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선교지에 가지고 가야 할 세 가지 (딤후1:7-8)

본문

제가 어제 오클랜드에서 제 아내 병원 가는 길에 같이 나갔다가, 날씨도 좋은데 나온 김에 바람이나 쐬러 가자며 바닷가엘 나갔습니다.
그런데 비치에 굴(oyster)이 많이 있었어요. 제 아내가 굴을 좀 따먹자고 하는데 맨손으로 깔 수가 있나요? 그래서 집에 가서 까먹을 양으로 몇 개 주워왔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과 함께 굴을 까먹는데, 아이들은 처음 보는 일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또 굴이 맛있다고 잘 먹으니까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렇지만 굴 몇 개 까다 보니까 손은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손에 상처를 입으면서도 굴까는 일이 재미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만약 옆집에 사는 사람이 굴을 갖고 와서 자기가 바쁘니까 대신 굴을 좀 까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합시다. 손에 상처를 입으면서 힘들게 굴을 까는 것이 재미있을까요? 천만의 말씀이지요. 재미있기는커녕 불평이 나오고 짜증이 날 것입니다. 굴까는 일이 똑같고, 손에 상처가 나고 힘든 것도 똑같은데, 우리 아이들과 함께 까는 것은 즐겁고, 옆집 사람의 부탁으로 마지못해 까는 것은 짜증이 난단 말이죠. 무엇이 다릅니까? 왜 같은 일을 하면서도 이렇게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까? 그것은 그 일을 하는 동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하는 동기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어떻게 설명되어 있는지 보세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다고 했어요. 물론 하나님은 두려운 대상입니다. 능력이 있으시고 심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독재자가 힘으로 백성들을 통치하듯이 우리를 대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과거 가부장제사회에는 엄한 아버지, 무서운 선생님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래서 저도 어린 시절에 매 안맞기 위해서 공부도 해야 했고, 벌받지 않으려고 나쁜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저의 아버지는 다른 아버지들보다 훨씬 엄했습니다. 다른 집 아이들 같으면 잔소리 좀 듣고 말았을 일도 저는 매를 맞아야 했습니다. 저는 평생에 아버지를 아빠라고 불러보지 못했어요.

결과적으로야 공부도 했고 나쁜 일도 하지 않게 되었으니 잘된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잘못된 동기에 의한 행동양식에는 커다란 위험이 있습니다. 만약 매를 맞지 않는다면 공부도 하지 않고 나쁜 일만 하게 될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식으로 두려워하는 영을 주셔서 마치 벌받을 것이 두려워 공부를 하는 식으로 살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로마서 8:15에서는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종과 아들이 비교되고 있군요. 가령 농장에서 종과 주인 아들이 같이 일을 하고 있어도, 종은 일을 하지 않으면 혼나기 때문에 하는 반면, 아들은 자기집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의 차이겠지요.

바울 사도는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 어떤 동기로 임해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주인의 농장에서 일하는 것이라고 칩시다. 만약 우리가 아직도 종의 영을 가지고 있다면 무서워서 어쩔 수 없이 복음을 전하게 되겠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만큼 친밀한 관계라면 무서워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일이 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복음 전하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동기가 다르기 때문에 행동양식에 커다란 차이가 나타나게 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고난을 받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당장 지금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 병들고 늙은 몸을 가누지 못해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렇게 고난을 당하고 있는 바울이 자신의 아들과도 같은 디모데에게 '너는 절대로 이런 고생을 하지 말고 모든 일에 성공하기를 바란다'고 말하지 않고, '너는 감옥에 갇힌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너도 나처럼 고난을 당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NIV 성경의 번역은 '복음으로 인한 나의 고난에 너도 동참해라'고 되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 두려움이라는 동기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복음으로 인해 고난까지 당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일이 사랑에서 시작된 일이라면 얼마든지 고난도 달게 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이제 채선교사님 가정은 곧 아프리카를 향해 떠나게 됩니다. 선교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아프리카로 간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많은 고난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물론 바울처럼 감옥에 갇히거나 매를 맞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장 문화가 다르고 삶의 질이 다른 곳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또 후원문제, 자녀교육문제 등 신경써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입니다. 고향과 친지를 멀리 떠나 있는 외로움도 극복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누가 이 가정에게 그 불리한 조건을 무릅쓰고 아프리카로 가라고 했습니까? 여러분이 아프리카로 가지 않으면 정부에서 감옥에 보내겠다고 하던가요? 아니면 하나님이 구원을 취소시키겠다고 하던가요? 감옥에 가는 것이 두려워서, 아니면 구원을 받지 못할까 두려워 아프리카로 가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복음으로 인한 바울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는 근거는, 7절 다시 보세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신 것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것들을 가지고 담대하게 아프리카로 향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교사는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을 통해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가서 병을 고치고 기적을 행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1:8에서 뭐라고 말씀합니까?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우리 주님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을 통한 능력을 받아야만 가능합니다.

많은 분들이 선교사역에 지원하고 선교지로 나가지만, 그 중에는 자기성취를 위해 나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선교지에 가서 사역하고 온 것이 내놓을 만한 경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도 지금 그런 경우가 아닌지 상당히 염려가 됩니다만.) 또 어떤 분들은 인간적인 지혜와 계산으로 선교사역에 임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분들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자기 목적을 이루시겠지만, 가룟 유다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그리스도의 죽음이 이루어졌다고 하나님이 가룟 유다에게 상을 주시지는 않겠지요?

자기성취를 위한 선교사역이나 인간의 계산에 의한 선교사역으로는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성취와 고난은 양립할 수 없습니다. 고도의 계산이 고난을 플러스로 파악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거룩한 고난에 대한 모독에 불과하겠지요.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하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승리하게 하실 것이고,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복음을 위한 고난의 영광도 얻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교지에 가지고 가야 할 것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목록의 맨 위에 적혀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사랑입니다. 이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너무나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이 사랑을 충분히 준비하지 않으면 선교지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랑이 그만 금방 바닥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아프리카로 가는 이유입니다. 그만큼 사랑을 준비해 간다면 여러분은 충분히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기에 넉넉한 선교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가지 선교사에게 필요한 것은 근신하는 마음입니다. 근신한다고 하면 잘못해서 반성한다는 의미인데, 여기서 근신하는 마음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우리말 성경의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경우인데, 원래는 self-discipline, self-control이라는 말입니다. 놀랍게도 선교지에서 선교사들이 영적 공백상태를 경험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바로 이 self-discipline이 결여될 때 일어나는 현상이지요. 선교지에서는 아무도 여러분의 영적 상태를 체크하거나 지도해 주지 않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자신을 훈련하고 세워가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몸도 지탱하지 못하는 군인이 어떻게 나가서 싸울 수가 있습니까? 이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기까지 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부단히 노력하고 자기를 계발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또한 늘 소명을 재확인하는 작업이 있어야 선교사가 자신을 유지해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선교사로 부르셨습니다. 여러분이 아프리카로 가는 것은 구경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돈을 벌러 가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복음을 들고 산을 넘는 발이 아름답습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입술이 아름답습니다. 복음이 증거되게 하기 위하여 헌신한 분들의 모든 수고가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신 것을 축하하며 온 성도와 함께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장래의 사역과 삶 위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598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