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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위기를 기회로 만드세요 (빌1:12-18)

본문

'긍정적인 가치관을 가지는 삶의 지혜 '
앤드류 매튜스가 쓴 세계적 베스트셀러 행복해지는 법(Being happy)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크게 2가지 가치관, 즉 부정적인 가치관과 긍정적인 가치관이 있다고 합니다. 긍정적인 가치관을 가진 분은 어떤 일을 당해도 긍정적으로 보면서 행복을 찾습니다.
반면에 부정적인 가치관을 가진 분은 꼭 상황을 어둡게 보고 스스로 불행하게 됩니다. 그는 우리가 긍정적인 가치관을 가지기 위해 몇 가지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 중의 한 가지는 '자신을 소개할 때 항상 좋게 소개하는 훈련을 하라!'고 말합니다.
괴로운 일을 당하면 나 혼자 감당하고 남에게 지우지 않겠다는 의식이 필요합니다. 혼자 조금 참으면 되는데 '여기 아프다, 저기 아프다'고 하면 온 집안 식구가 힘들어집니다. 그처럼 사방에 '나 아프다!'고 말하면 사실상 아픔이 줄어들기보다는 아픔이 더해집니다.

그러므로 나를 나타낼 때는 언제나 밝은 얼굴로 나타내야 합니다. 이것은 위선이 아닙니다.
걱정이 많아도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화평한 모습, 즐거운 모습, 행복한 모습을 해야 합니다.
그런 모습들을 하다 보면 그것들이 점점 쌓이면서 내 성격을 긍정적으로 만들게 됩니다. 계속해서 '기뻐하고 유쾌하게 사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살면 삶이 진짜 그렇게 변합니다.
노만 커즌의 병의 분석(Analysis of disease)이라는 유명한 책을 보면 위장과 관련된 질병 및 신경성 질병은 호탕하게 몇 번만 웃으면 대개 낫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모습에 낙심하지 말고 자기가 앞으로 되고 싶은 사람을 늘 생각하면서 희망을 가지고 기쁘게 살면 건강하게 되고, 삶 전체가 아주 긍정적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또한 긍정적으로 살려면 무엇인가 필요할 때 깨끗하게 그 필요를 알리라고 말합니다.
어떤 분은 결혼기념일이나 자기 생일에 '남편이 알아주나!' 하고 노려보고 기다렸다가 그냥 넘어가면 그때부터 삐쳐서 일주일 동안 말을 안합니다. 그러면 삶이 피곤해집니다.
대개 남편들은 살아남기 위해 직장 상사에 관심을 가지고, 고객에 관심을 가지며 삽니다. 그런 남편의 정신적인 짐을 덜어주려고 남편에게 '이런 관심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 자기도 남편에게 관심을 표하는 것이 되고 진정한 정신적인 교감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결혼기념일에 무엇인가를 바라면 '어디 두고 보자!'고 사랑을 시험하기보다 그냥 아침에 '오늘 우리 결혼기념일인데 조금 일찍 들어오세요'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것이 없이 자기 기준으로 '사랑의 증거'를 만들어 놓고 그 증거가 없는 것 같다고 '사람 잘못 봤어! 내가 결혼 잘못했지!'라고 한다면 그것은 불행으로 가는 길이 됩니다. 그리고 그는 긍정적으로 살려면 '내가 당한 일과 나를 분리해서 생각하라!'고 합니다. 때로 사업이 망해도 사업이 망한 것이지 나 자신이 망했다고는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가 대학 시험을 치면 떨어질 수도 있고 붙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학에 떨어지면 인생이 망하고, 가문이 망가진 것처럼 여기는 분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 대학 못 가면 저 대학을 가면 되고, 오늘 못 가면 내일 가면 됩니다.
'내가 당한 일'에 '나의 존재와 목숨'을 다 걸면 항상 초라한 인생이 될 수밖에 없지만 '내가 당한 일'을 통해 오히려 자신을 더 격려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축복해주십니다.

'고난을 당해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
본문 12절에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바울이 감옥에 갇혔지만 그곳에서의 전도로 시위대를 중심으로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결국 황제 주변에 있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까지 전도하게 되었습니다(빌 4:22).
살다보면 어려운 일을 당하지만 그때 그 일과 그 문제에 붙잡히지 않아야 합니다. 바울처럼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다는 고백을 하면 얼마나 멋있습니까?
사람의 행복과 불행은 '어떻게 위기를 잘 관리해서 기회로 만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최악의 위기를 기회로 만드셨습니다. 흑암이 가장 깊을 때 천지를 창조하셨고, 십자가의 위기를 구원의 기회로 만드셨습니다. 우리도 최악의 위기를 기회를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원하십니다.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그 일을 그냥 일어나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일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고난을 당해도 그 안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고 얻는 가장 큰 축복이 무엇입니까? 어려움 속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음으로 생기는 평안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우상 숭배하다가 예수님을 믿게 된 분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맘이 편하다는 말입니다. 우상 숭배하면 귀신이 언제 어떻게 노해서 어떤 점을 칠지 모르니까 항상 불안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잘 믿으면 마음이 평안하고, 몸도 점점 건강해지고, 잠도 잘 오게 됩니다.
어떤 분은 어떤 일로 고민하다가 불면증에 시달렸는데 지옥이 다른 게 아니라 잠이 안 오는 게 지옥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괴로운지 자살 충동까지 든다고 합니다.
잠을 못 자는 것보다 더 큰 불행이 없습니다. 사실 잠을 잘 자는 것도 큰 축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믿으면 잠도 잘 잡니다. '어려움은 진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복음 때문에 감옥에 가는 어려운 일을 당했지만 그것이 진보였다고 말합니다.
그는 '내가 당한 일'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복음의 진보'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처럼 우리는 어떤 일을 당해도 그 일을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만들 수 있어야 하고,
어려울 때마다 '이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내 믿음을 보일까?' 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초라한 모습일 때 비참해지지 말고, 그때를 오히려 인생의 진보의 기회로 만드십시오.
부정적인 상황 속에서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이 바로 행복을 만드는 기술입니다.
지금 혹시 위기에 처해 있다면 그때를 더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기회로 만드십시오.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당했느냐?'보다 '내가 그 일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마음이 달라지고, 태도가 달라지고, 가는 길이 달라집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환경도 이기고, 그 가운데 복음의 진보를 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의 고난은 결국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
대개 사람들은 외적으로 성공하면 그것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외적인 성공은 수명이 짧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공이 수명이 오래 갑니다. 성 프랜시스는 거지처럼 살았지만 수백 년이 지나도록 위대한 성자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프랜시스 당시 교황이 누구인지, 가장 큰 성당의 신부가 누구인지는 거의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외적으로 조금 초라한 모습이라도 결코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믿음이 신실하다면 내 연약함도 하나님의 역사요, 내 고난도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우리에게 하나님이 가장 함께 하시는 증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교회생활을 하면서, 특히 복음을 전하면서 어려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사실 전도하면서 어려움을 당해보지 않는 삶을 인생의 가장 큰 위기인 줄 알아야 합니다. 반면에 우리가 전도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면 반드시 선한 열매가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본문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사도 바울이 감옥 안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고 활발하게 전도한다는 소식을 듣고 밖의 성도들은 더욱 용기를 얻고 더욱 주님의 역사를 신뢰하고 전도에 나섰다는 말입니다.
내가 전도하면 열매도 생기지만 나의 전도로 다른 사람도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처럼 우리는 내가 전도하므로 다른 사람에게 힘을 주는 사람이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담대히 전도에 나가면 귀한 신앙의 동료를 얻고 서로에게 큰 격려가 될 것입니다. 어떤 분은 믿음이 넘치고 은혜가 넘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전도를 나가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은혜가 없어도 순종하는 마음으로 전도하면 그토록 찾던 은혜가 거기에 있습니다. 어떤 분이 무디에게 말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이해가 안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디가 말했습니다. '그때는 밖에 나가서 전도하세요. 전도하고 돌아오면 깨달아집니다.' 진리의 돌은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주울 수 없습니다. 진리는 행동할 때 깨달아집니다.
'때가 되면 나오겠지!' 그것은 참으로 소극적인 생각입니다. 그 생각이 전도를 막습니다. 내가 한 영혼을 살리는 것은 결국 나 자신도 살리고, 우리 가정과 나라도 살리는 것입니다. 지금 전도가 참 어려운 시절입니다. 이단 때문에 사람들의 경계심은 심해졌고, 매스컴의 비판은 전도의 열정을 빼앗았고, 경제적 여유는 전도의 관심을 퇴조시켰습니다. 또한 성도의 잘못된 행동으로 사람들의 거부감이 많아져서 전도가 아주 어려워졌습니다. 그래도 힘써 전도하면 믿음도 커지고, 은혜도 받고, 하나님께서 더욱 기뻐하실 것입니다.

'복음 전파의 사명감을 가지십시오 '

그런데 오늘 본문 15절에는 언뜻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 나옵니다.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착한 뜻으로 예수님을 전파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투기와 분쟁으로 예수님을 전파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일까요?
당시에 바울을 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바울을 음해합니다.
그래도 바울은 전도의 열매가 많았고, 바울이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바울의 공로가 아님을 증명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대단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할 기회가 왔습니다. 그가 감옥에 갇힌 것입니다.
그러자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 기회에 더욱 열심히 예수님을 전파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전도의 열매가 많으면 바울의 공로가 크지 않음을 증명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이 생기면 바울의 마음을 괴롭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전도하는데 그래도 바울은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이 전파되는 것이니까 기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내 체면을 구기고, 내게 상처를 주어도 복음이 전해지니 좋다는 모습을 보십시오. 자기의 체면과 상처는 가볍게 보고, 복음전파를 크게 보는 이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습니까?
어떤 분은 교회에서 상처를 받았다고 여기고 여기저기 다니며 교회 비판에 열을 올립니다.
'교회가 썩었어! 이것도 썩고, 저것도 썩고.' 그 모습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상처받아도 복음은 상처를 받지 말게 하고, 교회는 상처를 받지 말게 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기에게 아무리 상처가 되어도 예수님만 전해지면 좋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사명감에 투철한 사도입니까? 우리 교회와 교인들에게는 이런 사명감이 있습니까? 아쉽게도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고기잡이배가 되기보다는 뱃놀이하는 유람선 같습니다.
고기잡이배가 고기를 잡으면 행복을 얻지만 뱃놀이를 하면 오히려 행복을 잃게 됩니다. 전도는 쉽지 않은 것이지만 신앙인에게 전도는 행복의 초석이 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며 복음 중심적 가치관을 가지십시오 '
바울은 어려움과 상처가 있어도 전도가 된다면 행복해했습니다. 본문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사도 바울은 어떤 상황에서도 기쁨을 찾았고, 특히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우리는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라면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넉넉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라면 내가 무너져도 좋고, 내가 다쳐도 좋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처럼 우리는 안목이 넓어야 하고, 스케일이 큰 사람, 통이 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겸손해야 합니다. 정신과 의사의 말에 의하면 겸손할수록 스트레스가 없다고 합니다. 겸손할수록 기쁨의 크기가 커지고, 즐거운 시간과 범사에 감사하는 시간이 많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겸손에 대해서 생각할 때 높은 자리에서 낮아지는 것을 겸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겸손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본래 우리의 자리는 낮은 자리입니다.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겸손하겠다고 낮아지고 뭐고 할 것이 없습니다.
며칠 전에 폐암으로 별세한 이주일 씨는 담배는 폈지만 평소에 건강관리를 잘했습니다. 폐암 진단을 받기 3개월 전에도 종합검진을 했는데 아무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암에 걸렸다고 합니다. 그 사실은 인간의 연약함을 잘 말해줍니다.
우리는 어떠하든지 스스로를 높이지 말고 자기 자리를 힘써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가끔 보면 '제가 겸손하게 기도해주세요.'라고 어색한 기도제목을 내놓는 분들이 있습니다.
마치 내가 높은 사람인데 내 힘으로는 낮아지기 힘들어 하나님의 힘이 필요하다는 말입니까?
그 마음부터 고쳐야 합니다. 우리는 높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 자리에 그냥 있으면 됩니다. 높다고 생각하니까 낮아지기가 그렇게 힘들어서 하나님의 힘이 필요하다는 말이 아닙니까? 우리는 나 자신을 높이지 말고 주님만 높이고, 주님만 전파하기에 더욱 힘써야 할 것입니다.

'제자입니까? '
우리는 전 인류를 구원하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믿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조금 어려워도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그 꿈으로 인해 어려움을 당해도 '나는 기뻐하고 기뻐하리라.'고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꿈을 꾸지 마십시오. 자신의 삶에 너무 함몰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사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께로 오게 할 책임에 눈을 뜨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축복은 원하지만 변화는 거부합니다.
우리는 삶의 목적을 축복 이전에 내가 변화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 중심주의를 버리고, 진정한 다른 사람들의 축복을 빌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중심주의는 참 집요합니다. 심지어는 가정 내에서도, 부자 관계에서도 종종 발견됩니다. 어떤 부모는 자녀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내가 너희들만을 위해서 살아왔다.'
정말 그런 줄 알았는데 나중에 결혼할 때 보니까 혼수 문제로 본전 다 뽑으려고 합니다. 내가 얼마나 밑천 들여서 키운 자식인데 그러면서 부모가 결혼을 깨는 경우도 봅니다.
주려면 끝까지 주어야지 이제 와서 무엇을 찾겠다고 하니 얼마나 이기적인 모습입니까?
충성하려면 끝까지 충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에 평강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환경에 따라, 대접받는 것에 따라 마음이 흔들린다면 성숙한 모습이 아닙니다.
이제 나 자신의 형편과 처지만 살피기보다 남을 생각하고 살피는 성숙한 성도가 되십시오.
서울에 있는 한 교회의 구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해에 공교롭게도 그 구역에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이 세 명 있었습니다. 온 구역원이 그 세 명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둘은 합격하고, 한 명은 떨어졌습니다.
그때부터 합격한 자녀들의 어머니들은 말을 못했고, 나머지 구역원들도 그저 침묵했습니다.
이제 대학 문제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떨어진 아들 어머니밖에 없었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그분은 모든 구역원들을 초청해 큰 합격 잔치를 벌여주었습니다.
자기 아들은 떨어졌지만 우리 구역에서 두 명이나 합격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했습니다. 구역원들이 다 안도하고 좋아하며 그분을 칭송했습니다. 진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 모습을 하늘에서 보시고 얼마나 좋아하시겠습니까?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결국 하나님이 그 가정을 축복하셨고 다음 해에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생기면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창피해서 못 살겠다! 남들은 다 합격했는데 너만 왜 그 모양이냐?' 한숨을 푹푹 내쉽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축복하지 않습니다. 그런 모습은 현재뿐만 아니라 내일도 불행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후퇴 속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는 믿음을 보시고 축복해주실 것입니다.
요즘 치열한 경쟁시대입니다. 그래서 다니던 직장으로부터 퇴직 당할 수도 있습니다. 슬픈 일이지만 그래도 '오래 몸담은 직장이 잘되기를 바랍니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디 두고 보자!' 라고 하면 그 두고 보는 사람보다 내가 저주받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은퇴를 맞아 기뻐하며 은퇴하고, 물러설 상황에서 기뻐하며 물러설 때 본인도 행복하고, 하나님께서도 축복하시고, 그런 분들에게 내일의 축복을 풍성하게 준비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모습이 서글퍼도 내일의 축복을 예비하는 믿음의 권속들이 되어야 합니다.
심지어는 세상을 떠나면서도 기뻐하며 떠날 때 하늘의 영광은 더욱 크게 될 것입니다. 성 프랜시스는 임종할 때 마음에 기쁨이 넘쳐서 크게 찬송하니까 한 수도사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지금 창밖에 많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 시간이 엄숙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프랜시스가 말합니다. '주책을 떨어 미안하네. 주님 만날 생각을 하니 너무 기뻐서 그랬네.'
세상을 떠나면서도 이렇게 기뻐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모든 삶에 행복이 넘칠 것입니다. 항상 '내가 당한 어려운 일'로 더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기뻐하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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