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무를 놓는 자 올무에 걸릴 것 (단6: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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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무를 놓는 자 올무에 걸릴 것 (단 6:11-18)
엊그제 노무현 대통령이 대북송금 특검법을 공포하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지금 다니엘이 처한 상황과 똑같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검을 시행하자니 대북관계의 경색이나 지지자들의 반발이 뻔하고,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자니 소수정권으로서의 부담이 적지 않습니다. 노대통령은 특검을 해서 모처럼 쌓아 놓은 남북의 신뢰관계가 무너져서는 안 된다고 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지지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또 노대통령의 입장에서도 특검을 한다는 것은 남북관계를 더 이상 하지 말자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나라의 입장이 곤란해지든 말든, 특검을 해서 자기들이 당한 패배를 어느 정도 만회해야겠다고 벼르는 세력이 현실적으로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선택을 하더라도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게 됩니다. 이럴 땐 정말 난처하고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지요.
다니엘의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늘 하던 대로 하나님께 기도를 하면 붙잡혀 사자굴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 달 동안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중단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다니엘을 고소하고 음해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좋아할까요? 구국의 결단이라며 다니엘의 그런 결정을 환영할까요? 이제 하나님 섬기는 것을 그만두었으니 자기들과 같은 편이 되었다고 기뻐할까요? 그래서 다니엘은 무사히 위기를 넘기고 총리직을 수행할 수 있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만일 다니엘이 그 위협에 굴복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그만둔다면, 그의 대적들은 다니엘을 위선자라고 손가락질하고, 지금까지 가짜 믿음으로 사람들을 기만한 사기꾼이라고 비난할 것입니다. 자기 살 길 찾느라고 지금까지 섬기던 하나님을 그렇게 쉽게 포기하는 믿을 수 없는 사람에게 나라의 중책을 맡길 수 없다며 사퇴를 촉구할 것이 뻔합니다. 즉 다니엘은 앞으로 가든 뒤로 가든 올가미에 걸릴 수밖에 없는 처지이고, 그렇게 완벽한 올가미를 설치한 다니엘의 대적들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겠군요. 그러나 이렇게 완벽한 올가미에 오히려 이 사람들이 걸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그것은 다니엘이 그런 올가미에 걸려 희생을 당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런 올가미에 걸려야 할 사람은 바로 그 비열한 음모를 꾸민 사람이어야 하는 당위성 때문입니다. 자기가 파 놓은 함정에 빠졌던 사람이 어디 한둘이던가요?
저는 이번 특검법 처리과정을 보면서 자꾸만 다니엘이 처한 이중 올가미가 연상되는 것입니다. 대통령을 오도 가도 못하게 옭죄어 놓고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는 이중 올가미를 설치한 야당에서는 그 전술의 탁월함과 기대되는 효과를 상상하며 기뻐하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과연 그 올가미에 걸려 희생되는 것은 누가 될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다니엘의 대적들은 커다란 전리품을 가지고 왕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자기가 공포한 법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몰랐던 왕은, 바로 그 법에 따라 가장 유능하고 가장 신임하는 신하 다니엘을 처형시켜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다리우스 왕이 그 법을 공포한 오직 한 가지 이유는 충성스러운 신하들이 자기를 높이고 존중하려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제야 왕도 이 악한 무리들의 올무에 걸린 것을 알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지요. 아첨하고 오로지 왕만 존중하는 듯한 신하들의 언사가 사실을 왕을 올무에 빠뜨리려는 계획이었다는 것은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바벨론의 왕권과 페르시아의 왕권은 이렇게 차이가 있었습니다. 만일 지금 이 왕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었다면 그런 올무에 걸릴 필요도 없습니다. “뭣이 어째, 이 사기꾼들아, 그러고 보니 너희들이 나를 속여 다니엘을 잡아 죽이려는 수작이었구나.” 이 한 마디면 음모를 꾸민 자들이 모조리 줄줄이 사탕처럼 왕의 진노에 희생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페르시아에서는 왕이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바벨론은 절대군주제였던 반면, 페르시아는 입헌군주제에 좀더 다가간 제도라고 할 수 있겠군요. 물론 법의 최종적인 제정권자가 왕 자신이라는 점에서 입헌군주제는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 법이 성립되면 왕의 권력도 그 법에 묶이게 된다는 점에서 좀더 근대화된 제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좋은 제도를 악용해서 이처럼 왕을 올무에 빠뜨리고 자신들의 더러운 욕망을 실현시키는 사람들이 있는 한 말이지요. 며칠 전에는 대통령과 평검사들의 토론이라는 획기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검찰이 올바로 서기를 바라는 국민들이 기대가 컸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우리가 본 것은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대들고 직속상관인 장관을 무시하는 젊은 검사들의 빗나간 공명심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건 후에 검사스럽다는 신조어가 생겼답니다. 제도를 정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운용하는 인간 자신이 변하지 않는 이상 큰 기대를 할 수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을 뿐이었지요.
이제 입장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음모를 꾸민 자들은 왕에게 빨리 다니엘을 처치하라고 성화입니다. 반면에 왕은 어떻게든 다니엘을 살려보려고 해가 질 때까지 궁리를 하며 걱정을 합니다. 왕의 마음은 그야말로 자기 발등을 찍고 싶은 심정 아니겠어요? 자기 실수로 다니엘을 죽여야 하게 생겼으니 말입니다.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저 무리의 입에 발린 아첨에 넘어가지만 않았던들 이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종종 경험하는 일입니다만, 잠깐 실수한 것 때문에 그것을 만회하려고 얼마나 고생을 하고 또 많은 시간을 들어야 하던가요?
여기에 왕의 입장과 음모를 꾸민 자들의 입장이 매우 극명하게 대조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왕 외에 누구에게라도 뭔가를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넣는다는 법이 공포되었고, 다니엘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목격되었습니다. 이 동일한 사건을 앞에 두고 어서 빨리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져넣으라고 재촉하는 무리와, 어떻게 해서라도 시간을 끌며 핑계거리를 만들어 다니엘을 살리려고 하는 왕의 마음이 서로 충돌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이만큼이나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무조건 이라크를 침공해서 전쟁을 일으켜야 한다는 부시의 생각과, 전쟁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며 지구촌 곳곳에서 시위를 하고 심지어는 인간방패가 되어 이라크에 집결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은 얼마나 다릅니까? 똑같은 특검이라는 사실을 놓고 반드시 시행해서 김대중 정부 시절 북한에 제공한 돈의 출처와 성격, 제공루트를 까발려서 사법처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북한에 돈을 준 것은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북한의 개방을 위한 것으로 범죄행위가 아닐 뿐 아니라 공개하기 곤란한 사안들이므로 특검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동일한 사안에 대하여 공통된 의식을 갖지 못하고 극단적으로 패가 나뉘어 대립한다는 것은 참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왕과 이 무리 사이에는 타협의 여지라는 것이 있을 수 없고 공통된 결론과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결국 왕은 다니엘을 잡아다가 사자굴에 던지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저는 여기서 또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 오버랩되는데, 특검을 수용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며칠을 고민하며 기다리다가 마지막에 어쩔 수 없이 특검법을 공포하는 노대통령의 모습과,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해가 질 때까지 버티다가 어쩔 수 없이 다니엘을 잡아들이라는 명령을 내리는 다리우스 왕의 모습이 어찌 그리 비슷한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여기서는 음모를 꾸민 자들의 대승리가 되겠습니다. 왕을 굴복시키고 다니엘을 잡아들이게 한 승리를 거둔 이들은 악한 자들입니다. 아무 잘못도 없고 흠 하나 찾을 수 없는 다니엘을 제거하기 위해 별 짓을 다 했던 인간들입니다. 고매한 인격과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람을 존경하기보다 시기하고 미워해서 죽이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왕에게 온갖 아첨의 말로 결국 왕마저 속이고 왕을 올무에 빠뜨린 간신배들입니다. 나라의 안존과 백성의 평안보다 자신의 부귀와 영달을 추구하는 반역자들입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철면피들입니다. 마음 속에 악독이 가득하고 손에 피를 묻히는 데 아무런 주저함이 없는 자들입니다.
이런 악한 자들이 득세하면 세상은 어떤 곳이 되겠습니까? 이런 자들이 지배하고 큰 승리를 거둔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또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이들이 승리의 축배를 들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악한 자들이 득세한 세상을 간접적으로나 직접적으로 경험해 보았습니다. 탐관오리의 폭정에 삶이 피폐해졌던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 독재정권이 들어서 숨소리도 크게 내지 못하고 떨며 살아야 했던 경험들,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은 늘 쪼들리며 살아야 하는데 땅 투기, 주식 투기, 사채놀이 같은 부도덕한 행위를 한 사람들이 졸부가 돼서 거드럭거리며 행세하는 세상… 이런 세상을 살면서 의인들은 한숨을 짓고 힘없는 사람들은 있는 것마저 빼앗기고 삽니다.
이처럼 악한 자들이 득세한 세상은 절망과 암흑이 드리운 곳입니다. 더러운 음모를 꾸민 자들이 어리숙한 왕을 속여 의로운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져넣는 세상입니다. 의인은 슬퍼하고 약자는 고통을 당하는 세상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런 일을 만날 때 구경만 하고 당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의인의 눈물을 강요하는 악한 세상을 우리는 용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특히 시민의 권리와 책임이 커진 근대 이후에는 정의롭고 안전한 사회를 쟁취하는 것이 우리 시민들의 몫이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왕이나 관료집단에 의해 그 집단의 운명이 결정될 수 있었지만, 오늘은 시민이 참여하고 시민이 사회적 합의와 결론을 도출해 내는 시대입니다.
어쨌든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졌고, 왕은 밤새도록 금식하고 잠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물론 한편에서는 다니엘을 제거한 것을 축하하는 성대한 파티가 열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시대가 암울하고 불법이 횡행하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올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힘이 부족해서 늘 변방으로 몰려나고 불이익을 당해야 하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오늘 우리 주변의 정치상황과 국제정세에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부시가 당장 이라크를 침공한다고 하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부딪쳐야 할 일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에 호소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의로우신 재판장께서 거짓과 악이 횡행하는 세상을 바로잡아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악한 자들의 올무에 걸렸지만, 우리는 그것을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의 습관적으로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이런 말을 합니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나는 것에 대한 체념이고 고통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맞는 말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안 계시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공의를 베푸시고 공평하게 행하시는 하나님은 계십니다.
그런데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이 되겠습니까? 공의의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그것을 바로잡으시는 일입니다.
다니엘이 올무에 걸려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다면 일어나도 괜찮은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분명 계십니다.
그렇다면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일은 공의의 하나님에 의해 반드시 돌이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소망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암울하고 소망을 둘 곳이 없는 곳으로 변했다 할지라도, 의인이 슬퍼하고 고난을 당하는 곳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소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의를 위해 싸워야 할 이유가 바로 그것인 것입니다. 그런 소망과 믿음으로 악하고 비뚤어진 세상을 고치고 바로잡는 데 참여하고 앞장서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엊그제 노무현 대통령이 대북송금 특검법을 공포하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지금 다니엘이 처한 상황과 똑같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검을 시행하자니 대북관계의 경색이나 지지자들의 반발이 뻔하고,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자니 소수정권으로서의 부담이 적지 않습니다. 노대통령은 특검을 해서 모처럼 쌓아 놓은 남북의 신뢰관계가 무너져서는 안 된다고 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지지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또 노대통령의 입장에서도 특검을 한다는 것은 남북관계를 더 이상 하지 말자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나라의 입장이 곤란해지든 말든, 특검을 해서 자기들이 당한 패배를 어느 정도 만회해야겠다고 벼르는 세력이 현실적으로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선택을 하더라도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게 됩니다. 이럴 땐 정말 난처하고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지요.
다니엘의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늘 하던 대로 하나님께 기도를 하면 붙잡혀 사자굴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 달 동안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중단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다니엘을 고소하고 음해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좋아할까요? 구국의 결단이라며 다니엘의 그런 결정을 환영할까요? 이제 하나님 섬기는 것을 그만두었으니 자기들과 같은 편이 되었다고 기뻐할까요? 그래서 다니엘은 무사히 위기를 넘기고 총리직을 수행할 수 있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만일 다니엘이 그 위협에 굴복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그만둔다면, 그의 대적들은 다니엘을 위선자라고 손가락질하고, 지금까지 가짜 믿음으로 사람들을 기만한 사기꾼이라고 비난할 것입니다. 자기 살 길 찾느라고 지금까지 섬기던 하나님을 그렇게 쉽게 포기하는 믿을 수 없는 사람에게 나라의 중책을 맡길 수 없다며 사퇴를 촉구할 것이 뻔합니다. 즉 다니엘은 앞으로 가든 뒤로 가든 올가미에 걸릴 수밖에 없는 처지이고, 그렇게 완벽한 올가미를 설치한 다니엘의 대적들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겠군요. 그러나 이렇게 완벽한 올가미에 오히려 이 사람들이 걸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그것은 다니엘이 그런 올가미에 걸려 희생을 당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런 올가미에 걸려야 할 사람은 바로 그 비열한 음모를 꾸민 사람이어야 하는 당위성 때문입니다. 자기가 파 놓은 함정에 빠졌던 사람이 어디 한둘이던가요?
저는 이번 특검법 처리과정을 보면서 자꾸만 다니엘이 처한 이중 올가미가 연상되는 것입니다. 대통령을 오도 가도 못하게 옭죄어 놓고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는 이중 올가미를 설치한 야당에서는 그 전술의 탁월함과 기대되는 효과를 상상하며 기뻐하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과연 그 올가미에 걸려 희생되는 것은 누가 될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다니엘의 대적들은 커다란 전리품을 가지고 왕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자기가 공포한 법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몰랐던 왕은, 바로 그 법에 따라 가장 유능하고 가장 신임하는 신하 다니엘을 처형시켜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다리우스 왕이 그 법을 공포한 오직 한 가지 이유는 충성스러운 신하들이 자기를 높이고 존중하려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제야 왕도 이 악한 무리들의 올무에 걸린 것을 알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지요. 아첨하고 오로지 왕만 존중하는 듯한 신하들의 언사가 사실을 왕을 올무에 빠뜨리려는 계획이었다는 것은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바벨론의 왕권과 페르시아의 왕권은 이렇게 차이가 있었습니다. 만일 지금 이 왕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었다면 그런 올무에 걸릴 필요도 없습니다. “뭣이 어째, 이 사기꾼들아, 그러고 보니 너희들이 나를 속여 다니엘을 잡아 죽이려는 수작이었구나.” 이 한 마디면 음모를 꾸민 자들이 모조리 줄줄이 사탕처럼 왕의 진노에 희생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페르시아에서는 왕이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바벨론은 절대군주제였던 반면, 페르시아는 입헌군주제에 좀더 다가간 제도라고 할 수 있겠군요. 물론 법의 최종적인 제정권자가 왕 자신이라는 점에서 입헌군주제는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 법이 성립되면 왕의 권력도 그 법에 묶이게 된다는 점에서 좀더 근대화된 제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좋은 제도를 악용해서 이처럼 왕을 올무에 빠뜨리고 자신들의 더러운 욕망을 실현시키는 사람들이 있는 한 말이지요. 며칠 전에는 대통령과 평검사들의 토론이라는 획기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검찰이 올바로 서기를 바라는 국민들이 기대가 컸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우리가 본 것은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대들고 직속상관인 장관을 무시하는 젊은 검사들의 빗나간 공명심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건 후에 검사스럽다는 신조어가 생겼답니다. 제도를 정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운용하는 인간 자신이 변하지 않는 이상 큰 기대를 할 수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을 뿐이었지요.
이제 입장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음모를 꾸민 자들은 왕에게 빨리 다니엘을 처치하라고 성화입니다. 반면에 왕은 어떻게든 다니엘을 살려보려고 해가 질 때까지 궁리를 하며 걱정을 합니다. 왕의 마음은 그야말로 자기 발등을 찍고 싶은 심정 아니겠어요? 자기 실수로 다니엘을 죽여야 하게 생겼으니 말입니다.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저 무리의 입에 발린 아첨에 넘어가지만 않았던들 이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종종 경험하는 일입니다만, 잠깐 실수한 것 때문에 그것을 만회하려고 얼마나 고생을 하고 또 많은 시간을 들어야 하던가요?
여기에 왕의 입장과 음모를 꾸민 자들의 입장이 매우 극명하게 대조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왕 외에 누구에게라도 뭔가를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넣는다는 법이 공포되었고, 다니엘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목격되었습니다. 이 동일한 사건을 앞에 두고 어서 빨리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져넣으라고 재촉하는 무리와, 어떻게 해서라도 시간을 끌며 핑계거리를 만들어 다니엘을 살리려고 하는 왕의 마음이 서로 충돌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이만큼이나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무조건 이라크를 침공해서 전쟁을 일으켜야 한다는 부시의 생각과, 전쟁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며 지구촌 곳곳에서 시위를 하고 심지어는 인간방패가 되어 이라크에 집결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은 얼마나 다릅니까? 똑같은 특검이라는 사실을 놓고 반드시 시행해서 김대중 정부 시절 북한에 제공한 돈의 출처와 성격, 제공루트를 까발려서 사법처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북한에 돈을 준 것은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북한의 개방을 위한 것으로 범죄행위가 아닐 뿐 아니라 공개하기 곤란한 사안들이므로 특검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동일한 사안에 대하여 공통된 의식을 갖지 못하고 극단적으로 패가 나뉘어 대립한다는 것은 참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왕과 이 무리 사이에는 타협의 여지라는 것이 있을 수 없고 공통된 결론과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결국 왕은 다니엘을 잡아다가 사자굴에 던지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저는 여기서 또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 오버랩되는데, 특검을 수용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며칠을 고민하며 기다리다가 마지막에 어쩔 수 없이 특검법을 공포하는 노대통령의 모습과,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해가 질 때까지 버티다가 어쩔 수 없이 다니엘을 잡아들이라는 명령을 내리는 다리우스 왕의 모습이 어찌 그리 비슷한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여기서는 음모를 꾸민 자들의 대승리가 되겠습니다. 왕을 굴복시키고 다니엘을 잡아들이게 한 승리를 거둔 이들은 악한 자들입니다. 아무 잘못도 없고 흠 하나 찾을 수 없는 다니엘을 제거하기 위해 별 짓을 다 했던 인간들입니다. 고매한 인격과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람을 존경하기보다 시기하고 미워해서 죽이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왕에게 온갖 아첨의 말로 결국 왕마저 속이고 왕을 올무에 빠뜨린 간신배들입니다. 나라의 안존과 백성의 평안보다 자신의 부귀와 영달을 추구하는 반역자들입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철면피들입니다. 마음 속에 악독이 가득하고 손에 피를 묻히는 데 아무런 주저함이 없는 자들입니다.
이런 악한 자들이 득세하면 세상은 어떤 곳이 되겠습니까? 이런 자들이 지배하고 큰 승리를 거둔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또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이들이 승리의 축배를 들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악한 자들이 득세한 세상을 간접적으로나 직접적으로 경험해 보았습니다. 탐관오리의 폭정에 삶이 피폐해졌던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 독재정권이 들어서 숨소리도 크게 내지 못하고 떨며 살아야 했던 경험들,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은 늘 쪼들리며 살아야 하는데 땅 투기, 주식 투기, 사채놀이 같은 부도덕한 행위를 한 사람들이 졸부가 돼서 거드럭거리며 행세하는 세상… 이런 세상을 살면서 의인들은 한숨을 짓고 힘없는 사람들은 있는 것마저 빼앗기고 삽니다.
이처럼 악한 자들이 득세한 세상은 절망과 암흑이 드리운 곳입니다. 더러운 음모를 꾸민 자들이 어리숙한 왕을 속여 의로운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져넣는 세상입니다. 의인은 슬퍼하고 약자는 고통을 당하는 세상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런 일을 만날 때 구경만 하고 당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의인의 눈물을 강요하는 악한 세상을 우리는 용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특히 시민의 권리와 책임이 커진 근대 이후에는 정의롭고 안전한 사회를 쟁취하는 것이 우리 시민들의 몫이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왕이나 관료집단에 의해 그 집단의 운명이 결정될 수 있었지만, 오늘은 시민이 참여하고 시민이 사회적 합의와 결론을 도출해 내는 시대입니다.
어쨌든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졌고, 왕은 밤새도록 금식하고 잠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물론 한편에서는 다니엘을 제거한 것을 축하하는 성대한 파티가 열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시대가 암울하고 불법이 횡행하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올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힘이 부족해서 늘 변방으로 몰려나고 불이익을 당해야 하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오늘 우리 주변의 정치상황과 국제정세에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부시가 당장 이라크를 침공한다고 하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부딪쳐야 할 일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에 호소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의로우신 재판장께서 거짓과 악이 횡행하는 세상을 바로잡아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악한 자들의 올무에 걸렸지만, 우리는 그것을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의 습관적으로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이런 말을 합니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나는 것에 대한 체념이고 고통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맞는 말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안 계시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공의를 베푸시고 공평하게 행하시는 하나님은 계십니다.
그런데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이 되겠습니까? 공의의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그것을 바로잡으시는 일입니다.
다니엘이 올무에 걸려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다면 일어나도 괜찮은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분명 계십니다.
그렇다면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일은 공의의 하나님에 의해 반드시 돌이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소망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암울하고 소망을 둘 곳이 없는 곳으로 변했다 할지라도, 의인이 슬퍼하고 고난을 당하는 곳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소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의를 위해 싸워야 할 이유가 바로 그것인 것입니다. 그런 소망과 믿음으로 악하고 비뚤어진 세상을 고치고 바로잡는 데 참여하고 앞장서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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