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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사람 (사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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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형이상학적인 사람과 형이하학적인 사람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또는
1.없어야 할 사람
2.있으나마나 한 사람.
3.꼭 있어야 할 사람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나아가서 성경은
1.구원받은 사람과
2.구원받지 못한 사람으로 대별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 중에는 하나님께 크게 쓰여지는 사람이 있고 그럭저럭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늘나라에는 많은 상이 준비되어 있다고 했으니 하나님의 총애를 받아 많이 쓰임 받는 성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태복음 22:14의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오늘은 구약에 나타난 사람의 종류를 대별해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를 염두에 두고 말씀을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잡신을 섬긴 사람들
구약에는 바알과 짝하여 살며 삶 을 즐기던 무리가 많았습니다. 바알은 비와 풍요와 생식의 우상이었습니다. 당연히 섹스와 연결된 삶을 살게 했습니다. 바알은 남자의 신이었습니다. 사삿기 3:7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그들은 당연히 여자 신도 섬겼습니다. 아세라 신이었습니다. 또한 전쟁의 여신도 있었는데 그 이름은 아스다롯 이었습니다. 나체 여신이라는 별명을 가진 우상입니다. 전쟁에까지 여인의 나체상을 들고 다녔습니다.

잡신의 특징은 섹스였습니다. 이 귀신은 현대에도 왕성하게 활약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병폐를 말하라면 Hedonism 곧 향락주의,Mammonism 곧 황금 만능 주의 그리고 Homo-sexualism 곧 동성연애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구약시대의 잡신 곧 섹스의 신이 더욱 왕성해진 것 뿐입니다.

2. 미모를 자랑하는 사람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사건을 보면 창세기 3:6에,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곧 <보암직한> 매혹이 인간 타락의 주범이 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고로 외모의 아름다움을 지나치게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9:17, 눈매가 부드럽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웠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37: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여 위하여 채색 옷을 지었더니' 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그 아버지가 별나게 입혀 준 채색 옷 때문에 형들의 미움을 사서 노예로 팔려 가게 되는 비운을 맞게 됩니다. 사울은 다윗을 좋아했습니다만 삼상 16:21에 '이에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곧 사울은 다윗의 외모를 더 좋아했습니다. 결국 외모를 좋아하는 사울의 사랑은 쉽게 변하여 다윗을 원수처럼 대했습니다. 구약에는 다말(삼하13:1)이라던지 압살롬(삼하14:25) 등 미모에 치우쳐 살던 사람들을 많이 열거해 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이 예수님에 관해 예언한 내용을 보십시다. 이사야 53:1-12, '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 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의 아름다움은 외모와 외식의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영혼 구원의 내적 갈망이 생수처럼 터져나오는 아름다움을 지니셨던 것이다.

3. 광야로 나간 사람들
그러나 하나님께서 쓰셨던 사람들은 광야로 나간 사람들이었고 광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정착했습니다. 광야의 한 복판이었습니다. 출애굽은 전 국민적인 광야 생활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 할 때 광야를 통과했습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사울을 피했습니다. 엘리야가 이세벨을 피해 시나이 광야에 머물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광야에서 시험받으시며 공생애를 맞이했습니다.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자라서 누가복음 1:8에 광야에서 외치는 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1)광야는 하나님의 준비를 체험하는 곳입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말을 듣고 광야로 나가서 아들을 죽이려 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미 제물이 될 양을 준비하셨습니다.
2)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곳입니다. 광야의 생활을 통해 반석에서 물이 터져나오는 경험을 이스라엘은 맛보았습니다. 마라의 쓴 물이 단물이 되는 체험도 했습니다.
3) 하나님의 인도가 있습니다. 구름 기둥과 불기둥의 인도하심입니다. (출13: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4) 하나님의 훈련이 있습니다. 렘9:7,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내 딸 백성을 어떻게 처치할꼬 그들을 녹이고 연단 하리라. 히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광야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훈련시키십니다. 그렇습니다. 광야에는 고독과 고통과 아픔과 원통함과 죽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기서 당신을 체험케 하십니다. 광야로 나가면 <끝>이 보입니다. <하늘>이 보입니다. <내 자신>이 보입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고통과 슬픔과 고독이 변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될 광야로 나간 사람들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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