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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목표 (빌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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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 주로 살고 있는 스프링 벅 이라는 산양은 보통 30마리 정도가 무리 지어 살지만 어떤 때는 갑자기 한 곳에 속속 모여 수천 마리나 되는 큰 집단을 이룰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인도자 격의 큰 양이 앞장을 서서 천천히 걷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다른 양들은 몸을 맞대고 그 뒤를 따르며 도중에 있는 풀은 모조리 먹어치웁니다. 이기심이 많은 산양은 빨리 앞으로 파고 들어가 풀을 더 먹으려고 하지만, 맹수의 습격이 두려워 결코 대열을 떠나 옆에 있는 풀을 먹으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제각기 자기를 보호하고 게다가 풀을 듬뿍 먹으려고 밀어닥치니 얼마 후에는 친구들을 마구 떠다밀면서 점점 빠르게 전진하게 됩니다. 뒤따르는 양들이 점점 빨라지기 때문에 인도자 양은 자연히 뛰게 되고, 인도자가 뛰니까 뒤에서도 늦을 세라 더욱 뜁니다. 결국 모두가 전속력으로 뛰게 됩니다.
인도자 격인 산양들은 아마 친구들이 늘어났으므로 풀이 많은 새로운 거주지로 데려갈 예정이었을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그 목적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다만 뛰는 것 외에는 생각지 않고 그저 앞으로만 돌진합니다. 모래먼지를 날리며 질주하는 양떼들은 어느 새 사막을 건너 해안에 이릅니다. 그러나 앞선 양은 멈출 수가 없습니다. 뒤에서 밀어닥치는 무서운 힘에 밀려, 냇물이 바다로 흘러내리듯 많은 산양 떼들이 바다 속으로 밀려들어갑니다. 얼마 후 바닷가엔 가련한 양들의 시체로 가득 메어집니다. 이 양떼들의 죽음의 행진은 우리 인생과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낙오자가 되거나 위험한 바깥쪽으로 밀려나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안전을 지키려는 데는 필사적입니다. 남보다 뒤지지 않는 좋은 대학, 좋은 차, 좋은 주택, 좋은 직장을 가지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그러나 질주하고 있는 목적과 목표는 분명치 않고 결국은 죽음의 길로 열심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지금 어디로 달려가고 있습니까?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반드시 목적과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목적이 없이 허송 세월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어떤 곳인가. 나의 현재의 존재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이를 생각하여 올바른 결론에 도달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즉 먼저 꿈과 이상을 가지고 이것을 이룩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꿈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비전이 없습니다. 뚜렷한 생의 목적이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하루 하루의 삶을 허무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되는 대로 살고 있습니다. 내일이면 막연히 오늘보다 나아지겠지 하며 그 날 그 날을 덧없이 살고 있습니다. 설혹 목적이 있다 해도 대부분이 내 개인의 부귀 영화와 행복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저는 윤리교육시간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의 목적을 행복'이라고 했다고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질문했습니다. 너희들 왜 사느냐? 삶의 목표가 무엇이냐 물었습니다. 대개는 목표가 없고 기껏 대답하는 소리가 먹기 위해서 산다느니, 부자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목표들은 누가복음 12장 16절 이하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와 다름이 없습니다. 이 부자는 하나님과 이웃에는 무관심하고 오직 자신만을 위해 곡간을 지으려다가 그 날밤 그 영혼이 불리워 갔습니다.
한 노인이 길가는 나그네에게 물었습니다.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느냐고?' 나그네는 서울에 간다고 대답했습니다. 노인은 '서울은 북쪽인데 어째서 남쪽으로 가느냐 묻자' 나그네가 말하기를 '염려 마세요 나는 성실하고 부지런하니 노력 만하면 안될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고 하면서 여전히 남쪽을 향하여 갔습니다. 여러분은 이 어리석은 나그네처럼 목표 없이 무조건 노력만하면서 인생을 살 것입니까? 바다 위의 배가 가려고 하는 항구 없이 떠돌아 다니면 마침내 유령선이 될 것입니다. 박찬호나 박세리 선수가 야구선수, 골프선수가 되겠다는 목표없이 이것 저것 하다가 우연히 세계적인 선수가 되었습니까? 목표없이 노력만 한다고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그 소원이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보실 수 있는 소원입니까? 사람의 인격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그가 처한 처지나 지위에 따라서 평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가 어떤 목표을 향하여 살고 있고, 그의 평생의 소원이 무엇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가령 그의 평생 소원이 그저 잘 입고, 잘먹고, 편안히 사는 정도라면 그 사람의 수준은 동물적 인간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심는 대로 거둡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둡니다. 로마서 8장 5-8절에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니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면서 삶의 목표가 오직 눈에 보이는 행복, 쾌락, 돈, 명예만을 좇는 자들은 그 결국은 멸망에 이른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뚜렷한 삶의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목표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엄청난 큰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 뉴 저지주의 상원 의원인 모르우씨가 뉴욕시를 떠나는 기차를 탔을 때 그는 기차표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기차표를 제시하기를 기다리던 역무원이 '모로우씨,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이 상원의원이신데 설마 표를 안 사셨겠어요. 그러나 후에 표를 찾으시면 우편으로 보내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모로우씨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의 어려움은 그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제가 가는 행선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 기차표를 지금 꼭 찾아야만 합니다.' 미상원의원 모로우씨는 정확한 행선지를 모른 채 기차에 탔던 것입니다.
오늘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삶의 분명한 목표가 없이, 인생을 아무런 계획성도 없이 살아가기 때문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그저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시세에 따라 이리저리 요동하면서 살다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공군교육사령부와 공군 대학 교관시절에 피교육자인 장병들에게 비전을 발표하는 시간을 여러 차례 가졌는데 그들 대다수가 군복무를 마치면,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예쁜 아내를 맞아 결혼하고, 아들 딸 낳고 돈 많이 벌겠다는 것이 그들의 삶의 비전과 목표의 전부였습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분명한 삶의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한 추장이 나이가 들었습니다. 그는 세 아들 중 하나에게 추장직을 물려주기로 하였습니다. 추장은 아들을 데리고 사냥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추장 일행의 눈앞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나타났습니다. 그 나뭇가지에는 커다란 독수리 한 마리가 앉아 있었습니다. 추장은 세 아들에게 각각 물었습니다. 저 앞에 무엇이 보이느냐? 장남이 먼저 대답했습니다. '파란 하늘과 나무가 보입니다.' 이번에는 차남이 대답했습니다. '거대한 나무와 나뭇가지에 앉은 독수리가 보입니다. 추장은 매우 실망스런 표정을 지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막내가 대답했습니다. '독수리의 두 날개와 그 사이의 가슴이 보입니다' '그러면 그 곳을 향해 화살을 쏘아라.' 막내의 화살은 독수리의 가슴에 명중했습니다. 추장직은 당연히 막내에게 돌아갔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표가 없는 인생은 실패한 여행일 뿐입니다.
어떤 학생이 서울에 유학하여 공부하다 농촌에 돌아왔는데 아버지가 땀을 흘리며 밭을 가는 것을 보고 도와 드릴려고 아버지를 소나무 밑에서 쉬게 하고 서투른 쟁기질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참 갈다 보니 아버지가 간 밭의 고랑은 똑바르나 자기가 간 고랑은 구부러져 있습니다. 이를 본 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목표를 세워야 똑바로 갈 수 있다.' 그래서 아들은 풀을 뜯고 있는 황소에 목표를 두고 밭을 갈았습니다. 여전히 구부러졌습니다.
왜냐하면 소가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다시 말했습니다. '얘야, 움직이지 않는 목표를 정해고 갈아야 한다. 아들은 저 앞의 포플러 나무에 목표를 두고 갈았습니다. 그러자 똑바로 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생명 바칠 대상과 목표를 가지면
1. 집중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2. 선택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어떤 직업, 어떤 배우자, 어떤 책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있습니다. 냉장고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삶의 목표가 분명한 사람은 선택을 바르게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목사가 되겠다는 목표와 비전을 가진 사람은 신부를 목사 사모감으로 적당한 여자를 선택할 것입니다.
3. 목표와 비전이 있으면 인내력이 생깁니다. 목표가 없는 사람은 쉽게 포기하거나 단념하지만 목표가 있는 사람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힘들어도 참을 수 있습니다.
4. 목표가 있으면 추진력이 생기고 미리 미리 준비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한 처녀가 목사 사모가 되겠다는 목표가 정해져 있으면 결혼 전부터 남편될 목사를 위해 설교자료를 준비하고 스크렙 할 수 있습니다.
5. 목표가 있으면 방황하지 않습니다.-이것저것 하다 허송세월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군대가기 전에 삶의 목표가 있는 사람은 군 생활 중에도 자기의 목표를 위한 책을 찾아보기도 하고, 휴가 중에도 그런 곳을 찾아 가보기도 하지만, 목표가 없는 젊은이는 내무반에서 후배들을 기압이나 주고, 휴가 중에 술이나 먹고 허송세월하기 쉽니다.
옛날에 어느 시골 노인이 서울 가는 딸 네 집을 찾아왔습니다. 몇 년 사이에 어찌나 변했는지 이 집이 저 집 같고, 저 집이 이 집 같아서 노인은 당황해 했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친절한 젊은이가 노인에게 도와드릴 것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노인은 딸네 집을 찾아왔는데 도무지 어느 집인지 모르겠다고 사정이야기를 했습니다. 젊은이는 주소도 모른다는 노인의 말에 난처해져서 그럼 혹시 딸네 집에 다른 집과 달랐던 무슨 특징이 없었던 가를 물었습니다. 노인은 한참 생각하더니 무릎을 탁치며 '이제 됐다' 싶은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있었지, 있었고 말고, 내가 그때 기억해 두기를 잘했지 우리 딸네 집 담장 위에 누런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네' 노인은 보이는 것이 영원하리라는 생각으로 표적을 삼았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비 본질의 것들에 현혹되어 삶의 목표를 그것에 둘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것은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인 경우가 많습니다. 즉 천국, 사랑, 믿음, 소망 이런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지만 아주 중요한 목표입니다.
한 영국 귀족이 부모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그 귀족은 그 돈을 가지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많은 돈을 돌연 변이 쥐를 만드는 일에 모두 투자했습니다. 그리고 수십 년 후 마침내 돌연 변이 쥐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무익한 일이었습니다. 그 귀족이 엄청난 돈과 시간과 노력과 재능을 돌연변이 쥐를 위해 바치고 무언가 특별한 일을 했다는 만족감에 일순간 빠졌지만 그 돌연변이 쥐는 인류에게 아무런 유익도 가져다 주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잘못 된 삶의 목표, 헛된 꿈들은 결국 삶을 절망으로 이끕니다. 우리의 모든 수고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과 무관한 것일 때 다 헛되고 무익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4장 34절 등에서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이루는 것' 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섬기러 오셨고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저의 삶의 목표는 '많은 사람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단12:3)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저는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매일매일 기도하고, 노력하고 수고하고 있습니다. 저는 얼마 전에 이 목표를 하루 빨리 달성하고 싶어서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자비로우신 주님, 제 오른 손에 치유의 능력을 주시옵소서. 지금 많은 환자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많은 의사들이 돈만 알아, 병원의 문턱이 높습니다. 그래서 많은 환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능력이 많으신 주님, 아무런 댓가 없이 주님의 능력으로 많은 병든 자를 치유할 수 있게 이 오른 손에 치유의 능력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영육간에 죽어가는 많은 영혼을 주님 품으로 인도하고 구원 할 수 있게 하옵소서'
여러 차례 기도했는데 며칠 전에 주님께서 제게 '네 은혜가 이에 족하다 ' 하시고 아직까지 치유의 은사를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변함 없이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죽는 것'(막8:35)이 제 삶의 목표입니다. 링컨 대통령은 소년시절 고통받는 흑인들을 보고 일생의 목표로 '노예해방'을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정치계에 투신하여 여러 번 실패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달성하여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간디도 어린 시절 고통받는 인도인들을 보고 '나는 커서 인도인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분투 노력하여 지금 인도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삶의 목표를 정하고 달려가야 합니다. 예를 들면 '나는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 '남을 구제하는 일'을 목표로 삼겠다. 남을 가르치는 일, 즉 교육, 아니면 사랑, 또는 '전도의 왕'이 되겠다. 평생을 남을 위해 기도하는 일에 누구보다 힘쓰겠다. 또는 찬송하는 일 등을 정하고 오직 그 일을 위해 전심으로 노력하고 힘써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달려갈 최종목표와 길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주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제가 군대에서 장교로 복무할 때 장군 되는 것이 나의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통해 그것이 허탄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전역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을 얻은 후 지금까지 세상에서 최고로 생각했던 가치와 지식을 해(害)로 여기고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빌4:7-8) 우리도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것들을 다 해로 여기고 배설물처럼 여겨야 삶의 전환점을 맞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 사람처럼 헛되고 무익한 것을 좇는 어리석음을 범치 말고, 세월을 아껴서 주님께 영광돌리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끝으로 로마서 14장 8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고 마치겠습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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