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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부터 여든까지 (딤후3: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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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 몸에 밴 습관은 평생을 가는 것이 사실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어렸을 때 올바른 습관을 길러주고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어린 아이들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배우는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고 흡수하는 능력이에요. 그래서 무엇이든지 보고 듣는 것은 빨아들이고 배웁니다.
그런데 한번 그렇게 습득되고 몸에 밴 것은 바꾸기가 쉽지 않지요.

그러니까 어렸을 때 무엇을 보고 자랐느냐에 따라서, 즉 무엇을 가까이 하고 배웠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맹자의 어머니가 이사를 세 번씩이나 하면서 아들의 공부하는 습관을 들였다는 얘기는 유명하지 않습니까?

여기 보니까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운 사람이군요. 어렸을 때부터 성경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은 디모데는 그래서 매우 바르고 성실한 사역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토록 철저하게 진리에 바로 서 있었기 때문에 거짓교사들, 이단들로 어지럽고 혼탁한 에베소 교회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진리를 올바로 선포하고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신뢰를 바울이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녀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가르치고 알게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아이들이라고 해서 믿음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해입니다. 잘 가르치고 올바로 인도하면 어른들의 믿음보다 훨씬 순수하고 강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아이들의 믿음을 말씀하셨잖아요? 어린 아이들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받들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막 10:15). 다시 말해서 어른들은 건성으로 또는 의심을 가지고 말씀을 듣지만, 아이들은 전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믿고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 아닌가요?

위대한 믿음을 가졌던 분들을 보면 어렸을 때부터 성경으로 잘 훈련받은 사람들입니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사람은 아브라함 링컨입니다. 가난한 목수였던 링컨의 아버지는 착하고 성실하기는 했지만,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없었고 학교에 보낼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어떻게 해서라도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키려고 애를 썼습니다. 링컨이 아홉 살 되던 해에 어머니는 풍토병으로 사망했는데, 어린 두 자녀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부자나 위인이 되기보다 성경 읽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되라.”

링컨의 어머니는 저녁마다 어린 자녀들에게 한 권밖에 없는 성경을 꺼내어 읽어주곤 했는데, 그것이 아이들에 대한 가장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훗날 링컨은 그런 어머니를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어린 시절 아직 읽기조차 배우자 못했던 때에, 저는 어머니께서 날마다 읽어 주시던 성경 말씀을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그 성경 구절들을 제 가슴속에 담아 두었지요. 그래서 그 구절들 속에는 제 어머니의 육성이 그대로 살아있답니다.”

성경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성경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지금 바울이 디모데에게 하는 말에서 성경은 구약성경을 가리킵니다. 놀라운 사실은 구약성경이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는 진리를 가르쳐준다는 사실입니다. 어쨌든 여기서 말하는 성경은 구약성경이지만, 우리가 이 구절을 읽으면서 신약을 포함한 전체 성경으로 이해하고 읽어도 무리는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 얻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서라는 사실은 결코 변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알고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다른 별 것으로도 그것을 알 수가 없고 오로지 성경을 통해서만 그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주는 안내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얻으려면 성경을 읽고 배워야죠.

지금도 온 세계에 성경을 배포하기 위한 사역이 광범위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과거 공산주의 국가들에 성경을 반입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었습니다. 지금도 중국 국경에서 북한으로 성경을 몰래 들여가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어떤 곳에는 성경 자체가 없습니다. 성경을 기록할 글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런 곳에서는 선교사님들이 말을 배워가지고 글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글로 성경을 기록해서 사람들에게 가르칩니다. 왜 그렇게 위험한 일, 또 어려운 일들을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이 성경이 구원의 안내서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아니면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깨달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경이 우리를 하나님의 구원으로 안내하는 것은 하나님이 쓰신 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성경의 영감설로 얘기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였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직접 기록한 것은 사람들이지만, 이 사람들이 소설을 쓰듯이 창작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성경을 쓰셨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적은 것은 물론 아닙니다. 성경은 약 40여 명의 다른 사람들이 기록한 것인데, 살았던 시대가 다르고 처한 형편과 환경도 서로 달랐고, 생활수준이나 교육수준도 달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장의 스타일이라든가 문법이나 단어의 사용 같은 것이 각자 다릅니다. 즉 그것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았다고 해서 그 사람의 능력이나 성품이 고려되지 않고 곧바로 하나님의 특별한 능력을 받아서 성경을 기록한 것이 아니란 말이지요. 자기가 보고 자기가 느낀 것을 자신의 능력에 따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엉뚱한 것을 기록하지 못하도록, 즉 하나님의 계시가 드러나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비록 성경은 사람의 손에 의해 쓰였지만 결국 하나님의 작품이고 신적인 문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성경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가 드러나 있고 우리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성경은 우리 믿는 자의 모든 삶을 총괄하는 규범이 되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성경은 예수 믿고 구원얻는 길을 제시한다고 했는데, 그러면 그 외의 다른 삶의 부분은 성경과 상관이 없어도 되는 걸까요? 그럴 수가 없지요.
왜냐하면 우리가 구원받은 성도로 산다는 것은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 걸쳐 나타나고 행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에 나가고 예배드릴 때는 성도의 삶이 되고, 집에서 살림하거나 직장에 나가 일할 때는 성경과 상관없는 중립적인 삶을 사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책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지요. 지금 바울이 디모데에게 하고 있는 말입니다. 디모데는 에베소교회의 목사 아닙니까? 에베소는 당시 소아시아 지역의 수도입니다. 바울이 3년이나 되는 오랜 세월을 머물면서 세웠던 아주 전략적인 곳에 위치한 교회입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대교회쯤 된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런 교회의 목사님도 이 성경으로 교훈을 얻고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거예요. 옛날에 교육받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 성경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법의 책망을 두려워하며 삽니다. 법을 어기면 벌금을 물고 더 큰 잘못을 하면 감옥에도 갑니다. 법이 우리를 책망해요. 그러나 참으로 우리의 삶을 가르치고 인도하기 위해 주어진 이 성경말씀의 책망을 우리는 얼마나 두려워하며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이 우리를 책망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바르게 살고 의로 교육받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과연 성경을 읽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살고자 하는 사람은 의로운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케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이 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너무 많다 보니까 귀한 줄 모르고 살 때가 많아요. 예를 들어 저 북한의 토굴 속에서 몰래 숨어 예배드리는 성도들에게 이 성경은 얼마나 귀중한 것일까요? 얼마나 이 말씀을 사모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이 성경을 사랑할까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런 간절함과 사모함이 없잖아요?
왜냐하면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성경을 읽을 수 있고, 또 늘 설교도 들으니까 별로 귀중한 것인 줄 모른단 말이지요.

요즘 성경쓰기 운동이 활발합니다. 늘 성경을 가까이 하고 읽어야 하는데 잘 안 하니까 쓰기라는 새로운 형태로 성경을 가까이 하게 하려는 시도입니다.
그런데 남들이 성경을 쓴다니까 어떤 70이 넘은 할머니가 자기도 쓰고 싶은데 문제는 글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고 그렸어요. 그렇게 그려가지고 마침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를 썼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까요? 무려 10년도 훨씬 더 걸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이는 80이 훌쩍 넘었겠지요. 그 오랜 세월 동안 얼마나 힘들과 좌절도 되었겠습니까? 내가 죽기 전에 끝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하더군요.

사실은 성경을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지요. 아무리 성경을 베껴쓰고 외워도 그 말씀으로 교훈받지 않고 그 책망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그러나 그렇게 성경을 읽고 쓴다는 것은 그만큼 성경을 가까이 하고 말씀에 귀를 기울이려는 노력 아니겠어요? 성경은 가까이 하는 사람에게 큰 복입니다. 이 귀한 성경을 더욱 사랑하고 그래서 우리 모두의 삶이 말씀에 사로잡히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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