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중심 (민2:1-9)
본문
신앙은 교육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입니다. 육의 체질에서 영의 체질로 말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이라는 것은 이때까지 나를 중심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판단하던것을 이제부터 하나님중심으로 하겠습니다 라고 고백하고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신앙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 중심이기 때문에 자기에게 이익이 되고 자기에게 행복이 되는 쪽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그것이 진리가 되고 그것이 모든 법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이라는 것은 나의 이익이나 나의 행복과는 상관없이 내게 손해가 오고 내게 불행이 오더라도 주님의 뜻이라면그것이 아멘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하나님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 예배, 설교, 모든 봉사가 나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중심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기분이 좋고 내가 즐거우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는 그러한 것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면 기도가 어떤 기도가 되겠습니까? 예배가 어떤 예배가 되며 봉사가 어떤 봉사가 되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이 전투대형으로 진을 치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무렇게나 진을 치고 전진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정한 형태로 진을 치고 또한 행진을 하도록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장면은 2절에 진을 치는데 회막을 중심으로 사면으로 진을 치라고 하십니다. 동편에는 장자 지파인 유다 지파를 중심으로, 남편에는 르우벤 지파 중심으로, 서편에는 에브라임 지파를 중심으로, 북편에는 단 지파를 중심으로 해서 12지파가 진을치도록 지시하십니다. 이 진은 하나님 중심의 진 인것입니다. 행군을 할 때에도 진을 칠 때에도 늘 성막이 이스라엘 백성가운데에 있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시청각 교육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군대의 총사령관이라는 말입니다. 광야를 진행해 나가는데 하나님이 총사령관으로서 지휘를 하시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의 지휘를 따라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치는 자리도 그리고 행진하는 일정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지시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움직이는대로 움직였고 또한 세웠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가나안이라는 어떤 목표가 있습니다. 이 목표를 향해가는 데에는 하나님 중심으로 진행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모든 것이 진행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 구석 구석속에서 이러한 삶이 진행되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즉 내 인생의 전부가 바로 하나님이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냥 통치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명령하는 분으로서 내 삶에 존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꾸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필요할 때에만 부르는 어떤 신으로 생각합니다. 내 힘으로 살다가 힘이 딸리면 좀 도와주세요 그리고 또 자기가 할 수있으면 제가 할께요 이런 식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하나님의 중심이 되지 않는 다면 내가 아무리 종교적인 율례를 행하고 있어도 그는 불신앙인 것입니다. 의식이 변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의 출발이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하나님을 믿어도 그것은 하나의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자기중심을 깨고 하나님 중심의 사람으로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자꾸 자기를 중심으로 해서 자기를 위한 기독교를 만들어 가면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해야 하고 나를 사랑하면 내가 어려울 때에 도와주어야 하고 다른 사람보다는 나를 더 사랑해 주고 내 자식을 더 아껴주는 그런 하나님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바로 불신앙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중심으로 살려고 한다면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합니까? 그것은 자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나는 죽고 그리스도만 사는 것입니다. 분명히 우리는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신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하나님 중심으로 살려고 한다면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나를 포기할 때에 하나님 중심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죽고 주님만 산다면 모든 일에 결정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묻는다면 그것은 내 욕심을 버리는 것이 주님의 뜻인 것입니다.내 욕심을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내 중심으로 일이 진행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신자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우리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왕으로서 존재하느냐하는 것입니다. 그 분께 나의 자리를 내어 드리고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결정적인 일이 아닌 부분에서는 인정하고 있습니다. 돈이 안드는 일이라든지 나의 이익에 별로 지장이 없는 부분 또는 내 취미에 맞는 그러한부분에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양보합니다. 그러나 나의 이익에 손해가 가고 나의 자존심과 내 체면을 손상하는 부분에서는 절대로 양보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하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을 기뻐하는 일이라고 하는 데에는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내 몸은 이제 내 것이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오직 주의 것입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이것이신자의 삶의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 분이 인도하는대로 우리는 이끌려 가셔야 합니다. 어떤 형편과 처지로 우리를 인도하시든지 그 분이 가장 선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에 맡기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이나 처지를 불평하시기 말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최선의 삶이시며 가장 선한 삶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의 왕이시며 우리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 중심이기 때문에 자기에게 이익이 되고 자기에게 행복이 되는 쪽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그것이 진리가 되고 그것이 모든 법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이라는 것은 나의 이익이나 나의 행복과는 상관없이 내게 손해가 오고 내게 불행이 오더라도 주님의 뜻이라면그것이 아멘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하나님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 예배, 설교, 모든 봉사가 나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중심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기분이 좋고 내가 즐거우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는 그러한 것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면 기도가 어떤 기도가 되겠습니까? 예배가 어떤 예배가 되며 봉사가 어떤 봉사가 되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이 전투대형으로 진을 치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무렇게나 진을 치고 전진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정한 형태로 진을 치고 또한 행진을 하도록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장면은 2절에 진을 치는데 회막을 중심으로 사면으로 진을 치라고 하십니다. 동편에는 장자 지파인 유다 지파를 중심으로, 남편에는 르우벤 지파 중심으로, 서편에는 에브라임 지파를 중심으로, 북편에는 단 지파를 중심으로 해서 12지파가 진을치도록 지시하십니다. 이 진은 하나님 중심의 진 인것입니다. 행군을 할 때에도 진을 칠 때에도 늘 성막이 이스라엘 백성가운데에 있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시청각 교육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군대의 총사령관이라는 말입니다. 광야를 진행해 나가는데 하나님이 총사령관으로서 지휘를 하시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의 지휘를 따라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치는 자리도 그리고 행진하는 일정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지시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움직이는대로 움직였고 또한 세웠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가나안이라는 어떤 목표가 있습니다. 이 목표를 향해가는 데에는 하나님 중심으로 진행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모든 것이 진행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 구석 구석속에서 이러한 삶이 진행되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즉 내 인생의 전부가 바로 하나님이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냥 통치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명령하는 분으로서 내 삶에 존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꾸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필요할 때에만 부르는 어떤 신으로 생각합니다. 내 힘으로 살다가 힘이 딸리면 좀 도와주세요 그리고 또 자기가 할 수있으면 제가 할께요 이런 식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하나님의 중심이 되지 않는 다면 내가 아무리 종교적인 율례를 행하고 있어도 그는 불신앙인 것입니다. 의식이 변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의 출발이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하나님을 믿어도 그것은 하나의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자기중심을 깨고 하나님 중심의 사람으로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자꾸 자기를 중심으로 해서 자기를 위한 기독교를 만들어 가면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해야 하고 나를 사랑하면 내가 어려울 때에 도와주어야 하고 다른 사람보다는 나를 더 사랑해 주고 내 자식을 더 아껴주는 그런 하나님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바로 불신앙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중심으로 살려고 한다면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합니까? 그것은 자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나는 죽고 그리스도만 사는 것입니다. 분명히 우리는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신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하나님 중심으로 살려고 한다면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나를 포기할 때에 하나님 중심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죽고 주님만 산다면 모든 일에 결정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묻는다면 그것은 내 욕심을 버리는 것이 주님의 뜻인 것입니다.내 욕심을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내 중심으로 일이 진행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신자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우리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왕으로서 존재하느냐하는 것입니다. 그 분께 나의 자리를 내어 드리고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결정적인 일이 아닌 부분에서는 인정하고 있습니다. 돈이 안드는 일이라든지 나의 이익에 별로 지장이 없는 부분 또는 내 취미에 맞는 그러한부분에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양보합니다. 그러나 나의 이익에 손해가 가고 나의 자존심과 내 체면을 손상하는 부분에서는 절대로 양보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하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을 기뻐하는 일이라고 하는 데에는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내 몸은 이제 내 것이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오직 주의 것입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이것이신자의 삶의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 분이 인도하는대로 우리는 이끌려 가셔야 합니다. 어떤 형편과 처지로 우리를 인도하시든지 그 분이 가장 선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에 맡기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이나 처지를 불평하시기 말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최선의 삶이시며 가장 선한 삶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의 왕이시며 우리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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