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새기기 (딤후1:15-18)
본문
제가 신학교 다닐 때 교회사 교수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저는 그분에게서 한번도 강의를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엄연히 제가 다니는 신학교 교수님이었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강의를 하지 않는 이유는 오래 전부터 학생들 사이에 무능교수, 퇴출대상으로 지목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정규 클라스에서는 강의를 하지 못하고 연수과정 같은 비정규 클라스에서만 강의를 했습니다. 사실 그 정도면 진즉 물러나든지 쫓겨나든지 했을 텐데, 정년이 돼서 화려하게 퇴임식까지 하고 은퇴를 하셨습니다. 그분의 퇴임식에서 저는 실력있고 쟁쟁한 다른 교수님들의 축사를 들으며, 왜 그분이 실력도 없으면서 정년이 되기까지 신학교에 남아 있을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80년대 초반에 총신에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학교의 대부라고도 할 수 있는 박윤선 박사가 학교를 떠나 새로운 신학교를 세운 것이었습니다. 박윤선 박사의 이름은 그 자체로 한국교회에서 거대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분이 학교를 떠나 다른 학교를 세운다는 것은 집안으로 치면 기둥뿌리가 뽑히는 일이고, 계시록에 나오는 주님의 말씀을 인용하자면 촛대가 옮겨지는 것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떠나니까 실력있고 교계에서 좀 알아주는 교수들이 모두 따라갔습니다. 물론 학생들도 많이 따라갔지요. 그렇게 해서 생긴 신학교가 수원에 있는 합동신학교입니다.
남은 사람들의 비애가 어떠했을까요? 기둥뿌리 뽑아가고 실력있는 교수들 다 나가고, 학생들 줄줄이 나가고, 남은 게 뭐가 있겠습니까? 나간 사람들이야 나갔다지만, 그래도 남은 사람들은 남아 살아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무슨 힘으로, 무슨 소망으로 삽니까? 아마 여러분 중에는 그런 비애를 처절하리만치 온몸으로 체험하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가지고 있는 고통스러운 상처이니까요. 제가 직접 그 상처를 겪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상처를 안고 있는 교회에 와서 그 상처가 아물며 치유되어가는 과정을 함께 지냈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대략은 알 수 있습니다. 정말 그때는 암울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저로서도 그런 교회에 온 것이 마치 모험을 하는 것 같기도 했었습니다. 그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라는 세월이 지났군요. 다시 총신 이야기로 돌아가서, 학교의 대부와 실력있는 교수들이 떠나는 판국에, 그래도 남아서 학교를 살려보겠다고 애쓰는 사람들로서는 한 사람의 도움이 그렇게 절실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사 교수님이 학교에 남는 편에 섰고, 그나마 그것도 학교로서는 큰 힘이 되었던가 봅니다. 그러니 아무리 실력이 없고 학생들에게 인기가 없어도 학교측에서는 그분을 예우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가장 고마운 사람은 누구이던가요? 가장 어렵고 힘들 때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의 은혜는 평생 잊을 수가 없지요. 예를 들어 사업에 실패해서 식구들과 함께 길바닥에 나앉게 되었는데, 포장마차라도 해보라고 자금을 대준 친구가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액수로는 얼마나 되겠습니까만 그것은 액수로 따질 수 없는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가장 견디기 어려운 때는 언제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쓰러져 고통스럽게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와서 짓밟아버릴 때입니다. 겨우 포장마차라도 해서 입에 풀칠하려고 하는데 빚독촉하러 와서 포장마차를 끌고 가버리는 경우지요. 그런 사람은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설령 용서를 하게 된다 하더라도 결코 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제가 우리 교회에 있으면서 가장 크게 감사하는 사람은 제가 교회에 부임한 후 처음으로 새로 나온 사람입니다. 사실은 제가 올 때 교회의 사정과 형편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에게 교회를 맡으라고 권유하던 분이나 전임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들은 저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나중에 제가 와서 파악한 현실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속았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힘이 빠지는 일이었지요. 그런 상황에서 처음으로 새신자가 왔을 때 저로서는 얼마나 큰 힘이 되었겠습니까? 저에게는 그 사건이 하나님의 싸인으로 해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하나님이 이 교회를 버리지 않으셨구나 하는 싸인으로 말입니다. 거기서 저는 말할 수 없는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상황은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고 아직 새로운 식구는 늘지 않고 있을 때, 저에게 있어서 가장 큰 위협은 무엇이었겠습니까? 그나마 몇 남지 않은 교인들 중에서 교회를 안나오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분들 여기 몇 분 계시지요? 지금은 다 지나간 얘기니까 이렇게 편하게 말할 수 있지만, 당시 새로 와서 뭔가 해보려는 목사로서는 얼마나 황당하고 맥빠지는 일이었겠어요?
지난 일들을 추억해보니까 상당히 감상적이 되는데,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의 내용이 무척 감상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공 바울 사도는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돌에 맞아 죽은 줄 알고 성밖에 내다버렸는데 살아서 기어돌아온 적도 있었고, 가는 곳마다음모와 비난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암살의 표적이 되었고, 감옥에 끌려가 중죄인처럼 매를 맞거나 많은 사람 앞에서 수치를 당하는 일을 밥먹듯이 당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한번도 자기를 음해하고 죽이려 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원망한 적이 없습니다. 마음 속으로 원망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마음이 그가 남긴 글에는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만큼 참을 만했는지, 혹은 그런 일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여기,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에서 우리는 바울의 그런 마음을 발견합니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있느니라.' 버림을 받았다는 것, 배신을 당했다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몸은 늙고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졌는데, 깊은 지하감옥은 어둡고 춥고 더럽고 온갖 질병이 창궐해 있는데, 이제 죽음을 기다리는 사형수가 되어서 그렇게 배신을 당하고 홀로 남겨진 것이 바울로서도 참을 수 없도록 고통스러웠던 것입니다. 위대한 믿음의 소유자였고, 불굴의 소망과 끝없는 도전으로 일생을 살아온 바울이었지만, 믿음의 동역자들, 진리를 함께 나누었던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것은 너무나 혹독한 시련이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바울을 버렸다고 했는데, 도대체 이 사람들은 누구였을까요? 이들은 바울이 믿음으로 낳은 자녀들이었습니다. 여기 뉴질랜드에서 아시안이라고 하면 인도 사람, 캄보디아 사람, 또 중국이나 우리 한국 사람을 말하지만, 신약성경에 나오는 아시아는 그런 아시아가 아닙니다. 이 아시아는 지금 터키 본토의 서쪽 부분입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아시아라는 이름은 로마제국의 행정구역 가운데 하나입니다. 바울은 이 아시아에서 복음전하는 일에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전도여행에서는 갈라디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했고, 두 번째 전도여행에서는 아시아가 그 목표였는데, 성령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는 바람에 에게해를 건너 지금의 그리스로 건너가서 빌립보, 데살로니가가 있는 마게도냐 지역과 아테네, 고린도가 있는 아가야 지역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세 번째 전도여행 때 아시아에서 집중적으로 사역을 했습니다. 이 때 아시아의 수도인 에베소에서 3년이라는 긴 기간을 머물렀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전도여행 가운데 한 곳에 머물러 있기로는 가장 긴 기록입니다. 그만큼 아시아에서의 복음전파에 바울이 심혈을 기울였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아시아 출신의 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사역을 돕기 위해 로마로 왔습니다. 바울로서는 눈물로 씨앗을 뿌렸다가 기쁨으로 그 열매를 거두는 감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두 번째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는 사태가 심각했습니다. 당시의 황제 네로가 기독교를 박멸해야 할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기독교인에 대한 검거령이 내려졌습니다. 로마에 와서 기독교를 열심히 전파하던 바울이 중죄인이 되어 감옥에 갇힌 것은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뿐만 아니라 바울이라는 중죄인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자동으로 죄인이 되었습니다. 바울과 알고 지냈거나 심지어는 불심검문에서 바울의 명함을 가지고 있다가 발각된 사람도 불순분자 취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 바울은 감옥에 갇혀서도 마음이 든든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시아에서 온 많은 동역자들, 믿음의 자녀들이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니까요. 사실 그들은 바울이 목숨을 걸고 얻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복음을 전했던가요? 이제 그들의 기도와 도움 속에서 바울은 위로를 얻고 힘을 얻어 감옥에서의 고통을 견딜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들려오는 소식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중죄인 취급을 당하는 것을 보고 이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슬그머니 도망을 친 것입니다. 예수 믿다가 죽느니 차라리 예수 안믿고 살겠다고 믿음을 포기해버린 것입니다. 바울로서는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자기들에게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해준 사도가 감옥에 갇히는 것을 보고 혹시 자기들에게 불똥이 튈까 두려워 바울을 모른다, 예수를 모른다 하면서 줄행랑을 쳐버리는 것을 보고, 바울은 얼마나 섭섭했을까요? 얼마나 마음이 상했을까요? 그가 그토록 힘들게 복음을 전했던 것이, 그리고 그동안 가르치고 모범을 보였던 것이 다 헛수고였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또 얼마나 허탈했을까요?
사도의 고통스러운 마음이 매우 정제되고 억제되어 표현된 것이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렸다'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지만 그 중에서도 부겔로와 허모게네는 정말 그럴 수 없는 사람들 아니냐는 것입니다.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에 와서 짓밟아버리는 것처럼, 감옥에서 병들고 외로운 몸으로 죽어가는 사도를 버리고 도망가버린 사람들, 그래서 불명예스럽게도 그 이름이 공개되어 오고 오는 세대에 사도와 믿음을 배신한 사람들로 기억되게 되었습니다.
부겔로와 허모게네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된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과연 내 이름 석자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로마에까지 와서 사도를 도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보통 열심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들의 이름은 바울에게 자랑스러운 이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진실이 드러나게 됩니다. 결국 이들의 자랑스러운 이름은 지워지고 사도를 배신하고 사도의 마음 속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불명예스러운 이름으로 영원히 남게 되었습니다.
부겔로와 허모게네 때문에 상처를 입고 마음이 상한 바울로서는 상대적으로 오네시보로가 얼마나 고마웠을까요? '저가 나를 자주 유쾌하게 하였다.' 힘들고 괴로울 때 오네시보로만 보면 마음 속의 고통이 사라지고 기분이 좋아졌다는 것입니다. 위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린것들 데리고 길바닥에 나앉게 되었는데 포장마차 자금을 대준 사람처럼 말이지요.
다른 사람들은 바울이 감옥에 갇히는 것을 보고 불똥이 튈까 봐서 도망을 쳤는데, 오네시보로는 바울이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감옥으로 찾아왔습니다. 어느 교도소 몇 호실에 갇혔다는 것을 알고 면회를 왔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네시보로는 사도가 늙고 병든 몸으로 감옥에 갇혔다는 것을 알고 그를 만나기 위해 온 감옥을 샅샅이 뒤진 것입니다. 아는 사람이 있으면 청탁도 했을 것이고, 기록이 있다면 있는 대로 뒤졌을 것이고, 여기저기 다니며 사도가 어디에 있는지를 수소문했을 것입니다. 바울과 비슷한 죄수가 있다는 말에 찾았다가 사도가 아닌 것을 확인하고 힘없이 발길을 돌렸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베드로가 붙잡히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 몰래 대제사장의 집에 들어갔다가 혼난 일을 기억하십니까? 모르지요, 오네시보로도 요한처럼 든든한 빽이 있어서 괜찮았는지. 바울은 그가 '나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여… 나를 부지런히 찾았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혹은 그렇게 함으로써 당하게 될 수 있는 불이익을 감수하고 그랬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애를 써서 결국에는 바울을 찾아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알고도 떠나는 마당에 그렇게 찾아온 오네시보로가 바울로서는 얼마나 고마웠겠습니까? 그러나 감옥에 있는 바울로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상해 주시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원컨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원컨대 주께서 저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이것은 아무런 힘도 없는 바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보상이었지만, 사실은 최고의 보상이 아닙니까? 오네시보로의 이름이 자신의 마음 속에 새겨진 것처럼 하나님의 마음 속에도 그렇게 새겨달라는 부탁인 것입니다.
부겔로와 허모게네, 그리고 오네시보로의 이름은 바울의 마음 속에 결코 지워지지 않을 만큼 깊숙이 새겨졌습니다. 그러나 그 성격은 너무나 다른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인생의 살아가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작업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교회 안에서 다른 형제자매의 마음 속에 어떤 이름을 새기고 있습니까? 사사건건 물고 늘어져 반대를 하는 사람으로 이름을 새기고 있습니까? 괜히 쓸데없는 언어의 폭력으로 남의 마음 속에 상처를 만드는 사람으로 이름을 새기고 있습니까? 그런 이름이 더 깊이 새겨지기 전에 가서 지우세요. 그 대신에 위로하는 사람의 이름을 새기고, 힘들어하는 사람을 유쾌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의 이름을 새기세요. 희생하고 봉사하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으로 이름을 새기세요. 힘들 때 와서 짓밟는 사람이 아니라 일으켜 세워주는 사람으로, 짐을 나누어 져주는 사람으로 이름을 새기세요. 바울의 마음 속에 새겨진 부겔로와 허모게네, 그리고 오네시보로의 이름은 하나님의 마음에도 꼭 그렇게 새겨졌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형제자매의 마음에 새기는 우리의 이름은 꼭 그대로 하나님의 마음에도 새겨질 것입니다.
80년대 초반에 총신에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학교의 대부라고도 할 수 있는 박윤선 박사가 학교를 떠나 새로운 신학교를 세운 것이었습니다. 박윤선 박사의 이름은 그 자체로 한국교회에서 거대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분이 학교를 떠나 다른 학교를 세운다는 것은 집안으로 치면 기둥뿌리가 뽑히는 일이고, 계시록에 나오는 주님의 말씀을 인용하자면 촛대가 옮겨지는 것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떠나니까 실력있고 교계에서 좀 알아주는 교수들이 모두 따라갔습니다. 물론 학생들도 많이 따라갔지요. 그렇게 해서 생긴 신학교가 수원에 있는 합동신학교입니다.
남은 사람들의 비애가 어떠했을까요? 기둥뿌리 뽑아가고 실력있는 교수들 다 나가고, 학생들 줄줄이 나가고, 남은 게 뭐가 있겠습니까? 나간 사람들이야 나갔다지만, 그래도 남은 사람들은 남아 살아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무슨 힘으로, 무슨 소망으로 삽니까? 아마 여러분 중에는 그런 비애를 처절하리만치 온몸으로 체험하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가지고 있는 고통스러운 상처이니까요. 제가 직접 그 상처를 겪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상처를 안고 있는 교회에 와서 그 상처가 아물며 치유되어가는 과정을 함께 지냈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대략은 알 수 있습니다. 정말 그때는 암울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저로서도 그런 교회에 온 것이 마치 모험을 하는 것 같기도 했었습니다. 그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라는 세월이 지났군요. 다시 총신 이야기로 돌아가서, 학교의 대부와 실력있는 교수들이 떠나는 판국에, 그래도 남아서 학교를 살려보겠다고 애쓰는 사람들로서는 한 사람의 도움이 그렇게 절실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사 교수님이 학교에 남는 편에 섰고, 그나마 그것도 학교로서는 큰 힘이 되었던가 봅니다. 그러니 아무리 실력이 없고 학생들에게 인기가 없어도 학교측에서는 그분을 예우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가장 고마운 사람은 누구이던가요? 가장 어렵고 힘들 때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의 은혜는 평생 잊을 수가 없지요. 예를 들어 사업에 실패해서 식구들과 함께 길바닥에 나앉게 되었는데, 포장마차라도 해보라고 자금을 대준 친구가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액수로는 얼마나 되겠습니까만 그것은 액수로 따질 수 없는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가장 견디기 어려운 때는 언제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쓰러져 고통스럽게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와서 짓밟아버릴 때입니다. 겨우 포장마차라도 해서 입에 풀칠하려고 하는데 빚독촉하러 와서 포장마차를 끌고 가버리는 경우지요. 그런 사람은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설령 용서를 하게 된다 하더라도 결코 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제가 우리 교회에 있으면서 가장 크게 감사하는 사람은 제가 교회에 부임한 후 처음으로 새로 나온 사람입니다. 사실은 제가 올 때 교회의 사정과 형편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에게 교회를 맡으라고 권유하던 분이나 전임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들은 저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나중에 제가 와서 파악한 현실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속았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힘이 빠지는 일이었지요. 그런 상황에서 처음으로 새신자가 왔을 때 저로서는 얼마나 큰 힘이 되었겠습니까? 저에게는 그 사건이 하나님의 싸인으로 해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하나님이 이 교회를 버리지 않으셨구나 하는 싸인으로 말입니다. 거기서 저는 말할 수 없는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상황은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고 아직 새로운 식구는 늘지 않고 있을 때, 저에게 있어서 가장 큰 위협은 무엇이었겠습니까? 그나마 몇 남지 않은 교인들 중에서 교회를 안나오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분들 여기 몇 분 계시지요? 지금은 다 지나간 얘기니까 이렇게 편하게 말할 수 있지만, 당시 새로 와서 뭔가 해보려는 목사로서는 얼마나 황당하고 맥빠지는 일이었겠어요?
지난 일들을 추억해보니까 상당히 감상적이 되는데,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의 내용이 무척 감상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공 바울 사도는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돌에 맞아 죽은 줄 알고 성밖에 내다버렸는데 살아서 기어돌아온 적도 있었고, 가는 곳마다음모와 비난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암살의 표적이 되었고, 감옥에 끌려가 중죄인처럼 매를 맞거나 많은 사람 앞에서 수치를 당하는 일을 밥먹듯이 당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한번도 자기를 음해하고 죽이려 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원망한 적이 없습니다. 마음 속으로 원망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마음이 그가 남긴 글에는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만큼 참을 만했는지, 혹은 그런 일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여기,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에서 우리는 바울의 그런 마음을 발견합니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있느니라.' 버림을 받았다는 것, 배신을 당했다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몸은 늙고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졌는데, 깊은 지하감옥은 어둡고 춥고 더럽고 온갖 질병이 창궐해 있는데, 이제 죽음을 기다리는 사형수가 되어서 그렇게 배신을 당하고 홀로 남겨진 것이 바울로서도 참을 수 없도록 고통스러웠던 것입니다. 위대한 믿음의 소유자였고, 불굴의 소망과 끝없는 도전으로 일생을 살아온 바울이었지만, 믿음의 동역자들, 진리를 함께 나누었던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것은 너무나 혹독한 시련이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바울을 버렸다고 했는데, 도대체 이 사람들은 누구였을까요? 이들은 바울이 믿음으로 낳은 자녀들이었습니다. 여기 뉴질랜드에서 아시안이라고 하면 인도 사람, 캄보디아 사람, 또 중국이나 우리 한국 사람을 말하지만, 신약성경에 나오는 아시아는 그런 아시아가 아닙니다. 이 아시아는 지금 터키 본토의 서쪽 부분입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아시아라는 이름은 로마제국의 행정구역 가운데 하나입니다. 바울은 이 아시아에서 복음전하는 일에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전도여행에서는 갈라디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했고, 두 번째 전도여행에서는 아시아가 그 목표였는데, 성령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는 바람에 에게해를 건너 지금의 그리스로 건너가서 빌립보, 데살로니가가 있는 마게도냐 지역과 아테네, 고린도가 있는 아가야 지역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세 번째 전도여행 때 아시아에서 집중적으로 사역을 했습니다. 이 때 아시아의 수도인 에베소에서 3년이라는 긴 기간을 머물렀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전도여행 가운데 한 곳에 머물러 있기로는 가장 긴 기록입니다. 그만큼 아시아에서의 복음전파에 바울이 심혈을 기울였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아시아 출신의 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사역을 돕기 위해 로마로 왔습니다. 바울로서는 눈물로 씨앗을 뿌렸다가 기쁨으로 그 열매를 거두는 감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두 번째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는 사태가 심각했습니다. 당시의 황제 네로가 기독교를 박멸해야 할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기독교인에 대한 검거령이 내려졌습니다. 로마에 와서 기독교를 열심히 전파하던 바울이 중죄인이 되어 감옥에 갇힌 것은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뿐만 아니라 바울이라는 중죄인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자동으로 죄인이 되었습니다. 바울과 알고 지냈거나 심지어는 불심검문에서 바울의 명함을 가지고 있다가 발각된 사람도 불순분자 취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 바울은 감옥에 갇혀서도 마음이 든든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시아에서 온 많은 동역자들, 믿음의 자녀들이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니까요. 사실 그들은 바울이 목숨을 걸고 얻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복음을 전했던가요? 이제 그들의 기도와 도움 속에서 바울은 위로를 얻고 힘을 얻어 감옥에서의 고통을 견딜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들려오는 소식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중죄인 취급을 당하는 것을 보고 이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슬그머니 도망을 친 것입니다. 예수 믿다가 죽느니 차라리 예수 안믿고 살겠다고 믿음을 포기해버린 것입니다. 바울로서는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자기들에게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해준 사도가 감옥에 갇히는 것을 보고 혹시 자기들에게 불똥이 튈까 두려워 바울을 모른다, 예수를 모른다 하면서 줄행랑을 쳐버리는 것을 보고, 바울은 얼마나 섭섭했을까요? 얼마나 마음이 상했을까요? 그가 그토록 힘들게 복음을 전했던 것이, 그리고 그동안 가르치고 모범을 보였던 것이 다 헛수고였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또 얼마나 허탈했을까요?
사도의 고통스러운 마음이 매우 정제되고 억제되어 표현된 것이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렸다'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지만 그 중에서도 부겔로와 허모게네는 정말 그럴 수 없는 사람들 아니냐는 것입니다.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에 와서 짓밟아버리는 것처럼, 감옥에서 병들고 외로운 몸으로 죽어가는 사도를 버리고 도망가버린 사람들, 그래서 불명예스럽게도 그 이름이 공개되어 오고 오는 세대에 사도와 믿음을 배신한 사람들로 기억되게 되었습니다.
부겔로와 허모게네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된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과연 내 이름 석자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로마에까지 와서 사도를 도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보통 열심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들의 이름은 바울에게 자랑스러운 이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진실이 드러나게 됩니다. 결국 이들의 자랑스러운 이름은 지워지고 사도를 배신하고 사도의 마음 속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불명예스러운 이름으로 영원히 남게 되었습니다.
부겔로와 허모게네 때문에 상처를 입고 마음이 상한 바울로서는 상대적으로 오네시보로가 얼마나 고마웠을까요? '저가 나를 자주 유쾌하게 하였다.' 힘들고 괴로울 때 오네시보로만 보면 마음 속의 고통이 사라지고 기분이 좋아졌다는 것입니다. 위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린것들 데리고 길바닥에 나앉게 되었는데 포장마차 자금을 대준 사람처럼 말이지요.
다른 사람들은 바울이 감옥에 갇히는 것을 보고 불똥이 튈까 봐서 도망을 쳤는데, 오네시보로는 바울이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감옥으로 찾아왔습니다. 어느 교도소 몇 호실에 갇혔다는 것을 알고 면회를 왔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네시보로는 사도가 늙고 병든 몸으로 감옥에 갇혔다는 것을 알고 그를 만나기 위해 온 감옥을 샅샅이 뒤진 것입니다. 아는 사람이 있으면 청탁도 했을 것이고, 기록이 있다면 있는 대로 뒤졌을 것이고, 여기저기 다니며 사도가 어디에 있는지를 수소문했을 것입니다. 바울과 비슷한 죄수가 있다는 말에 찾았다가 사도가 아닌 것을 확인하고 힘없이 발길을 돌렸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베드로가 붙잡히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 몰래 대제사장의 집에 들어갔다가 혼난 일을 기억하십니까? 모르지요, 오네시보로도 요한처럼 든든한 빽이 있어서 괜찮았는지. 바울은 그가 '나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여… 나를 부지런히 찾았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혹은 그렇게 함으로써 당하게 될 수 있는 불이익을 감수하고 그랬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애를 써서 결국에는 바울을 찾아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알고도 떠나는 마당에 그렇게 찾아온 오네시보로가 바울로서는 얼마나 고마웠겠습니까? 그러나 감옥에 있는 바울로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상해 주시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원컨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원컨대 주께서 저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이것은 아무런 힘도 없는 바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보상이었지만, 사실은 최고의 보상이 아닙니까? 오네시보로의 이름이 자신의 마음 속에 새겨진 것처럼 하나님의 마음 속에도 그렇게 새겨달라는 부탁인 것입니다.
부겔로와 허모게네, 그리고 오네시보로의 이름은 바울의 마음 속에 결코 지워지지 않을 만큼 깊숙이 새겨졌습니다. 그러나 그 성격은 너무나 다른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인생의 살아가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작업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교회 안에서 다른 형제자매의 마음 속에 어떤 이름을 새기고 있습니까? 사사건건 물고 늘어져 반대를 하는 사람으로 이름을 새기고 있습니까? 괜히 쓸데없는 언어의 폭력으로 남의 마음 속에 상처를 만드는 사람으로 이름을 새기고 있습니까? 그런 이름이 더 깊이 새겨지기 전에 가서 지우세요. 그 대신에 위로하는 사람의 이름을 새기고, 힘들어하는 사람을 유쾌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의 이름을 새기세요. 희생하고 봉사하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으로 이름을 새기세요. 힘들 때 와서 짓밟는 사람이 아니라 일으켜 세워주는 사람으로, 짐을 나누어 져주는 사람으로 이름을 새기세요. 바울의 마음 속에 새겨진 부겔로와 허모게네, 그리고 오네시보로의 이름은 하나님의 마음에도 꼭 그렇게 새겨졌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형제자매의 마음에 새기는 우리의 이름은 꼭 그대로 하나님의 마음에도 새겨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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