는 역사가 펼쳐졌던 것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들은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이 엄청난 기적을 뭐라고 설명 하시겠습니까 우리의 가장 큰 비극은 이미 나에게 일어난 기적, 즉 이미 손에 잡은 우리들의 축복과 약속들과 특권에 대하여 무지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적어도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자가 아니요 하나님의 뜻으로 난 지들입니다. 롬8:31절 이하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 하나님이 우리를 위항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31절) ".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 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39절) 우리를 끊을 자 없으리라는 이 말씀이 어디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와 있는 것은 나의 출발이 아니요 내가 내 디뎠던 발이 아닙니다. 육 정으로나 혈통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만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은 것 이기에 북 받치는 감격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신자들 모두가 이미 갖고 있는 경험이요 특권이요 확신입니다. 이것 이 없습니까 다시 달라고 하십시오. 그러나 이미 여러분은 경험하셨고 만지셨고 느끼셨고 갖고 계십니다. 다만 여러분이 아니라고 오리발을 내밀고 있을 뿐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치고 이 기적과 이 경험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니라고 우직스럽 게 우길 뿐입니다. 여기 이 문제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요 9:39-41절을 보 십시다. "내가 심판하러 세상에 왔나니 보지 못하는 자를 보게하고 보는 자들을 소경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 되 우리도 소경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 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여기서 두 부류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소경과 소경 아닌 자가 있습니다. 주님 께서 심판하러 오셨는데 소경이 아닌 자를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갖는 상징을 아시겠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너희 중에 소경 아닌 자가 어디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너희 모두가 소경이므로 너희로 보게 하기 위하여 오 셨다는 것입니다. 소경이었던 우리가 주님으로 말미암아 영안이 열리고 구원의 길 을 보게되고 깨닫게 되어 저절로 믿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적과 축복과 은혜 속에 있는 지 를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이것으로 족합니다. 여기에다 덧붙이는 것은 아이스크림 위에 막대기를 꽂는 일에 불과합니다. 아이스 크림을 사 먹으면서 노란 막대기를 꽂아 주세요, 빨간 것으로 꽂아 주세요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하여 축복 위에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예수 믿게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셨을 뿐 아니라 우리의 생애를 간섭하시며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축복도 그 첫번째 축복을 능가하거나 비교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신앙생활로 승리하지 못하는 이유가 이제 무었인지를 확인할 수 있 을 것입니다. 구원의 기적, 즉 첫번째 축복을 맨 꼴찌로 돌려 놓고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그토록 무력한 이유가 무었인지를 여러분 스스로를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다만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무서운 사실이요 대단한 기적을 통과한 것이 요 이리에게 비교할 수 없는 축복이요 자랑인가를 스스로 확인하는 길 만이 남았습니다.
'결론' 여러분은 이미 믿음의 기적을 통과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놀 라운 이 반열에 서신 분들입니다. 이제 여러분을 흔들 자 없고, 방해 할 자 없고, 그 무었으로도 빼앗기지 않는 은혜와 축복을 소유한 것입니다. 놓치치 마시기 바랍니다. 이 기적과 축복과 은혜를 혼돈하지 말고,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축복둘이 이미 우리에게 임했으므로 우리가 해야 할 마지막 하나는 그것을 누 리면서 자신의 것으로 알고 감사하면서 사는 생활 만이 남아 있습니다. 승리하시기 로 결심하시고, 놓치지 않겠다고 마음에 굳게 다짐하시고, 이 큰 축복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며 감격하는 일들이 여러분 모두의 심령에 넘쳐 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588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