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할 것인가? (눅2:15-20)
본문
이번 주간에 우리는 성탄절을 맞이 합니다. 성탄은 맞이하는 사람의 태도나 감정, 그들의 처지와 입장에 따라서 서로 다르게 나타나게 된다. 어린 아이들이 맞이하는 성탄절은 얼마나 즐겁고 기쁜가 그러나 고독한 사람들이 맞이하는 성탄은 어떤가 여러해동안 병원에 입원하여 있으면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전선의 철조망을 지키면서 맞이하는 성탄, 북녘 땅 하늘을 바라보며 헤어진 가족을 그리워 하면서 맞이하는 실향민들의 크리스마스 … 이들의 느낌은 서로 크게 다를 것이다. 올해는 경제위기 한파가 우리에게 엄습했고, 고물가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온갖 꽁꽁 얼어붙은 상태에서 성탄을 맞이합니다. 이제 더 이상 교회에 오색 불빛과 트리로 뒤덮여서는 안되다는 생각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모두 기분에 들떠서 성탄을 맞이했는데, 백화점이 예수 탄생을 특수라는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용하고, 젊은이들이 예수 탄생을 먹고 마시고 흥청망청 노는 날로 이용하고, 교인들은 산타에 빠져서 아기 예수를 잊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탄생하셨을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기의 상업적인 이익과 자기의 정권과 자기의 기득권 유지에만 빠져 있던 사람들이 있었는가하면 동방의 박사들과 목자들처럼 아기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이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으나 목자들은 아무 것도 예물로 드린 것이 없었습니다. 성경을 아무리 뒤져 보아도 그들이 예물을 드렸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그들 나름대로 사회적인 신분이나 위치로 보아 언제든지 선물을 준비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들에서 양을 지키다가 천사들이 전하여 준 소식을 듣고 찾아 온 목자들에게는 예물이 있을리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하여 현재 나의 입장에서 나의 개인과 가정이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고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생각하여 보고자 합니다. 목자들의 앞 길을 인도하던 별이, 그들로 예수님에게 찾아가 무엇인가를 행하게한 것처럼 우리들의 생에 있어 매년 찾아오는 성탄의 별이 떠 오를 때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성탄에 무엇을 할 것인가
1. “신앙의 결단”이 있었습니다. "베들레헴까지 가서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15 절 "빨리 가서 . " 16 절 이 말은 들에서 양을 지키다가 생각밖의 장엄한 광경을 목격한 목동들의 최초의고백입니다. 전에 듣거나 본 일도 없는 천사들의 대 합창을 듣고난 후, 저들은 즉시로 발걸음을 옮겨 베들레헴으로 빨리 달려 갔습니다. 기쁨의 소식, 예수가 나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 기쁨의 좋은 소식이 있는 그 현장으로 달려 간 것입니다. 왜 그리 하였는가 이처럼 놀라운 사건, 천사가 경배하고 찬송하는 위대한 구세주가 나신 것을 안이상 주저 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서 가서 현장을 확인하고 경배를 드리고자 한 것입니다. 목자들은 좋은 일을 실천함에 있어서 내일로 미루고, 내년으로 미루고, 먼 훗날로 미루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즉시로 실천하였습니다. 즉시로 결단하고 행동하고 실천에 옮긴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도 사단은 우리 중 어떤 사람에게 찾아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천천히 해라. 차차해라. 다음에 해라.회개는 차차 해라. 예수도 천천히 쉬어 가면서 믿어라. 봉사도 다음에 해라." 본문의 목자들은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가되 뛰어 갔습니다. 그들은 지체하고 있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증거는 바로 이것입니. 오늘 우리가 맞이하는 성탄절은 이러한 신앙의 결단을 우리에게 촉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곤고하고, 힘이 들며, 추위와 더불어 싸울 때에라도 주의 말씀에 순종하고 즉시 주님을 찾아가며, 주님게 무릎끓는 신앙의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성탄은 예수가 탄생했기에 기뻐하는 날이 아니라 구주 예수가 탄생했기에 우리의 믿음을 결단하는 날입니다. 오신 예수가 구주가 아닙니까 나를 살리고, 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의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구주가 오시기에 구주를 향한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언제까지 예수의 오심만 기뻐하고 있겠습니까 이제 구주이신 예수를 향해 결단하고 나아가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2. “신앙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나신 날 밤에 베들레헴에 찾아간 사람들은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신문이나라디오, 텔리비전이 없었던 시절인지라 어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때였습니다.
그런데 천사들이 나타나서 "베들레헴에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 너희가 강보에 쌓여 구유에 놓인 아기를 볼 것이라."고 알려 주었을 때 사람들은 웃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거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웃기는 소리 다 하네."하고 조소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즉시로 행동을 옮겨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알아보기 위하여 간 것일까 아닙니다. 이루어진 일을 보기 위하여 간 것입니다. 이미 천사의 계시대로 이루어진 그 일을 보러 간 것입니다. 믿음으로 간 것입니다. 목자들은 강보에 쌓여 구유에 놓인 아기를 보기 전에 벌써 말씀대로 성취되고 이루어져 있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만큼 저들은 순수하였습니다. 어린 아이 같았습니다. 믿음의 확신이 있었기에 믿음의 결과를 본 것입니다. 큰 믿음은 큰 결과를 가져 옵니다. 절대적인 신앙은 절대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상대적인 신앙은 상대적인 결과를 가져 옵니다. 크게 믿으면 크게 되고, 작게 믿으면 작게 됩니다. 목자들은 크게 믿었습니다. 메시야의 탄생을 의심 없이 믿은 것입니다. 때문에 그를 만났고, 경배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도 말씀 속에 이루어진 결과를 보러 가는 기쁨이 있는 신앙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루어진 기쁜 일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두려움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의 말씀은 언제나 사실이고 이루어진 말씀이며, 또 이루어질 말씀입니다. 성탄은 믿는 이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탄을 맞이하여 믿음의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기도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날마다 응답받는 성도, 병고침의 확신을 갖고 병고침을 받고, 축복의 확신을 갖고 복받는 성도, 인도하심의 확신을 갖고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3. “신앙의 증거”가 있었습니다. 베들레헴으로 달려가 보니 천사의 말은 이미 그대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저들은 숨을 몰아 쉬면서 아기에게 경배하며 요셉과 마리아에게 자기들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천사들이 말한 대로 "오늘 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는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성탄의 첫 목격자요 증인인 셈입니다. 그들이 증언 한 것은 이 아이가 인류를 위하여 탄생한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훌륭한 증인은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사람입니다. 증인이라는 헬라 말 뜻에는 "순교자"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 말은 순교할 각오를 가지고, 즉 사실을 밝히고 증언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한이 있어도 바로 증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숨이 두렵고 외부의 압력이 두려워 증언의 내용이 뒤바뀐다든지 표절이 되면 나는 살런지 몰라도 이 허위 증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게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다가 죽었습니다. 예수는 역사에서 사라져 간 하나의 위인이었다라고 하면 출세하고, 잘 먹고 잘살수 있었을텐데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분은 우리 죄를 위하여 죽었고, 우리를 의롭다 하기 위하여 무덤에서 부활 하셨다고 증거하다가 죽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불에 타 죽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자에게 찟겨 죽었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매달려 죽기도 하였습니다. 메시야의 탄생에 관하여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알고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헤롯의 눈치보고, 아첨하느라고 메시야의 탄생을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목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들은대로 본대로 증거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종류의 증언자인가 피하여 도망가는 비열하고 나약하여 자기를 속이는 증인인가 아니면 용기있고 정직한 참된 증인인가 이 기쁜 성탄은 “증인”으로 예수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며, 예수가 구주이며, 예수가 우리 위해 왔으며, 예수를 믿어야 산다고 증거해야 합니다.
4.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찬송이 있었습니다. 목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한 것은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일은 엄격하게 말하자면 모두 다 하나님께서 하신것입니다. 본문에는 동방에서 온 박사들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 2:11에는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박사들이 집에 들어 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 동방의 박사들은 마리아와 요셉에게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예수를 낳은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가리워져야 하였습니다. 예수 만이 높아지고 경배를 받아야 한 것입니다. 우리도 목자들처럼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영광을 가로 채면 죽습니다. 행 12:20 이하에 보시면 당시 유대의 분봉왕 헤롯이 백성들 앞에서 찬란한 왕복을 입고 일장 연설을 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가 입을 열어 연설을 시작하자 아첨하는 사람들이 "이는 신의 소리이지 사람의 소리가 아니다."고 소리를 지르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고 자신이 신이 된 것처럼 우쭐대다가 벌레가 먹어 죽고 말았습니다.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져야 합니다. 오늘날 성탄절이 되면 가장 찬송을 받는 것이 바로 “산타 크로스”입니다. 이 성탄에 오직 예수만 찬송하고 예수께만 경배해야 합니다.
5. 생활 속에 돌아 가는 “신앙의 실천”이 있습니다. 20절을 보시기 바란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송하며 돌아 가니라." 동방의 박사들도 와서 경배하고 돌아 갔고, 목자들도 돌아 갔습니다. 이 사람들이 어디로 갔다는 것인가 일터로 돌아 간 것입니다. 그들 본연의 일터. 본래의 자세대로 돌아갔습니다. 흥분하고 들떠 있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의 생활속으로 되 돌아 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비한 체험을 가지고 은혜를 받고난 후 들뜨고 흥분하여 그 자리에 움막을 치고 기도원을 세우고 안수하고 병을 고치고 신유 은사가 있느니 없느니 하면서 거기 머물며 법석입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변화산에서 모세 엘리야와 함께 변화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한 말을 기억하는가 "여기가 좋사오니 여기에 초막 셋을 짓고 하나는 주를 위하여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그리고 거기에서 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산 아래로 내려 오셨습니다. 거기에 머물러 계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누구인가 자기 생활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자기 가정을 돌아 보고, 자기 직업에 성실하고,그러면서도 그리스도인의 사명에 성실한 사람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들입니다. 목자들은 자기들의 할 일 때문에 아기 예수 나신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오래 머무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양 떼들에게로 돌아 갔습니다. 목자들은 비록 천한 직업의 소유자이지만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들은 천사들의 음성을 듣고서 마음이 뜨겁게 움직인 정열과 감정의 사람인가하면 즉시 결단하고 삶의 터전에서 주의 사람으로 살아가던 의지의 소유자들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피하여 도망하여야 할 곳이 아닙니다. 메시야의 탄생을 기뻐하며 찬송하며 돌아가야 할 장소입니다. 예수는 온 인류의 메시야로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믿고, 전하며, 또한 삶의 현장에서 기쁘게 살아 가야 합니다. 성탄을 맞이하여 우리의 삶에 믿음의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가 오셨기에 기뻐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가 오셨기에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가 오셨기에 승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1997년 성탄은 신앙의 결단-예수만 나의 구주로 삼는 신앙의 확신-말씀을 믿고 이루는 신앙의 증거-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주임을 예수만 찬송-오직 신앙의 실천-기뻐하고, 감사하며, 승리하는
1. “신앙의 결단”이 있었습니다. "베들레헴까지 가서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15 절 "빨리 가서 . " 16 절 이 말은 들에서 양을 지키다가 생각밖의 장엄한 광경을 목격한 목동들의 최초의고백입니다. 전에 듣거나 본 일도 없는 천사들의 대 합창을 듣고난 후, 저들은 즉시로 발걸음을 옮겨 베들레헴으로 빨리 달려 갔습니다. 기쁨의 소식, 예수가 나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 기쁨의 좋은 소식이 있는 그 현장으로 달려 간 것입니다. 왜 그리 하였는가 이처럼 놀라운 사건, 천사가 경배하고 찬송하는 위대한 구세주가 나신 것을 안이상 주저 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서 가서 현장을 확인하고 경배를 드리고자 한 것입니다. 목자들은 좋은 일을 실천함에 있어서 내일로 미루고, 내년으로 미루고, 먼 훗날로 미루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즉시로 실천하였습니다. 즉시로 결단하고 행동하고 실천에 옮긴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도 사단은 우리 중 어떤 사람에게 찾아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천천히 해라. 차차해라. 다음에 해라.회개는 차차 해라. 예수도 천천히 쉬어 가면서 믿어라. 봉사도 다음에 해라." 본문의 목자들은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가되 뛰어 갔습니다. 그들은 지체하고 있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증거는 바로 이것입니. 오늘 우리가 맞이하는 성탄절은 이러한 신앙의 결단을 우리에게 촉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곤고하고, 힘이 들며, 추위와 더불어 싸울 때에라도 주의 말씀에 순종하고 즉시 주님을 찾아가며, 주님게 무릎끓는 신앙의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성탄은 예수가 탄생했기에 기뻐하는 날이 아니라 구주 예수가 탄생했기에 우리의 믿음을 결단하는 날입니다. 오신 예수가 구주가 아닙니까 나를 살리고, 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의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구주가 오시기에 구주를 향한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언제까지 예수의 오심만 기뻐하고 있겠습니까 이제 구주이신 예수를 향해 결단하고 나아가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2. “신앙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나신 날 밤에 베들레헴에 찾아간 사람들은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신문이나라디오, 텔리비전이 없었던 시절인지라 어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때였습니다.
그런데 천사들이 나타나서 "베들레헴에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 너희가 강보에 쌓여 구유에 놓인 아기를 볼 것이라."고 알려 주었을 때 사람들은 웃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거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웃기는 소리 다 하네."하고 조소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즉시로 행동을 옮겨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알아보기 위하여 간 것일까 아닙니다. 이루어진 일을 보기 위하여 간 것입니다. 이미 천사의 계시대로 이루어진 그 일을 보러 간 것입니다. 믿음으로 간 것입니다. 목자들은 강보에 쌓여 구유에 놓인 아기를 보기 전에 벌써 말씀대로 성취되고 이루어져 있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만큼 저들은 순수하였습니다. 어린 아이 같았습니다. 믿음의 확신이 있었기에 믿음의 결과를 본 것입니다. 큰 믿음은 큰 결과를 가져 옵니다. 절대적인 신앙은 절대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상대적인 신앙은 상대적인 결과를 가져 옵니다. 크게 믿으면 크게 되고, 작게 믿으면 작게 됩니다. 목자들은 크게 믿었습니다. 메시야의 탄생을 의심 없이 믿은 것입니다. 때문에 그를 만났고, 경배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도 말씀 속에 이루어진 결과를 보러 가는 기쁨이 있는 신앙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루어진 기쁜 일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두려움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의 말씀은 언제나 사실이고 이루어진 말씀이며, 또 이루어질 말씀입니다. 성탄은 믿는 이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탄을 맞이하여 믿음의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기도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날마다 응답받는 성도, 병고침의 확신을 갖고 병고침을 받고, 축복의 확신을 갖고 복받는 성도, 인도하심의 확신을 갖고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3. “신앙의 증거”가 있었습니다. 베들레헴으로 달려가 보니 천사의 말은 이미 그대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저들은 숨을 몰아 쉬면서 아기에게 경배하며 요셉과 마리아에게 자기들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천사들이 말한 대로 "오늘 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는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성탄의 첫 목격자요 증인인 셈입니다. 그들이 증언 한 것은 이 아이가 인류를 위하여 탄생한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훌륭한 증인은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사람입니다. 증인이라는 헬라 말 뜻에는 "순교자"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 말은 순교할 각오를 가지고, 즉 사실을 밝히고 증언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한이 있어도 바로 증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숨이 두렵고 외부의 압력이 두려워 증언의 내용이 뒤바뀐다든지 표절이 되면 나는 살런지 몰라도 이 허위 증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게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다가 죽었습니다. 예수는 역사에서 사라져 간 하나의 위인이었다라고 하면 출세하고, 잘 먹고 잘살수 있었을텐데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분은 우리 죄를 위하여 죽었고, 우리를 의롭다 하기 위하여 무덤에서 부활 하셨다고 증거하다가 죽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불에 타 죽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자에게 찟겨 죽었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매달려 죽기도 하였습니다. 메시야의 탄생에 관하여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알고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헤롯의 눈치보고, 아첨하느라고 메시야의 탄생을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목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들은대로 본대로 증거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종류의 증언자인가 피하여 도망가는 비열하고 나약하여 자기를 속이는 증인인가 아니면 용기있고 정직한 참된 증인인가 이 기쁜 성탄은 “증인”으로 예수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며, 예수가 구주이며, 예수가 우리 위해 왔으며, 예수를 믿어야 산다고 증거해야 합니다.
4.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찬송이 있었습니다. 목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한 것은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일은 엄격하게 말하자면 모두 다 하나님께서 하신것입니다. 본문에는 동방에서 온 박사들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 2:11에는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박사들이 집에 들어 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 동방의 박사들은 마리아와 요셉에게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예수를 낳은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가리워져야 하였습니다. 예수 만이 높아지고 경배를 받아야 한 것입니다. 우리도 목자들처럼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영광을 가로 채면 죽습니다. 행 12:20 이하에 보시면 당시 유대의 분봉왕 헤롯이 백성들 앞에서 찬란한 왕복을 입고 일장 연설을 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가 입을 열어 연설을 시작하자 아첨하는 사람들이 "이는 신의 소리이지 사람의 소리가 아니다."고 소리를 지르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고 자신이 신이 된 것처럼 우쭐대다가 벌레가 먹어 죽고 말았습니다.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져야 합니다. 오늘날 성탄절이 되면 가장 찬송을 받는 것이 바로 “산타 크로스”입니다. 이 성탄에 오직 예수만 찬송하고 예수께만 경배해야 합니다.
5. 생활 속에 돌아 가는 “신앙의 실천”이 있습니다. 20절을 보시기 바란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송하며 돌아 가니라." 동방의 박사들도 와서 경배하고 돌아 갔고, 목자들도 돌아 갔습니다. 이 사람들이 어디로 갔다는 것인가 일터로 돌아 간 것입니다. 그들 본연의 일터. 본래의 자세대로 돌아갔습니다. 흥분하고 들떠 있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의 생활속으로 되 돌아 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비한 체험을 가지고 은혜를 받고난 후 들뜨고 흥분하여 그 자리에 움막을 치고 기도원을 세우고 안수하고 병을 고치고 신유 은사가 있느니 없느니 하면서 거기 머물며 법석입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변화산에서 모세 엘리야와 함께 변화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한 말을 기억하는가 "여기가 좋사오니 여기에 초막 셋을 짓고 하나는 주를 위하여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그리고 거기에서 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산 아래로 내려 오셨습니다. 거기에 머물러 계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누구인가 자기 생활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자기 가정을 돌아 보고, 자기 직업에 성실하고,그러면서도 그리스도인의 사명에 성실한 사람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들입니다. 목자들은 자기들의 할 일 때문에 아기 예수 나신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오래 머무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양 떼들에게로 돌아 갔습니다. 목자들은 비록 천한 직업의 소유자이지만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들은 천사들의 음성을 듣고서 마음이 뜨겁게 움직인 정열과 감정의 사람인가하면 즉시 결단하고 삶의 터전에서 주의 사람으로 살아가던 의지의 소유자들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피하여 도망하여야 할 곳이 아닙니다. 메시야의 탄생을 기뻐하며 찬송하며 돌아가야 할 장소입니다. 예수는 온 인류의 메시야로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믿고, 전하며, 또한 삶의 현장에서 기쁘게 살아 가야 합니다. 성탄을 맞이하여 우리의 삶에 믿음의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가 오셨기에 기뻐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가 오셨기에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가 오셨기에 승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1997년 성탄은 신앙의 결단-예수만 나의 구주로 삼는 신앙의 확신-말씀을 믿고 이루는 신앙의 증거-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주임을 예수만 찬송-오직 신앙의 실천-기뻐하고, 감사하며, 승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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