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우러러 보는가? (시25:1)
본문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에 처할 때 감사해야 합니다. 고난은 인생에서 새로운 방향전환의 계기가 되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귀한 순간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 인생은 고난으로 점철 되어 있고,끝도 없어 보입니다. 산너머 산이고, 물건너 물이 가로 막습니다. 그러나 이 고난은 삶의 뒷면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앞면에는 하나님이 협력하셔서,선을 이루시려는 놀라운 계획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 삶의 의미가 분명해 집니다. 다윗이 고난을 당할 때 우러러 보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의 영혼은 하나님만을 바라 봅니다.(1절) 영광 중에도,환란 중에도 , 위에 있을 때에도,맨발로 쫓길때에도 다윗은 하나님만 바라 보았습니다. 심지어 죄악 가운데 있을 때에도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는 다윗은 하나님 보시기에 참으로 합당한 사람이었습니다. 죄많은 다윗은 자신의 죄를 하나님이 기억하지 말아달라고 간구합니다. 다윗은 주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을 생각하면서,주의 이름으로 죄사함 받기를 원합니다. 다윗은 천하인간에 구원받을 만한 이름이 주님 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직 예수 이름으로 우리는 죄사함을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다윗은 다른 곳에는 살길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다윗의 눈은 항상 여호와만을 앙망함으로,사망의 그늘에서 벗어나 고 있습니다.(15절) 인생이 외롭고 괴로울 때(16절)근심이 많고,곤란을 당할 때(17절) 곤고와 환란에 처할 때(18절),진정 함께 하시는 분은 하나님 뿐입니다. 인생이 천하게 될 때 누가 우리를 돌아 보겠습니까 오직 하나님 뿐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오늘 다윗의 시편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자비를 인해 그의 부정을 용서해 주고,하늘의 훈계를 달라고 확신있게 간구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비를 힘입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확신을 가지고,우리의 용서를 구하며,겸허한 자세로 하나님께 고백하여야 하겠습니다. 이 시편은 각 구절의 시작이 연속되는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되어있는 어크로스틱(acrostic)입니다. 다윗은 젊은날의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지 않습니다. 그는 참된길로 인도해 주고,그의 고통당하는 영혼을 위해 용서를 베풀어달라는 기도를 되풀이 하고 있는데,하나님의 속성을 극구 찬양하며,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은 주님의 긍휼하신 구원을 구하는 기도로 끝납니다. 오늘 우리가 시편을 묵상하면서 진정한 우리의 부끄러움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많은 사람이 수치 때문에 죽습니다. 대학에 떨어져서 죽는 아이도 있습니다. 사업에 실패해서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얼굴이 못생겼다고 죽습니다. 어떤 사람은 신병을 비관해서 죽습니다. 안짱다리라고, 학교에 못다녔다고, 가난하다고 죽습니다. 어떤 사람은 몸이 불구인 것을 비관해서 죽습니다. 많은 사람이 부끄러움 때문에 죽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는 것을 부끄러워 하는 것입니다. 대학에 떨어질 수도 있고,사업에 실패할 수도 있고,얼굴이 못생길 수도 있고, 병에 걸릴수도 있습니다. 물론 불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죄는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것 역시 죽을 이유는 못됩니다. 그러나 가장 큰 부끄러움은 하나님과 자기를 속이고, 죄가 있으면서도 없다고 하고,그래서 최후의 순간에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의 실체를 드러내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성공한 사람은 다른 사람 보다 조금 덜 실패한 것 뿐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대부분이 실패 투성이이지만,그런 것 때문에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 만을 바라고 진실히 걷는 자는 최후의 승리를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4,5절을 함께 봉독 하십시다. 이 말씀은 아름다운 기도의 말입니다. 하나님께 밀착된 영혼의 언어, 찬미의 언어입니다. 우리가 종일 하나님을 바라고 산다면, 그가 가르치시는 길이 얼마나 확실하고 아름다운 길이 되겠습니까 다윗이 하나님을 바라고 있으니, 젊은 시절의 부끄러운 죄가 생각 납니다. 그래서 그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죄는 이미 매장 되었습니다. 나의 죄도 십자가의 보혈속으로 영원히 매장 되었습니다. 그리고 죄의 고백을 통하여 하나님과 친밀히 하는 자에게 언약을 보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들은 하나님과 친밀하게 지낼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그 유일한 조건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경외한다는 것은 두려움이 아닙니다. 다윗이 기도하면서 계속해서 근심과 고통을 이야기하며 위로와 고침과 해결을 구하는데, 그것은 당연합니다. 우리가 근심과 걱정과 고통을, 또한 죄를 자기 나름대로 처리해 버리려는 것은 잘못입니다. 모든것을 하나님께 직접 가지고 가야 합니다. 여러분! 근심,걱정 두려움,죄가 있습니까 하나님께 내어놓고 하나님께 해결을 구하십시요. 내가 어떻게 해결해 보려고 하면, 도무지 길을 찾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친밀히 하면 그가 모든것을 담당 하십니다. 오늘 여러분이 이 아침에 기도하러 오셨는데, 하나님과 친밀히 함 에 다름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냥 돌아 가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보이시는 언약을 받아가지고 돌아 가십시요. 여러분의 지금 형편이 어떠하든지, 다윗이 보좌 있던지, 도망중에 있던지,영광 중에 있던지, 수치를 당할 때에든지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를 바라보며 친밀히하여 모든 것의 해결을 받은 것처럼, 그같이 함으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고,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 삶의 의미가 분명해 집니다. 다윗이 고난을 당할 때 우러러 보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의 영혼은 하나님만을 바라 봅니다.(1절) 영광 중에도,환란 중에도 , 위에 있을 때에도,맨발로 쫓길때에도 다윗은 하나님만 바라 보았습니다. 심지어 죄악 가운데 있을 때에도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는 다윗은 하나님 보시기에 참으로 합당한 사람이었습니다. 죄많은 다윗은 자신의 죄를 하나님이 기억하지 말아달라고 간구합니다. 다윗은 주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을 생각하면서,주의 이름으로 죄사함 받기를 원합니다. 다윗은 천하인간에 구원받을 만한 이름이 주님 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직 예수 이름으로 우리는 죄사함을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다윗은 다른 곳에는 살길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다윗의 눈은 항상 여호와만을 앙망함으로,사망의 그늘에서 벗어나 고 있습니다.(15절) 인생이 외롭고 괴로울 때(16절)근심이 많고,곤란을 당할 때(17절) 곤고와 환란에 처할 때(18절),진정 함께 하시는 분은 하나님 뿐입니다. 인생이 천하게 될 때 누가 우리를 돌아 보겠습니까 오직 하나님 뿐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오늘 다윗의 시편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자비를 인해 그의 부정을 용서해 주고,하늘의 훈계를 달라고 확신있게 간구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비를 힘입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확신을 가지고,우리의 용서를 구하며,겸허한 자세로 하나님께 고백하여야 하겠습니다. 이 시편은 각 구절의 시작이 연속되는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되어있는 어크로스틱(acrostic)입니다. 다윗은 젊은날의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지 않습니다. 그는 참된길로 인도해 주고,그의 고통당하는 영혼을 위해 용서를 베풀어달라는 기도를 되풀이 하고 있는데,하나님의 속성을 극구 찬양하며,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은 주님의 긍휼하신 구원을 구하는 기도로 끝납니다. 오늘 우리가 시편을 묵상하면서 진정한 우리의 부끄러움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많은 사람이 수치 때문에 죽습니다. 대학에 떨어져서 죽는 아이도 있습니다. 사업에 실패해서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얼굴이 못생겼다고 죽습니다. 어떤 사람은 신병을 비관해서 죽습니다. 안짱다리라고, 학교에 못다녔다고, 가난하다고 죽습니다. 어떤 사람은 몸이 불구인 것을 비관해서 죽습니다. 많은 사람이 부끄러움 때문에 죽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는 것을 부끄러워 하는 것입니다. 대학에 떨어질 수도 있고,사업에 실패할 수도 있고,얼굴이 못생길 수도 있고, 병에 걸릴수도 있습니다. 물론 불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죄는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것 역시 죽을 이유는 못됩니다. 그러나 가장 큰 부끄러움은 하나님과 자기를 속이고, 죄가 있으면서도 없다고 하고,그래서 최후의 순간에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의 실체를 드러내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성공한 사람은 다른 사람 보다 조금 덜 실패한 것 뿐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대부분이 실패 투성이이지만,그런 것 때문에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 만을 바라고 진실히 걷는 자는 최후의 승리를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4,5절을 함께 봉독 하십시다. 이 말씀은 아름다운 기도의 말입니다. 하나님께 밀착된 영혼의 언어, 찬미의 언어입니다. 우리가 종일 하나님을 바라고 산다면, 그가 가르치시는 길이 얼마나 확실하고 아름다운 길이 되겠습니까 다윗이 하나님을 바라고 있으니, 젊은 시절의 부끄러운 죄가 생각 납니다. 그래서 그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죄는 이미 매장 되었습니다. 나의 죄도 십자가의 보혈속으로 영원히 매장 되었습니다. 그리고 죄의 고백을 통하여 하나님과 친밀히 하는 자에게 언약을 보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들은 하나님과 친밀하게 지낼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그 유일한 조건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경외한다는 것은 두려움이 아닙니다. 다윗이 기도하면서 계속해서 근심과 고통을 이야기하며 위로와 고침과 해결을 구하는데, 그것은 당연합니다. 우리가 근심과 걱정과 고통을, 또한 죄를 자기 나름대로 처리해 버리려는 것은 잘못입니다. 모든것을 하나님께 직접 가지고 가야 합니다. 여러분! 근심,걱정 두려움,죄가 있습니까 하나님께 내어놓고 하나님께 해결을 구하십시요. 내가 어떻게 해결해 보려고 하면, 도무지 길을 찾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친밀히 하면 그가 모든것을 담당 하십니다. 오늘 여러분이 이 아침에 기도하러 오셨는데, 하나님과 친밀히 함 에 다름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냥 돌아 가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보이시는 언약을 받아가지고 돌아 가십시요. 여러분의 지금 형편이 어떠하든지, 다윗이 보좌 있던지, 도망중에 있던지,영광 중에 있던지, 수치를 당할 때에든지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를 바라보며 친밀히하여 모든 것의 해결을 받은 것처럼, 그같이 함으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고,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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