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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두려운가 (왕하6:14-17)

본문

인간은 누구나 불안과 공포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1년에 25억$ 라는 엄청난 돈이 신경안정제와 수면제를 사는데 소비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공포로 마음의 안정을 잃고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이러한 인간의 맛보는 공포와 불안에 대하여 심리학자들은 인간에게는 누구나 가난에 대한 불안과 공포, 고통에 대한 불안과 공포, 실패에 대한 불안과 공포,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자리잡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는 어떤 특정한 사람만이 맛보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를 막론하고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중에서도 마음을 겉잡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물질 때문에, 가정때문에, 자신의 진로가 막힌 것 때문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난날의 상처 때문에 안정감을 잃고 불안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오늘 이러한 분들은 본문 말씀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엘리사와 그의 수종드는 자의 삶의 단면을 통해서 현대인들이 맛보고 있는 불안과 공포를 타개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현실적인 여건을 바라볼 때 두려워집니다. 오늘 본문에서 엘리사의 사환은 현실의 여러가지 고통스런 여건에 휩싸여 불안과 공포를 느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아람나라와 전쟁 중이었는데 아람왕은 어떻게 해서든 이스라엘을 점령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아람왕이 "우리가 아무데 진을 치리라" 생각하기만 하면 곧 이스라엘 왕이 알고서 그곳에 군사를 보내어 방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아람왕은 그들 중에 적과 내통하는 자가 숨어 있는가하고 몹시 번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심복은 아뢰기를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에릴사가 왕이 침식에서 하신 말씀이라도 이스라엘 왕에게 고하니아디”(왕하 6장 12절)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수소문하고 엘리사가 도단성에 있다는 정보를 얻은 아람왕은 많은 군사와 병거를 보내어 엘리사가 잠자고 있는 그 성을 에워싸고 엘리사를 생포하려고 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이른 아침 일어난 엘리사의 사환은 말소리, 병거소리가 들려서 성벽에 올라가 보니 아람군대가 엄청난 군사와 화력을 가지고 성읍에 에워 싼 것을 보게되었습니다. 너무나 놀란 사환은 급히 엘리사에게 달려가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왕하 6:15)라고 울부짖었습니다. 이 구절은 엘리사를 수종하던 사환이 맛보았던 불안과 공포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에게 "두려워 말라"(왕하 6장16절)고 했습니다. 사환의 두려움은 무엇으로 비롯되었습니까 본문 말씀에 보면 그 성은 엘리사가 잠자고 있는 성이요, 그 사환이 잠자고 있는 성입니다. 다시 말해 엘리사의 사환은 아람군대가 자신의 삶의 터전을 파괴하려고 에워 싼 것을 보고 두려웠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현대인들은 왜 두려워합니까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때, 어떤 사람은 질병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때, 어떤 사람은 가정적인 불행과 현실적인 고통으로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여건이 파괴되는 것에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공포를 느끼게됩니다.
2.불안과 공포는 환경의 산물이 아닙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중요한 것은 인간 누구나가 맛보는 이러한 불안과 공포가 결단코 현실의 괴로운 환경 때문에 일어나는 산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환경의 산물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서 오는 부산물인 것입니다. 똑같은 곤고와 고통과 괴로움에 직면했어도 어떤 사람은 마음이 평안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엘리사와 그 사환이 같은 환경,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엘리사의 사환만이 아람군대에게 포위된 것이 아니라 엘리사 자신도 포위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왜 이렇게 나만 고통스러운가 왜 나만 이렇게 어려움을 당하는가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은 같은 환경과 같은 상황과 같은 처지에 갇혀 있다는 점입니다. 돈이 많으냐 적으냐, 젊으냐 늙었느냐의 차이뿐이지 돈많은 사람도, 젊은 사람도 두려운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에서 엘리사는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두렵지 않았습니다. 다만 엘리사의 사환만이 불안과 공포와 답답함을 맛보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베드로를 생각해 보십시오. 갈릴리 바다를 걸어 주님을 향해 가던 베드로는 자기를 덮쳐오는 풍랑과 바람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현실적인 눈으로 상황을 보게되므로 그만 물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사도행전 12장에 나타나는 베드로의 모습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헤롯의 칼에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절대절명의 순간에도 베드로는 감옥에서 편안히 잠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시각으로 현실을 바라보는가 거기에 따라 어떤 사람은 평안을 소유하며 어떤 사람은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도단성을 포위하고 엘리사와 엘리사의 사환을 죽이려했던 아람군대는 그들 모두에게 위협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같은 위협, 같은 두려운 환경 속에서도 문제를 바라보는 두사람의 시각 차이로 인해 엘리사는 전혀 두려워 하지 않았지만 그의 사환은 불안과 공포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엘리사의 사환은 아람군대의 많은 군사와 병거를 보았습니다. 이 말은 현실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에, 육적인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에 사람들은 자기를 에워싸고 있는 아람군대와 같은 병마와 실패와 가난과 절박한 환경을 바라보며 견딜 수 없는 불안과 공포를 느끼게 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여러분, 무엇이 불행합니까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는 것은 불행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마음을 안정을 얻지 못하고 불안과 공포의 검은 그림자에 가리워져 햇빛을 보지 못하고 사는 나무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불행인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과 정서에 상처와 고통을 주는 이 불안과 공포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맛보는 현대적인 불행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작가 버나드 쇼우는 뛰어난 유머와 기지를 가진 사람입니다. 어느날 어떤 사람이 그에게 "선생님! 어떤 사람이 낙천주의자이고, 어떤 사람이 염세주의자입니까"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버나드 쇼우는 이에 말하기를 "자, 여기에 내가 한 컵의 물을 반만 먹고 놓아 두었다고 합시다. 이때 그 반정도 남은 물컵을 바라보고 '아직도 반이나 남았는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낙천주의자이고, '반밖에 안 남았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염세주의자입니다."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낙천주의자와 염세주의자는 같은 물컵을 바라보지만 생각하고, 표현하고, 대처하는 방법이 전혀 다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이 행복해지시길 원한다면 낙천주의자가 되십시오. 여러분이 만약 염세주의적인 사람이라면 아무리 돈을 쌓아놓고, 아무리 젊음을 자랑한다고 해도 여러분은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염세적인 시각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사람은 환경이 어떻든 마음속에 불안과 공포를 지울 수가 없습니다. 아람군대가 에워싸도 엘리사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왜 입니까 그는 낙천적인 시각,영적인 시각, 자기를 둘러싼 하늘의 천군천사와 불만과 불병거를 통해 자기를 보호하실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바라보는 신령한 안목이 있었기 때문에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환을 보십시오.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하나님의 천군 천사가 아니라 오직 아람군대의 말발굽소리와 군대의 수효였습니다.
3.당면한 현실을 영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십시요 여러분! 영적인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현실적인 안목으로 세상을 보지 말고 신령한 눈을 떠서 영적인 세계를 바라보며 사십시오. 그러면 세상의 어려운 곤경의 배후에서 나의 고통과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를 에워싸고 계시는 하나님을 보게될 것입니다. "대답하되 두려워 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왕하 6장 16절) 엘리사는 영적인 눈으로 상황을 바라볼 때에 자기를 에워싸고 있는 아람군대보다 하나님의 천군천사가 더 우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영적인 눈으로 성경을 읽어야 하나님께서 지금 이 세대를 향하여 말씀하시고자 하는 메세지가 깨달아 지는 것입니다. 영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하늘의 천군천사를 보내셨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시각을 가지고, 믿음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볼 때에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생활 곳곳에서 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위를 바라보는 눈,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는 눈,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와 손길을 발견하는 신령한 눈을 소유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에 우리 성도들이 갖추어야할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불안과 공포는 믿음이 강할 때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어린 소년이었던 다윗은 거대한 골리앗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 할례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삼상 17장 26절)라고 외치며 믿음으로 나아가 승리하지 않았습니까 또한 다윗은 시편 3편 6절에서는 "천만 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라고했고, 시편 27편 3절에서는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라고 신앙고백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무엇에 둘러 싸여 있습니까 믿음의 눈으로 주님의 역사를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을 얽어매고 있는 현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4.간절히 기도할 때 영적인 시각이 열립니다. 그러면 믿음의 시각은 어디서 나옵니까 믿음의 시각은 기도생활에서 나옵니다. 기도하면 신앙적인 눈이 열리고, 신앙적인 눈이 열리면 하나님의 비밀하신 역사기 내 눈에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7절, 18절, 20절에 보면 "기도하여 가로되"라고 시작되는 엘리사의 기도가 나옵니다. 여러분, 엘리사의 기도처럼 "하나님! 우리를 도와 주십시요"라고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 이미 저를 돕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는 영안을 열어 주옵소서 내 눈을 열어 주의 기이한 법을 보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십시오. 또한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엘리사의 기도는 우리 눈에는 간단한 기도처럼 보이지만 아주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이여! 사환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하소서"라고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사환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천군천사를 보게 하셨던 것입니다. 시간 시간 기도해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영안을 주셔서 이 시대의 불안과 공포를 피해갈 수 있는 축복의 대로가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보이는 현실 세계만을 바라보면 불안과 공포 뿐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에서 세상을 주관하시고 자기백성을 눈동자같이 지키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볼 때에는 기쁨과 용기와 확신과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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