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무엇이 의미있는 삶인가? (히11:24-26)

본문

폴.틸리히라는 신학자는 인간의 마음 속에 불안은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생기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첫째는, 죽음이나 인간의 운명때문에 불안감을 가지는데 이것은 주로 원시시대의 사람들이 가지는 불안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운명과 죽음의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저들은 정령숭배와 같은 미 신을 숭상하였습니다. 둘째는, 도덕적인 죄나 타락때문에 인간은 불안감을 가집니다. 이것은 주로 중세기시대에 사람들에게 많았던 불안인데 그들은 죄 때문에 가책을 느끼고 도덕적으로 살지 못한 것 때문에 금욕 생활이나 고행 순례같은 것을 많이 하였습니다.
셋째는, 인생이 '무의미'하기 때문에 가지는 불안입니다. 이것은 오늘의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가지는 불안입니다. 현 대인들은 운명.팔자 같은 것은 믿지 않습니다. 죽음의 문제도 별로 심각하게 생각치 않습니다. 현대인들은 도덕적인 타락이나 윤리적인 죄의식도 그리 중 요하게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에 대하여서는 아주 심각한 불안감을 가집니다. 사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자기의 중심 과 궁극적 관심을 상실하였기 때문에 오는 내적 불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외양으로 보거나 생활의 조건으로 보아서는 불안하거나 걱정할 것이 하 나도 없는 데 왜 그런지 불안한 것, 그것이 현대인들의 불안입니다. 사람들 은 이러한 불안감에서 헤어나 보려고 환경을 바꿔 봅니다. 새옷을 해입어 보 기도하고, 가구를 새로 들여 오기도 하고, 새집을 짓기도 하고, 새로운 환경 을 조성해 보가도 하지만 결국 완전치 못합니다. 그런 방법으로 않되면 스포 츠나 향락이나 춤이나 오락같은 것으로 현실을 도피해 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점점 더 상태를 악화시키고 거기에 중독될 뿐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양심 을 회복하고 내적인 도덕성을 개발해서 사회의 모순을 극복해 보고자 노력 을 해봅니다. 또는 이런 것을 자기 나름대로의 어떤 철학으로 옮겨 보려고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것도 모순을 모순으로 극복하려는 몸부림이요, 일종 의 교만이고 허영심일 뿐입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이 불안의 문제를 해결할 것입니까 그 최종적인 결론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그 분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사는 믿음의 길 밖에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 고 사는 일, 그것만이 불안과 인간의 무의미성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인 것입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저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사는 것' 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겠습니까 개인이나 국가나 모 두 잘 살기 위하여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인간이 잘 사는 데에는 물론 물 질이 그 기초인 것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선 물질적으로 유족하지 못하 면 잘 산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사회주의 국가들이 오랜동안의 침묵을 깨고 자유를 부르짖고 시 장경제를 시행하려고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물질 문제 때문이 아닙니까 자본주의 세계보다 자기들이 경제적으로 뒤떨어졌다는 생각때문입니다. 아무 리 이데올로기가 중요하다고 해도 생활필수품 조차 얻기가 어려운데서 어떻 게 사는 보람을 찾겠습니까 최소한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다면 다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자본주의 사회는 그들보다 좀 잘 산다고 안심해도 되는 것입니까 정말 '잘 살려는' 싸움에서 우리가 이겼다고 생각해도 됩니까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우리 나름대로 더욱 심각한 문제들이 있고 모순이 있 고 고민이 있고 또 깊은 불안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중요한 한 가지는 '물 질'은 있으나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정말 잘 사는 길이냐, 무엇이 의미있는 삶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의 미가 있어야 삽니다. 그러니까 '잘 산다는 것'의 뜻을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될 것 같습니다. 돈이 많다고, 권력과 명예가 있다고, 많이 배웠다고, 소유욕을 충족시켰다고 잘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성서는 '사람 의 생명은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잘 산다는 기준을 거기에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희랍어 어원에서 '잘산다'는 말은 많은 것을 소유하였다는 의미가 아니 고 '아름답다' 그리고 '옳바르다' 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한다'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것이 참 가치있는 삶이라는 뜻입니다. 정말로 잘 사는 것은 아름다운 삶입니다. 아름다운 것은 보기에 좋은 것이요, 칭찬과 존경과 사랑을 받는 삶입니다. 그것이 잘 사는 것입니다. '무엇에나 참되고 경건하 고 사랑할 만하고 칭찬할 만한 생활', 그것이 아름다운 삶이며, 그것은 소유 의 많고 적음과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따라 사는 아름다운 삶은 사랑.희락.화평.오래참음.자비.양선.충성.온유.절제의 열매를 결실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모두는 하나같이 아름다운 삶의 열매입니다. 성서는 이것을 잘사는 생활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움과 동시에 올바른 삶입니다.
아무리 크게 출세를 하고 부 자가 되어도 옳바르지 못하면 '잘된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었 더라도 부정 식품을 팔아서 부자가 됐다던지, 마약 밀매를 해서 떼돈을 벌었 다면 그 돈 많은 것 누가 존경하겠습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개 재벌들 을 존경하지는 않는다고 하는 여론 조사보고서를 본 일이 있습니다. 국민들 은, 그들이 어떻게 재벌이 되었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있기 때문에 존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업가들 중에서도 성실히 노력하고 정당하고 정 직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고, 그 돈으로 국가와 사회를 유익하게 하는데 사 용하는 분들은 존경을 받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옳바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 사람이 얼마만한 부를 소유하 고 있느냐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소유한 바를 가지고 얼마나 의미있는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 평가될 것이며, 또한 존경할 만한 인물인가의 여부가 결정 될 것입니다. 사람은 무언가를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행복하기 보다는 오히 려 불안해 집니다. 돈이 많으면 그것을 관리하고 증식시켜 나가려는 것 때문에 늘 걱정이 많습니다. 권력이 많으면 그 권력을 계속 유지하려는 생각때문에 항상 불안합니다.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은 새 지식을 계속해서 얻지 않으 면 낙오된다는 강박감 때문에 불안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다 소유하고서도 아름답고 옳바르고, 죽음도 두려워하 지 않는 삶을 사는 이가 있다면 그는 참으로 '잘 사는'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불안이 없고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의미있는 삶이냐고 물었을 때에 우리는 모세를 생각하게 됩니다. 모세는 성장하여 애급 공주의 아들이 되는 것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는 일시 적으로 죄의 쾌락을 누리는 것 보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통당하는 길 을 택한 것입니다.(히11:24) 그는 그 고통의 길이 곧 하나님을 위한 길인 것 을 믿고 애급의 모든 보화보다 더 값진 것으로 여겼습니다. 삶의 의미는 모세와 같이 무엇이 더 가치있는 일인가를 분별하고, 결단하고, 선택하는 데에 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미를 물으려면 먼저 가치를 물어야 합니다. 그것이 너에게 의미있는 일이냐, 그리고 가치있는 일이냐, 참으로 너를 만족케 하느냐 하는 것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모세는 화려한 애굽 왕궁을 뛰쳐 나와서 공주의 아들 자격을 포기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십계라는 영화에 보면 공주가 모세에게 간곡히 타이릅니다. '네가 어마어마한 왕위를 포기할 필요가 뭐냐, 왕자로서의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네 동족을 구원해 내는데 오히려 더 유리하지 않겠느냐' 라고 하면서 왕궁으로 다시 돌아 가자고 권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키는데 있어서 애급의 왕자라는 권력, 그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모세는 그 힘을 의지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지금 어떤 힘이 자기의 운명을 결정할지 모르지만 동족을 구원하 려는 그 책임을 회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거기에 의미를 두었습니다. 그 때부터 그 고귀한 애굽의 왕자가 진흙을 이기는 노예가 됩니다. 그 한심 스럽고 고된 노동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도, 어떤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도 전 혀 알 수 없는 가운데 기약없이 혹독한 고역에 시달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 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 모세는 '동족을 위해서 고난을 받은 것이 잠시 죄악 의 날을 누린 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단순히 그 가치, 그 의미 때문에 그는 진흙 구덩이 속에 뛰어 들었습니다. 무엇이 참으로 가치있는 것일까 무엇이 참으로 의미있는 삶일까 오늘 의 현대인들이 무의미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것은 참된 가치관을 확립하지 못한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서처럼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먹으 며 썩어지지 아니할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롬2:23) 만일 모세가 애굽에 왕궁으로 다시 들 어 갔다면 그는 일신상의 행복은 누렸을 것입니다.
이름도 떨치고 많은 재물 도 소유하고 권좌에서 영화를 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그렇게 하였 다면 그 모든 일이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을 것입니다. 찬란한 고대 역사를 이룩했다는 애급의 역대 왕들이 하나님의 역사의 반역은 했을지언정 그들이 무엇을 남겼습니까 그들의 이름들이 지금 어디있습니까 그들은 무의미한 피라밋 만을 남겼을 뿐입니다. 피라밋이라는 것이 대단한 규모의 건 축물이기는 하지만, 영적인 의미를 가진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호화 무덤일 뿐입니다. 고대의 왕들의 영화와 그들의 시체를 허망하게 대조해 보는 관광 자원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세도 애급에 있었다면 겨우 피라밋이나 남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자기의 작은 무덤조차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생애 120년동안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데 모든 것을 바친 사람이지만 무덤 하나, 또는 초라한 비석 하나 남기지않 고 지상에서 소리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과 그들의 먼 후손들의 가슴 속에 가장 위대한 조상으로 길이 기억되고 존경받는 분은 모세입니다. 신명기 34장에는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같은 선지자가 일어 남이 없었다'고 단정하여 말하면서 그가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인물인 것 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보다 더 의미는 것이 되게하려면 모세 처럼 버릴 것을 버려 야 합니다. 아무리 화려한 왕궁일지라도 잠시 누리는 '죄악의 낙'이라면 아 무런 가치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아무리 괴롭고 고통스럽고 무거운 짐 이라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이라면 그 길을 용기있게 선택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나를 의미있게 만드는 길이요, 세상에 값진 보화보다 더 나 은 것 입니다. 이러한 결단과 선택을하는 것은, 보다 더 크고 가치있는 상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순간적인 것보다 영원한 것, 자기를 위한 것보다 그리스도를 위한 것, 죄의 낙보다 동족과 함께하는 고난, 그리고 보이는 세계보다 보이지 아니하는 세계의가치 그것을 찾고, 그것을 취하고, 그 길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삶을 가장 의미있게 만들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가치를 추구할 때 삶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고 거기서 기쁨과 보람과 영원한 축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과연 우리에게 의미있는 삶의 길이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을 깊이 생각하고 결단하시기를 바랍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590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