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선택하여야 합니까? (단3:13-18)
본문
본문은 '신앙의 절개'라는 주제로 강단에서 종종 증거되곤 합니다. 이는 본문이 여호와 신앙과 우상숭배의 갈림길에 있어서 양자 택일이라는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 제국 바벨론의 절대 군주 느부갓네살 왕에게 호출되어 그 앞에 선 다니엘의 세 친구들, 느부갓네살은 자신이 만든 금신상에게 이 세 젊은이들로 하여금 절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당시 느부갓네살 왕은 근동 지역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눈에 보이는 인간 통치자였고 세 젊은이가 경외하던 하나님은 세 젊은이의 배후에서 그리고 그들 심령 가운데서 살아 역사하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세계의 주관자이시자 참 신이셨습니다. 이에 이제 이들은 눈에 보이는 왕의 준엄한 명령과 눈에 보이지 않는 여호와 신앙 사이에서 양자 택일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에게는 반드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때 무엇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 본문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양심적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은 세 히브리 청년에게 이런 명령을 내렸습니다. 여기서 '엎드리다'는 말은 단순히 몸을 굽혀 상대방에게 존경이나 충성심을 표하는 행위를 뜻하는 단어입니다(삼하 1:2;14'4).
그러므로 청년들은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과 경외심을 품고 있으면서 형식적으로만 신상 앞에 엎드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 문제를 단순한 형식상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속여야 하는 본질상의 문제로 인식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이들은 단순히 형식상의 논리에 부합하여 왕의 명령에 순복하는 것을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차라리 죽음에 처할지언정 양심을 더럽히지 않는 본질적인 면을 택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되는 모든 선택의 문제도 우리의 바른 양심에 입각하여야 함을 명심합시다.
2. 신앙적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느부갓네살 왕이 세 젊은이에게 요구한 행위의 근본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신상 앞에 머리 숙이는 것은 단순히 엎드리는 행동이 아니라 전인격적인 신앙 행위 였습니다. 여기서 '절하다' 말은 신을 숭배 하는 경 배 행위 (worship)를 의미합니다. 청년들은 바로 이 사실을 잘 간파하고 있었으니 이는 여호와 신앙을 고수할 것이냐 아니면 왕의 명령에 굴복하여 우상 숭배할 것이냐는 결코 병행할 수 없는 양자 택일의 문제였습니다. 이들은 이와 같은 갈림길에서 과감히 여호와 신앙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이러한 선택은 삶과 죽음이 한 순간에 좌우되는 것(에 4 16)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이 비록 극렬한 풀무불 속에 던지움 당할지라도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얼마나 놀라운 믿음의 용기, 위대한 여호와 신앙의 승리입니까!
'순간의 선택이 십 년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집안 가구 등과 같은 물건을 구입할 때 선택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말입니다. 그러나 직장 선택, 배우자 선택 등은 평생을 좌우하는 문제이니 보다 심사 숙고하여 매우 신중하게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땅에서는 비록 일시적으로 핍박당하거나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릴지언정 장차 영생의 복을 허락하실 하나님을 신앙하느냐 아니면 장차 영원한 사망의 형벌에 처할지언정 이 땅에서의 우리의 우상이 될 수 있는 재물이나 권세, 명예나 그밖의 다른 무엇을 추구하느냐 하는 양자 택일의 문제입니다. 이러한 시험의 때가 우리에게 닥칠 때 정녕 성도 만인은 다니엘의 세 친구가 우리에게 보여준 바와 같이 양심과 신앙에 입각한 선택을 함으로써 실로 위대한 신앙의 길을 걸어야겠습니다.
1. 양심적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은 세 히브리 청년에게 이런 명령을 내렸습니다. 여기서 '엎드리다'는 말은 단순히 몸을 굽혀 상대방에게 존경이나 충성심을 표하는 행위를 뜻하는 단어입니다(삼하 1:2;14'4).
그러므로 청년들은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과 경외심을 품고 있으면서 형식적으로만 신상 앞에 엎드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 문제를 단순한 형식상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속여야 하는 본질상의 문제로 인식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이들은 단순히 형식상의 논리에 부합하여 왕의 명령에 순복하는 것을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차라리 죽음에 처할지언정 양심을 더럽히지 않는 본질적인 면을 택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되는 모든 선택의 문제도 우리의 바른 양심에 입각하여야 함을 명심합시다.
2. 신앙적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느부갓네살 왕이 세 젊은이에게 요구한 행위의 근본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신상 앞에 머리 숙이는 것은 단순히 엎드리는 행동이 아니라 전인격적인 신앙 행위 였습니다. 여기서 '절하다' 말은 신을 숭배 하는 경 배 행위 (worship)를 의미합니다. 청년들은 바로 이 사실을 잘 간파하고 있었으니 이는 여호와 신앙을 고수할 것이냐 아니면 왕의 명령에 굴복하여 우상 숭배할 것이냐는 결코 병행할 수 없는 양자 택일의 문제였습니다. 이들은 이와 같은 갈림길에서 과감히 여호와 신앙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이러한 선택은 삶과 죽음이 한 순간에 좌우되는 것(에 4 16)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이 비록 극렬한 풀무불 속에 던지움 당할지라도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얼마나 놀라운 믿음의 용기, 위대한 여호와 신앙의 승리입니까!
'순간의 선택이 십 년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집안 가구 등과 같은 물건을 구입할 때 선택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말입니다. 그러나 직장 선택, 배우자 선택 등은 평생을 좌우하는 문제이니 보다 심사 숙고하여 매우 신중하게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땅에서는 비록 일시적으로 핍박당하거나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릴지언정 장차 영생의 복을 허락하실 하나님을 신앙하느냐 아니면 장차 영원한 사망의 형벌에 처할지언정 이 땅에서의 우리의 우상이 될 수 있는 재물이나 권세, 명예나 그밖의 다른 무엇을 추구하느냐 하는 양자 택일의 문제입니다. 이러한 시험의 때가 우리에게 닥칠 때 정녕 성도 만인은 다니엘의 세 친구가 우리에게 보여준 바와 같이 양심과 신앙에 입각한 선택을 함으로써 실로 위대한 신앙의 길을 걸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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