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은혜의 역사 (느9:22-37)
본문
여러분은 고난을 당해본 경험이 있습니까? 우리가 예측하지 못했던 고난은 우리의 꿈과 행복, 건강한 삶을 처참하게 유린해버리고 맙니다. 고난으로 인한 고통과 짓눌림을 우리 자신이 해결하지 않는 이상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과 참된 삶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 있는 다른 종교들도 끊임없이 고난을 해결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고난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고난 극복을 위한 세상 종교들의 노력
힌두교는 ‘달마리’라는 교리로 고난을 설명합니다. 고난은 전생에 지은 자기 죄 값을 치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인과응보인 것입니다. 마땅히 받아야 될 것을 다시 현세에서 받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을 그냥 두고 맙니다.
불교는 ‘열반’이라는 교리를 가르칩니다. ‘열반’은 ‘촛불을 끄듯 꺼진다’라는 뜻입니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욕정을 완전히 종식시키고 잠재울 때 고난으로부터 자유롭게 되고 고통이 사라진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것은 스텐리 존스의 말처럼 ‘두통을 없애기 위해 머리를 자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현실에서 도피하려 하고 현실을 외면하려 합니다.
회교에서는 ‘고난은 알라신이 정해준 운명’이라고 말합니다. ‘한 번 당한 고난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신이 네게 고난을 정해줬으니 감당해라’ 이것이 회교의 가르침입니다. 신이 준 고난에 불평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요, 고난은 그 인생 가운데 있는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현대 에피크로스 학파는 ‘향락주의’를 주장합니다. ‘현재의 고통을 잊을 수 있다면 어떤 행동을 해도 괜찮다. 술을 마셔서 잊을 수 있으면 술을 마시고, 춤을 춰서 잊을 수 있다면 춤을 춰라’라고 가르칩니다. 고통을 잊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해서 자신의 고통을 잊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이라고 주장합니다.
왜 고난이 주어지는가
이렇게 많은 종교, 학파들이 고난의 문제를 규명하고 정의하지만 고난과 고통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고난은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고난은 인간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섭리이다’라고 말합니다. 시편 119편 75절에서는 나에게 고난이 있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나를 끌고 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시편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은 그의 본심이 아니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자신의 나라와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고난을 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고난은 우리를 훈련시키는 학교인 것입니다. 고난의 학교를 통과해야만 우리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 땅에서 건강하고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 자체보다 고난이 우리에게 주어진 뜻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괴롭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주어진 고난의 이유를 알 수만 있다면 고난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고난의 목적을 알 수 있다면 그 고난은 오히려 나를 변화시켜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있어서 고난의 의미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고난의 의미를 알고자 노력했습니다. ‘왜 우리는 포로로 살아야 하는가?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오랜 기간 우리 민족을 버려 두셨는가?’
그들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넓은 광장에 모여서 낮의 사분의 일 동안 말씀을 듣고 낮의 사분의 일 동안 기도를 하며 그 고난의 의미를 하나씩 깨달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들은 이 고난이 자신들의 죄 때문에 왔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37절과 38절을 보십시오.
우리의 죄로 인하여 주께서 우리 위에 세우신 이방 열왕이 이 땅의 많은 소산을 얻고 저희가 우리의 몸과 육축을 임의로 관할하오니 우리의 곤란이 심하오며 우리가 이 모든 일을 인하여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을 치나이다 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의 죄를 깨닫고 울면서 회개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기도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그들의 죄를 조상들의 역사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조상들의 사건을 통해서 조상들의 죄가 과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현재 삶 가운데서도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는 자신의 죄의 유형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조상들의 역사를 반성하고 회개하면서 무엇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해결해야 하는지 5가지 기도의 제목, 회개의 내용, 죄의 패턴들을 분명하게 가르쳐주십니다. 22절에서 26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또 나라들과 족속들을 저희에게 각각 나누어 주시매 저희가 시혼의 땅 곧 헤스본 왕의 땅과 바산 왕 옥의 땅을 차지하였나이다 주께서 그 자손을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시고 전에 그 열조에게 명하사 들어가서 차지하라고 하신 땅으로 인도하여 이르게 하셨으므로 그 자손이 들어가서 땅을 차지하되 주께서 그 땅 가나안 거민으로 저희 앞에 복종케 하실 때에 가나안 사람과 그 왕들과 본토 여러 족속을 저희 손에 붙여 임의로 행하게 하시매 저희가 견고한 성들과 기름진 땅을 취하고 모든 아름다운 물건을 채운 집과 파서 만든 우물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허다한 과목을 차지하여 배불리 먹어 살찌고 주의 큰 복을 즐겼사오나 저희가 오히려 순종치 아니하고 주를 거역하며 주의 율법을 등뒤에 두고 주께로 돌아오기를 권면하는 선지자들을 죽여 크게 설만하게 행하였나이다
22절에서 26절까지 말씀은 가나안 정복에 관한 내용입니다. 본문 중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한 말씀, 아브라함에게 준 말씀을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하나씩 이루어나감으로써 자신의 신실함을 철저히 증명하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불순종하는 인간
하나님은 ‘너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겠다’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을 고산 땅에서 생육하여 번성하게 하고 장정이 60만 명인 상태에서 애굽 땅으로부터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말씀하신 그대로 광야 40년 생애를 거쳐 그들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에 있는 7족속과 31명의 왕들을 물리쳐 주십니다.
이들은 이렇게 신실하신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와 같은 존재로 존중하고 대우해주셨습니다. 24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 자손이 들어가서 땅을 차지하되 주께서 그 땅 가나안 거민으로 저희 앞에 복종케 하실 때에 가나안 사람과 그 왕들과 본토 여러 족속을 저희 손에 붙여 임의로 행하게 하시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의 7족속과 31명의 왕을 정복하시고 지배하시게 되는 순간 그 땅에 대한 주도권을 자신의 백성에게 주십니다. 24절 끝에 있는 ‘임의로 행하다’의 본래 뜻은 ‘소원대로 행하게 하다, 자기의 뜻대로 행하게 하다’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으로 인해서 그 땅에서 자기들이 하고 싶은대로 합니다. 기름진 땅과 견고한 성 등 그 땅에 있는 좋은 것들을 다 취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과목을 차지하여 배불리 먹어 살찌고 주의 큰 복을 누렸다’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신 복입니다.
그런데 이런 복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악을 저지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첫 번째로 반드시 회개해야 하는 죄의 내용은 하나님이 주신 복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불순종하는 죄악입니다. 25절과 26절을 보면 ‘주의 큰 복을 즐겼사오나 저희가 오히려 순종치 아니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복을 아낌없이 줬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소유를 마치 자신의 것인양 착각하고, 마땅히 누려야 될 것으로 여기고 하나님 앞에 불순종했던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 백성에게 벌을 내리고 징계하시는 겁니다.
'고집하는 어깨'를 내미는 이스라엘
두 번째 그들의 죄는 하나님의 율법, 하나님의 말씀을 등 뒤로 던져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하는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따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 1장 8절과 9절에서 ‘두려워하지 말라. 겁내지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너는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것을 지켜라. 그리하면 내가 너를 형통케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비단 여호수아 개인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모든 족속에게 하나님이 부탁하는 말씀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지켜야 하는 십계명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따르지 않는 죄악을 행했던 것입니다.
‘니느웨에 가서 회개하도록 복음을 전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다시스로 도망한 요나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정복 기간에 하나님보다도 자기 자신을 더 중요시하고,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뜻을 더 중요시 여기는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죄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됩니다. 27절에서 2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그 대적의 손에 붙이사 곤고를 당하게 하시매 저희가 환난을 당하여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크게 긍휼을 발하사 구원자들을 주어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거늘 저희가 평강을 얻은 후에 다시 주 앞에서 악을 행하므로 주께서 그 대적의 손에 버려 두사 대적에게 제어를 받게 하시다가 저희가 돌이켜서 주께 부르짖으매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여러번 긍휼을 발하사건져내시고 다시 주의 율법을 복종하게 하시려고 경계하셨으나 저희가 교만히 행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 가운데서 삶을 얻는 주의 계명을 듣지 아니하며 주의 규례를 범하여 고집하는 어깨를 내어밀며 목을 굳게 하여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세 번째 유형의 죄는 구원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얻기 이전보다 더 큰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한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은 다른 민족의 손에 붙이십니다. 그들의 압제를 견디다 못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구원해주시길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긍휼을 베풀어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구원해 준 이후에 더 큰 죄를 저지릅니다. 이것이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행한 죄인 것입니다.
네 번째 이들은 자기들의 고집, 생각, 주장을 포기하지 못하는 어리석음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반복해 죄를 짓습니다.
29절에 보면 그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을 ‘고집하는 어깨를 내어밀고’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길들여지지 않은 암소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주인이 암소에다 짐을 지우고 끌고 가려 하지만 주인의 명령을 듣지 않고 버티고 있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구원해주시고 다시 악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 새로운 계명과 말씀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버티고 있는 이스라엘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런 모습과 고집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으로부터 더 큰 심판과 고난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원하는 것은 자신의 고집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기를 바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 가운데서 깨닫는 다섯 번째 죄의 유형이 30절에서 31절의 말씀에 나와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여러 해 동안 용서하시고 또 선지자로 말미암아 주의 신으로 저희를 경계하시되 저희가 듣지 아니하므로 열방 사람의 손에 붙이시고도 주의 긍휼이 크시므로 저희를 아주 멸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도 아니하셨사오니 주는 은혜로우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열왕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이 더욱더 관용해지자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그들의 죄로 인해 멸망과 심판이 올 것이라고 경계하셨습니다. 그러나 30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시는 경계를 듣지 않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경고를 들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어려워진 상황이 하나님이 자신을 버린 결과라고 하나님께 원망하고 대드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에스라와 레위 사람을 대표해서 광장에 함께 모여서 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러한 죄악들이 마침내 자신을 포로로까지 이르게 했다는 것을 깊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철저하게 구체적으로 자신들이 어떠한 죄를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지적 앞에서 자신들이 죄인이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32절부터 36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이여 광대하시고 능하시고 두려우시며 언약과 인자를 지키시는 하나님이여 우리와 우리 열왕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열조와 주의 모든 백성이 앗수르 열왕의 때로부터 오늘날까지 당한바 환난을 이제 작게 여기시지 마옵소서 그러나 우리의 당한 모든 일에 주는 공의로우시니 우리는 악을 행하였사오나 주는 진실히 행하셨음이니이다 우리 열왕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열조가 주의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며 주의 명령과 주의 경계하신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고 저희가 그 나라와 주의 베푸신 큰 복과 자기 앞에 주신 넓고 기름진 땅을 누리면서도 주를 섬기지 아니하며 악행을 그치지 아니한고로 우리가 오늘날 종이 되었삽는데 곧 주께서 우리 열조에게 주사 그 실과를 먹고 그 아름다운 소산을 누리게 하신 땅에서 종이 되었나이다
이들은 먼저 자신들이 종이 되었던 것이 바로 자신들의 죄악 때문이었던 것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에게 고난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로움을 높여드립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서 자신을 다루심을, 하나님의 고난의 섭리를 깨달았습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고난이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하나님이 목적을 가지고 자신들을 이끈다는 것을 깨닫는 그 순간에 더 이상 자신들이 당하는 고난이 자신들을 괴롭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오히려 그 고난이 자신들에게 의미가 되고, 하나님이 복을 주는 통로인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고난은 바로 변장된 복인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님 앞에 다시 한 번 자신의 죄를 진실하게 자백하면서 회개합니다. 37절과 38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의 죄로 인하여 주께서 우리 위에 세우신 이방 열왕이 이 땅의 많은 소산을 얻고 저희가 우리의 몸과 육축을 임의로 관할하오니 우리의 곤난이 심하오며 우리가 이 모든 일을 인하여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을 치나이다 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을 용서하신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 앞에 자신들의 모든 것을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들을 새롭게 계약해 달라고 간절히 부르짖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언약을 세워 달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신 말씀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난에서 자유할 수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안에 들어올 때만이 그들의 고난의 고통과 눌림과 저주로부터 자유케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도 동일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구체적인 죄의 유형들, 죄의 제목들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고, 그 말씀과 계약을 맺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축복과 삶을 마음껏 누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고난 극복을 위한 세상 종교들의 노력
힌두교는 ‘달마리’라는 교리로 고난을 설명합니다. 고난은 전생에 지은 자기 죄 값을 치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인과응보인 것입니다. 마땅히 받아야 될 것을 다시 현세에서 받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을 그냥 두고 맙니다.
불교는 ‘열반’이라는 교리를 가르칩니다. ‘열반’은 ‘촛불을 끄듯 꺼진다’라는 뜻입니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욕정을 완전히 종식시키고 잠재울 때 고난으로부터 자유롭게 되고 고통이 사라진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것은 스텐리 존스의 말처럼 ‘두통을 없애기 위해 머리를 자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현실에서 도피하려 하고 현실을 외면하려 합니다.
회교에서는 ‘고난은 알라신이 정해준 운명’이라고 말합니다. ‘한 번 당한 고난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신이 네게 고난을 정해줬으니 감당해라’ 이것이 회교의 가르침입니다. 신이 준 고난에 불평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요, 고난은 그 인생 가운데 있는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현대 에피크로스 학파는 ‘향락주의’를 주장합니다. ‘현재의 고통을 잊을 수 있다면 어떤 행동을 해도 괜찮다. 술을 마셔서 잊을 수 있으면 술을 마시고, 춤을 춰서 잊을 수 있다면 춤을 춰라’라고 가르칩니다. 고통을 잊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해서 자신의 고통을 잊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이라고 주장합니다.
왜 고난이 주어지는가
이렇게 많은 종교, 학파들이 고난의 문제를 규명하고 정의하지만 고난과 고통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고난은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고난은 인간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섭리이다’라고 말합니다. 시편 119편 75절에서는 나에게 고난이 있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나를 끌고 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시편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은 그의 본심이 아니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자신의 나라와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고난을 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고난은 우리를 훈련시키는 학교인 것입니다. 고난의 학교를 통과해야만 우리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 땅에서 건강하고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 자체보다 고난이 우리에게 주어진 뜻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괴롭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주어진 고난의 이유를 알 수만 있다면 고난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고난의 목적을 알 수 있다면 그 고난은 오히려 나를 변화시켜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있어서 고난의 의미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고난의 의미를 알고자 노력했습니다. ‘왜 우리는 포로로 살아야 하는가?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오랜 기간 우리 민족을 버려 두셨는가?’
그들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넓은 광장에 모여서 낮의 사분의 일 동안 말씀을 듣고 낮의 사분의 일 동안 기도를 하며 그 고난의 의미를 하나씩 깨달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들은 이 고난이 자신들의 죄 때문에 왔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37절과 38절을 보십시오.
우리의 죄로 인하여 주께서 우리 위에 세우신 이방 열왕이 이 땅의 많은 소산을 얻고 저희가 우리의 몸과 육축을 임의로 관할하오니 우리의 곤란이 심하오며 우리가 이 모든 일을 인하여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을 치나이다 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의 죄를 깨닫고 울면서 회개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기도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그들의 죄를 조상들의 역사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조상들의 사건을 통해서 조상들의 죄가 과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현재 삶 가운데서도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는 자신의 죄의 유형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조상들의 역사를 반성하고 회개하면서 무엇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해결해야 하는지 5가지 기도의 제목, 회개의 내용, 죄의 패턴들을 분명하게 가르쳐주십니다. 22절에서 26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또 나라들과 족속들을 저희에게 각각 나누어 주시매 저희가 시혼의 땅 곧 헤스본 왕의 땅과 바산 왕 옥의 땅을 차지하였나이다 주께서 그 자손을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시고 전에 그 열조에게 명하사 들어가서 차지하라고 하신 땅으로 인도하여 이르게 하셨으므로 그 자손이 들어가서 땅을 차지하되 주께서 그 땅 가나안 거민으로 저희 앞에 복종케 하실 때에 가나안 사람과 그 왕들과 본토 여러 족속을 저희 손에 붙여 임의로 행하게 하시매 저희가 견고한 성들과 기름진 땅을 취하고 모든 아름다운 물건을 채운 집과 파서 만든 우물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허다한 과목을 차지하여 배불리 먹어 살찌고 주의 큰 복을 즐겼사오나 저희가 오히려 순종치 아니하고 주를 거역하며 주의 율법을 등뒤에 두고 주께로 돌아오기를 권면하는 선지자들을 죽여 크게 설만하게 행하였나이다
22절에서 26절까지 말씀은 가나안 정복에 관한 내용입니다. 본문 중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한 말씀, 아브라함에게 준 말씀을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하나씩 이루어나감으로써 자신의 신실함을 철저히 증명하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불순종하는 인간
하나님은 ‘너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겠다’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을 고산 땅에서 생육하여 번성하게 하고 장정이 60만 명인 상태에서 애굽 땅으로부터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말씀하신 그대로 광야 40년 생애를 거쳐 그들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에 있는 7족속과 31명의 왕들을 물리쳐 주십니다.
이들은 이렇게 신실하신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와 같은 존재로 존중하고 대우해주셨습니다. 24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 자손이 들어가서 땅을 차지하되 주께서 그 땅 가나안 거민으로 저희 앞에 복종케 하실 때에 가나안 사람과 그 왕들과 본토 여러 족속을 저희 손에 붙여 임의로 행하게 하시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의 7족속과 31명의 왕을 정복하시고 지배하시게 되는 순간 그 땅에 대한 주도권을 자신의 백성에게 주십니다. 24절 끝에 있는 ‘임의로 행하다’의 본래 뜻은 ‘소원대로 행하게 하다, 자기의 뜻대로 행하게 하다’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으로 인해서 그 땅에서 자기들이 하고 싶은대로 합니다. 기름진 땅과 견고한 성 등 그 땅에 있는 좋은 것들을 다 취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과목을 차지하여 배불리 먹어 살찌고 주의 큰 복을 누렸다’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신 복입니다.
그런데 이런 복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악을 저지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첫 번째로 반드시 회개해야 하는 죄의 내용은 하나님이 주신 복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불순종하는 죄악입니다. 25절과 26절을 보면 ‘주의 큰 복을 즐겼사오나 저희가 오히려 순종치 아니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복을 아낌없이 줬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소유를 마치 자신의 것인양 착각하고, 마땅히 누려야 될 것으로 여기고 하나님 앞에 불순종했던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 백성에게 벌을 내리고 징계하시는 겁니다.
'고집하는 어깨'를 내미는 이스라엘
두 번째 그들의 죄는 하나님의 율법, 하나님의 말씀을 등 뒤로 던져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하는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따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 1장 8절과 9절에서 ‘두려워하지 말라. 겁내지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너는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것을 지켜라. 그리하면 내가 너를 형통케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비단 여호수아 개인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모든 족속에게 하나님이 부탁하는 말씀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지켜야 하는 십계명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따르지 않는 죄악을 행했던 것입니다.
‘니느웨에 가서 회개하도록 복음을 전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다시스로 도망한 요나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정복 기간에 하나님보다도 자기 자신을 더 중요시하고,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뜻을 더 중요시 여기는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죄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됩니다. 27절에서 2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그 대적의 손에 붙이사 곤고를 당하게 하시매 저희가 환난을 당하여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크게 긍휼을 발하사 구원자들을 주어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거늘 저희가 평강을 얻은 후에 다시 주 앞에서 악을 행하므로 주께서 그 대적의 손에 버려 두사 대적에게 제어를 받게 하시다가 저희가 돌이켜서 주께 부르짖으매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여러번 긍휼을 발하사건져내시고 다시 주의 율법을 복종하게 하시려고 경계하셨으나 저희가 교만히 행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 가운데서 삶을 얻는 주의 계명을 듣지 아니하며 주의 규례를 범하여 고집하는 어깨를 내어밀며 목을 굳게 하여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세 번째 유형의 죄는 구원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얻기 이전보다 더 큰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한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은 다른 민족의 손에 붙이십니다. 그들의 압제를 견디다 못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구원해주시길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긍휼을 베풀어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구원해 준 이후에 더 큰 죄를 저지릅니다. 이것이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행한 죄인 것입니다.
네 번째 이들은 자기들의 고집, 생각, 주장을 포기하지 못하는 어리석음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반복해 죄를 짓습니다.
29절에 보면 그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을 ‘고집하는 어깨를 내어밀고’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길들여지지 않은 암소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주인이 암소에다 짐을 지우고 끌고 가려 하지만 주인의 명령을 듣지 않고 버티고 있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구원해주시고 다시 악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 새로운 계명과 말씀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버티고 있는 이스라엘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런 모습과 고집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으로부터 더 큰 심판과 고난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원하는 것은 자신의 고집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기를 바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 가운데서 깨닫는 다섯 번째 죄의 유형이 30절에서 31절의 말씀에 나와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여러 해 동안 용서하시고 또 선지자로 말미암아 주의 신으로 저희를 경계하시되 저희가 듣지 아니하므로 열방 사람의 손에 붙이시고도 주의 긍휼이 크시므로 저희를 아주 멸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도 아니하셨사오니 주는 은혜로우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열왕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이 더욱더 관용해지자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그들의 죄로 인해 멸망과 심판이 올 것이라고 경계하셨습니다. 그러나 30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시는 경계를 듣지 않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경고를 들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어려워진 상황이 하나님이 자신을 버린 결과라고 하나님께 원망하고 대드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에스라와 레위 사람을 대표해서 광장에 함께 모여서 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러한 죄악들이 마침내 자신을 포로로까지 이르게 했다는 것을 깊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철저하게 구체적으로 자신들이 어떠한 죄를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지적 앞에서 자신들이 죄인이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32절부터 36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이여 광대하시고 능하시고 두려우시며 언약과 인자를 지키시는 하나님이여 우리와 우리 열왕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열조와 주의 모든 백성이 앗수르 열왕의 때로부터 오늘날까지 당한바 환난을 이제 작게 여기시지 마옵소서 그러나 우리의 당한 모든 일에 주는 공의로우시니 우리는 악을 행하였사오나 주는 진실히 행하셨음이니이다 우리 열왕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열조가 주의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며 주의 명령과 주의 경계하신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고 저희가 그 나라와 주의 베푸신 큰 복과 자기 앞에 주신 넓고 기름진 땅을 누리면서도 주를 섬기지 아니하며 악행을 그치지 아니한고로 우리가 오늘날 종이 되었삽는데 곧 주께서 우리 열조에게 주사 그 실과를 먹고 그 아름다운 소산을 누리게 하신 땅에서 종이 되었나이다
이들은 먼저 자신들이 종이 되었던 것이 바로 자신들의 죄악 때문이었던 것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에게 고난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로움을 높여드립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서 자신을 다루심을, 하나님의 고난의 섭리를 깨달았습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고난이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하나님이 목적을 가지고 자신들을 이끈다는 것을 깨닫는 그 순간에 더 이상 자신들이 당하는 고난이 자신들을 괴롭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오히려 그 고난이 자신들에게 의미가 되고, 하나님이 복을 주는 통로인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고난은 바로 변장된 복인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님 앞에 다시 한 번 자신의 죄를 진실하게 자백하면서 회개합니다. 37절과 38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의 죄로 인하여 주께서 우리 위에 세우신 이방 열왕이 이 땅의 많은 소산을 얻고 저희가 우리의 몸과 육축을 임의로 관할하오니 우리의 곤난이 심하오며 우리가 이 모든 일을 인하여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을 치나이다 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을 용서하신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 앞에 자신들의 모든 것을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들을 새롭게 계약해 달라고 간절히 부르짖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언약을 세워 달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신 말씀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난에서 자유할 수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안에 들어올 때만이 그들의 고난의 고통과 눌림과 저주로부터 자유케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도 동일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구체적인 죄의 유형들, 죄의 제목들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고, 그 말씀과 계약을 맺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축복과 삶을 마음껏 누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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