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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권하는 것 (딤전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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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권하는 것 (딤전 2:1-7)

에베소 교회는 지도력의 문제로 극심한 몸살을 앓았었습니다. 잘못된 지도자, 거짓 진리를 가르치는 선생들 때문이었지요. 이제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로 대표되는 거짓 선생들은 사탄에게 내어준 바가 되었고, 바울의 영적 아들 디모데가 그 어지러웠던 에베소 교회를 수습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에게는 이전의 거짓 선생들을 반면교사로 삼고 믿음과 착한 양심으로 교회를 섬겨야 할 것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강력하게 충고하는 내용이 여기 2장에 이어집니다. 1절에서 문장이 시작되는 말은 '
그러므로'라는 접속사입니다. 이것은 지금부터 말하려고 하는 것이 전혀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앞에서 말한 것과 매우 밀접한 관계 속에 있다는 뜻이지요. 즉 거짓 선생들과는 다르게 교회를 가르치고 다스리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말해주겠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더 이상 거짓된 가르침으로 훼방을 받지 않지 않고 참된 교회로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해야 할 일이 기도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좋은 프로그램에 의해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많은 돈이 있어야 발전하는 것도 아닙니다. 또 교회는 높은 지식수준에 의해 성숙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오로지 기도의 힘으로 지탱되고 기도에 의해서 놀랍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도입니다. 물론 다른 일도 많이 해야겠지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이 기도이고, 가장 중요한 일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것을
첫째로 권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를 도대체 어떻게 할 것입니까? 많은 분들이 기도를 하려고 하면 할 말이 없다고 합니다. 한 2-3분, 길어야 5분 정도 열심히 기도하고 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지는데, 어떤 사람들은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한 시간도 넘게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기도를 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기도할 때 할 말이 없다는 것은 기도를 많이 해보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기도를 자꾸 하면 할 말이 생겨요. 처음에는 5분 넘기기가 힘들었는데 그 다음에는 10분도 하게 되고 나중에는 30분을 더 해도 할 말이 없어서 기도를 못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기도할 때 무슨 말을 하느냐, 이게 문제겠지요? 여기에 대해서 바울이 대답하는 것을 보십시오. 기도의 내용으로는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입니다. 여기서 앞의 세 가지, 간구, 기도, 도고는 거의 비슷한 말 같지요? 그러나 이것들을 잘 살펴보면 우리의 기도가 단순한 요청이나 탄원이 아니라 훨씬 풍부하고 수준높은 믿음의 행위인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간구는 헬라어로 '데에시스'입니다. 이것은 뭔가 부족한 상태에 있는 사람이 그것을 가진 상대방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입니다. 즉 내가 이러이러한 것이 없으니까 주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모든 종교적인 기도의 내용이 바로 이것입니다. 고대 농경사회에서 기우제를 지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비가 오지 않아서 농사 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비가 내리게 할 능력이 없습니다. 물을 만들어 낼 수도 없습니다. 물 없이 농사를 지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제발 비를 내려 주십시오. 이렇게 자기들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달라고 부탁하는 것 아닙니까? 자동차를 새로 사서 고사를 지내는 것도 그렇지요? 이 자동차로 사고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우리 아들 대학에 합격하게 해 주십시오. 누구인지 모르지만 자동차 사고를 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대상, 또는 아들이 대학에 합격하도록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에게 우리가 할 수 없는 부분을 부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도 이 간구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하나님이 우리의 공급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뭔가를 만들어내서 하나님을 봉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는 분인 것이지요. 하나님께 간구한다는 것은 우리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인정하는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바울이 두 번째 말하는 것은 기도입니다. 이것은 헬라어로 '프로쉬케'인데, 성경에서 이 단어는 오로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사용되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부탁할 수는 있지만 기도할 수는 없습니다. 데에시스는 사람 사이에서도 있을 수 있는 관계지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또는 없는 사람이 있는 사람에게 부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프로쉬케는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맺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기도는 믿음의 표현이고 신앙의 고백입니다. 믿음이 전제되지 않은 기도는 기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또 하나님이 받으실 만하지도 않습니다. 모든 행위는 그 관계를 반영하게 마련입니다. 같은 내용의 말이라도 친구에게 하는 것과 선생님께 하는 것이 다르겠지요?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올바른 태도와 믿음이 반드시 요구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 내용은 도고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헬라어로는 '엔시스'라고 하는데, 인터뷰를 한다, 또는 남의 일에 개입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자신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게 될 때 우리의 믿음이 그만큼 성장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것은 이웃에 대한 사랑이 실천되는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이 기도에서 실천된다면, 자신을 위해 간구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위한 도고를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면 기도가 필요없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자녀들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사랑한다면 기도하게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기도에는 이 도고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나 표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다른 사람을 위한 도고여야 한다면, 기도할 때 할 말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래도 할 말이 없다면 아무도 사랑하지 않거나 아니면 기억력이 엄청 나쁜 경우겠지요?

자,
그런데 바울은 더 나아가 누구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합니까? '모든 사람을 위하여'라고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범주를 훨씬 넘는 것이지요? 불특정 다수를 포함해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할 책임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고, 그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하나님도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모든 사람들, 하나님의 통치가 적용되는 모든 영역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특별히 우리가 위해서 기도해야 할 사람들을 제시합니다. 누구인가 하면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지배자의 이데올로기가 되어야 한다거나 권력과 유착해야 한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역사를 통해서 기독교가 지배 이데올로기로 사용되거나 권력과 유착된 적이 많았습니다.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후 모든 이교도들은 강제로 기독교로 개종을 해야 했습니다. 중세시대 이후에도 많은 부분에서 기독교가 지배 이데올로기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권력을 가진 지배자가 기독교의 정신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과 기독교가 지배 이데올로기로 사용된다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개종하도록 기도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대통령이 예수 믿게 되도록 기도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가 예수믿고 구원받도록 우리가 마땅히 기도해야 할 일이지요. 그러나 대통령이 기독교인이 되면 교회나 기독교인들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계산에서 대통령이 예수믿게 되도록 기도한다면 큰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막강한 독재권력이 들어섰을 때 기독교가 앞을 다투어 줄을 섰던 부끄러운 모습도 우리는 보아왔고, 기독교인이 권력을 잡았다고 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우리는 보았습니다. 기독교는 그 시작부터 지배자의 이데올로기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기독교가 지배자의 이데올로기가 되었을 때, 그 기독교는 부패하고 생명을 잃었던 것을 역사가 말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한 이유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역할의 중요성 때문입니다. 그들의 권력이 잘못 사용되었을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가운데 신음하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그들이 올바른 가치관과 애정을 나라를 다스릴 때 백성들이 평화를 누리며 풍요롭게 살게 될 것이고,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입니다. 유고연방의 붕괴 이후 일어난 전쟁의 참사들을 보시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탄식하셨겠습니까? 바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잘못 생각한 결과입니다. 엊그제 침몰한 러시아의 핵잠수함에 탑승했던 승무원 118명이 모두 사망했습니다. 만약 러시아의 지배자들이 군사기밀보다 인간의 목숨을 중시해서 사실을 감추려 하지 않고 빨리 서방의 도움을 요청했더라면 생존자가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이처럼 지배자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신앙생활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이 현명하게 행동하고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위해서 기도를 한다면 어떤 내용이 되겠습니까? 김정일이 종교, 특별히 기독교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북한에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도록 기도할 수 있겠지요. 그렇게 되면 수십년 동안 박해를 견디며 숨어살았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큰 축복이 될 것입니다. 김정일의 마음먹기에 따라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이 이처럼 달라질 수 있다면 우리가 얼마나 김정일을 위해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바울이 말하고 있는 이 임금이나 높은 사람들은 당시 기독교에 호의적인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기독교를 박해하던 교회의 적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그들을 위해서 더 기도했어야 할지 모르지요. 사실 요즈음 한국의 정치인들이 하는 일들을 보면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생기지 않을 지경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위한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그럴수록 오히려 더 기도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우리가 바라야 할 것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유대인들이 섬기던 구약의 하나님과 그리스도인들이 섬기는 신약의 하나님이 다른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셔서 구원을 베푸셨던 바로 그 하나님이 이제 모든 민족, 이방인에게까지 구원을 베푸시려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구원을 가져오신 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그 구원을 성취하신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유대인도 구원을 얻고 이방인도 구원을 얻습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처럼 이 중보자도 한 분입니다. 이렇게 한 분이신 하나님과 한 분이신 중보자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민이, 어떤 민족이건, 과거에 어떤 신을 섬겼던 이방인이건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도록 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입니다.

바로 그 일을 위해서 바울은 전도자와 사도로 세우심을 입은 사람입니다.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서 바울은 참된 스승이었던 것입니다. 사탄에게 내어준 바 되어야 했던 거짓 선생들이 뿌렸던 씨앗들을 다 뿌리뽑고 참 스승인 바울의 가르침을 굳게 붙잡는 것, 이것이 에베소 교회와 디모데가 해야 할 일이었던 것이지요.

저의 고민은 이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가 기도하는 교회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 교인들이 모두 기도의 불길로 활활 타오르게 할 수 있을까? 다 피곤하고 사정이 여의치 않은데 모두 새벽기도에 나오라고 할 수도 없지요. 새벽기도회 시간에 나오기 힘드니까 시간을 변경해 볼까? 한국에서처럼 금요일마다 철야기도회나 심야기도회를 할까? 아니면 이웃 교회처럼 매주 토요일마다 전교인 새벽기도회로 모일까? 참 기도의 불을 붙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번 그 불길에 사로잡혀 보면 그것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일인가를 알게 되지 않습니까? 어쨌든 분명한 것은 우리의 기도가 교회의 생명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생명을 불어넣으셔서 기도하는 교회로 거듭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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